문제는 저수가가 아니라 대형병원의 외래 독식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집단 휴진 투쟁, 사회적 명분이 있는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문재인케어를 저지하기 위해 기획했던 집단 휴진을 보류했다. 남북 정상회담 시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문재인케어에 반대하는 공식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문재인케어로 비급여가 급여화 되면, 해당 의료 행위를 환자들이 원하는 만큼 못 받는다는 논지다. 예컨대 초음파가 비급여일 때는 100% 환자가 부담하므로 몇 번을 받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서 간섭하지 않는다. 하지만 급여 적용이 되면 제한이 생긴다. 복부 초음파는 1년에 2번까지만 보험 적용해주는 식이다. 환자가 치료를 받고 싶어도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는 논리다.
실제 환자들 입장에서 살펴보면 이 주장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 환자들이 초음파 시술을 받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비용이다. 급여화가 되면 본인부담금이 줄어든다. 돈이 없어 초음파를 못 받던 사람들이 받을 수 있게 된다. 횟수 제한은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기준을 정하면 된다. 급여 적용 기준 횟수를 정할 때 전문가들의 의견과 의학적 근거를 제대로 반영하면 될 문제다.
진짜 핵심 문제는 바로 수가다. 의협은 3월 30일 성명을 통해 건강보험재정 강화를 강하게 요구했다. 동시에 ‘저부담, 저수가, 저보장’인 건강보험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완곡하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보험료를 올리고 수가를 인상하자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의협의 수가 인상 요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와 “지금 상황에서 의협은 어떤 주장을 해야 하는가?”이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의 입장이 다른 이유
그런데 여기서 보건복지부와 협상을 둘러싸고 의협과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의협은 신임회장으로 극우강경파인 최대집이 당선되었고, 집단 휴진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투쟁에 나섰다. 복지부와의 협상도 중단했다. 반면 병협은 의협과 거리를 두며 복지부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대체로 의협은 의원급 의료기관, 즉 동네의원 개원의들의 입장을 주로 대변한다. 병협은 대형병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이 글에선 의료기관을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나누었다. 의료법상 의원은 병상이 30개 미만인 의료기관이며, 종합병원은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추고 지정과목 전문의가 상주하는 의료기관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수련병원으로, 주로 대학병원이다. 병상이 30개 이상이면서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병원을 병원으로 분류하였다.
입장이 갈리는 이유는 병원에 비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 전망이 상대적으로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령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의원을 방문하는 환자 수는 정체되어 있거나 오히려 약간 감소했다. 동네의원을 열고 있는 개원의들이 겪고 있는 불안감은 이러한 환자 수 감소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과거 수준의 수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수가 인상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반면 대형병원 외래 방문 환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의협과 병협이 입장이 다른 이유다.
저수가론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가가 낮다고 단언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연구 결과들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수가가 낮다고 불평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실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수익’ 부분이다. 또 현재 상황에서 수가 인상 요구가 가장 거센 것은 의협이 대변하는 의원들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익구조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의료비 지불제도는 행위별 수가제다. 의료행위를 한 번 할 때마다 그 행위의 가격만큼 돈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기업과 수익 구조가 비슷하다. 즉, ‘수익 = 수가X행위량 – 비용’이다. 다음과 같이 수식으로 나타내보자.
여기서 수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수가는 ‘상대가치점수X환산지수’다. 상대가치점수는 업무량, 자원량, 위험도를 고려하여 의료행위의 가치를 항목 간 상대적 점수로 나타낸 것이다. 예컨대 상처 소독이 1점이면, 암수술이 200점인 식이다. 환산지수는 상대가치점수를 화폐 단위로 변환하는 ‘점당 가격’이다. 상대가치점수는 몇 년에 한 번씩 개정을 하고, 환산지수는 매년 개정한다. 이른바 ‘수가 협상’을 한다는 것은 바로 환산지수를 협상한다는 뜻이다.
의사들은 원가보전율이 낮다는 걸 근거로 저수가라고 이야기한다. 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심평원에서 2006년에 발간한 ‘상대가치점수 개정연구 보고서’다. 여기서 의원과 병원의 원가보전율 평균이 ‘73.9%’로 나왔다. 또 개인적인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컨대 재료비가 1만원인데, 수가가 9000원인 행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심평원은 2012년 ‘유형별 상대가치 개선을 위한 의료기관 회계조사’ 결과를 근거로 저수가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연구에서는 급여항목 기준으로 원가보전율이 약 96%가 나왔다. 비급여를 포함하면 평균 105%, 의원급 의료기관은 110%에 달한다.
여기서 원가보전율이 의미하는 바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컨대 원가보전율이 100%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의사가 돈을 한 푼도 못 벌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심평원은 비용에 의사 보수를 넣었는데, 경영자인 원장의 보수도 넣었다. 따라서 원가보전율이 100%라는 이야기는 경영자인 원장이 의사 평균 수준의 돈은 번다는 이야기다. 2012년 심평원 조사에서는 1년 기준 약 1억 500만원이다.
왜 이렇게 엇갈리는 원가보전율이 나왔을까? 회계자료의 신뢰성 문제도 있지만, 표본기관이 다른 이유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조사 대상인 의료기관의 대표성 문제 때문에 원가보전율을 계산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2006년 ‘상대가치점수 개정연구 보고서’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분석해보자.
의료행위가 두 종류만 있다고 가정하자. 주사치료와 물리치료다. 주사치료의 수가는 1000원이며, 원가는 2000이다. 물리치료의 수가는 2000원이며, 원가는 1000원이다. 주사치료는 할 때마다 1000원씩 손해가 나며, 물리치료는 할 때마다 1000원씩 이익을 본다. 그렇다면 수가 총합이 3000원, 원가 총합이 3000원이니 원가보전율이 100%인 것일까? 아니다. 아래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의원 A, B가 있다. 두 의원 모두 하루에 환자를 6명 진료하며, 의료행위는 주사치료와 물리치료만 있다고 가정하자. A의원에서 주사치료를 2번, 물리치료를 4번 했고, B의원에서 주사치료를 4번, 물리치료를 2번 했다고 하자. 이 날의 매출, 원가, 원가보전율을 계산하면 아래 표 1과 같다.
이 표에서는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어떤 의료기관을 표본으로 하느냐에 따라 원가보전율이 완전히 달라진다. 대부분의 원가보전율 연구를 보면 표본 의료기관이 10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표본추출 방법을 보완하고 표본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둘째, 특정 의료행위 수가가 원가에 미달한다고 해서 그게 적자로 이어지진 않는다. 대부분 의사들은 A의원과 같이 물리치료 위주로 치료할 것이다. 수가가 높은 의료행위의 행위수가 증가하고, 수가가 낮은 의료행위의 행위수는 감소한다.
저수가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원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 의사 보수 수준과 비급여 진료 행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원가 조사에 잘 협조하지 않는 의협이 저수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근거도 부족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도 힘들다.
개원가 불안의 원인은 수가가 아니라 환자수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줄어드는 수입만큼 수가를 인상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의협이 집단 휴진이라는 초강수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원의들에게 불안감이 있다. 수입이 과거에 비해 줄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원인을 저수가에 돌리며 수가를 올려달라고 나선 것이다.
즉 앞에서 봤던 식에서 수가 P가 낮아서 수익 R이 적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진료비통계를 분석해보면, 문제는 수가 P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행위량 Q에 있다. 아래에서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의원과 병원의 외래 급여수입(비급여 제외) 변화 추이를 비교해보았다. 분석의 기본 전제는 글 하단 글상자로 첨부하였다.
2007년 수입을 1이라고 했을 때, 2017년 수입이 몇 배인지 비율을 의료기관 종별로 비교분석 해보았다. 모든 통계치는 전체수입을 의료기관수로 나누어서 의료기관당 수입으로 계산했다.
분석항목은 네 가지다. 먼저 총매출액, 앞선 식에서 수가X행위량(PQ)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다음으로 건당 진료비, 수가(P)를 반영하는 항목이다. 세 번째가 청구건수로 행위량(Q)를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연 내원일수를 분석했다. 행위량(Q)은 환자수X환자당행위량이다. 연 내원일수는 환자수를 반영한다. 예컨대 1년 동안 환자가 A,B 두 명만 왔다고 가정하자. A가 10번 방문하고, B가 5번 방문했다면 총 내원일수는 15일이 된다. 환자당행위량은 의사 재량으로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 반면 환자수는 그러기 어려워, 병원 매출 추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위 분석결과에서 세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의원의 매출액 증가폭이 병원에 비해 명백히 작다. 상급종합병원은 2.45배 증가한 반면, 의원은 1.53배 증가했다. 둘째, 매출액 증가폭 차이는 건당 진료비, 즉 수가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건당 진료비는 오히려 의원이 1.23배로 홀로 증가했고, 나머지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셋째, 매출액 증가폭 차이는 청구건수와 연 내원일수 차이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청구건수는 2.34배, 연 내원일수는 1.67배 증가했다. 반면 의원의 청구건수는 1.25배 증가했고, 연 내원일수는 0.97로 도리어 줄었다. 종합하면 의원 매출액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청구건수와 연 내원일수의 감소 때문이다.
의료계 군비 경쟁으로 왜곡되는 의료전달체계
결국 의원을 개원한 의사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저수가나 비급여의 급여화가 아니라 대형병원이다. 의료전달체계의 작동 원리상 의원은 외래 중심, 병원은 입원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이 외래를 무분별하게 확장하면서 의원에 가야 할 경증 환자들이 병원에 가게 되었다. 2015년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의료전달체계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에 의하면 상급종합병원 외래환자 중 경증환자 비율이 16.0%에 달한다. 경증환자 한 명당 진료비도 의원급의 3~4배에 달했다. 이로 인해 2014년 기준 한 해 1482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축나고 있다.
대형병원들이 외래를 확장하여 수익을 내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병상 증축과 시설 확장을 위해서다. 현재 병원계에는 이른바 ‘의료계 군비 경쟁’이 진행 중이다. 이 경쟁은 1990년대를 전후하여 의료 시장에 진출한 두 재벌 병원이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30여년 동안 공격적인 병원 확대로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을 위협했다. 환자들은 큰 규모와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재벌 병원으로 몰려들었고, 두 병원은 지방 환자들까지 빨아들였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가톨릭대병원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수익을 모두 병원 증축과 고가 장비 구입에 쏟아부었다. 증축과 장비 구입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수익에 집착하고 외래를 확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의협은 의료전문가로서 의료전달체계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대형병원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개원의들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의협의 최근 행보는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다. 의협은 올해 2월 복지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고문’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고 처벌조항이 없다는 한계점은 있으나 일견 유의미한 조항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보건복지부가 병상 총량을 관리하고, 병상 과잉지역에서 병상 개설 시 복지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항이다. 병협에서는 이 개선 권고문이 환자들의 병원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반대입장을 제출한 바 있다.
현재 구도에서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병원계다. 문재인케어와 신의료기술평가 규제 완화로 인해 신의료기술과 신약의 시장 진입이 빨라지고 판로도 확대될 예정이다. 신의료기술과 신약은 비용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병원, 특히 대형병원들이 도입하기 용이하다. 비용 투자가 큰 대신 창출되는 수익도 매우 크다. 병협이 문재인케어에 대한 전면 반대 입장을 펴지 않고 복지부와 협상하는 이유다. 또 의협의 투쟁으로 수가가 인상된다면 막대한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한편으로는 의협이 복지부에 대한 전면 투쟁을 선포하면서 정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는 유지되고 대형병원의 외래 독식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 의협의 투쟁에는 사회적 명분이 없다. 환자의 선택권 이야기를 하지만, 어떤 환자도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14년 집단 휴진과 확연히 다르다. 2014년 의협의 대정부 투쟁 첫 요구안은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정책 철회’였다. 대형병원과 의료자본의 의료상업화에 맞선 사회적 투쟁에서 의료전문가로서 옳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사회적 지지를 얻었고, 원격의료 도입을 저지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바도 있다.
의협이 지금 복지부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수가 인상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개혁이다.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환자, 개원의, 건강보험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 환자를 독식하며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고, 개원가를 망쳐놓는 대형병원은 마땅히 규제해야 한다. 규제가 있어야 상급종합병원들도 의료계 군비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개혁에 의협이 앞장설 때, 의료전문가로서 사회적 인정도 받을 수 있고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집단 휴진 투쟁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진정 개원가를 위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실제 환자들 입장에서 살펴보면 이 주장은 공감을 얻기 힘들다. 환자들이 초음파 시술을 받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비용이다. 급여화가 되면 본인부담금이 줄어든다. 돈이 없어 초음파를 못 받던 사람들이 받을 수 있게 된다. 횟수 제한은 의학적 필요성에 따라 기준을 정하면 된다. 급여 적용 기준 횟수를 정할 때 전문가들의 의견과 의학적 근거를 제대로 반영하면 될 문제다.
진짜 핵심 문제는 바로 수가다. 의협은 3월 30일 성명을 통해 건강보험재정 강화를 강하게 요구했다. 동시에 ‘저부담, 저수가, 저보장’인 건강보험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완곡하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보험료를 올리고 수가를 인상하자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다음 두 가지 의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의협의 수가 인상 요구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와 “지금 상황에서 의협은 어떤 주장을 해야 하는가?”이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의 입장이 다른 이유
그런데 여기서 보건복지부와 협상을 둘러싸고 의협과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의 입장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의협은 신임회장으로 극우강경파인 최대집이 당선되었고, 집단 휴진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투쟁에 나섰다. 복지부와의 협상도 중단했다. 반면 병협은 의협과 거리를 두며 복지부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대체로 의협은 의원급 의료기관, 즉 동네의원 개원의들의 입장을 주로 대변한다. 병협은 대형병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이 글에선 의료기관을 의원,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으로 나누었다. 의료법상 의원은 병상이 30개 미만인 의료기관이며, 종합병원은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추고 지정과목 전문의가 상주하는 의료기관이다.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수련병원으로, 주로 대학병원이다. 병상이 30개 이상이면서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병원을 병원으로 분류하였다.
입장이 갈리는 이유는 병원에 비해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 전망이 상대적으로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령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환자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의원을 방문하는 환자 수는 정체되어 있거나 오히려 약간 감소했다. 동네의원을 열고 있는 개원의들이 겪고 있는 불안감은 이러한 환자 수 감소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과거 수준의 수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수가 인상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반면 대형병원 외래 방문 환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의협과 병협이 입장이 다른 이유다.
저수가론에는 객관적 근거가 있는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가가 낮다고 단언할 만한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 연구 결과들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수가가 낮다고 불평하지만,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실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수익’ 부분이다. 또 현재 상황에서 수가 인상 요구가 가장 거센 것은 의협이 대변하는 의원들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수익구조를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의료비 지불제도는 행위별 수가제다. 의료행위를 한 번 할 때마다 그 행위의 가격만큼 돈을 받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기업과 수익 구조가 비슷하다. 즉, ‘수익 = 수가X행위량 – 비용’이다. 다음과 같이 수식으로 나타내보자.
여기서 수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수가는 ‘상대가치점수X환산지수’다. 상대가치점수는 업무량, 자원량, 위험도를 고려하여 의료행위의 가치를 항목 간 상대적 점수로 나타낸 것이다. 예컨대 상처 소독이 1점이면, 암수술이 200점인 식이다. 환산지수는 상대가치점수를 화폐 단위로 변환하는 ‘점당 가격’이다. 상대가치점수는 몇 년에 한 번씩 개정을 하고, 환산지수는 매년 개정한다. 이른바 ‘수가 협상’을 한다는 것은 바로 환산지수를 협상한다는 뜻이다.
의사들은 원가보전율이 낮다는 걸 근거로 저수가라고 이야기한다. 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심평원에서 2006년에 발간한 ‘상대가치점수 개정연구 보고서’다. 여기서 의원과 병원의 원가보전율 평균이 ‘73.9%’로 나왔다. 또 개인적인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컨대 재료비가 1만원인데, 수가가 9000원인 행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심평원은 2012년 ‘유형별 상대가치 개선을 위한 의료기관 회계조사’ 결과를 근거로 저수가론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연구에서는 급여항목 기준으로 원가보전율이 약 96%가 나왔다. 비급여를 포함하면 평균 105%, 의원급 의료기관은 110%에 달한다.
여기서 원가보전율이 의미하는 바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컨대 원가보전율이 100%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의사가 돈을 한 푼도 못 벌고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심평원은 비용에 의사 보수를 넣었는데, 경영자인 원장의 보수도 넣었다. 따라서 원가보전율이 100%라는 이야기는 경영자인 원장이 의사 평균 수준의 돈은 번다는 이야기다. 2012년 심평원 조사에서는 1년 기준 약 1억 500만원이다.
왜 이렇게 엇갈리는 원가보전율이 나왔을까? 회계자료의 신뢰성 문제도 있지만, 표본기관이 다른 이유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조사 대상인 의료기관의 대표성 문제 때문에 원가보전율을 계산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2006년 ‘상대가치점수 개정연구 보고서’에서도 같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분석해보자.
의료행위가 두 종류만 있다고 가정하자. 주사치료와 물리치료다. 주사치료의 수가는 1000원이며, 원가는 2000이다. 물리치료의 수가는 2000원이며, 원가는 1000원이다. 주사치료는 할 때마다 1000원씩 손해가 나며, 물리치료는 할 때마다 1000원씩 이익을 본다. 그렇다면 수가 총합이 3000원, 원가 총합이 3000원이니 원가보전율이 100%인 것일까? 아니다. 아래 예시를 통해 살펴보자.
의원 A, B가 있다. 두 의원 모두 하루에 환자를 6명 진료하며, 의료행위는 주사치료와 물리치료만 있다고 가정하자. A의원에서 주사치료를 2번, 물리치료를 4번 했고, B의원에서 주사치료를 4번, 물리치료를 2번 했다고 하자. 이 날의 매출, 원가, 원가보전율을 계산하면 아래 표 1과 같다.
이 표에서는 두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어떤 의료기관을 표본으로 하느냐에 따라 원가보전율이 완전히 달라진다. 대부분의 원가보전율 연구를 보면 표본 의료기관이 10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표본추출 방법을 보완하고 표본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둘째, 특정 의료행위 수가가 원가에 미달한다고 해서 그게 적자로 이어지진 않는다. 대부분 의사들은 A의원과 같이 물리치료 위주로 치료할 것이다. 수가가 높은 의료행위의 행위수가 증가하고, 수가가 낮은 의료행위의 행위수는 감소한다.
저수가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원가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 의사 보수 수준과 비급여 진료 행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원가 조사에 잘 협조하지 않는 의협이 저수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 근거도 부족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기도 힘들다.
개원가 불안의 원인은 수가가 아니라 환자수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비급여의 급여화 과정에서 줄어드는 수입만큼 수가를 인상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의협이 집단 휴진이라는 초강수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원의들에게 불안감이 있다. 수입이 과거에 비해 줄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원인을 저수가에 돌리며 수가를 올려달라고 나선 것이다.
즉 앞에서 봤던 식에서 수가 P가 낮아서 수익 R이 적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보험 진료비통계를 분석해보면, 문제는 수가 P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행위량 Q에 있다. 아래에서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의원과 병원의 외래 급여수입(비급여 제외) 변화 추이를 비교해보았다. 분석의 기본 전제는 글 하단 글상자로 첨부하였다.
2007년 수입을 1이라고 했을 때, 2017년 수입이 몇 배인지 비율을 의료기관 종별로 비교분석 해보았다. 모든 통계치는 전체수입을 의료기관수로 나누어서 의료기관당 수입으로 계산했다.
분석항목은 네 가지다. 먼저 총매출액, 앞선 식에서 수가X행위량(PQ)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다음으로 건당 진료비, 수가(P)를 반영하는 항목이다. 세 번째가 청구건수로 행위량(Q)를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연 내원일수를 분석했다. 행위량(Q)은 환자수X환자당행위량이다. 연 내원일수는 환자수를 반영한다. 예컨대 1년 동안 환자가 A,B 두 명만 왔다고 가정하자. A가 10번 방문하고, B가 5번 방문했다면 총 내원일수는 15일이 된다. 환자당행위량은 의사 재량으로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 반면 환자수는 그러기 어려워, 병원 매출 추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위 분석결과에서 세 가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의원의 매출액 증가폭이 병원에 비해 명백히 작다. 상급종합병원은 2.45배 증가한 반면, 의원은 1.53배 증가했다. 둘째, 매출액 증가폭 차이는 건당 진료비, 즉 수가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건당 진료비는 오히려 의원이 1.23배로 홀로 증가했고, 나머지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셋째, 매출액 증가폭 차이는 청구건수와 연 내원일수 차이 때문이다. 상급종합병원의 청구건수는 2.34배, 연 내원일수는 1.67배 증가했다. 반면 의원의 청구건수는 1.25배 증가했고, 연 내원일수는 0.97로 도리어 줄었다. 종합하면 의원 매출액 증가폭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청구건수와 연 내원일수의 감소 때문이다.
의료계 군비 경쟁으로 왜곡되는 의료전달체계
결국 의원을 개원한 의사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저수가나 비급여의 급여화가 아니라 대형병원이다. 의료전달체계의 작동 원리상 의원은 외래 중심, 병원은 입원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이 외래를 무분별하게 확장하면서 의원에 가야 할 경증 환자들이 병원에 가게 되었다. 2015년 의료정책연구소에서 발간한 ‘의료전달체계 현황 분석 및 개선방안’에 의하면 상급종합병원 외래환자 중 경증환자 비율이 16.0%에 달한다. 경증환자 한 명당 진료비도 의원급의 3~4배에 달했다. 이로 인해 2014년 기준 한 해 1482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축나고 있다.
대형병원들이 외래를 확장하여 수익을 내려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병상 증축과 시설 확장을 위해서다. 현재 병원계에는 이른바 ‘의료계 군비 경쟁’이 진행 중이다. 이 경쟁은 1990년대를 전후하여 의료 시장에 진출한 두 재벌 병원이 시작했다.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30여년 동안 공격적인 병원 확대로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을 위협했다. 환자들은 큰 규모와 좋은 시설을 자랑하는 재벌 병원으로 몰려들었고, 두 병원은 지방 환자들까지 빨아들였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가톨릭대병원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수익을 모두 병원 증축과 고가 장비 구입에 쏟아부었다. 증축과 장비 구입에 투자한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수익에 집착하고 외래를 확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의협은 의료전문가로서 의료전달체계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대형병원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개원의들에게 미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의협의 최근 행보는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다. 의협은 올해 2월 복지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고문’이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고 처벌조항이 없다는 한계점은 있으나 일견 유의미한 조항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보건복지부가 병상 총량을 관리하고, 병상 과잉지역에서 병상 개설 시 복지부의 사전승인을 받도록 하는 조항이다. 병협에서는 이 개선 권고문이 환자들의 병원 선택권을 제한한다며, 반대입장을 제출한 바 있다.
현재 구도에서 가장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병원계다. 문재인케어와 신의료기술평가 규제 완화로 인해 신의료기술과 신약의 시장 진입이 빨라지고 판로도 확대될 예정이다. 신의료기술과 신약은 비용 투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병원, 특히 대형병원들이 도입하기 용이하다. 비용 투자가 큰 대신 창출되는 수익도 매우 크다. 병협이 문재인케어에 대한 전면 반대 입장을 펴지 않고 복지부와 협상하는 이유다. 또 의협의 투쟁으로 수가가 인상된다면 막대한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한편으로는 의협이 복지부에 대한 전면 투쟁을 선포하면서 정부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는 유지되고 대형병원의 외래 독식은 계속될 것이다.
이번 의협의 투쟁에는 사회적 명분이 없다. 환자의 선택권 이야기를 하지만, 어떤 환자도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14년 집단 휴진과 확연히 다르다. 2014년 의협의 대정부 투쟁 첫 요구안은 ‘원격의료 및 의료영리화정책 철회’였다. 대형병원과 의료자본의 의료상업화에 맞선 사회적 투쟁에서 의료전문가로서 옳은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는 사회적 지지를 얻었고, 원격의료 도입을 저지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바도 있다.
의협이 지금 복지부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수가 인상이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개혁이다.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로 인해 환자, 개원의, 건강보험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 환자를 독식하며 의료비를 증가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고, 개원가를 망쳐놓는 대형병원은 마땅히 규제해야 한다. 규제가 있어야 상급종합병원들도 의료계 군비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개혁에 의협이 앞장설 때, 의료전문가로서 사회적 인정도 받을 수 있고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대한의사협회는 집단 휴진 투쟁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진정 개원가를 위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따져볼 때다.
분석의 기본 전제
첫째, 모든 형태의 진료비는 증가한다. 건강보험 가입자와 고령자 수가 모두 증가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2007년 4781만 명에서 2017년 5094만 명으로 1.07배 증가했다. 65세 이상 고령자 수는 2007년 438만 명에서 2017년 680만 명으로 1.55배 증가했다.
둘째, 의원급 의료기관은 외래 진료를 통해 간단하고 흔한 질병을 치료하고, 병원급 의료기관은 입원 진료 중심으로 중증 질환을 치료해야 한다. 이는 의료전달체계의 기본 원칙이다.
셋째, 수입의 절대적인 많고 적음은 따지지 않고, 2007년과 비교해 2017년에 얼마만큼 증가했는가만 분석한다. 의료기관당 수입만 따지자면 상급종합병원이 의원보다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모든 의료기관 수입 총합은 당연히 의원이 상급종합병원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체 외래 수입 중 상급종합병원 비중이 얼마이고, 의원 비중이 얼마인지 절대적인 기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넷째, 외래 급여비용만 분석한다. 비급여는 분석할 공식 통계 자료가 없다. 하지만 급여비용만 분석해도 변화 추세는 알 수 있을 것이다. 통계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발표한 2017년 진료비통계지표를 참고했다.
다섯째, 이 분석은 문제의식을 전달하기 위해 약식으로 진행하였다. 때문에 명백한 인과관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없다.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분석은 추후 정식 연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