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체제 등장 이후의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에 대하여
신자유주의적 전환의 폐해들이 민중들의 삶을 옥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실시된 대선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방향에 어떤 새로운 돌파구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영향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력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다. 유권자들의 자조섞인 푸념이 보편적 정서였을 만큼, 신자유주의가 조성해 낸 끔찍한 생활의 곤경은 대통령 선거를 통해 크게 달라질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았고, 선거의 결과가 적극적 선택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신자유주의 세력간의 경쟁 구도에 대한 혐오의 반사적 결과에 의한 것인지는 결과에 큰 차이를 불러오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 지형 : 1987~1997년
그런 점에서 이명박 체제의 등장은 대중들의 적극적 대응의 결과가 아니라 부정적 대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이명박 체제의 등장에서 주목되는 점 중 하나는 이른바 ‘자유주의’ 세력들의 와해와 재편이라는 특징이다. 이명박 체제를 단순히 보수주의로 규정한다면, 지금까지의 결과와 또 현재 진행되는 지배세력들의 재편구도를 적절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더욱이 올 봄의 총선에서 예상되는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까지 고려하면 상황을 좀 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987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에는 냉전시기의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탈냉전적 구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관찰된다. 그 시도는 자유주의적 세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보수주의 또한 일정한 변화를 거쳐 왔다. 자유주의의 변신은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주의의 주도권은 동시에 민중적 주도권의 제약을 목표로 한 것인데, 이러한 시도는 이미 1987년 당시의 상황에서부터 유래한 바 있다. ‘1987년 정세의 자유주의적 포섭과 그 한계’가 지난 20년간의 한국 사회의 정치정세를 규정해 왔다고 할 수 있고, 대중운동의 발전의 향배는 이런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1987년 이후 그러한 자유주의의 변신은 이른바 ‘민주화’ 담론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흔히 ‘87년체제’라고 이야기되지만 그 실체는 모호한 것이었는데, 이런 자유주의는 그럼에도 제도적 토대를 충실히 갖추지 못한 자유주의라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대중운동에 대한 코포라티즘적 통제를 전면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조건적 한계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세계경제의 반주변부로서 한국사회에서 제도적 코포라티즘이 안정화할 충분한 조건을 만들어내기에 취약한 구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 신자유주의의 고조라는 시대적 규정성에서 나오는 구조적 제약 또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자유주의의 변신은 한편에서 인민주의적 동원을 통하여 실제로는 대중의 탈정치화와 정치의 호도를 수행하고, 또한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실제로는 사회구조를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시켜 왔다. 다른 한편 이러한 자유주의의 취약한 구조는 통치의 유지를 위해 보수주의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보완되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주도성을 상실한 보수주의와 코포라티즘적 주도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자유주의의 연대가 이렇게 형성되었고, 내부적으로 이들 중 어떤 분파의 어떤 세력이 이 결합을 주도하는가에 따라 정치적 외양은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3당합당을 통한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이나, 1997년 DJP 연합을 통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정권의 등장과 정치가형 인민주의
그런 점에서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어떤 점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단독집권이라는 외양상의 특징에서 보이듯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는데, 그렇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의 우여곡절과 당선 직후의 사정들이 보여주듯이 매우 불안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10년과 달리 노무현 시기의 이례성이 보여주는 것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초래한 한국사회 위기구조의 결과인 동시에 그에 대한 자유주의적 봉합까지도 위기에 처하게 만든 상황적 맥락이었다. ‘민주화’와 ‘개방·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대해 대중들이 그것을 기존의 자본과 국가권력의 체제, 그리고 기성정치권이라 이름되던 세력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수동적 표출로 드러낸 것이 2002년의 대선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단독 집권한 인민주의적 자유주의 세력은 집권시기 초부터 역설적으로 자유주의의 무능력을 전면적으로 노출하기 시작했다. 지나온 5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위기가 심화되어온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가지 표지에서 드러난다. 첫째는 코포라티즘적인 안정적 통치 체제의 설립에 실패하고 사회 불안정성이 고조된 것, 둘째는 이 자유주의 세력과 더불어 체제를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NGO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점차 철회된 것, 셋째, 정책 지향성의 상실과 그로부터 각종 부패 스캔들이 늘어난 것 등을 들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민주화’ 담론을 인민주의적으로 전유함에 따라, 대중운동이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담론을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마치 신자유주의 세력의 독점물인양 취급받기 시작했고 그만큼 민중적 정치운동의 가능성의 폭은 줄어들었다. 민주주의를 전면화하고 급진화하는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발생한 민주주의의 후퇴는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진보 세력에게 초래한 심각한 타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권의 정치 이데올로기 :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
2007년 대선의 결과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위기가 다시 전문관리체제라는 명목하에, 1990년대와 유사한 세력 결합 구도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보수적 지지기반 위에 일부 자유주의 세력을 포섭하여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라는 구도로, 그간의 돌출적 정책들과 ‘민주화’ 담론의 인민주의의 폐해성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새로운 집권세력이 단순한 보수주의 세력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 정치적 담론이 1990년대와 동일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민주화’ 담론적인 인민주의를 포기하고 노골화한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더욱 나가게 되는 외양을 띨 것으로 보이며, 자유주의 세력의 위기를 통해서 새로운 자유주의-보수주의 연합으로서 기존의 정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매우 공세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첫 번째로 그것은 노무현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민주의 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시절의 인민주의가 ‘민주화’ 담론의 독점을 통한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전환의 방향을 띠었다면, 이명박 하에서는 교육, 공무원, 공공 분야에 대한 총공세를 통해서 다른 방식의 원한의 정치를 부각시키며 그를 통해 유예된 부문 없이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완성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미디어와 NGO의 동원을 중심으로 한 인민주의적 정치 대신 억압적인 관리·행정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억압이 가속화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시장 주도성의 강화는 쉽게 예견되는 것이고, 그에 대한 걸림돌은 사실상 매우 많이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대중운동의 대응성이 전례없이 취약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비적 대응의 필요성 또한 그만큼 줄어들었고 그런만큼 대중에 대한 공세적 대응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정권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
이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은 매우 취약하고, 그 어느 때보다 대중운동 자체가 위기적 상황 속에 처해있다. 대중운동의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두드러지게 그것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민중연대라는 세 가지 주요 조직들의 위기 속에서 관찰될 수 있다. 세 조직의 위기는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고, 동일한 위기의 구조가 세 가지 조직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권을 위한 정책대안이라는 구도는 운동세력이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지만, 운동조직이 이를 통해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자유주의 집권세력의 위기가 진보세력의 위기와 맞물린 것은, 진보세력 또한 1987년 정세의 봉합 이후의 상황을 돌파해 내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중연대의 사실상 해체(한국진보연대의 반쪽짜리 출범)는 이런 위기를 잘 보여주는 바가 있는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를 확대하고 활성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도권 정치적 지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이 전환되어서는 대중운동의 고양을 통한 민중적 정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분할되어 있는 대중들을 통일시키기 위한 중심체로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운동조직과 운동정당의 성격을 강화하지 못하는 한 대중의 정치적 역량을 성장시키고 그것을 통해 운동을 발전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층적, 지역적 영향력 확대를 수반하는 분명한 사회운동 정당으로의 방향전환이 없는 한 민주노동당 내의 갈등구조 또한 근본적 쇄신의 길을 동반하기는 어렵다고 보이며, 기층조직의 교육·조직·투쟁사업을 통일시키는 지나온 노동자운동 역사 속의 강점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조직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 또한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선에서 민주주의의 현실적 긴박성을 강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반신자유주의 연대를 확대하고, 특히 지역적·기층적 조직화에 힘쓰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는 시점이다.
한국사회의 정치 이데올로기 지형 : 1987~1997년
그런 점에서 이명박 체제의 등장은 대중들의 적극적 대응의 결과가 아니라 부정적 대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이명박 체제의 등장에서 주목되는 점 중 하나는 이른바 ‘자유주의’ 세력들의 와해와 재편이라는 특징이다. 이명박 체제를 단순히 보수주의로 규정한다면, 지금까지의 결과와 또 현재 진행되는 지배세력들의 재편구도를 적절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더욱이 올 봄의 총선에서 예상되는 정치세력들의 이합집산까지 고려하면 상황을 좀 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1987년에서 1997년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에는 냉전시기의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탈냉전적 구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관찰된다. 그 시도는 자유주의적 세력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보수주의 또한 일정한 변화를 거쳐 왔다. 자유주의의 변신은 탈냉전과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아 한국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주의의 주도권은 동시에 민중적 주도권의 제약을 목표로 한 것인데, 이러한 시도는 이미 1987년 당시의 상황에서부터 유래한 바 있다. ‘1987년 정세의 자유주의적 포섭과 그 한계’가 지난 20년간의 한국 사회의 정치정세를 규정해 왔다고 할 수 있고, 대중운동의 발전의 향배는 이런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가에 달려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1987년 이후 그러한 자유주의의 변신은 이른바 ‘민주화’ 담론을 선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는 흔히 ‘87년체제’라고 이야기되지만 그 실체는 모호한 것이었는데, 이런 자유주의는 그럼에도 제도적 토대를 충실히 갖추지 못한 자유주의라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대중운동에 대한 코포라티즘적 통제를 전면적으로 실현할 수 없는 조건적 한계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세계경제의 반주변부로서 한국사회에서 제도적 코포라티즘이 안정화할 충분한 조건을 만들어내기에 취약한 구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에서 신자유주의의 고조라는 시대적 규정성에서 나오는 구조적 제약 또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구조적 제약 속에서 자유주의의 변신은 한편에서 인민주의적 동원을 통하여 실제로는 대중의 탈정치화와 정치의 호도를 수행하고, 또한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실제로는 사회구조를 끊임없이 신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전환시켜 왔다. 다른 한편 이러한 자유주의의 취약한 구조는 통치의 유지를 위해 보수주의적 정치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보완되었는데, 이데올로기적 주도성을 상실한 보수주의와 코포라티즘적 주도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자유주의의 연대가 이렇게 형성되었고, 내부적으로 이들 중 어떤 분파의 어떤 세력이 이 결합을 주도하는가에 따라 정치적 외양은 매우 상이한 모습을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1992년 3당합당을 통한 김영삼의 대통령 당선이나, 1997년 DJP 연합을 통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정권의 등장과 정치가형 인민주의
그런 점에서 2002년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어떤 점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단독집권이라는 외양상의 특징에서 보이듯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는데, 그렇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의 우여곡절과 당선 직후의 사정들이 보여주듯이 매우 불안정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러한 집권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10년과 달리 노무현 시기의 이례성이 보여주는 것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초래한 한국사회 위기구조의 결과인 동시에 그에 대한 자유주의적 봉합까지도 위기에 처하게 만든 상황적 맥락이었다. ‘민주화’와 ‘개방·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어 온 신자유주의적 전환에 대해 대중들이 그것을 기존의 자본과 국가권력의 체제, 그리고 기성정치권이라 이름되던 세력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수동적 표출로 드러낸 것이 2002년의 대선 상황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단독 집권한 인민주의적 자유주의 세력은 집권시기 초부터 역설적으로 자유주의의 무능력을 전면적으로 노출하기 시작했다. 지나온 5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위기가 심화되어온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가지 표지에서 드러난다. 첫째는 코포라티즘적인 안정적 통치 체제의 설립에 실패하고 사회 불안정성이 고조된 것, 둘째는 이 자유주의 세력과 더불어 체제를 유지해 온 자유주의적 NGO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점차 철회된 것, 셋째, 정책 지향성의 상실과 그로부터 각종 부패 스캔들이 늘어난 것 등을 들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민주화’ 담론을 인민주의적으로 전유함에 따라, 대중운동이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담론을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마치 신자유주의 세력의 독점물인양 취급받기 시작했고 그만큼 민중적 정치운동의 가능성의 폭은 줄어들었다. 민주주의를 전면화하고 급진화하는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발생한 민주주의의 후퇴는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진보 세력에게 초래한 심각한 타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명박정권의 정치 이데올로기 :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
2007년 대선의 결과는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의 위기가 다시 전문관리체제라는 명목하에, 1990년대와 유사한 세력 결합 구도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보수적 지지기반 위에 일부 자유주의 세력을 포섭하여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였는데, 이는 관리되는 신자유주의화라는 구도로, 그간의 돌출적 정책들과 ‘민주화’ 담론의 인민주의의 폐해성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새로운 집권세력이 단순한 보수주의 세력만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 정치적 담론이 1990년대와 동일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민주화’ 담론적인 인민주의를 포기하고 노골화한 신자유주의 방향으로 더욱 나가게 되는 외양을 띨 것으로 보이며, 자유주의 세력의 위기를 통해서 새로운 자유주의-보수주의 연합으로서 기존의 정치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매우 공세적인 태도를 취할 것으로 예측된다. 첫 번째로 그것은 노무현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인민주의 공세를 펼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 시절의 인민주의가 ‘민주화’ 담론의 독점을 통한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전환의 방향을 띠었다면, 이명박 하에서는 교육, 공무원, 공공 분야에 대한 총공세를 통해서 다른 방식의 원한의 정치를 부각시키며 그를 통해 유예된 부문 없이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완성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미디어와 NGO의 동원을 중심으로 한 인민주의적 정치 대신 억압적인 관리·행정 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억압이 가속화될 가능성 또한 높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시장 주도성의 강화는 쉽게 예견되는 것이고, 그에 대한 걸림돌은 사실상 매우 많이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대중운동의 대응성이 전례없이 취약해졌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예비적 대응의 필요성 또한 그만큼 줄어들었고 그런만큼 대중에 대한 공세적 대응 또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정권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
이에 맞서는 대중운동의 조건은 매우 취약하고, 그 어느 때보다 대중운동 자체가 위기적 상황 속에 처해있다. 대중운동의 여러 조건들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두드러지게 그것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민중연대라는 세 가지 주요 조직들의 위기 속에서 관찰될 수 있다. 세 조직의 위기는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고, 동일한 위기의 구조가 세 가지 조직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권을 위한 정책대안이라는 구도는 운동세력이 빠져들기 쉬운 함정이지만, 운동조직이 이를 통해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자유주의 집권세력의 위기가 진보세력의 위기와 맞물린 것은, 진보세력 또한 1987년 정세의 봉합 이후의 상황을 돌파해 내지 못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민중연대의 사실상 해체(한국진보연대의 반쪽짜리 출범)는 이런 위기를 잘 보여주는 바가 있는데,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를 확대하고 활성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제도권 정치적 지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중운동이 전환되어서는 대중운동의 고양을 통한 민중적 정치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다. 분할되어 있는 대중들을 통일시키기 위한 중심체로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운동조직과 운동정당의 성격을 강화하지 못하는 한 대중의 정치적 역량을 성장시키고 그것을 통해 운동을 발전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층적, 지역적 영향력 확대를 수반하는 분명한 사회운동 정당으로의 방향전환이 없는 한 민주노동당 내의 갈등구조 또한 근본적 쇄신의 길을 동반하기는 어렵다고 보이며, 기층조직의 교육·조직·투쟁사업을 통일시키는 지나온 노동자운동 역사 속의 강점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조직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 또한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전선에서 민주주의의 현실적 긴박성을 강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반신자유주의 연대를 확대하고, 특히 지역적·기층적 조직화에 힘쓰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