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한국정치 | 2024.09.25

계엄준비설, 제1야당이 벌이는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음모론 남발

사법리스크 돌파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민주당

사회진보연대
 
지난 8월 15일, 김병주 의원은 라디오 “김준일의 뉴스공감” 인터뷰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인사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이 벌어지면) 계엄을 선포한다든가 그런 것들이 쉽게 결정될 수 있”다면서 계엄준비설을 제기했다. 이때만 해도 계엄준비설은 국민권익위원회 국장 사망 사건과 관련해 전현희 의원이 “김건희가 살인자”라고 발언한 것과 묶여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서 강성지지층에 소구하기 위한 발언 정도로 이해됐다.
 
그런데 계엄준비설은 이 정도 선에서 끝나지 않았다. 수석 최고위원으로 당선된 김민석 의원이 8월 21일,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기를 바란다”며 “계엄령 준비 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키겠다”고 주장하여 다시 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9월 1일, 11년 만에 성사된 여야 대표 회담 모두발언에서 이재명 대표는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회의원들을 계엄선포와 동시에 체포, 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거 완벽한 독재국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대표의 언급으로 민주당은 계엄준비설을 당의 입장으로 공식화했다.
 
그러나 계엄준비설은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고 말했고, 김부겸 전 총리가 “뜬금없고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듯 적어도 지금까지는 근거가 매우 빈약한 주장이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민주당의 정보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강변했지만, 현재까지도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9월 20일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 국회의원이 현행범으로 체포 또는 구금됐더라도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에 참석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근거 제시와 상관없이 계엄준비설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민주당 김병주, 김민석, 박선원, 부승찬 의원은 지난 9월 20일,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한겨레]
 
군사독재를 겪은 한국에서 계엄령이 어떤 파장을 낳는지 민주당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엄청난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한 지지층 결집
 
9월 20일, 검찰은 지난 대선에서 허위 사실을 발언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표에 대해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당선목적 허위사실 공표’는 기본이 벌금 200만 원 이상이지만, 감형요소가 인정되면 당선무효형(벌금 100만 원 이상) 이하인 70만 원까지 형을 낮출 수 있다. 반대로 가중요소가 인정되면 형량이 최대 징역 2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본건 선고는 11월 15일로 예정되어 있다.
 
1심이기는 하지만 만약 당선무효형이 선고된다면, 이재명 대표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재판 선고도 다가온다. 위증은 매우 무거운 죄로 다뤄지기에 기본이 징역형이다. 게다가 이를 교사하면 가중요소가 인정되어 형량이 늘어난다. 만약 이 사건까지 유죄로 인정된다면 이재명 대표가 받을 정치적 타격은 실로 엄청날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친명 공천으로 인한 공천학살, 당 대표 연임, 정봉주 후보마저 밀려난 역대급 충성경쟁 끝에 살아남은 최고위원과 사실상 지명된 수석 최고위원으로 재구성된 민주당을 방패로 삼아 사법리스크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이 선거법 재판에서 2년을 구형한 직후인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검사 등 수사 기관이 수사·기소 시 법률 적용을 왜곡해 사건 당사자를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만든 경우 10년 이하 징역이나 자격 정지에 처한다는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또 다음 달 2일에는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한 검사를 탄핵하는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는 검찰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렇게 이 대표는 민주당을 사법리스크 방어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재편했지만, 혹여라도 지지층이 흔들린다면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장담하기란 어렵다. 따라서 사법리스크가 현실화되는 순간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지지층을 결집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계엄준비설이 제기됐다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이슈를 분산하는 동시에, 한국 정치가 그만큼 급박한 위기 상황이니 다른 데 눈 돌리지 말고 이 대표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라는 신호인 것이다. 이 대표 지지자는 검찰 구형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재명이네 마을’에서 “‘판레기’(판사+쓰레기)면 탄핵하겠다.” “제대로 판결한다면 무죄”라며 사법부를 압박하는 글을 쏟아내기도 했는데, 지지층 결집의 한 양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계엄준비설, 탄핵에 과몰입한 민주당의 망상인가
 
그런데 아무리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라도 해도 이를 위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민주당의 주장은 지나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권에서는 민주당이 탄핵을 남발하다가 이제 이마저도 식상해지니 마구잡이 음모론을 던진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를 염두에 두더라도 계엄령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고려한다면 과한 제기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민주당 지도부의 발언이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9월 4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민심은 권력이라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성나면 배를 뒤집는 만큼, 국민은 불의한 권력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며 “계속해서 민심을 거역한다면 윤 대통령도 결국 불행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탄핵을 암시하는 듯한 경고를 했다. 김민석 수석 최고위원은 9월 23일, 최근 정권교체 초입에 들어섰다면서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 쿠데타적 계엄이나 테러 같은 것들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재차 계엄을 거론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정권 출범 후 얼마 되지 않은 시점부터 지금까지 줄곧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암시하는 발언을 반복해 왔다.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본격화되는 현재, 사법리스크를 빠르고 확실하게 해소하기 위해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를 어떤 방식으로든 단축하고 이재명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프로세스를 구상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도부의 발언도 발언이지만, 지난 11일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정치인이 모여 ‘윤석열 탄핵 준비 의원연대’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탄핵 사유가 넘친다며 탄핵 절차와 탄핵 이후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일부 의원의 움직임이기는 하지만 명백한 탄핵사유가 드러나지 않은 현재, 위와 같은 움직임은 민주당이 일종의 자기실현적 예언을 어떻게든 실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즉 어떻게든 탄핵 과정을 현실화하면 정부여당이 이에 대응해 계엄령을 발동할 것이고, 따라서 이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는 자가발전적 망상을 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렇기에 계엄준비설을 제기하고, 계엄법 개정안을 제출한 건 아닌가.
 
 
민주적 질서를 무너뜨리는 민주당
 
작년 구속영장 청구 당시를 돌이켜 보면, 이재명 대표는 결국 막판에 체포동의안을 기각해달라고 직접 호소했다. 이는 이재명 대표가 불안감 혹은 조급함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현재는 당선무효형이 나올 수도 있는 1심 판결을 앞둔 중대한 상황이다. 이 대표가 구속영장 청구 당시와 비슷한 조급함,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해도 무리한 추측은 아닐 것이다. 이런 조급함이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고 정국 전망을 본인이 희망하는 대로 하게 하여,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계엄준비설이라는 어마어마한 의혹을 일단 제기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계엄준비설이라는 폭발력이 강한 의제를 구체적인 근거 제시 없이 제기한 것도 문제지만, 끊임없이 ‘묻지마 탄핵 공세’를 벌이는 민주당의 활동은 사실상의 선거 불복을 의미해 그 자체로 헌정질서에 심각한 위협이다. 직무상의 헌법 또는 법률위반이 명백하게 발생한 게 아니라면 민주적 정당성을 갖춰 선출된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는 건 헌정질서 유지에 있어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선거를 치르고 그 결과에 승복하며 다음 선거에서는 자신들이 승리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경쟁함으로써 내전을 반복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크게 비판받아 마땅한 일은 끝내 2020년 미국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던 2021년 1월의 의회의사당 습격이었다. 또 우리가 태극기부대의 부정선거 의혹 제기와 선거무효 주장을 비판하는 건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의 황당무계함 때문도 있지만, 그런 주장이 선거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헌정질서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당선 이후 계속된 민주당의 탄핵 암시 발언과 ‘묻지마 탄핵’은 공직자를 선출하는 민주적 제도인 선거의 권위를 침식한다는 점에서 태극기부대의 선거부정과 유사한 효과를 발휘한다.
 
정당은 자당의 지향과 그에 따른 정책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선거에서 승리하는 데 목표를 둔다. ‘정당’이 선거 패배 후, 정치적 경쟁이 아니라 자당의 자의적인 명분으로 타당의 공직자 임기를 줄이는 방식에 매몰되면 민주주의의 제도는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거기에 근거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음모론과 같은 주장으로 합리적 판단 마저 어렵게 만들면 혼란이 더욱더 가중될 것이다. 심지어 이 모든 행태가 특정한 1인의 비리 의혹을 방어하기 위해 행해진다면 민주주의에 끼치는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 진정 제1야당으로서 일말의 책임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선거 불복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탄핵 공세와 근거 제시 없는 의혹 제기는 중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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