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지상중계 | 2025.02.27

공공부문 비정규직 운동, 선언적 구호를 넘어 실질적인 공동 요구와 새로운 정체성을 개발할 때!

공공부문 비정규직운동 전망찾기 1차 토론회 <대통령 탄핵 정세!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동투쟁의 방향은?> 지상중계

사회진보연대
 
 
계엄 사태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리가 진행 중이고, 거리에서도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은 여론조사를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조기 대선까지 바라보며 물밑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노동조합 역시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탄핵 심리 이후를 내다보며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하다. (토론회 당일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대 노총을 방문한 날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이전의 비정규직 투쟁을 되짚어보고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내야 더 나은 투쟁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공감대 속에서 지난 2월 21일 공공부문 비정규직운동 전망찾기 1차 토론회 <대통령 탄핵 정세!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동투쟁의 방향은?>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는 김민철 교육공무직본부 교육선전국장이 맡았고, 이윤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정안석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 손영희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발제자인 김민철 교육선전국장은 ‘비정규직 철폐’라는 선언이나 일회성의 공동 집회 이상으로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만들기 위해 따져볼 쟁점을 제시했다. 먼저, 비정규직이라고 뭉뚱그리지 말고 현재 불안정 노동에 대한 구체적인 진단에서부터 비정규직 운동의 방향을 잡자고 제안했다.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은 IMF 경제위기를 거치며 정세적으로 탄생했다. 당시에 확대되던 불안정 노동을 ‘비정규직’으로 규정하고 운동을 조직한 것은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이제 ‘비정규직’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오늘날 노동의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같은 비정규직이라고 불리지만 무기계약직, 기간제, 시간제, 플랫폼, 특수고용, 파견, 용역 등 그 형태와 상황이 제각각인 데다,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현장의 요구에서 출발한 공동의 목표와 투쟁을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024년 공공운수노조가 내건 공동 파업이 대표적이다. 김민철 교육선전국장은 당시 비정규 단위들의 공동 요구와 투쟁방향이 충분히 토론되지 못하면서 ‘비정규직 차별하는 윤석열은 틀렸다!’라는 선언만 있었을 뿐, 비정규직 현장의 어려움과 요구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민철 국장은 문재인 정부 시기의 비정규직 정책과 당시 노동조합의 비정규직 투쟁을 되돌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구체적인 원칙 없이 ‘기관별 협의’에 맡기는 방식으로 진행된 점을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노동조합 조직력, 정규직 노동조합의 입장, 기관별 예산에 따라 정규직 전환의 범위와 처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노동조합도 급작스럽게 발표된 정책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같은 기관 내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를 중심으로 대응하다 보니, 각 기관별 노조 중심으로 대응이 이뤄졌다. 결국 비정규직(전환자)의 요구가 산별노조와 총연맹을 중심으로 모이는 방식으로 운동이 만들어지지 못했고, 전환자 사이에서도 기관별로 처우의 차이가 발생했다.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일몰된 공무직위원회도 정부의 무능과 안이함이 일차적 문제였지만, 노동조합 역시 공무직 내 노동실태와 처우를 조사하고 내부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구체적인 교섭요구안을 내놓는 대신 차별해소와 임금인상이라는 구호를 내거는데 그쳤다고 평가했다.
 
김민철 국장은 향후 조기 대선이 현실화될 때 노동 현장의 문제가 정책 의제로 명확하게 자리 잡도록 하는 역할을 노동조합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 비정규직 전부를 아우르는 요구를 만들기 어렵다면, 임금과 수당 통일이나 법 개정과 같이 단체협약과 맞물리는 구체적인 요구를 가다듬고 실천가능한 목표를 설정해 시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운동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운수노조가 유연한 조직 운영을 통해 분과별, 영역별 공동 의제를 발굴하여 지역과 사업장을 넘어서는 단결을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맡아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첫째 토론자로 나선 공공운수노조 이윤희 부위원장은 준비 없이 혼란을 겪었던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돌아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노동조합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경제적 요구를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과 대안을 준비하자는 의견을 밝혔다. 4대 보험 적용 범위 확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과 같은 기존의 요구를 발전시켜, 미조직 노동자도 함께할 수 있는 의제를 제시하자는 아이디어도 함께 제안했다. 덧붙여, 공공성 강화라는 추상적인 구호를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과 연결해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내자고 이야기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처우 개선이 전체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부각하며, 다양한 산업과 직종이 함께하는 공공운수노조의 다양함이 장점이 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단기간에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긴 안목을 가지고 지속적인 현장 토론을 통해 운동 방향을 만들자고 당부했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안석 지부장은 자회사 전환 이후 노동조합의 활동을 평가했다. 자회사 전환은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고용불안을 최소화했지만, 원하청 구조에서 오는 노동조합 활동의 어려움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재원, 인력, 근무 형태에 결정적 권한을 가진 모회사 인천공항공사가 자회사 노동자와는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정안석 지부장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인천공항을 바꾸는 투쟁을 만들기 위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단어가 되었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교대제 개편, 인력충원, 모회사의 책임 강화 등 노동자·시민의 안전을 위한 현장의 구체적인 과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초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임시로 만들어진 만큼, 자회사 전환 단위를 포괄할 수 있는 다른 용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회사라는 불합리한 구조를 뚫어내기 위해 공공기관에서 자회사로 전환된 노동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의제와 목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손영희 사무국장은 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사의 업무를 소개하며, 노조가 원청인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투쟁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이야기했다. 건강보험공단이 담당하던 고객센터 업무가 외주화되며 상담사들은 도급업체 소속이 되었다. 그러나 민원인들은 여전히 상담사가 공단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일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소속이 어디인지 혼란을 겪고 있다. 또한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민감하고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기에 상당한 책임이 요구되지만, 정작 처우는 열악하다는 현실도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지만, 원청이 강제하는 임금구조와 같은 여러 제약이 있어 쉽지 않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원청 사용자성 강화를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이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현장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현실도 함께 언급했다. 손영희 사무국장은 단순히 비정규직의 범위를 넓힌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면, 내실을 다지고 함께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플로어 토론에서는 비정규직 투쟁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사례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크게 세 가지 논점이 토론되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른 후과: 정규직화라는 단어로 담을 수 없는 현실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시행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당시를 되돌아보자는 의견이 플로어에서 많이 제기되었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전양규 노안국장은 구의역 사고 이후 안전 업무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규직 전환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며 노동조합이 투쟁한 결과, 관련 대상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과정과 그 이후 발생하는 내부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노동조합 조직 규모가 축소되고 복수노조 경쟁이 극심해졌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측면에서 세밀한 접근이 필요했지만,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기만 했을 뿐,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자 기관별 협의로 결정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조정 과정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떠넘겼기 때문이다. 현실의 조건을 무시한 채 선한 의도로 추진된 정책이 꼭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천공항지역지부 문설희 정책기획국장은 최근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조류퇴치 전담인력의 정규직화 논의에 진전이 있었지만, 정작 자회사 노동자들은 이를 반기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인천공항과 달리 전국14개 공항의 조류충돌예방업무는 한국공항공사 정규직이 아닌 자회사에 간접고용되어 있었다)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모회사 정규직이 되고서 오히려 임금수준은 낮아지고 온갖 허드렛일이 떠넘겨진 경우를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설희 국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구호가 더 이상 희망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현장의 상황과 조건에 적합한 요구가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이라는 호명을 넘어서는 희망의 이름을 투쟁으로 새롭게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에 대한 진단: 현장의 동력을 모아내는 운동을 만들자

원청을 상대로 한 투쟁의 필요성에 비해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한 현장의 낮은 관심도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토론되었다. 토론자들은 단체협약을 통한 교육 시간 확보, 일터와 관련된 사안을 매개로 조합원 눈높이에 맞는 과제를 제시하는 작업과 같은 현장의 사례를 바탕으로 노조법 2·3조 개정에 대한 여러 의견을 나눴다. 당장 커다란 요구로 모이지 않더라도, 원청의 책임이 강조돼야 해결할 수 있는 현장의 문제들을 제시하는 것과 같이, 일터에서 작더라도 해볼 수 있는 바를 제시해나가는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작년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대립한 ‘거부권 국면’에서 좌절된 노조법 2·3조 개정 과정을 돌아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노조법 2·3조, 4대 보험 적용 범위 확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등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법·제도 개선 관련한 투쟁이 전체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라고 단순히 선언하는 것을 넘어, 실제 법 개정을 위한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고 논의 테이블을 설정하여 내용을 가다듬는 과정에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윤석열 퇴진 투쟁의 불쏘시개가 될 수는 있었지만, 정작 퇴진 투쟁이 본격화되자 노조법 2·3조나 원청 책임 강화 관련 내용은 실종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라는 호명에 대한 재검토: 현장의 자부심과 희망을 건설하는 운동을 만들자

조합원이 스스로를 비정규직으로 규정짓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함께 이루어졌다.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안석 지부장은 단지 소속이 바뀐다고 처우가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노동자의 업무와 지위를 저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공항 노동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년 파업 투쟁을 진행하면서 비정규직 정체성보다는 노동자의 안전이 공항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고 짚었다.
 
이어서 토론자들은 공공운수노조에서는 여러 단위를 비정규직으로 묶고 있지만, 현장과는 온도차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정규직이 뭉쳐 투쟁하자는 말로는 현장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는 비정규직이 없으면 공공기관의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자긍심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공공부문 노동자의 처우와 공공서비스의 질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자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다. 이외에도 사회적 공감대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 미조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투쟁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와 같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10년 사이 대통령 탄핵 사태를 두 번이나 마주하는 지금,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는 토론자 공공운수노조 이윤희 부위원장의 언급처럼, 노동조합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노동조합이 탄핵 이후의 세상을 고민한다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더해 공공성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전략을 마련할 때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운동 전망찾기>는 첫 토론회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지혜를 모아나갈 예정이다. 막막한 현실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은 많은 비정규 단위 간부, 활동가들의 참여가 이어지길 바란다.
 
 
 
주제어
노동 노조
태그
비정규직 공공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