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한보그룹을 비롯한 10개의 대기업그룹이 부실화되면서 우리경제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들었다. 특히 이들 대기업의 부실화에 따른 금융시장의 대혼란과 자금흐름의 경색은 자금시장과 외환시장의 마비라는 금융공황을 낳고 말았다. 금융공황은 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파산하는 상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같이 신용질서가 와해되고 현금을 구하기가 어려워 자금시장이 마비상태에 빠지는 상황을 가리킨다.

우리 경제는 현재 기아그룹의 부도를 계기로 신용질서의 와해와 자금시장의 마비 현상을 본격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11월 현재도 금리가 큰 폭으로 급등하고 있으며, 주가는 폭락사태를, 환율은 사상 최고라는 기록을 연일 갱신하면서 급상승 사태를 맞고 있다. 이러한 금융시장의 혼란은 기업의 경영이나 투자에 필요한 자금의 조달은 물론, 기존의 채무에 대한 상환마저도 위협한다. 이에 따라 재무구조가 건실한 기업일지라도 투자를 감소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재무구조가 건실하지 못한 기업은 또 다시 부도를 맞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은 금융공황의 효과는 결국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과 소득감소를 가져와 노동자들의 생활을 더욱 더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금융공황은 왜 발생했으며, 그 해결책은 과연 무엇인가? 연일 신문이나 방송은 이에 대한 분석과 주장들을 쏟아 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정부에 잘못의 화살을 돌리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업경영자의 경영부실에 그 책임을 돌리기도 하며, 또 어떤 사람은 고용법이나 금융실명제들과 같은 제도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따라서 대책의 제시도 가지가지이다. 과연 오늘의 이 금융공황은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노동자들의 경제생활에 가져올 폐해는 어떤 것일까, 또 이 금융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어떻게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신용질서의 동요와 화폐기근 현상>

금융공황이 전개되는 현상은 먼저 신용질서의 동요로부터 시작된다. 어음의 부도와 그에 따른 어음거래의 기피, 그리고 융통어음, 채권, 주식의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의 불능 상태는 금융공황의 일차적 현상이다.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의 부도업체수는 무려 11,067개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6%나 증가했으며, 부도금액은 지난 9월까지 16조 1천억원이나 되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배나 증가했다. 이와 같은 어음의 부도급증은 기업들 사이의 신용거래를 급격히 위축시킨다. 여기에 더해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인 융통어음의 할인이나 채권 또는 주식의 발행도 지난 상반기까지 매우 큰 폭으로 축소했다. 기업어음, 회사채, 주식을 통해서 조달한 기업부문의 총조달금액은 올해 상반기에 18조 7천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28조 2천억원에 비해 거의 10조억원, 약 30%가 감소했다. 이처럼 부도가 급증하고 신용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에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신용질서가 근본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보여지는 금융공황의 현상은 지불을 위해 필요한 현금화폐가 기근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신용질서의 동요와 혼란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중개기관의 부실화는 물론 금융중개행위 그 자체를 중단시키게 만든다. 기업의 부도에 따른 금융기관의 부실화는 원활한 자금공급을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파산을 우려하는 금융기관들이 대출보다는 유동성(현금화폐) 확보에 더 열중하기 때문에 자금시장은 크게 위축된다. 여기에 더해 기업이나 개인들도 현금화폐를 보유하기만 하고 내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금융시장은 화폐기근 현상을 겪게 된다. 화폐기근 현상은 시중에 현금의 총량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이나 주식 또는 대출보다는 현금화폐를 보유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많은 돈을 풀더라도 시중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와 같이 모든 경제주체들이 현금을 손에 쥔 채 시장에 내놓으려 하지 않기 대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새로운 투자를 위한 추가자금은 커녕, 당장의 상환과 기업운영에 필요한 자금마저도 구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화폐시장이 마비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올 9월말 현재 은행들의 완전한 손실 또는 손실가능성을 가져다주는 총 부실여신은 9조 6903억원에 이른다. 이 금액은 은행 전체가 작년 한해 동안 벌어들인 업무이익의 2배가 넘는 돈이다. 여기에 이자를 받지 못하는 여신액까지 합친 총 부실채권액은 무려 28조 2346억원에 이르러 전체 여신액의 6.2%에 달한다. 더욱이 언론들이 추정하는 주가하락에 따른 은행들의 주식평가손실도 약 5조원 가량에 이른다. 이러한 은행의 손실은 대부분의 은행을 적자로 만들고 결국은 자기자본도 감소시켜, 예금이나 해외차입의 조달을 어렵게 만든다. 결국 은행의 자금 대출여력은 거의 소진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종합금융회사의 경우는 이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한달동안에만도 종금사 전체의 부실여신은 1조 6천억원이나 늘어난 것으로 보도되고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금융기관의 부실화가 자금시장을 더욱 경색시켜 화폐기근현상을 강화한 것이다.

이러한 신용질서의 혼란과 화폐기근현상은 금융공황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금융공황의 과정에서 물론 예금인출에 대비해 충분한 지불준비를 갖지 못한 은행이나 부채를 상환할 능력을 잃은 여타금융기관은 파산을 겪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중앙은행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파산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금융공황시기에 금융기관의 파산이 뒤따랐다. 우리나라도 사실 중앙은행의 지원이 없다면 최근과 같은 금융공황기에 한두 개의 은행이나 몇 개의 종합금융회사들은 파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세계경제가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나타나는 금융공황의 새로운 현상은 환율의 급변동과 그에 따른 외환거래의 마비사태이다. 금융공황은 국내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림으로써, 기존에 유입되었던 외화의 급속한 반출은 물론, 새로운 외화의 추가적 차입도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국내화폐의 가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기존의 외화채무에 대한 상환은 곤란을 겪게 된다. 현재 종합금융사나 은행의 외채상환 압박과 그에 따른 달러의 무차별 구매, 그리고 달러값 폭등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공황의 상태는 금융시장의 구체적 지표를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기아그룹의 부도유예협약이 결정된 지난 7월이후 금융시장의 금리는 폭등했으며, 주가도 사상 최고폭이라는 기록을 내면서 하락했다. 또 환율도 환율시장이 마비될 정도의 큰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금리는 CD수익률의 경우 6월말이 11.79%였던 것이 10월말에는 13.70%로 2%가까이 상승했으며 3년만기 회사채수익률 역시 6월말 11.65%에서 10월말에는 12.60%로 1% 상승했다. 신용질서의 혼란과 동시에 화폐기근현상은 자금의 조달을 비정상적으로 어렵게 만드는데 이것이 이와 같은 금리의 폭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한편, 주가를 보면 지난 6월말 주가지수 745.4에서 10월말에는 470.80으로 무려 274.6포인트나 폭락했다. 금융공황이 자산으로서의 주식에 대한 불신을 크게 하고, 이것이 주식투매를 불러일으킨 결과 주가가 이처럼 폭락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외환시장도 큰 동요를 보여 환율이 사상최고에 도달했는데 지난 7월이후 10월까지의 사이에만 보더라도 1달러당 원화가 77원이나 상승해 8.7%의 상승을 보여 주었다. 환율의 이와 같은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회수와 국내원화에 대한 불신이 달러에 대한 수요를 폭증시켰기 때문이다.

		1995.12	1996.12	1997.6	1997.9	1997.10.31
금리(%)	콜금리 CD수익률 회사채수익률	10.96 11.73 10.05	12.98 13.53 12.57	11.17 11.79 11.65	13.17 13.39 12.36	13.09 13.70 12.50
주 가 지 수 (전년동기대비 증감율)		882.9 (-14.1)	651.2 (-26.2)	745.4 (-5.6)	647.1 (-17.9)	470.8 (-37.8)
환 율 (원/1$) (전년동기대비 증감율)		774.7 (-1.7)	844.2 (-8.9)	888.1 (-9.6)	914.8 (-11.3)	965.1 (-11.2)

<자산가치의 손실과 경제전체의 파국적 위기>

금융공황은 개인적으로나 국가 전체적으로 막대한 자산가치의 손실을 겪게 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의 원활한 작동에 아주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먼저 현재 우리경제가 겪고 있는 손실을 추정해 보자. 금리상승에 따른 손실을 보면, 기업부문전체가 지고 있는 부채는 약 818조원에 달한다. 이 부채의 이자부담의 증가는 앞에서 본 것처럼 지난 10월까지 금리가 평균 약 1.5%상승했다고 보면, 무려 12조 3천억원에 달한다. 또한 개인 가계부문도 6월말 부채총액이 155조에 달함으로 새롭게 입게 된 이자부담 증가액은 대략 2조 3천억원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주가 하락에 의한 손실은 더욱 크다. 주가하락에 따른 상장주식의 시가총액은 지난 6월말 136조원에서 10월말에는 88조원으로 감소함으로써 무려 48조원이나 감소했다. 이 48조원만큼의 자산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소액투자자인 개인의 경우만 본다면 개인의 주식소유 비중이 34.3%임으로, 약 16조 5천억원에 달하는 자산가치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환율폭등에 따른 손실도 이들에 못지 않다. 지난 6월말 기업의 총 외채규모는 약 400억 달러에 이르는데 1달러당 환차손이 지난 4개월 동안 77원에 달함으로 이 기간 동안의 손실만 따지더라도 무려 3조원이 넘는다.

금융공황이 가져다주는 폐해는 이처럼 수치가 보여주는 개인적 손실이나 기업전체의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금융공황은 국가경제 전체를 위기로 이끌 수 있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경제의 파국적 위기상태로의 진행일 것이다. 현재 많은 기업들은 기존에 진행되고 있던 투자를 지속시키기 위해 자금을 조달할 필요도 있지만, 보다 급하게는 이미 짊어진 부채를 갚기 위해 자금을 추가로 조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금융공황은 주식이나 채권, 또는 융통어음의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물론, 은행으로부터의 자금차입도 어렵게 만든다. 이 결과는 과도한 부채부담을 안고 있는 기업들의 연쇄부도를 가져오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더욱이 금융기관들도 과도한 부실채권과 주식평가손, 그리고 외채의 상환압박 속에서 대외신인도마저 떨어져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 예금인출사태나 외채상환 불능 상태에 빠져 부도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러한 금융기관의 부도는 국민경제 전체를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와 같이 금융공황은 개인과 기업, 그리고 금융기관에 손실을 가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투자위축과 금융질서마비를 가져와 국가경제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금융공황은 기업부문의 무리한 과잉투자와 수익률 저하 및 그에 따르는 재무구조의 취약, 그리고 금융부문의 무분별한 대출과 그에 따른 위험증가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팽창국면에 있을때, 기업들은 미래수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가지고 가속적인 투자를 전개한다. 이 가속적 투자의 추가자금은 역시 미래에 대해 낙관적 전망을 갖는 금융기관들에 의해 신용으로 제공된다. 이 과정은 기업들 사이의 경쟁, 그리고 금융기관들 사이의 경쟁에 의해 더욱 강화되는데, 특히 경쟁이 강한 산업일수록 추가투자의 속도가 빨라 과잉투자현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런 산업부문의 기업에 대한 신용제공은 큰 위험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금융기관은 낙관적 전망에 눈이 어두워 이를 적절히 예상하거나 감시하지 못한다.

보다 격심한 경쟁의 결과 과잉투자를 초래하는 산업부문은 타산업보다 더 큰 수익성 저하를 불러 일으켜, 투자시에 가졌던 수입의 낙관적 전망이 무너진다. 이렇게 되면 이 산업분야에서 가장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부터 부도위험을 겪게 되는데,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이 만약 기업운영과 부채상환에 필요한 현금흐름(이것은 판매수입이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얻어짐)을 적시에 충분히 얻지 못하게 되면 부도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때 금융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보통 금융기관은 부도위험이 큰 기업에 대해서 새로운 추가 대출은커녕, 이미 대출된 자금마저 회수하려 든다.

이렇게 해서 경쟁이 심한 산업부문의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들부터 부도를 맞게 되는데, 이것이 신용질서의 와해를 가져오고 자금시장의 경색을 가져와 금융공황을 이끄는 것이다.

최근 우리경제의 금융공황도 이러한 발생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95년 하반기 이후 우리경제가 경기하강국면에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 1996년에는 대부분의 기업에서 큰 폭의 수익성저하와 재무구조악화를 겪게 되었다. 제조업의 수익성을 보면 금융비용과 환차손을 고려하지 않은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95년 8.3%에서 96년에는 6.5%로 떨어졌으며, 금융비용과 환차손을 고려한 경상이익률도 3.6%에서 1.0%로 떨어졌다. 재무구조는 부채비율의 경우 95년 286.8%에서 96년에는 317.1%로 크게 증가했으며 유동부채에 대한 유동자산의 비율을 나타내는 유동비율은 95.4%에서 91.9%로 떨어졌다.

이와 같은 우리 경제 전반의 수익성 저하와 부채비율 증가 속에서, 특히 과다한 경쟁을 겪었던 부문의 일부기업들은 무리한 사업확장의 결과 부채비율이 무려 2,000%가 넘어서기까지 했다. 수익성 저하와 그에 따른 현금유입의 감소, 여기에 더한 과도한 부채부담은 이들 기업을 부도로 몰아갔는데 이는 결국 그 기업이 속한 그룹전체의 파산을 초래하고야 말았다. 이것이 올해 부도를 낸 10개 대기업그룹의 실상인 것이다. 이들 대기업그룹의 일차적 부도 기업은 대부분 경쟁이 특히 심했던 철강, 백화점, 맥주업종이었다.

이 부도사태는 곧바로 해당 어음을 휴지조각으로 만들면서, 급속히 신용질서의 붕괴를 이끌어갔다. 이 신용질서의 붕괴와 기업부도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부실화는 결국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정상적으로 구할 수 없는 화폐기근 사태와 외환기근 사태를 불러와 금융공황을 전개시킨 것이다.

금융공황의 전개는 국가경제전체의 위기를 초래한다. 기업활동의 위축, 금융기관의 부실화, 소득의 손실 등 그 폐해는 국가전체를 불안감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다 더 크고 직접적인 폐해의 대상은 아마도 노동자들일 것이다. 노동자들은 금융공황에 따라 고용불안정, 고용조건 악화, 소득감소의 3중고를 겪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고용불안정을 보자. 금융공황의 결과 파산한 기업은 말할 것도 없지만, 부도를 면한 기업들도 일반적으로는 투자를 축소하고 고용을 감소시킬 것이다. 현재 우리의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 모두 내년도 설비투자를 축소할 계획을 가지고 있거나, 투자를 축소하지 않더라도 채용을 감축하고 명예퇴직을 강화하는 등 고용조정을 하겠다는 보고는 이를 잘 말해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우리나라 30대 그룹의 내년도 시설투자계획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은 투자자금 조달난, 기대수익률저하, 재고증대 등의 이유로 내년도 시설투자를 1.4% 감축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이보다 훨씬 심해 내년도 시설투자를 무려 19%나 감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또한 고용조정도 보다 심해질 전망인데, 노동연구원의 600개 기업에 대한 고용조정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70%의 기업이 채용감축,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을 통해 고용조정을 실시하겠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축소와 고용조정계획은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실업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올해 3/4분기 고용동향은 이미 이런 현상이 심각할 정도로 진행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현재 실업자수는 총 47만명으로 지난해 3/4분기에 비해 7만 9천명이 증가했으며, 실업률도 2.2%로 작년 동기에 비해 0.4% 증가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지난 1년동안 1년이상 상근직 근로자는 무려 35만명이나 감소한데 비해, 같은 기간동안 1년미만의 임시직과 일용근로자의 수는 49만 1천명이 증가해 623만명에 달했다. 이러한 숫자는 자영업자를 제외한 임금근로자의 47%에 달하는 숫자이다. 이와 같은 고용불안정의 증대는 앞의 보고와 같이 내년도에도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한편, 고용조건도 더욱 더 악화되게 될 것이다. 고용불안의 강화는 보다 개선된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화시키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사분규나 노동쟁의 발생건수를 보면 올해 들어 급속하게 줄어들었음을 볼 수 있다. 올해 1-9월 사이의 분규발생과 쟁의 발생건수의 합계는 538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720건수에 비해 25%가 감소한 숫자이다.

또한 금융공황은 노동자들의 소득감소를 초래한다. 고용불안과 교섭력 약화 속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재정경제원의 보고는 올 10월까지 100인이상 기업 중 임금을 동결하거나 임금교섭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업체는 1,095개 업체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숫자는 임금동결의 경우 900개 업체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36.9%가 늘어난 것이며, 무교섭 선언의 경우 95개 업체로 역시 작년에 비해 457.1%가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임금인상이 동결되고 있는 추세인데 비해, 내년의 물가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원자재가격의 상승, 금융기관 구제를 위한 긴급지원의 형태로 풀린 통화팽창 등에 의해 크게 상승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의 손실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금융공황과 그에 뒤따르는 경제전체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정책당국자나 경제전문가들은 대체로 시장경제의 기본원리하에서 기업부문의 구조조정과 금융부문의 효율증대를 위한 금융개혁의 빠른 단행을 현 위기의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근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브즈앨런보고서도 이와 유사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결국 이들의 주장은 금융시장에 대한 개혁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노동시장의 개혁만이 현위기의 가장 올바른 타개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올바른 대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는 현재의 금융공황사태를 약화시켜 그것이 전경제에 파급되는 것을 막는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금융공황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경제구조 전체를 재편하는 일이다. 따라서 현재의 금융공황에 대한 대책은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기적 대책으로서는 우선 당장 전개되고 있는 신용질서의 붕괴에 따른 자금시장의 마비, 그리고 외환시장의 위기를 해결하는 일이다. 이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지 않는다면 금융공황의 전체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이 문제 해결의 일차적 책임은 금융기관들 자신에게 있다 할지라도, 최종책임자는 건전한 신용질서를 유지해야 할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을 포함한 정부 경제정책당국자이다. 한국은행과 정부의 경제정책당국은 신용질서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외환을 적절히 관리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이 모든 문제의 해결을 시장경제질서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시장경제질서는 현재의 위기를 더욱 더 강화시키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을 뿐이다. 시장경제원리는 각 경제주체들의 불안감과 이기적 행동을 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으로 간주한다. 이 불안감의 증폭과 이기적 행동의 추구는 결국 현재의 위기를 강화시키면 시켰지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뒤늦게나마(11. 19) 정책당국자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처리 문제와 외환위기해결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정부는 언제나 금융질서가 건전하게 유지되고 국가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게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금융공황에 대한 장기적 대책이다. 이것은 경제가 금융공황과 같은 불안정에 빠지지 않거나, 또는 불안정을 극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구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현재 경제전문가들 대부분의 주장은 주로 이 장기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대체로 일치되는 의견은, 고용조정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기업구조조정과 효율적 금융중개를 위한 금융개혁이다. 이들의 주장은 아주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금융공황의 원인이 단순히 기업의 경쟁력 약화나 금융기관의 비효율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자본자산 투자나 금융기관의 금융자산 투자 행위에는 근본적인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존재한다. 이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경제를 주기적 불황과 금융공황에 빠뜨린다.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경제의 주기적 불황과 금융공황은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갖고 있고 금융기관도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선진국가들의 경우도 불황과 금융공황을 겪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기업경쟁력이 약하고 금융기관이 비효율적이면 불황이나 금융공황의 강도가 더욱 더 강화되어 나타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기업의 투자에는 근본적으로 낙관적 심리와 경쟁에 의해 강제되는 과잉투자가 따르며, 또 어떤 투자이든지 투자수입을 얻게 되는 미래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안고 투자가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투자는 본질적으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은행이나 종합금융사들이 보여주었던 무분별한 대출행위나 투기적 투자가 없다고 할지라도, 금융기관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위험이 큰 자산에 투자하는 유인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금융자율화는 이 위험을 더욱 증가시켜 왔다. 낙관적 전망하에 위험 큰 사업에 대출을 증가시키기도 하고, 보다 높은 수익을 쫓아 위험성이 큰 유가증권에 투자하기도 한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투자활동은 이와 같이 언제나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 없이는 불황과 금융공황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장기적 대책은 어떻게 기업이든 금융기관이든 그들의 투자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더 나아가 국가경제 전체에 유리하도록 결정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투자가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할 경제구조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만이 주기적 불황과 금융공황을 막고, 노동자들의 상태를 곤경에 빠트리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올바른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경제구조와 시스템하에서 경쟁력과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대책을 마련해야지, 그것 없이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우선시한다면 불황과 금융공황은 극복하기 어렵다. 이러한 경제구조와 시스템은 보다 민주적인 소유구조, 그리고 투자의 사회화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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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 : 이 글이 완성되어 송고된 후, 지난 11월 21일 정부는 IMF에 대한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이 추기를 통해 IMF에 대한 구제금융 요청의 원인과 내용, 그리고 그 효과를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어떤 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은 그 나라의 자금시장, 더 나아가 경제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나라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경제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이다. 어느 기업이 더 이상 정상적인 자금흐름을 유지하지 못하고 파산을 선고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1990년대 들어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가 이러한 상황에 빠져들었다.

우리 경제는 위에서 본 것처럼 자금시장과 외환시장의 마비라는 금융공황을 겪고 있었다. 이 금융공황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문제는 외환시장의 마비였다. 종금사를 포함한 국내 금융기관들만도 올해 연말까지 상환해야 할 외화부채가 약 15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국내에는 이 외채에 대한 최종대부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외채를 상환하지 못한다면, 국내금융기관들은 연쇄적 파산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걷잡을 수 없는 국내경제의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외채상환불능을 막고 외환시장을 정상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IMF는 국내의 중앙은행과 마찬가지로 국제통화제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1944년에 만들어진 국제통화기구이다. 이 기구는 어느 국가에 외환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당국가에 국제통화를 대부해주는 국제적 최종대부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국제통화를 대부해주는 대신 이의 상환을 보증받기 위해 여러 가지로 까다로운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조건들은 해당국가의 거시경제 전반에 관한 것이다.

우리 나라는 현재 IMF와 이 대부에 대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인데, 아직 대부액이나 대부조건들이 결정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미국, 일본 등의 협조와 함께, IMF로부터 빌리게 되는 액수는 약 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여진다. 대부액도 중요하지만, 우리경제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부조건이다. 멕시코 등 이미 IMF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은 나라들의 경험으로 보거나, 현재 우리 나라에 와있는 IMF 실무협의단의 요구사항을 볼 때,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은행 및 종금사 등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다. 태국의 경우 42개 금융기관을, 인도네시아의 경우 16개의 은행을 폐쇄할 것을 요구한바 있으며, 우리 나라의 경우 현재 IMF협의단이 부실 금융기관을 파산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둘째, 거시경제운영목표의 대폭적 수정으로 경제성장률의 하향조정(멕시코의 경우 2%로,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우 2.5-3.5%로 요구), 국제수지의 개선(태국과 인도네시아의 경우 GDP 대비 경상수지적자비율을 2년내 3% 이내로 낮출 것을 요구), 재정수지흑자(위 양국의 경우 GDP 대비 흑자율을 2%로 요구), 조세율 인상(부가가치세율을 멕시코의 경우 10%에서 15%로, 태국의 경우 7%에서 10%로 인상 요구), 임금상승율 억제(멕시코의 경우 최저 임금상승률을 10% 이내로 억제할 것을 요구), 물가상승율 억제(모든 나라에 대해 한자리수 상승 요구) 등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산업구조의 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뒷받침할 제도의 정비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에 대해서는 통신사업 등을 민영화할 것을 요구했으며,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곡류수입의 국가독점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벌써 IMF 협의단이 자동차산업 등 일부산업의 기업합병과 공기업 민영화, 그리고 정리해고제의 도입을 요구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넷째, 모든 시장의 개방을 요구할 것이다. 멕시코의 경우 은행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진입을 요구해 민간은행 중 규모가 큰 3개은행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두에 대해 외국인대주주를 허용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IMF의 관계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협의단은 외국자본의 국내은행 주식취득이 용이하도록 외국인 은행주 취득한도를 대폭 완화하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과연, 언론의 용어처럼 IMF의 금융지원은 경제신탁통치라고 할 만하며, 이러한 상황에 빠진 우리 나라의 신세를 한일합방의 경술국치에 빗대 정축국치라 할 만하다.

이러한 IMF로부터의 금융지원과 그에 따른 요구조건의 수용은 과연 우리 경제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그리고 노동자들의 생활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국내 국책연구소나 민간연구소들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의 우리경제는 저성장과 실업의 급증을 겪게 될 것 같다. 내년 성장률에 대해서는 대부분 4%내외로 전망했으며, 실업율은 3.5-4.0%로 약 100만 정도가 실업상태에 빠질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에 물가상승율은 5-7%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구체적 수치야 어찌 되었든, 내년이후의 우리 경제는 당분간 재정수지 흑자와 국제수지 개선, 물가안정을 위해 내핍적 긴축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고, 기업도 자금조달의 어려움과 국내소비감소로 인해 투자를 대폭 감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매우 낮은 성장율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구조조정과 인원감축, 그리고 투자감축에 따른 대량의 실업 또는 고용불안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국자본의 지배하에 있게 될 가능성이 커, 멕시코처럼 외국자본에 대한 종속의 문제가 크게 대두될 것이다.

이러한 경제상태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가장 큰 희생으로 내몰게 될 것이다. 실업이나 끊임없는 실업에의 위협, 근로조건의 악화, 임금동결과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소득의 감소, 그리고 실질소득의 감소가 가져다주는 소득분배의 악화 등은 노동자들의 삶을 아주 고단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멕시코의 사례가 보여 주듯이, IMF 구제금융에 의한 파산경제의 재건은 절대적으로 노동자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IMF의 구제금융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다고 하더라도, IMF의 요구충족만이 우리경제가 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가? 많은 경제학자나 언론인들은 IMF의 요구가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구조조정, 그리고 정리해고를 통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는 우리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던 만큼,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개혁되기를 바란다는 심정이다.

그러나 IMF의 요구내용은 경쟁과 안정, 그리고 시장의 완전한 개방을 최고선으로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원리의 충실한 대변이다. 이것은 국내경제를 보다 건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첫째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과 소득불균등의 심화를 가져올 것이며, 둘째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국가의 금융자본에 의한 국내금융 지배를 가져와 국내경제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우선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IMF의 요구를 피할 수 없다 할지라도, 이 두 가지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건실해진 경제의 성과 그 자체를 회의로 빠뜨릴 수도 있다.

우리가 우리 경제의 본질적 문제점인 불안정과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 위에 서있어야 한다면, 우리는 이번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IMF의 관리로 인해 온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출발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