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 2023.10.10
포퓰리즘의 득세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연 <한계와 파국: 현대정치의 위기> 지상중계
지난 9월 23일,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와 대안공간 공공연이 강연<한계와 파국:현대정치의 위기-자유주의, 포퓰리즘, 비판과모색>을 주최했다. 강연자로는 최근 논문에서 포퓰리즘을 국민주권의 변형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 윤종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연단에 섰다.
주최 측은 이번 강연이 포퓰리즘의 의미를 명확히 알고자 마련되었다고 소개했다. 사회를 맡은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허지선 조직국장은 “최근 정치의 위기를 논할 때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빠짐없이 사용된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무엇인지는 답하기 쉽지 않다. 포퓰리즘이 진보적인지 보수적인지, 혹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도 논쟁적이다”라며, “위기를 말하고자 한다면 위기의 내용을 우선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준비한 강연”이라고 의도를 설명했다. 강연은 세계경제체계를 다룬 1부와 포퓰리즘을 고찰한 2부로 진행되었다.
포퓰리즘의 발흥배경으로서 세계경제체계
1부에서 윤종희 교수는 본격적으로 포퓰리즘을 다루기에 앞서 세계경제체계를 개괄했다. 장기저성장과 글로벌 불균형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경제는 결과적으로 포퓰리즘이 발흥하는 토대가 된다는 맥락이었다.
윤 교수는 세계경제 구조에 대한 3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미국에서 무역적자·해외부채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째, 미국이 장기간 무역적자를 기록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셋째, 장기간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민소득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연은 질문에 하나씩 답하며 진행되었다. 우선, 선진국의 무역적자는 글로벌 아웃소싱으로 설명된다. 선진국 기업이 제조업 기반을 신흥국으로 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진국의 무역적자-신흥국의 무역흑자 구조가 만들어진다. 핵심부품, 디자인은 본사가 담당하고 생산은 해외하청기업이나 자회사가 담당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선진국 기업이 수익을 낼수록 무역적자가 확대된다. 예를 들어 “중국의 폭스콘이 아이폰을 만들어 수출한다. 애플 매출이 커질수록 중국의 수출액이 늘어난다. 애플이라고 하는 미국기업이 돈을 많이 벌수록 미국은 중국에 대해 무역수입이 많아지”게 된다.
둘째, 달러환류 메커니즘이 무역적자 구조가 유지되도록 지탱한다. 수출 달러 환류 메커니즘이란 수출로 달러를 번 신흥국이 미국 채권 등을 구매해 달러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구조를 말한다. 윤종희 교수는 “돈을 벌어들인 신흥국이 국내에 돈을 유통시킬 경우 물가가 상승한다. 따라서 신흥국은 벌어들인 달러를 반드시 해외로 투자한다.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다”라며 그 원리를 설명했다.
셋째, 미 금융기관은 환류된 달러로 신흥국의 금융자산을 구매한다. 일반적으로 신흥국은 미국에 비해 채권 및 금융상품의 위험도와 수익률이 높다. 결과적으로 낮은 미 금융상품 수익률과 높은 신흥국 금융상품 수익률 간 차이가 미국의 무역 외 수지 흑자를 형성한다. 이것이 세 번째 질문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민소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이유”의 해답이다. 윤 교수는 “미국은 무역수지는 적자를 보지만 무역외수지를 큰 폭으로 본다. 금융서비스에 기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거시경제구조는 “정부의 핵심정책을 금융부문의 안정”으로 변화시킨다. 윤 교수는 특히 “금융부문 안정정책과 국내고용 안정정책을 충돌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경제상황이 안 좋을 때” 특히 그렇다며 “유럽만 하더라도 경제활성 정책이 취약하다”고 말했다. 유럽이 높은 실업률에도 긴축정책을 유지하는 것도 금융부문 안정을 우선시하는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신흥국에서는 수출과 해외투자자에 집중하는 정책을 펴게 되는데 이는 신흥국 내 내수부문과 수출부문의 격차, 불균형을 초래한다. 즉, 선진국에서는 금융-비금융부문의 격차가 커지며, 신흥국에서는 수출대기업과 내수기업의 격차가 커진다. 이는 빈부격차를 확대한다.
이 지점에서 포퓰리즘과 거시경제가 연관된다. 윤종희 교수는 “빈부격차가 증가하고, 고용의 안정성이 떨어지며 현실에 대한 불만은 늘어난다. 포퓰리즘과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사회적 고립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현실, 특히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증가한다”고 이야기했다.
나아가 윤 교수는 이런 불만이 조직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사회가 고도화되면 문제의 책임을 특정인에게 돌리기 어렵다”며, “불만의 대상도 주체도 파편화된다”고 보았다. “최근 아랍, 유럽 주변부, 한국, 중남미 등지에서 대규모시위가 이뤄지지만, (주체가) SNS로 파편화되어 있다. 예전과 같은 조직된 노조, 사회운동 단체의 시위와 다르다. 각자 불만을 표출하는데 (그치는) 시위”라며, (이런 시위는) “정당(포퓰리즘)이나 사회운동(극우집단)으로 흡수되는 경향이 있다”고 연관성을 설명했다.
1부 질의응답에서는 불만의 대상과 주체가 파편화되는 현상에 대한 보충이 이어졌다. 전남대학교 용봉편집위원회 이형호 편집장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 “그래서 포퓰리스트 지도자나 정당이 그런 이들을 결집해서 길거리로 내보는데 가상의 적을 상정하고, 분노를 표출하도록 하는 것인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윤 교수는 “분노한 사람들이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모른다. 현실에 대한 불만은 있지만 터트릴 곳이 없다. 그럴 때 포퓰리즘 지도자가 누구를 욕하라고 지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21세기 정치위기와 포퓰리즘
2부 <21세기 정치위기와 포퓰리즘>은 본격적으로 포퓰리즘을 다루었다. 윤종희 교수는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현실에서 무엇을 문제 삼으며 등장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논의를 열었다.
윤 교수는 “민주주의 체제가 세 가지 쟁점을 가지고 있다”며, “첫째 시민권, 둘째 정치이념 그리고 대표제가 그것이다”며 “앞선 두 가지 쟁점은 오랫동안 논쟁되어 왔지만 대표제 쟁점은 덜 중요시 되어왔다”고 말했다. 포퓰리즘은 대표제 쟁점에 파고들어 지배엘리트에 반대하며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 체제의 세 가지 측면은 서로 다른 차원의 쟁점으로 포퓰리즘이 제기하는 문제를 시민권이나 정치이념의 문제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극우, 극좌 포퓰리즘이나 인종주의 포퓰리즘을 각각 규정하는 것보다는 이것들이 모두 대표제 민주주의에 반대하며 등장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 민주주의는 대표제 민주주의다. 주권자는 대표자를 뽑아 정책의 구성과 집행을 위임한다. 윤 교수는 이때 주권자의 권리가 두 가지로 세분된다고 보았다. 권리A. “대표를 선출하고 대표를 통해 실제 정책을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현실에서 투표권과 선출직의 집행권한으로 존재한다. 권리B. “정치적인 판단과 의견을 형성해서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 이는 언론, 이익집단, 전문가집단 등의 담론을 의미한다.
두 가지 권리는 서로 교통하며 발휘되며 이때 권리B가 그 내용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홍범도 동상 철거 건에서 철거 결정을 내린 것은 선출된 정부다. 정부는 권리A를 행사했다. 홍범도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을 형성하고 결정을 압박한 것은 시민단체다. 시민단체들이 권리B를 행사했다. 이처럼 주권자의 두 가지 권력은 상호작용한다. 윤 교수는 이 관계에서 “집행자가 아니라 명령한 사람,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실질적 권력자”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대표제 민주주의에서 다양한 매개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매개기관이란 정당, 언론, 미디어, 사회운동, 이익집단 등으로 유권자와 대표 사이에서 교통하며 의견을 형성한다. 윤 교수는 “이런 매개기관을 통해 의견B, 권력B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렇듯 “주권자의 권리가 분리되었을 때 권력B들이 독자적으로 형성되고 의견이 풍성해지는 것이 대표제 민주주의의 특징이자 장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유권자의 의견, B권력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또 대표와 유권자 간 끊임없는 교통으로 만들어진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많은 사람이 대표자를 유권자의 메신저라고 생각하지만 “유권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대표가 메신저라는 가정은 국민의 요구, 정책에 대한 명확한 의견이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국민의 의견은 매개기관들을 계기로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오늘날 정치의 위기를 이야기한다면 이 매개기관의 위기다”라며 “매개기관이 의견형성 기능을 강화하기보다 직접 권력을 추구하려 하다 보니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오늘날 파당적으로 재편된 사회운동에 시사점을 준다.
한편, 오늘날 현대거시경제 조건이 대표제 민주주의의 근본작동원리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70년대 장기저성장 국면에 돌입하고, 글로벌 기업이 이전하면서 민족국가 내에서 기업발전과 국민발전의 연결고리가 약화되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글로벌기업과 금융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주력한다. 정부의 주요정책이 정당 등 매개단체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초민족자본의 요구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노동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빈곤이 심화할수록 문제가 된다.
윤 교수는 이 같은 배경에서 대중의 불만에 근거한 포퓰리즘이 등장한다고 보았다. 70년대 저성장 이후 자유주의적 해법이 제한되고, 또 사회주의가 약화되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정치이념적 비판도 부족하다. 이는 대표제에 대한 불만 고조로 이어진다. 윤 교수는 “포퓰리즘은 대표제 민주주의 자체에 문제제기를 한다”며 “과거에는 현 정부가 개혁적 정책을 펴야 한다, 사회주의적 정책을 펴야 한다고 공격했는데, 그런 자원이 부족해지니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는 대표제에 대한 공격으로 수렴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또한 “다시 말해 포퓰리즘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대표제의 맹점을 공격하고 새로운 형태의 대표제를 요구하는 것”이라며 “지배집단이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기 때문에 그 권력을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 이것이 모든 포퓰리즘에 공통된 특징이다. 도덕적비판, 때로 음모론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 교수는 포퓰리즘의 두 가지 성격을 설명했다. 우선 포퓰리즘은 지배엘리트와 그 외의 사람으로 이원화한다. “포퓰리즘의 지배엘리트를 배제하고 현실의 인민이 지지한 정당이 권리를 갖는 인민주권을 주장한다. 기존 대표제를 문제 삼으면서 선출 권력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국민이 선출한 포퓰리즘 지도자가 모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포퓰리즘 집단은 집권 전에는 지배엘리트를 비난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선출에 근거해 절대적 권력을 갖는다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들은 “관료나 사법부가 지도자를 가로막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과거 대표제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통한 선출 권력의 제한을 민주주의라고 규정했는데 포퓰리즘은 이를 부정한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이런 포퓰리즘의 성격은 결과적으로 고립과 붕괴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포퓰리즘은 분파의 지배를 부정한다”며 “세상은 지배엘리트와 인민으로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본인을 지지하지 않는 상대방을 지배엘리트의 하수인으로 여기며 배척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포퓰리즘은 “다원주의나 타협과 협상의 정치를 부정한다”며 “민주당이 보기에 국민의 힘은 국민을 소외시킨 지배엘리트이기 때문에 타협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한 인민을 단일한 존재라고 보면서 인민 내부의 분할과 대립을 부정한다. 윤 교수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배엘리트와 인민은 물론, 인민 내부에서도 이익이 대립한다. 자연스럽게 포퓰리즘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펼 때 반발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렇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기존 지배엘리트의 하수인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다 보면 세력이 분할되고, 지지층이 이탈하며 고립되다가 결국 붕괴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모든 포퓰리즘 역사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특징은 대표제 권력B 포퓰리즘은 매개기관을 부정하고 직접소통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반대집단을 모두 지배엘리트의 하수인으로 여기며 배척한다는 의미이다. 대신 대표와의 직접 소통을 선호하는데 과거에는 집회, 라디오 방송의 형태로, 오늘날에는 트위터 등 SNS형태로 등장한다. 윤 교수는 “그러나 이것은 일방적 소통”이라며, “소통은 대화를 통해 각자 생각을 바뀌는 것인데, 포퓰리즘의 소통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노동조합 등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방책은 사라져가다 보니 사람들이 정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런데 정부는 점점 할 수 있는 게 줄어든다. 불안에 근거한 불만이 늘어나는 와중에 포퓰리즘이 대표제를 문제 삼으며 등장하면서 정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고 등장배경을 덧붙였다.
질의응답
강연 이후에는 포퓰리즘에 대한 분석과 현실정치 등을 폭넓게 다루는 다양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한 참가자는 “포퓰리즘이 스스로 붕괴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포퓰리즘이 현실정치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라고 의미를 질의했다. 윤종희 교수는 포퓰리즘 집권세력이 스스로 몰락하는 것은 맞으나, 포퓰리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그 위험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포퓰리즘 세력이 배제를 반복하며 고립, 붕괴되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포퓰리즘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포퓰리즘이 등장한다. 그 점이 큰 위험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포퓰리즘 정권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일례로 아르헨티나에서는 페론주의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포퓰리즘과 기존 지배세력을 비교하는 여러 질문도 있었다. 먼저 집권 포퓰리즘 세력이 정권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지배엘리트도 반복해 온 일이 아니냐는 질문에, 윤 교수는 한국의 오랜 독재정권 경험과 포퓰리즘 정부 집권 경험에서 오는 착각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영국, 미국에서 선출권력의 절대성을 강조하며 헌정질서를 무시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트럼프도 의회나 사법부를 무시하고 싶어 했지만, 하지 못했다. 미국은 대통령 권력을 제한하는 힘이 강하다”라고 비교하면서 다만 “포퓰리즘 정권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재정부와 구분된다”고 답변했다.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포퓰리즘과 비교했을 때 엘리트주의의 위험성이 더 크지 않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윤 교수는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가 대립된다고 보지 않는다”라며 “포퓰리즘이야말로 무척 엘리트주의적”이라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은 서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야당, 언론의 비판도 모두 부정한다. 자기를 견제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을 모두 지배엘리트의 하수인으로 몰아간다. 다원주의조차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 태도다. 윤 교수는 “민중, 인민을 위한다는 수사와 실제로 하는 행동을 구별해야 한다”라며 “타인의 비판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이 더 큰 엘리트주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을 어떻게 비판하고 상대할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이형호 편집장은 “정치 이념과 민주주의를 황폐화한다는 점에서, 현 정세에서 중요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망가뜨리고 권위주의와 접속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의 득세는 굉장히 우려스럽다”며 포퓰리즘의 비판방향에 대해 질의했다. 이에 윤종희 교수는 우선 “오늘날 국제적 금융시스템이 많은 이들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지배엘리트를 비난하고 인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포퓰리즘 세력이 여기에 반기를 드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고 현상을 해석했다. 윤 교수는 이어서 “그러나 현재 지배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무조건 진보는 아니다.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즉각적인 답을 내기보다는 사회운동, 정당, 언론 등 권력 주변의 체계들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윤 교수는 “오늘날 많은 사회운동, 정당, 언론이 권력행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저는 이것이 정치 위기의 모습이라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면, 반대로 매개기관들을 살리고 강화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눈에 띄는 것은 집행하는 권력이지만, 그보단 지적,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행사하는 권력이 훨씬 중요하지 않은가 싶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사회운동이나 노조가 미흡한 지점도 있다. 결과에만 몰두하지 않고 깊고 넓은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허지선 조직국장은 “결국 자본주의 경제와 자유주의 정치가 곤란에 직면한 결과가 포퓰리즘”이라며, “강연의 표현을 빌려, A권력이 아니라 B권력,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사회운동과 시민이 튼튼하고 건강해야 포퓰리즘의 득세와 파국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강연이 그런 자리가 되었기를 바란다”라고 발언하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이날 강연은 공공연과 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주최로 진행된 연속정세강연의 세 번째 시간이었다. 세 번에 걸친 네 시간여 강연에 참석한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강연을 청취하고 참여하며 현대정치에 대한 이해와 고민을 발전시켰다.
바로 이런 노력이 오늘날 사회운동에 필요한 실천이다. 연사가 강조했듯이 현대정치의 한계는 단순한 집권 세력이 부패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지적·이데올로기적 첨단을 맡아야 하는 사회운동의 부실에서도 비롯하기 때문이다. 정치의 위기 못지않게 사회운동의 위기가 실로 심각하다. 많은 시민이 사회운동을 도덕적·지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여기고 있다. 지난 정부 사회운동과 집권세력의 유착은 이런 인식을 더 부채질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회운동이 정체되지 않은 이념과 기민한 정세분석으로 거듭나야 한다.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너른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를 구성해 나가는 일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