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동향
| 2023.11.17
③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대리전인가요?
<반핵·반권위주의 국제민중연대를 위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푸틴 정권이 장기통치를 위한 지지율 상승을 노리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시작되었고, UN헌장과 국제법, 기존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맺은 합의와 조약들에 위배되는 명백한 불법 침략입니다. 러시아군의 침략과 폭력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은 정당합니다. 복잡한 국제정치 속에서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고 해서, 침략과 그에 맞선 항전이라는 이 전쟁의 기본 성격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UN헌장과 국제법, 기존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맺은 합의와 조약들을 위배한 불법 침략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매우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옹호해왔습니다. 침공 직후에는 푸틴 대통령이 밝힌 개전 근거를 전적으로 옹호하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했고, 3월 UN 긴급총회에서 북한은 세계 141개국이 찬성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진 단 5개국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러시아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담화를 냈습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며 무기가 바닥난 러시아군에 북한이 포탄 등을 제공한 정황이 드러났는데, 이로 인해 러시아가 북한에 ‘보답’으로 첨단 미사일 기술을 전수할 우려가 높습니다. 실제로, 노동신문은 올해 7월 평양에서 김 위원장과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국방안전 분야 협조를 가일층 발전시키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토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러시아의 합법적인 안전상 요구를 무시하고 세계 패권과 군사적 우위만을 추구하면서 일방적인 제재 압박에만 매달려온 미국의 강권과 전횡에 그 근원이 있다.” - 북한 외무성, 2022.02.26.
“푸틴 대통령의 영도 아래 러시아 인민은 나라의 존엄과 안전, 발전권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위업실현에서 부닥치는 온갖 도전과 난관을 과감히 이겨내고 커다란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우리 인민은 이에 전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022.06.12.
“러시아를 파멸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을 더욱 확대하여 저들의 패권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미국의 흉심이 깔려있다. 우리는 국가의 존엄과 명예,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에 나선 러시아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 전호에 서 있을 것이다.” -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2023.01.28.
민주노총 노동자 통일교과서3은 처음부터 이 전쟁은 중국, 러시아와 동시에 2개의 전선에서 싸우는 것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를 먼저 약화시키고자 한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이하 나토)를 동쪽으로 확대시키고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반러시아 유로마이단 혁명을 지원하면서 유도한 대리전이었다고 규정합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며(“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제 당사자”) “젤렌스키는 미국의 전쟁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올해 2월 8일 전국민중행동과 민주노총 통일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 <신냉전 대결과 다극화로 향하는 세계, 한반도 평화의 과제>에서도 손정목 통일시대연구원 부원장은 “이 전쟁은 미국이 기획한 대리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동시에 “미국 패권이 몰락한 다극화된 세계는 인류사적 진보이고 호혜와 평등의 세계질서로 바뀐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인데, 러시아 입장에서는 서방의 침략 위협에 대응한 주권국가 최초의 반격전”이라고 규정했는데, 미국이 러시아의 반격전이자 자국의 패권을 몰락시킬 전쟁을 기획했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푸틴은 왜 지금 침공을 감행했을까요?
이들의 주장은 나토의 동진(東進)이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일으켜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2014년부터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개입된 전쟁을 겪고 있었고, 나토 헌장에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집단대응한다는 ‘자동개입’(5조) 조항이 있습니다. 즉,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나토를 이 전쟁에 직접 개입시키게 되므로, 2022년 시점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안이었습니다. 2021년 11월에도 나토 사무총장이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기 위해선 나토의 기준에 부합해야 하고, 30개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하지만 아직 나토 내 합의는 없다”고 말했듯, 단시간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현실화할 가망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푸틴은 존재하지 않는 위협에 대한 망상과 더불어 “우크라이나는 고대부터 러시아의 것”이었다는 믿음으로 이웃 나라를 전면 침공할 수 있는, 건드려서는 안 될 일종의 ‘미친 개’였다고 간주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시에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무모한 정권을 “서방에 맞서 호혜와 평등의 새로운 질서를 주도할” 세력으로 칭송하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어쨌거나 소위 현실주의적인 관점은 구시대적인 침략전쟁이 현실이 된 사태를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그런 사태에 정당성을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렇다”는 식의 설명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러시아가 ‘안보 우려’ 때문에 침공을 했다고 이해해주어야 한다면, 러시아 인근 나라들이 나토에 가입 신청을 하여 나토가 점차 동쪽으로 확대된 것도 이들이 러시아에 느낀 안보 우려 때문이니 마찬가지로 이해해주어야 하는 부분일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민중이 나토 가입을 지지하게 된 것 역시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과 크림반도 합병으로 안보 우려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 및 주변국들의 우려가 사실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랫동안 중립국 지위를 지켜온 핀란드와 스웨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고 나토에 가입했습니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나아가는 관문인 발트해가 ‘나토의 연못’이 되어버린, 러시아의 ‘안보 우려’ 측면에서는 매우 역설적인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진전되지 않고 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푸틴에게 실제로는 다른 동기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판단합니다. 침공의 원인은 러시아의 국내적 요인에 있습니다. 즉, 푸틴은 권위주의적 통치와 긴 경제위기에 따른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는 의도에서 2014년 크림반도 점령에 나섰고 당시 지지율 상승을 맛보았습니다. 초장기집권을 위하여 이러한 시나리오를 되풀이하려는 욕망이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만약 푸틴 정권이 느꼈던 외부적 위협을 꼽자면, 그것은 나토의 확대라기보다는 러시아가 자국 정치에 개입하는 현실에 저항하여 민주적 체제를 구축하려는 주변국 민중의 흐름이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통해 “러시아가 아니라 유럽을 택할 것”을 선언한 뒤, 국내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강화로 나아가는 우크라이나였습니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항전이야말로 자주를 위한 민족해방투쟁
다음으로, 이 전쟁에서 가장 일차적인 사실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침공 이래로 약 일 년 반 동안 우크라이나 민중의 생명과 삶의 터전이 철저히 파괴되었다는 점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리전일 따름이라는 입장들은 이것 또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대리전의 전장으로 삼고 계속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한 탓에 전쟁이 길어져서 우크라이나의 피해만 커졌다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 온 외국군의 공격으로 집과 일상과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이들, 그 이유로 “너희는 원래 러시아의 일부였고 한 번도 제대로 실체를 갖춘 나라나 민족이었던 적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이들이 외국군을 자국에서 몰아내고자 싸우는 것이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인가요?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반응 아닙니까? 이게 “미국의 전쟁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라 할 일일까요?
소련 당시에도 우크라이나는 소련, 즉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 중 하나로 실존했고, 푸틴 본인이 인정했듯 민족국가의 지위와 형태, 소련에서 조건 없이 탈퇴할 권리를 지녔습니다. (푸틴은 이것이 레닌과 볼셰비키가 저지른 엄청난 과오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직전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90% 이상의 찬성으로 독립했고, 지난 30여 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명실상부한 독립국으로 인정받아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여전히 큰 데에 대한 대중적 반발이 있었고, 이것이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이어집니다. 우크라이나 좌파는 유로마이단을 “야누코비치 정권과 같은 친러시아 정치인으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체제, 친러시아 엘리트와 올리가르히를 통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을 반대하고 유럽으로의 통합을 지지한 민주적인 대중혁명”으로 평가합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의 점령과 살인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알제리 전쟁, 베트남 전쟁과 같은 민족해방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수백 년 간 지속된 러시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라는 것이죠(사회진보연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과 세계의 미래②」, 《사회운동포커스》, 2022.12.21.).
그 어떤 가치보다도 ‘자주’, ‘민족’을 중시하는 NL그룹들은 왜 러시아에 대한 항전을 ‘민족해방투쟁’으로 여기며 “우리 땅에서 외국군을 몰아내겠다”고 하는 우크라이나 민중의 목소리는 무시하고 폄하하는 것일까요? 민족자주와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하는 세력이, 레닌이 “민족자결주의를 수용하여 러시아 제국의 변두리들에 너무나 후한 선물을 주었다”고 비난하며, 사회주의 혁명이 무너뜨린 봉건적이고 귀족적인 러시아 제국의 영토를 되찾겠다고 하는 푸틴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까? 책임 있는 사회운동 세력으로서 스스로 내건 가치나 구체적인 현실 분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이익에 복무한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미국이 돕는다고 해서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이 의미 없습니까?
NL 그룹들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며, 실제로 서방이 많은 지원을 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이 전쟁이 대리전이라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하는 무기는 거의 대부분 서방이 지원한 것이고, 이러한 지원이 없었더라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에 이렇게 오랫동안, 대대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 속에서 단순히 희생되고 있거나 서방의 이해를 대변하고만 있다는 증거일 수 있을까요?
무기는 외국 무기더라도, 지금까지 전투를 수행한 주체는 외국군이 아니라 수많은 자원병을 포함한 우크라이나군입니다. 모든 전투가 우크라이나 땅 안에서 벌어졌습니다. 이 전쟁에 쓰인 모든 불발탄과 지뢰가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민중의 항전 의지는 여전히 명확합니다. 여론조사들을 보면 영토 상당 부분을 수복할 때까지 항전을 지속해야만 하며, 그래야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민주주의, 자유가 보장될 것이라는 대답이 압도적입니다. 즉, 우크라이나 민중은 실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주체이며, 자신의 명확한 이해관계에 따라 항복 대신 항전을 택했습니다. 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누구보다 이들이 잘 알겠지요. 그럼에도 이들이 항전을 택했다는 점을 존중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이 전쟁에서 어떠한 희생을 감수할 것인지, 어떠한 타협을 할 것인지 결정할 권리는 우크라이나 민중에게 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을 서방이 지원한다는 사실이, 침략에 맞선 저항의 정당성보다 더 중요한 본질일까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 대한 미국, 영국의 대대적인 군사적, 물질적 지원은 소련의 반격과 나치 독일의 패배에 한몫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이러한 지원을 반겼고, 미국 좌파는 미국 정부가 독일에 침략당한 소련에 무기를 보내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이 모두가 잘못된 판단이었을까요? 서방의 지원을 받아 수행하는 항전은 순수한 민족적 저항일 수 없다는 주장은 피침략국 민중이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는 침략군의 학살과 파괴를 참든지, 맨손으로 어떻게든 맞서든지, 항복하든지 선택하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국제정치는 물론 선의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고 해서 ‘대리전’이라고 부른다면 사실상 세상의 거의 모든 전쟁을 대리전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사안을 판단하는 핵심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한 것은 당연히 조선 민중이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패전국 일본의 힘을 꺾어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결국 승전국의 식민지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식민지가 해방된 것도, 그것이 식민지 쟁탈 전쟁과 민족해방투쟁의 분출을 제어하면서 자본주의의 안정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더 안전한 질서라는 것에 강대국들이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 독립을 하면 안 됐을까요? 소련이나 중국공산당과 같은 사회주의 세력이 아니라면 조선 독립 투쟁에서 연대를 하면 안 됐을까요? 예를 들어, 미국 내 한인 공동체의 독립운동 역사 등을 우리가 전부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듯, 침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민중을 지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도 어떤 세력이 이들을 지원하냐에 따라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크라이나에 개입하는 서방의 의도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필요하면 비판하는 것과, 국제민중연대의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운동을 지지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전쟁의 핵심을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으로 보는 시각은 우크라이나 민중의 이해를 서방과 젤렌스키 정부의 이해로만 치환하고, 우크라이나 민중의 저항이 중요하지 않다고 치부하는 것이며, 역설적으로 극도의 ‘미국중심주의’라고 비판하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소개합니다.●
“이 전쟁을 러시아와 서방의 대리전으로 보는 이들은 미국의 영향력이 다른 권위주의 정부에 의해 도전받고 있고 그런 시도들이 진보적 영향력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중심적 인식이고 현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견해입니다. 미국이 전 세계 모든 문제를 만들어 내고 다른 이들의 주체성은 없다는 주장은, 국제주의를 지정학으로 대체하고 민중의 견해를 단순히 국가의 견해로 대체합니다. 좌파라면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진영주의적 견해, 역설적으로 더욱더 미국 중심적인 그런 시각이 아니라, 민중의 해방이라는 관점,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봐야 합니다.” - 2022년 노동운동포럼 화상강연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 사회운동의 과제”에서 우크라이나 좌파단체 ‘사회운동’(SR) 활동가 블라디슬라프 스타로두브체프의 발언, 2022.12.10. (사진출처: 사회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