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씨가 번역한 자료입니다. 왑(http://wab.or.kr)에서 퍼왔습니다.
최원씨의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geocities.com/spinoc


아래 역자노트를 읽어보시면 어떤 자료인지 아실 수 있습니다. 일독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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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노트

이 글은 에티엔 발리바르와 임마뉴엘 월러스틴이 공저한 Race, Nation, Class: Ambiguous Identities에 실린 발리바르의 “Racism and Nationalism”을 번역한 것이다. 아래의 번역본에 등장하는 모든 [ ] 안의 구절들은 내가 문맥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삽입한 것이고 설명적일 때에는 끝에 '-역자'라는 말을 덧붙였다. 때로 [ ]를 통한 개입을 다소간 지나치게 한 곳도 있는데, 이는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번역 원칙 가운데 하나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주관성이 만에 하나 개입될 수 있음을 독자들은 항상 유념하기 바란다.

이 글을 급하게 번역한 이유는 얼마 전(2001년 3월 말, 4월 초) 한겨레신문, 안티-조선 운동 등이 친일 잔재 청산을 조선일보 반대를 위한 주요 전술로 선택한 것을 비판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이 위험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고, 더욱 위험하게는 인종주의에 대한 반성이 완전히 부재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인종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 즉 ‘적어도 우리는 해방 이전에만 식민지적 인종주의의 희생자였을 뿐이고 그 이후로는 인종주의의 사정거리 밖에 위치하게 됐다’는 환상뿐만 아니라 ‘우리는 기본적으로 단일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결정적으로 인종주의자였던 적은 없었다’라는 마찬가지의 환상이 완전히 허구적인 것일 뿐이며, 오늘날 그것은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가 우리 자신의 문제로 다가옴으로써) 점점 더 가시적으로 허구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인종주의는 결코 ‘인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종화racialization’의 문제이고 인종화시키는 사회적 관계 및 실천의 문제이다.

나는 조선일보가 반민족적 신문이(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반대가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갖는 관계의 근본적인 모호성으로 인해 스스로 매우 위험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곤란을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나는 반대로 조선일보가 정확히 ‘민족주의적’ 신문이기 때문에, 혹은 더 정확하게는, ‘인종주의적 요소의 초과excess'를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민족주의적 신문이기 때문에 반대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나는 조선일보가 우리 민족을 배반했기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민족주의에 동조해서 그들과 함께 인종주의를 실천했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선일보 친일행적을 문제로 삼는 것은 그것이 또한 일본의 인종주의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의 현재적인 인종주의를 폭로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문제화시킬 수 있는 전술이 될 수 있다는 조건하에서만 유일하게 인정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종주의와 민족주의의 관계를 그 핵심으로까지 추적해 들어가는 이 글에서 발리바르는 민족주의 없는 국제주의, 즉 민족주의를 더 이상 활용하지 않고 반대로 그것과 대결하는 발본적인 국제주의만이 오늘날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진정한 ‘실천적 인간주의’(이는 ‘인권의 정치’와 동의어다)를 달성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발리바르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신자유주의는 또 다른 인종주의이고 심지어 그것은 ‘국제적인 인종주의’이다)에 대항한 동아시아 지역 다중(multitudes)의 연대의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오늘날, 그 새로운 국제주의가 어떠한 국제주의가 되어야만 할 것인가를 고민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곱씹어야만 될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