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행진 팜플렛

열매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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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사회주의의 실패와 변혁운동의 위기를 직시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의 합리적 핵심이 여전히 현 시기 사회변화를 지향함에 있어 필수적이라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 학생활동가 그룹입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정세가 비가역적 위기를 향하고 있음을 진단하며 2009년 출범합니다. 당시 신자유주의의 모순은 용산 철거민 투쟁과 FTA반대 투쟁, 해외자본의 노동자 구조조정 반대투쟁으로 폭발했고, 국제정세의 영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된 이라크 파병 반대 투쟁, 평택 대추리 투쟁이 분출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反MB전선을 중심으로 모이고, 시민단체-민주당과의 연합적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핵심모순을 야기하는 反신자유주의에 대한 전선은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행진은 지금의 세계를 지양할 토대로서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에 대한 분석을 수용하고, 불안정노동의 일반화와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중장기적 정세로 규정하며,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아래로부터 일구어가고자 했습니다. 

2021년은 행진 출범 12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하는 모순은 여전할 뿐 아니라 더욱 심화하며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산업재해,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등 노동권 사각지대의 확대에서 알 수 있듯, 사회 전체 풍요의 이면에는 기존 노동자운동이 포괄하지 못하는 2차 노동시장 내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가 존재합니다. 대안적 윤리를 체득할 수 있는 공동체가 소실되어가는 가운데 횡행하는 극단적 여성폭력은 페미니즘 운동의 운신폭을 위축시킵니다. 미중 패권경쟁 하에서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은 끊임없이 확대되며, 북한의 세습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개발되어온 북핵은 그 자체로 전쟁위기를 고조시킵니다.


따듯한 선의에 더해, 사회운동의 전략이 더욱 절실한 시대입니다.

이에 구조의 변혁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개인적 실천을 넘어선 권리의 제도화, 즉 사람들 사이의 규범이나 가치체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실천입니다. 따라서 노동권, 여성권, 평화권 등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확장하고 상호 결합해가자는 행진 출범 당시 문제의식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구조에 균열을 내는 실천은 역설적으로 구조적 제약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선의와 이미지에 의존한 정치를 펼쳤을 때, ‘신자유주의의 위기’라는 객관적 제약은 가려지고, 선의와 다르게 사회의 위기가 가속화되거나 경착륙할 우려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저성장·고령화 조건에서 확장적 재정정책을 가속하는 경우, 코로나19 재유행이 예상되는 조건에서 경제성과를 조급하게 얻으려 하는 경우, 경찰이 비민주적인 조건에서 검찰개혁을 위해 경찰의 권한을 늘릴 경우, 일본의 우익이 성장하는 조건에서 일본에게 식민지 피해의 법적 배상을 받아내려 하는 경우 등 현실의 제약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진행된 정책은 국가 부채에 대한 우려, 방역 실패, 인권 친화적 형법보다는 수사기관 간 과잉 경쟁, 국제법상 책임질 수 없는 외교 관계 파탄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그간 사회운동의 대응은 반보수주의 전선으로 일관되며 소위 개혁세력의 선의와 발을 맞추는 것이었고, 이 과정에서 변혁의 전망은 소실되어왔습니다. 反박근혜 투쟁은 16년 박근혜 퇴진촛불투쟁으로, 촛불은 문재인 정권의 당선으로 수렴됩니다. 박정희 정부 시기 억압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기억과 이에 맞서 민주화를 쟁취했다는 87년 투쟁의 기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검찰에 대한 증오, 1:99로 형성된 사회에 대한 반감은 반보수전선을 강화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개혁세력에 의존한 정치의 미망을 버리고,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는 제약조건을 기준으로 사회운동의 전략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노동자운동 혁신, 성적차이에 기반한 여성권, 한반도 동아시아 비핵지대라는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예리한 기준이 더욱 절실한 시대입니다.


각자도생 사회, 우리에게는 대안적인 지식과 실천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청년학생은 생애주기 상 성격으로 인해 1차 노동시장 진입을 준비하는 예비노동자의 정체성을 갖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판단기준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비슷한 조건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로 시야가 한정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공동의 정치가 가능하기 위해선 서로 다른 시민들의 평등한 논의가 필수적입니다. 능력을 인증받거나, 돈을 지불했음을 증명하거나, 순결무구함을 납득시킬 수 있을 때에만 발언할 자격을 갖추게 되는 불평등한 구조에서는, 기회와 권리가 다르게 분배되고 모두가 다르게 힘듦을 호소합니다. 아무도 누군가를 돌보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각자도생 생존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이 가운데서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인식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귀중합니다. 더 나아가 각자의 고통을 개별화된 채로 남기지 않고 공동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정치의 장을 복원해가야 합니다. 과거 활발한 정치의 장으로 대표되던 80년대 학생사회의 단결과 저항문화는 일시적 현상이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학생들의 선험적 기질 때문이 아닌 학생운동의 효과일 따름이었습니다. 지금의 조건에 균열을 내기 위해 필요한 것 또한 장기적 시야를 견지한 지적·문화적 실천입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점증시키고, 축적된 효과를 구조의 변혁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에는 대안적인 지식과 실천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수많은 ‘나’의 문제는 결국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를 인지할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특히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하에서 유례없는 불평등을 체감하는 청년학생의 문제는 ‘세대의 문제’가 아닌 ‘시대의 문제’입니다. 행진은 ‘우리’의 ‘시대의 문제’를 설명하는 대안적 지식과 실천을 지향합니다. 시대적으로는 특수하지만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관계를 과학적인 언어로 밝혀내는 지식이 한층 너르게 존재할 때, 그 때 비로소 다른 세계의 가능성은 조금씩 틈을 비집고 나와 마침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