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권 열사투쟁, 이제는 반격이다!
EG테크를 특별교섭에 합의하게 만들다
우리는 또 한 명의 열사를 가슴에 묻었다. 금속노조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양우권 노동열사가 자결한지 37일 만인 6월 15일에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살인기업 포스코․이지테크 규탄. 비정규직 철폐. 양우권 노동열사 투쟁대책위원회’, ‘故 양우권 노동자 포스코/이지테크 인권유린 범시민대책위원회’,
금속노조 3단체는 열사장례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주노조 사수! 노동탄압 중단! 비정규직 철폐! 양우권 노동열사 민주노동자장’을 거행하였다.
6월15일 오전 9시 동광양장례식장에서 발인해 10시 광양시청 사거리 시민분향소 앞에서 영결식을 한 뒤 포스코 광양제철소 1문까지 추모행진을 벌였다.
12시10분 포스코 광양제철소 1문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경남 남해 추모누리 공설종합묘원에서 하관식을 진행하였다.
열사는 포스코 자본의 잔인한 무노조 전략에 맞서,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포스코와 사내협력업체인 EG테크를 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달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금속노조,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민주노총 전남본부, 민주노총 광양시지부는
‘살인기업 포스코․이지테크 규탄. 비정규직 철폐. 양우권 노동열사 투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다양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투쟁대책위는 5월 11일 포스코 1문 앞에서 유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살인기업 포스코.EG테크’를 규탄하고 열사 정신계승 및 투쟁을 선포하였다.
이어 다음날 포스코 소본부 앞에서 투쟁대책위 1차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포스코와 EG테크에 △포스코와 EG테크의 노동탄압으로 인한 죽음에 대해 책임 인정과 사과
△노동탄압 중단 및 재발방지 약속 △불법파견 중단 및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 △산업재해 인정 및 유가족 배상의 특별교섭 요구안을 전달했다.
그리고 광양시청 사거리에 시민분향소를 차리고 촛불문화제를 시작하였다.
최종적으로 6월 13일 EG테크와 금속노조,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유가족이 특별교섭에 합의했다.
양측은 특별교섭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비공개하기로 했다. 금속노조는 홈페이지에 “내용을 밝힐 수 없지만 노조 요구에 대해 늦게나마 EG테크가 전향적인 입장을 제시해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며
“‘열사의 명예를 지켰다’는 점이 이번 특별교섭 결과의 가장 큰 의미”라고 노동조합 측 협상대표인 서쌍용 금속노조 부위원장의 말을 전했다.
이어 “여러 언론은 합의문에 박지만 EG그룹 회장 명의로 작성한 사과문을 포함한 것으로 보도했다”고 하였다.
단결과 연대, 열사투쟁으로 실천하다
양우권 열사투쟁은 EG테크의 인권 탄압과 노동조합 탄압 내용을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려주었다.
또한 EG테크와 같은 사내협력업체의 노무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있는 포스코의 무노조·노조말살 전략이 근본적 문제라는 것도 거듭 확인되었다.
열사는 포스코 사내협력업체인 EG테크에 1998년에 입사하여 2006년 금속노조에 가입하였다.
이후 9년간 금속노조를 탈퇴하라며 회유, 협박, 감봉, 무기한 대기발령, 두 차례 해고, 두 차례 정직, CCTV카메라에 의한 격리감시, 집단 따돌림 등 갖은 탄압을 받았다.
EG테크는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에도 불구하고 양우권 조합원을 포스코 현장으로 복귀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열사는 이런 탄압에도 서울로 올라가 포스코센터, 국회, 청와대 1인 시위를 진행하고, 광양 포스코 주변 선전전 등 투쟁을 진행하며 ‘노동탄압 중단’, ‘민주노조 사수’,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노동탄압으로 인한 열사의 죽음에 대해 포스코의 책임과 사죄를 못받았지만, EG테크를 특별교섭에 합의하게 만든 것은 포스코와 EG테크에 대한 강력한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가족의 동참,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의 헌신적인 투쟁,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민주노총 전남본부, 지역의 대책위 투쟁은 열사가 강조한 ‘단결과 연대’를 실천한 것이다.
노동조합 중심으로 5월 10일 ‘투쟁대책위원회’가, 광양과 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5월 20일 ‘범시민대책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대책위원회는 광양시청 앞에서 시민분향소를 운영하며 매일 촛불집회를 열었다. 또한 광양 시내 가두행진, 열사 일기장 공개 기자간담회,
‘포스코 노동탄압ㆍ인권유린실태 보고대회’ 등을 열어 열사투쟁에 대해 지역 시민들에게 알리고 포스코와 EG테크를 압박했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5월 15일부터 서울로 올라가 포스코 센터와 EG테크 본사 앞에서 투쟁을 전개했다.
청와대, 국회의사당, 지하철 등 선전전을 하면서 저녁엔 도로에서 취침했다. 6월 3일에는 EG테크 본사 앞에서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본사 건물로 들어가 박지만 EG테크 회장 면담을 요구하다 조합원 전원이 연행되고,
양동운 포스코 사내하청지회장과 황형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사무국장이 구속되었다.
이에 유가족과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은 집단삭발과 단식으로 포스코와 EG테크를 더욱 압박하여, 결국 EG테크를 특별교섭에 합의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열사의 유가족은 열사투쟁과 특별교섭의 전권을 금속노조에 위임하고, 투쟁에서 교섭까지 함께하였다.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전 조합원은 파업투쟁에서 상경투쟁, 노숙농성, 삭발, 단식까지 진행하며 단결된 투쟁을 진행하였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책위원회는 열사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였다.
이렇게 ‘단결과 연대’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열사정신을 계승하였다. 이번 열사투쟁의 소중한 성과이다.
결국, 민주노조가 핵심이다
양우권 노동열사에게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절망의 공장’이었다. 하지만 열사는 ‘절망의 공장’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였다.
“새들의 먹이가 되어서라도 내가 일했던 곳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 날아서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볼렵니다.”
열사가 유서에 남긴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현장이다.
열사가 염원하였던 현장은, 죽음으로 호소하였던 현장은 바로 ‘민주노조’가 살아 숨쉬는 현장인 것이다.
그래서 열사는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고, 죽음으로 항거하면서까지 포스코와 EG테크를 규탄하고 ‘민주노조’를 지켰다.
열사의 장례식을 거행하였지만,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포스코 협력업체가 열사투쟁에 참여한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에 대해 징계 운운하고 있다.
포스코는 무노조 전략과 노동탄압에 대해 사회적 비난을 받았지만, 노동조합에 대해서 한치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현장탄압 분쇄와 구속된 양동운 포스코 사내하청지회장과 황형수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사무국장의 석방이라는 단기적인 과제가 있다.
장기적으론 포스코의 무노조 전략을 분쇄해야 한다. 결국 ‘민주노조’가 핵심이다.
2015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