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정세가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올해 1월부터 ‘긴축정책 반대’와 ‘국제채권단’과의 재협상을 내걸고 집권에 성공한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이하 시리자)이 중대한 기로에 선 것이다. ‘시리자’는 반자유주의, 사회주의, 대안세계화를 주요 이념 및 정치노선으로 하고 있다.
그리스는 유로화 도입 등에 따른 재정적자로 국제채권단인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왔다. 시리자 정당의 대표이자 그리스 총리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트로이카’가 제시한 긴축안을 받아들일지에 대해 묻는 국민투표를 7월 5일 실시하기로 하였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 국민들에게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는 트로이카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긴축안’을 거부해 왔으며, 유럽연합(EU) 지도자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시리자에게 노골적인 협박과 경고를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이제 그리스는 ‘긴축안 수용’과 ‘채무불이행(디폴트)선언’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그리스 국민들에게 묻는 것이다.
그리스 민중들의 삶을 파탄내는 국제채권단의 긴축안
그리스는 6월 30일까지 ‘15억 유로(한화로 약 1조 8천여억원)’의 국가부채를 국제통화기구(IMF)에 갚아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채권단은 155억 유로(한화로 약 19조여 원)의 구제금융을 분할제공하고 18억 유로를 당장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메르켈 독일 총리는 ‘예외적으로 관대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구제금융을 제공해주는 조건은 ‘연금과 공무원의 임금 삭감, 사회복지 지출 대폭 삭감, 노동규제 완화, 부가가치세 인상’ 등 그리스 국민들의 피와 살을 깎는 ‘긴축안’이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 긴축안을 한 마디로 ‘그리스 전체를 모욕하는’ 긴축안이라 비판하였다. 결국 그리스 민중들의 삶을 파탄내는 국제채권단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긴축안을 거부한 것이다. 이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진행한 한국의 사례와는 다른 길이다. 한국은 민중들의 ‘희생’과 자본의 ‘회생’을 선택했다면, 그리스는 민중들의 삶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그리스가 향후 채무불이행 선언과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의 19개국) 탈퇴’를 선택한다면 어떻게 될까?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 실시를 발표하고 국가부채를 갚아야 하는 날짜가 지나자, 그리스 국내외 자본들은 그리스에서 자본도피를 서두르고 있고, 채무불이행이 선언되면 그리스 경제가 파국을 맞는다고 치프라스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자본은 치프라스 총리의 사퇴를 원한다.
경제위기와 재정긴축으로 고통받는 유럽의 민중들
그리스가 ‘유로존 탈퇴’까지 단행할 경우, 유럽연합(EU) 마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근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경제위기와 재정긴축으로 고통받고 있는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에서도 유럽연합(EU) 탈퇴 여론이 높아지고 ‘유럽연합(EU) 탈퇴’를 공약으로 내건 정당들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가 먼저 유로존과 유렵연합(EU)을 탈퇴할 경우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남부 유럽국가들의 유로존 이탈과 유럽연합(EU) 탈퇴가 도미노처럼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을 주도하고 있는 독일, 프랑스 등은 그리스의 선택이 유럽연합(EU)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막고 그리스가 긴축안을 받아드리도록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회유와 협박을 반복하였던 것이다.
긴축안에 반대하는 그리스 민중들의 대규모 집회와 투쟁
구제금융을 받아들이고 국제채권단이 제시한 긴축안을 실행하는 것은 그리스의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는 지난 6년간 불황에 허덕였다. 그 동안 국제채권단이 강요한 ‘살인적인 긴축안’은 그리스를 회생시키기는 커녕 그리스를 더욱 회생불능의 상태로 몰아넣어 왔다.
2014년 말 그리스의 빈곤층은 약 300만 명(그리스의 총인구는 1,100만 명이다.)으로 추산되며, 실업률은 25%를 육박하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은 54%로 청년세대를 ‘700유로세대’로 부르는데, 한국의 88만원 세대와 유사하다. 연금 삭감, 정년 감축, 대규모 공공부분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동안에도 국가부채는 더욱 쌓여만 갔으며 현재는 총 채무액이 3천200억 유로(한화로 약 400조 원)에 이르고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그리스에서는 긴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연이어 일어났다. 특히 2008년 12월 6일 긴축반대 집회 도중 15세 소년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위는 더욱더 격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700유로세대로 명명된 청년층의 분노가 더해져 시위는 대규모 유혈충돌로까지 번지기도 하였다. 그리스 민중들의 긴축안에 대한 기나긴 저항으로 인해 긴축안을 받아들였던 ‘신민당’의 우파와 ‘사회당’ 등의 중도좌파는 모두 몰락하고, 재정긴축에 반대했던 시리자, 그리스독립당, 황금새벽당(인종주의를 내세우는 극우성향의 정당) 등은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지난 1월에 있었던 그리스 총선에서 ‘긴축정책 반대’와 ‘트로이카’와의 재협상 공약을 내걸었던 시리자가 ‘그리스독립당’과의 연정으로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결국 그리스에 강요된 긴축안은 그리스 경제를 회생시키지 못했고, 긴축에 지친 그리스 민중들은 더 이상의 긴축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긴축안이 그리스 경제와 그리스 민중들에게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신자유주의적 EU를 넘어 ‘대안유럽’에 대한 구상이 필요하다!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 실시를 발표하자마자 그리스 만기 국채금리는 27%까지 급상승하였고 국제신용등급기관 S&P는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CCC로 강등시켰으며 그리스 증권시장은 문을 닫아버렸다. 이미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것으로 기정사실화 하였다. 그럼에도 유럽과 전세계의 좌파들은 그리스 민중의 선택과 시리자의 계획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좌파적 정당 및 경제학자들은 유럽연합(EU)이 태생부터 신자유주의적이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극심한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그리스를 포함한 남부 유럽국가에게 내려진 재정긴축 처방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등 좌파정당이 급부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그리스에서 시리자의 급부상과 집권은 ‘신자유주의의 실패와 긴축이라는 극약처방’에 대해 단호히 저항하는 그리스 민중들의 투쟁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시리자는 그리스의 선택이 ‘진정한 파국’으로 전화되지 않도록 파국에 맞선 그리스의 전민중적인 단결과 대중운동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그리스 단독으로 할 수 없으며 유럽 안밖의 좌파세력과 대중운동의 연대와 지지로 ‘신자유주의적 유럽연합(EU)’을 넘어선 ‘대안적 유럽’을 함께 구상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아직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리스 민중들의 선택이 ‘대안적 유럽을 향한 첫걸음’이 될지 아니면 그저 ‘그리스와 유럽연합(EU)의 파국’으로 흘러갈지 그리스 민중들의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결코 쉽지 않으며 수많은 난제들을 넘어야 하는 길고도 가혹한 여정이 될 것이다. 그리스 민중들의 투쟁에 우리들도 관심을 갖고, 한국사회의 대안과 투쟁에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