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이혼전 상담 의무화, 이혼허가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3월 26일 2004년도 주요업무추진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이혼전 상담 의무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정부는 건강가정기본법을 제정(2003년 12월 29일 국회통과), 통과시킴으로써 가족문제에의 개입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시도의 근거가 저출산과 이혼 증가를 막아보려는 데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결혼과 출산 등 국민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수단화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혼전 상담 의무화의 근거가 되고 있는 건강가정기본법은 ‘건강가정’이라고 상정되는 특정 가족 형태의 유지를 목적으로 정상가족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있는 가족들은 불완전하고 기능적 결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 혼인과 출산을 의무로써 규정함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과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건강가정기본법 제정과정에서 여성계 및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은 채 통과시켜 논란을 불러왔고 이제는 가족의 유지를 위해 이혼전 상담 의무화를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이혼증가의 현실에서 개별주의에 의한 가정 붕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로 이혼전 강제상담을 통해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확인(인정)서를 받아야 법원에서 이혼을 허가한다는 것이다.
헌법 36조에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년간 여성상담을 해 온 현장에서 볼 때 이혼에의 결정은 오랜기간 숙고한 결과이다. 이혼전 상담의무화를 통한 강제적인 접근은 이혼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이중의 고통을 주는 것이다. 폭력등으로 고통을 받을 경우 이혼을 막음으로써 오히려 더 힘들어짐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가족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이혼전 강제상담으로 이혼을 막으려는 것은 더 심각한 사회적, 개인적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혼을 막기 위한 강제적인 상담개입이 아니라 이혼을 고려할 때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이혼을 결정했을 때 가족구성원이 새롭게 적응할 수 있도록 이혼후의 삶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다. 다양한 가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정책, 각 유형별 개별 가족의 삶의 질향상을 위한 다각적인 연구와 장기적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요구
- 이혼전 상담을 통한 강제적 국가 개입은 개인의 존엄과 선택권을 위반하는 것으로 이혼 결정에서의 개인 선택권을 존중하라.
- 이혼전 강제 상담이 아니라 초기 부부ㆍ가족상담 체계의 활성화와 성평등한 부부관계, 가족관계 교육을 상시적으로 시행하라.
- 이혼관련 상담은 이혼에의 올바른 선택과 이혼후의 사회적, 심리적 적응 및 경제적 자립을 도울 수 있는 내용으로 실시하라.
- 이혼상담은 반드시 성평등한(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상담전문가가 실시하라.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