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비평에 실렸고, 논쟁을 야기하기 위해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서
한번 더 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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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운동, 종말인가 재생인가
노동운동은 끝났는가
1950년 300만 명 이상의 사람이 죽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또한 아예 초토화되어 버렸던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1970년 민주노동운동이 전태일의 분신이라는 참혹한 통과의례를 통해 다시 태어난 지도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 1987년 여름의 노동자대투쟁으로부터도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은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는가. 과연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해고되면서 얻고자 했던 ‘노동해방’과 ‘인간다운 삶’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연례행사처럼 임금인상․단체협약 투쟁을 되풀이해 온 한국 노동운동이 과연 민주노총의 선언과 강령이 명시하고 있듯이 ‘사회개혁과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있는가. 이 같은 물음에 “예”라고 대답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노동해방과 인간다운 삶은 아직도 멀고 먼 피안일 뿐이다. 노동운동은 ‘때 늦은 개화, 때 이른 조락’이라는 표현을 할 정도로 운동으로서의 정당성 위기와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다.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은 ‘가진 소수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 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위기를 걱정하는 수준을 넘어 어느새 ‘또 다른 가진 소수’의 운동으로 바뀌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은 오히려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되기도 하고 이에 대해 동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더구나 노동운동은 ‘왕자병 환자’로 치부되는 경향 아래 자신을 옹호해주는 어떠한 사회세력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단순히 자본 측과 보수언론의 왜곡된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이 같은 위기 상황의 까닭을 국가와 자본의 탄압 또는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행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물론 수긍할 수 있는 손쉬운 책임회피의 답변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외부의 요인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조건일 뿐이다. 변화하는 상황에 탄력 있게 대응하여 살아남아 풍성한 열매를 맺느냐 아니면 도태되어 멸종되느냐 하는 것은 거의 모두 주체의 문제이다. 위기의 1차 원인은 노동운동 자체의 내부 요인에 있다.
조주은 : 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현재 노동운동은 ‘썩었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하면서도 ‘삐삐아줌마’를 불러서 같이 놀고 (…) 노사가 상견례를 핑계로 룸살롱을 같이 가는 경우도 있다. 사용자가 미리 대기시켜 놓은 아가씨들 끼고 양주 마시면서 놀고, 사용자가 용돈을 쓰라고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면서 미끼를 던지면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그걸 거부하지 않고 받기도 한다. (…) 이런 상황에서 무슨 전망을 가지고 진보가 나올 수 있을까 굉장히 자괴감이 든다.
전순옥 : 자본가와 싸울 수 있는 조건은 자본주의화되지 않는 것이다. (…) 그런데 지금은 마치 임금인상이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 대기업 노동자들 중에서는 연봉 4~5천만 원, 심지어 6천만 원을 받는 곳도 있다. 강연을 하러 가면 아예 노조에서 그런다. 강연 듣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 정말로 자본가들이 바라는 그런 노동운동이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모습이다.
-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 : 전순옥 vs 조주은」, 《프레시안》, (2004. 5. 16).
20세기 후반 급속한 압축성장과 급격한 사회변화의 실험장이었던 한국에서 노동운동은 가장 주요한 사회변화운동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 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주역이자 민주화운동의 주역으로서 그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은 1980년대와는 질과 양에서 전혀 다른 사회로 탈바꿈했다. 우리 사회의 과제 또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 사회운동의 의제나 운동방식도 180도 바뀌어야 할 절박한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2004년 민주노총의 집행부가 새로 들어서면서 이전 집행부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긴 하다. 2004년 임금인상 요구에서도 특별요구로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 등 취약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임금'을 추진하고 있고 새롭게 정책연구원을 개설하기도 하였다. 또 민주노총을 주요 기반으로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17대 국회에 처음으로 진출하여 이전과는 다른 정치 지형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진보정치’의 실험을 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이런 새로운 정책 추진과 정치 실험에서 한 걸음 더 크게 나아가 근본에서부터 대담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타개가 가능한 그런 성격의 것이다. 기존의 운동철학과 방식을 아예 전면 혁신하는 일대 전환을 모색하지 않는 어떤 새로움도 결국은 인물의 새로움으로 끝나고 말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노동운동이 목말라 하는 생명의 푸르른 수액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치열한 자기 성찰의 숲 속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투쟁의 과실을 누리고 있다
1987년 이전까지 한국의 노동자들은 군사독재의 무단 통치 아래 노조 결성조차 불가능한 사업장 독재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노예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하루 일당이 커피 한 잔 값도 되지 않았고, ‘타이밍’을 먹으며 이틀 사흘 연속 철야를 밥 먹듯이 해야 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1989년까지 2년 반 동안 노동자들은 ‘대폭발’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5천 개 이상의 노동조합을 신규로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2003년 현재 명목상으로는 1986년에 비해 거의 6배나 올랐고 월노동시간은 227.8시간에서 200.8시간으로 줄었다. 법정 주당 노동시간도 이제 주 40시간으로의 전환이 눈앞에 가까이 와있다. 한마디로 이제 노동자들의 요구는 어느 정도 관철되었고 최소한 조직노동자들은 그 투쟁의 과실을 누리고 있는 상태이다.
1987년 이후 (…) ‘노동’은 망할 우려가 없는 공기업, 은행, 재벌대기업의 경영자들과 담합하여 고용안정과 높은 수준의 보상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다. (…) 한국의 노동운동도 의도하지 않게 이러한 지배연합의 동조자 역할을 해왔다.
- 최영기, 「87년 이후 노동정치의 전개와 전망」,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 (한국노동연구원, 2001).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일어난다. 오늘날 조직노동자는 1989년 이래 꾸준히 감소해 전체 노동자의 12%도 안 된다. 노동운동의 이런 낮은 대표성이 나아질 전망조차 별로 없다. 노동자 10명 가운데 1명만이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고 나머지 9명은 대부분 그 1명보다 훨씬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 놓여 있는 셈이다. 숫자상으로만 보면 민주노총의 조합원수는 1995년 406,748명에서 2002년 685,147명으로 무려 28만 명 정도 늘어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 한국노총의 조합원수가 1,208,052명에서 876,889명으로 줄은 데서 확연히 알 수 있듯 이 같은 증가는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 노조의 민주노총으로의 상급단체 변경에 크게 의존한 것이었다.
또한 IMF 경제위기 이후 뚜렷해지기 시작한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 경향은 1999년을 기점으로 비정규직이 50%를 넘어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고 이들의 대다수는 조직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어떠한 결실이나 혜택에서도 배제되어 있다. 2004년 2월 14일 현대중공업 노동자 박일수 씨의 분신을 계기로 1만 4천 명에 이르는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노동자들 및 금속산업의 비정규직 실태가 부각된 바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오히려 회사 측 입장에 서서 하청노동자들 및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대책위원회와 갈등을 빚었다. 2003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하면서 조합원 9만 8천 원, 사내하청은 7만 8천원의 기본급을 인상했다. 이는 대기업 노동조합이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킨 의미 있는 성과였음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오히려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4년에도 역시 정규직 9만 5천원, 비정규직은 그 80%인 7만 6천원 인상으로 귀결됨으로써 오히려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말았다.
현재 대기업노조의 주요 투쟁들은 본질적으로 이들을 중심의 위치로부터 끌어내리려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방어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 비정규직과 영세기업의 노동자들에 대해 ‘전술적인 원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주변부 노동자들의 투쟁과 요구는 사실상 정규직과 대기업 노동자들의 현재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인정된다. 만일 그 수위를 넘어선다면 “노동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받기 십상이다.
-박영삼, 「비정규노동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소고」, 《창작과비평》, 2002년 여름.
노동운동은 철저히 약자 중심의 운동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지금의 노동운동에선 ‘사람’ 냄새가 부족하다고 이들은 충고한다. (…) “지금 대공장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 차별 문제가 심각하잖아. 노동자들 스스로 짓밟잖아. 그건 운동할 자격도 없는 거지. 자기 사업장에서 같이 일하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운동을 하면서 자기 걸 개선해야지 자기 것만 끌어올리고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끌어올리지 않으면 서로 망해.”(박순희)
- 「비정규직 외면하는 노조, 운동할 자격 없다」, 《프레시안》, (2004. 3. 9).
대기업 정규직 남성 노동조합에 대한 비판은 기업과 정부의 입장만 강화시켜 줄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사실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구분조차 한국에만 있는 지극히 모호한 개념의 용어일 뿐이다. 노동운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정규직 과보호가 비정규직 문제를 낳는다는 자본가들의 어이없는 주장이 나올 수조차 없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노동자의 고임금이 비판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과실을 함께 나누지 않는,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중소영세기업 비정규, 여성,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현재의 노동운동 관행이 비판 대상인 것이다.
일찍이 1960년대 말 폴 바란과 폴 스위지는 선진국 노동자들은 제 3세계를 착취한 잉여의 떡고물로 사육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따라서 제 3세계의 굶주림과 불평등, 착취의 참상은 늘어가는 반면 선진국 노동자들은 혁명성을 상실한 대중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통렬한 비판이었다. 동남아시아 노동자들과 견주어 볼 때 한국 정규직 노동자들 소비수준은 이미 선진국 노동자들과 다름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어느새 아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로서 물신주의와 소비중독의 그늘 아래 사육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폴 바란(Paul Baran: 1910~1964)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스탠포드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진보적 매체인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를 창간한 폴 스위지(Paul Marlor Sweezy: 1910~2004)와 함께 매카시즘의 광풍에 맞서 네오마르크스주의자로 활동했다. 폴 바란의 대표적 저서로는 『성장의 정치경제학』이 있으며, 폴 스위지와의 공저인 『독점자본』이 있다.-편집자)
해외 관광의 엄청난 증가와 함께 1990년 이후에만 500억 원이 넘는 해외투자를 하면서 한국은 이미 악명 높은 ‘어글리 코리언’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확산되어 있다. 더구나 국내에는 이른바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초저임금과 초장시간 지대의 늪에 빠져 있는 40만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인간 이하의 노동조건, 인권침해의 참상은 한국 노동운동의 정체성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다. 해외로 진출한 한국 기업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폭력, 인격모독 등 각종의 노동탄압 사례는 다름 아닌 우리의 부끄러운 1970년대이다. 노동운동이 이에 대한 어떠한 대책이나 연대활동도 마련하지 못한 채 제조업의 공동화와 일자리 유출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면, 해외 및 이주노동자의 1970년대는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주변부 노동자의 참상과 함께 부메랑이 되어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근거지에서부터 허물어뜨릴 것임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임단협 위주의 ‘전투적 투쟁’을 해마다 되풀이 해오며 그 성과를 누리고 있는 동안 이를 무로 돌려버리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의 역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임단협 이외의 노동자 생활조건,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한 대안의 정책 부재가 낳은 필연의 결과였다. 취약한 사회복지의 현실에서 노동소득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교육비와 보건의료비, 교통비, 주거비, 불합리한 조세 등은 인상된 임금을 도로 가져가 버리곤 했다. 1997년 IMF 사태 이후에는 시장이라는 유령의 손에 의해 일자리마저 박탈당하는 구조조정을 일상으로 강요당해야 했다. 이 같은 상황변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은 더욱 가열찬 총파업 투쟁과 ‘총력집중투쟁’, 심지어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와도 같은 총파업선언의 빈번한 반복이었다.
1998년 이후의 노동운동은 (…) 매우 비효율적인 투쟁이었다고 평가된다. 1998년 이후 3년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기업 차원에서나 전국 차원에서 큰 성과를 내기 어려운 성격의 투쟁이었다. 왜냐하면 1998년 이후의 투쟁은 시장의 규율(market discipline)을 상대로 해야 하는 것이었음에도 노동운동은 1987~1997년간 국가의 규율을 상대로 했던 것과 같은 패턴으로 대중투쟁 일변도의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 최영기, 위의 논문.
더욱이 노동운동은 갈수록 떨어져 가는 투쟁력을 높이기 위한 유력한 탈출구를 산별로의 전환에서 찾고 있었다. 물론 한국 노동운동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기업별 노조 체제의 감옥에 갇혀 발전을 방해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1997년 노동법의 개정과 함께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 가시화되었고, 2003년 현재 민주노총의 경우 금속(2001), 보건의료(1998) 등 산별노조로 소속이 변경된 조합원은 40%(25만 명)를 넘고 있다.
문제는 산별 조직으로의 전환에 대해 아무도 그 당위성을 부정하지 않고 있고 또 산별 전환의 초기임에도 산별 전환이 만능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진행되는 산별 전환은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기업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들을 동일한 범주의 산별 조직으로 조직화해 새롭게 출발함으로써 조직률을 높이는 ‘확산의 산별조직화 운동’이 아니다. 기존의 정규직 노조 테두리 안에서 헤쳐모여 식으로 산별로 전환하는 것은 정규직 노조의 교섭력을 높이는 데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현재의 노동운동 정체성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별 기여를 못하리라는 게 솔직한 전망이다. 기업별 노조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 중심으로 갈수록 기득권화하는 현재의 노동조합 구조와 의식을 과감히 깨지 않는 산별 전환은 결국 기업별 노조의 변형에 지나지 않게 될 위험성이 크다.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기조, 즉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는 이제 한국판 생디칼리즘에 다름 아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생디칼리즘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국가의 가혹한 탄압과 자본가들의 비타협 억압 정책을 자양분으로 급속히 성장했다가 급속히 소멸되어버린 노선이었다. 생디칼리스트들은 노동계급 이외의 어떠한 사회세력과도 협력하지 않고 오로지 노동계급 독자주의의 폭력 총파업과 직접 전투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 공격과 해체를 꿈꾸었다. 한국에서 1987년 이후 한꺼번에 분출된 노동조합의 결성이나 노동쟁의는 단순히 임금인상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개별기업별로 10~30가지의 요구사항은 결국 작업장에서의 권위주의 질서를 개혁하자는 생산 현장의 민주화투쟁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운동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운동을 거꾸로 군사화시켜 노동조합을 전투부대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보루 역할에서도 빠르게 밀려나 버리게 만들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전투’는 노동운동을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에게도 납득할 수 없는 정당성의 혼란에 지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을 민주주의와 평화 세력이 아닌 무책임한 싸움꾼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의 위력을 과시하는 상습의 저항집단으로 인식되게끔 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허다한 문제점을 극복해나갈 능력과 철학이 있는 대안세력의 행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 같은 노동운동에 대해서 그동안 진지하고도 다양한 진단과 전망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1998년 이후 개발독재 모델에서 시장독재 모델로 전환된 상황에 대응하여 노동운동은 시장경제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위해 제도적 참여의 대장정에 나서는 동시에 보다 유연한 조직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중소영세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최영기: 2001) 전투적 경제주의에서 벗어나 정치참여를 통한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박태주: 2002) 또 기존의 조직화-연대투쟁 모델이 한계에 도달했음으로 이제 영향력-정치화 모델의 새로운 전략노선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임영일: 2003) 그러나 이 모든 지적과 우려의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는 “우리 노동운동이 더 열심히 시간을 두고 노력해 나가면 이 문제들은 조만간 극복되거나 적어도 완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임영일: 2003) 새로운 변신을 꾀하지 못하고 저항의 노동운동 관행을 답습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무능에 대한 아쉬움이다.
지난날 전태일은 청계천의 중소영세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30년이 지난 오늘날 전태일 정신의 계승이란 자식들과 함께 자살이라는 극단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극빈의 노동자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3등 시민으로 전락한 중소영세 하청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청소년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등을 조직하고 이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길이다. 이는 1970년 전태일이 하고자 했고 실천했던 노동운동을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은 성격의 운동이다. 이미 제도화된 노동운동과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노동조합 기구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을 죽이고, 자신을 다 바치며’,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가지 않는다면 아마도 한국 노동운동은 풀뿌리에서부터 새로운 형태로 다시 시작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생태적 대안 마련 없이 노동운동의 미래는 없다
1970년대 민주노동운동 이후의 노동운동 과정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막연하지만 정의롭고 평등한 새로운 사회의 대안공동체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농업공동체의 해체로부터 도시로 방출된 노동자들이 ‘산업공동체’란 말이 아예 성립되지 않는 가혹한 자본-임노동 관계의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관계의 공동체로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노동조합은 임금인상의 도구, 이른바 ‘자판기 노조’로 변질되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단위노조의 경제투쟁 성과조차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불가항력으로 구조조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IMF 경제위기 당시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공동체는 살벌하게 분열되었고 공동체의식은 실종되어 버렸다.
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 된다고 해서 현재의 노동운동 위기가 해결된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극단적으로 노동자들이 권력을 가진다고 해서 현재의 한국 사회가 더 나아진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솔직히 현재의 노동운동은 권력을 가질만한 능력과 정치프로그램의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현재의 정체성 위기 문제는 단순히 성장과 분배 가운데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운동은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능동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 노동운동은 경제발전, 성장의 모델을 폐기해야 되며 그 과실을 향유하는 데서 벗어나 생태적 대안 모색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더 많은 임금, 더 많은 여가, 더 많은 권력을 지향하는 ‘성장의 노동운동’은 결코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이제 노동운동은 삶의 양을 따지는 욕망의 운동에서 삶의 질을 따지는 운동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노동하는 삶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필요로 한다.
우선 우리는 노동의 개념을 자본주의의 임노동으로 한정하는 경직된 인식을 이제는 버려야만 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노동은 분명히 상품이며 이윤의 원천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임금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하는 동안에는 인간임을 느끼지 못하고 노동이 끝나고 임금을 소비할 때 비로소 인간으로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가치를 못 느끼는 노동을 단지 생존의 필요 때문에 계속할 것인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느끼며 사는 삶은 불가능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응고된 노동, 응고된 일은 상품이자 동시에 자아의 연장이다. 노동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자기실현이며 자연과의 조화이다. 인간의 삶은 노동을 통해 자연과 소통하고 노동을 통해 공동체와 소통하고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과 소통한다. 우리는 이 같은 노동의 건강한 능동성을 되찾아야 한다. 자신의 노동을 비하하면서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긍정이 전제되어야만 대안은 진지하게 검토될 수 있다.
산업화가 전지구로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생태계 자원을 아무런 대안 없이 무제한으로 마구 퍼다 쓰는 인류의 문명생활은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들고 있으며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 온 산업사회는 명백히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감히 성장중독증, 발전중독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 이 체제를 시급히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다소의 금단증세는 자원약탈이란 예금횡령죄의 대가로 우리가 미래세대에 마땅히 치러야 할 값싼 보석금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소비되어 없어지는 것을 ‘생산’이라고 규정하고 소비와 낭비를 ‘성장’이라고 부추기는 눈먼 쓰레기 같은 경제학의 신화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자연을 고려하지 않기는 근대 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이나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아니면 다른 어떤 사회체제건 지구자원의 도둑질을 통한 말 그대로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성장이란 이제 불가능하다.
성장 모델의 폐기와 생태적 대안 모색은 당장에는 현실의 노동자들 요구와 배치되는 측면이 많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 걱정부터 할 것이다. 그러나 생태적 전환은 사회 전체의 변화이며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롭고 건강한, 그리고 수많은 일자리의 창출 과정이기도 하다. 태양력, 풍력, 수력, 조력, 바이오매스 등 지속가능한 에너지 생산시스템과 생태건축, 자연 유기농업부터가 그렇다. 월드워치연구소는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화석연료보다 5배의 일자리를 만들어낸다고 계산했다. 실제 독일의 경우 태양에너지로의 전환으로만 110만 개, 생태적 교통정책으로 100만 개, 물보호 기술과 물절약 기술의 발달로 25만 개, 생태적 세제 개혁으로 100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프란츠 알트, 『생태적 경제기적』, 2004) 이미 유럽의 노동조합은 제한적이지만 환경보호조치가 일자리 파괴(jobkiller)의 측면보다 새로운 고용창출의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조합의 즉자적 대응을 벗어나게 할 수 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지도력과 철학, 그리고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의 정책대안 제시 능력과 실천능력이다.
1970년대 후반 공해추방운동이 시작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한국 환경운동의 역사에서 노동조합이 생태적 대안을 자신의 의제로 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02년 전력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파업의 실패 이후 발전노조가 시민사회단체와 더불어 전력산업의 대안적 발전방향을 ‘공공화, 민주화, 녹색화’로 정하고 에너지 절약과 환경친화의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을 의제로 삼고자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이례적인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민주노총의 선언과 강령 그 어디에도 생태문제에 대한 인식은 배어 있지 않다. 다만 민주노동당이 그 강령에서 “인간의 물질적 부를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하며, 인간이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유지하면서 생태계와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한다”고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은 동시에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해방 공동체를 구현할 것”이라며 자본주의 극복의 사회주의 대안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노동운동의 대안 이념이 될 수 없음이 이미 현실에서 입증되었다. 사회주의는 성장과 발전 이념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쌍둥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개인소유를 제한한다고 해서 생태적 위기가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화운동이 저항의 민주화운동에서 1990년대 시민단체의 등장과 더불어 참여의 민주화운동으로 전환했다면 이제 민주화운동은 성찰의 민주화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이제야 뒤늦게 민주노동당을 통한 참여의 운동으로 진입하고 있지만 참여와 함께 성찰의 운동으로 곧바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전교조의 '참교육운동'은 어디로 갔는가. 병원노조의 '참의료'는 어디로 갔는가. 자치와 자율의 민주주의를 이루고 인간관계의 근본을 바꾸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던 노동운동의 수많은 의제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이제 노동운동은 이주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 등 주변부노동자를 조직하는 풀뿌리 노동운동으로의 전환과 함께 생태적 전환의 녹색운동으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생산협동조합, 소비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등 협동조합운동을 비롯한 공제조합과 생활공동체운동 등 모든 조직 형태를 창조와 도전정신으로 폭넓게 모색하면서 정책과 일상생활의 실천까지 생태적 전환이라는 시각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제 참다운 노동해방과 인간다운 삶은 단순히 자본의 억압 착취를 제거한다고 얻어질 수 없으며, 양극화와 차별을 철폐하는 노동운동의 건강성은 사람과 사회가 자연의 일부임을 겸허히 인식하는 생태공동체의 전망 속에서 비로소 뜻있는 출발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생태주의로의 인식 전환이고, 그 인식 전환을 위한 민주주의의 대화와 설득력과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다. 극도의 배금주의, 극도로 파편화된 개인주의를 벗어나 자율 자치의 교육과 학습 공동체, ‘보다 더 많이’가 아니라 ‘보다 더 적게’ 소비하고, ‘보다 더 가까운’ 대안 사회의 전망은 이 같은 노력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위기와 파탄의 징후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기는 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그리고 그 산물인 대량폐기물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기는 하다. 허지만 문명의 발생과 함께 탄생한 종교의 가르침과 금욕주의가 문명 발전을 중단시킨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현대 자본주의의 욕망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중독이 된 말기 증상의 암이며 지금은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미래 세대에게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이 병을 치료할 수밖에 없는 절박성이 있다.
노동운동은 시민권을 회복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이제 시민권을 회복해야 한다. 사실 마르크스주의에는 이윤 이외에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자본의 배타성과 마찬가지로 부정의 배타성이 곳곳에 기저로 깔려 있다. 긍정의 능동성으로 기존의 체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생태적 대안 모색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일정 정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노동운동은 시민이란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시민은 ‘서울 시민’이라는 말처럼 일반 국민을 지칭하는 용어이지 결코 부르조아지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1980년대 말부터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및 종교계와 문화예술 지식인 중심의 재야민주화운동을 제외하고 그때까지 사회운동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일반 시민들을 사회운동의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환경문제, 여성문제, 보건의료문제, 부패문제, 법률문제, 조세문제, 소수자문제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낡은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일상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노동운동은 은연중 이런 시민운동을 부르조아지의 배부른 운동으로 폄하하고 적대시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운동에게 한계와 고립만자초할 뿐이었다. 낡은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와 자기문화 중심주의(ethnocentrism)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하듯 노동운동은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낡은 노동자중심주의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계급 개념과 결합되어 있는 과거의 노동자 개념도 마찬가지로 상당한 배타성을 갖고 있다. 계급의식과 적대감을 지나치게 고취시키는 계급 개념은 노동운동의 능동적 전환에 하등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계급과 계급의식, 그리고 계급형성은 일정한 괴리가 있다. 노동시장의 단절과 대응하여 노동자들 또한 매우 파편화된 상태로 분절되어 있는 게 현실이다. 오늘날은 특히 경제 체질의 변화와 더불어 잡계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계급의 분류가 애매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식 또한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계급의식으로 나아가면 더욱 그렇다. 계급형성에 초점을 맞춘 노동운동과 조직화 전략은 어찌 보면 폭이 좁은 일정 한계 내의 낡은 운동만을 상정하는 것이며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무능력의 소치일 수 있다. 진정한 대안모색 운동이라면 기존의 계급운동 시각을 과감히 재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배타적 계급운동은 설혹 가능하더라도 사회를 근본에서부터 바꾸는 데 폭넓은 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통합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많다. 노동자들은 더 많이 이런 시민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아니 노동운동은 시민운동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시민사회를 근본의 대안 모색으로 끊임없이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운동이 그동안 준정당의 여론형성형, 대변형 전시운동이라는 전략 선택으로 인해 밑으로부터의 조직화가 미흡했다는 면에서 노동운동의 시민운동과의 결합은 시민운동의 새로운 활로일 수 있으며, 그리고 이는 또한 노동운동의 공동체성 회복이자 생태적 대안을 구체화시키는 한 과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 방식은 전환되어야 한다
2003년 3월 28일부터 5월 31일까지 65일 동안 계속된 새만금살리기 삼보일배는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파문과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삼보일배는 한국의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 방식에 대해 전환을 촉구하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기존의 사회운동이 흔히 취하는 다양한 투쟁, 집회와 시위, 여론 호소 작업 등과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생태주의 대안을 모색하는 사회운동은 당연히 운동방식도 생태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생태적 대안을 모색하는 노동운동은 당연히 단체행동의 방식부터 기존의 부정과 투쟁의 관행을 넘어서서 이를 포섭하는 긍정과 설득, 성찰과 포용과 절약의 새로운 방식을 실천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아니 모든 시민사회운동은 이제 폭력행동도 그만두어야 한다. 정말 폭력이 정당하게 필요하다면 원주민들 전부가 마을공동체의 회의를 통해 무장투쟁을 결정한 멕시코 원주민 게릴라들인 사파티스타처럼 나서야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춘계투쟁, 하계투쟁의 파업에 대해서도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파업은 노동조합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투쟁형태이며 이것이 남발된다는 것은 하지하의 전략일 수 있다. 더구나 아직도 시위 때 등장하는 쇠파이프는 이제 버려야 한다. 그로 인해 다치는 것은 노동자와 그리고 노동자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국방의 의무 때문에 거기 서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뿐이다.
비폭력 평화의 운동방식이 바로 생태적 대안 모색의 운동방식이다. 대화와 설득, 자치와 자결의 민주주의가 생태적 대안모색의 운동방식이다. 노동운동은 노동자 전체가 생태적 전환을 놓고 진지하게 논의하도록 하는 과감하고도 광범위한 공론화의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자고 제안하는데 진실의 언어와 성찰의 삼보일배보다 더 위력 있는 것은 없다. 이제 우리는 싸움이 아니라 자기반성을 통해, 거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변화와 전환을 모색해야만 한다.
필자 소개
박승옥 : 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수석연구원. 전태일노동자료연구실 대표 등을 지냈다. gilese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