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들이 노동조합 만든다면?
성매매 논란이 노동계에 던진 고민…'모르겠다'부터 '노동자성 인정'까지
요즘 ‘9·23 사태’라는 신조어가 있다고 한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지난 9월23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만큼 성매매방지법은 최근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비정규법안 저지 등을 목표로 분주하게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노동계도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성매매 여성들이 지난 19일 여성단체와의 만남에서 자신들을 ‘성노동자’로 불러줄 것을 요청한 것이 알려지면서 노동계는 더 구체적인 고민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하느냐는 것은 결코 쉬운 결론이 나오지 않은 문제인 듯 하다. 며칠째 많은 노동계 인사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 고민해보지 못했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남성 노조간부들은 “진짜 잘 모르겠다”며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이에 앞서 민주노총은 법시행이 된 지난달 23일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 강력한 법집행과 함께 사회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서 민주노총은 “추산하기 힘든 매춘업 종사 여성들이 건강한 노동을 통해 재활할 수 있는 조건이 같이 갖춰지지 않는 한 풍선효과처럼 오히려 왜곡된 형태로 새롭게 성매매행위가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며 “성매매 행위를 근원적으로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전반에 스며든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적절한 일자리를 가지고 행복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밝혔다.
성명을 작성한 이수봉 교선실장은 “성매매여성노조가 외국에도 있듯이 이들의 생존권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을 담은 것”이라며 “그러나 이들이 노조를 결성해 민주노총에 가입을 요청한다면 심각한 논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아직 성매매방지법 관련 성명을 낸 적은 없다.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국장도 “정부가 성매매를 단속하기에 앞서 생존권 문제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성매매여성들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정서상으로 어렵다고 본다. 노조가입을 요청한다면… 그 때 닥쳐봐야 알 것 같다”고 밝혔다.
양대노총 모두 성매매 여성들의 ‘노동자성’을 둘러싼 공식 논의는 없었던 셈이다. 여성단체들의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들이 15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돼 있으나 이들은 아직까지는 노동계에서조차 ‘소외’돼 있는 것이다.
실제 몇 년 전 민주노총 산하 지역본부에 유흥업소 여성들이 노조를 만들겠다고 찾아온 적이 있었으나 지역여성계의 문제제기로 흐지부지 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해당 지역본부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의견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는 것.
어쩌면 이 문제가 실제 닥친다면 민주노총 내 ‘사회적 합의’ 문제만큼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 19일 집장촌 종업원 등 3천여명이 성매매특별법에 따른 단속 중지와 '공창제 시행' '직업 인정' 등을 요구하며 서울 청량리역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있다.<연합뉴스>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된 현재 입장을 밝히기에는 정치적 위험부담이 너무 큰 주제일 수도 있다.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경우 ‘공창’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으로 연결되기도 할 것이다. 최근 성매매여성들의 집회를 포주들이 주도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성매매 여성들을 ‘개인’으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지점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입장을 밝힌 사람들도 있었다. 김지예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성매매방지법 이전에도 윤락행위방지법이나 청소년보호법에 의해 성매매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들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사태를 방치한 책임은 정부에 있다”며 “성매매 여성들이 정부에 실질적인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노조를 결성하고 집단행동을 한다면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창을 요구하는 식의 방법은 올바르지 않다”고 못박았다.
이런 입장은 실제 성매매방지법으로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박승희 민주노총 편집부장도 “현재 법으로는 이들의 직업교육이나 재취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성매매방지법에 찬성하지만 당장 이들의 생존권이 문제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노동계의 분명한 입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은주 대학노조 여성위원장은 “행위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어떤 방식이든 임금노동자인 것은 맞다. 성매매가 근절돼야 하지만 이들을 도덕적 잣대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도 강제노동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매매가 자발적으로 이뤄지냐를 따지는 것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고민을 많이 해봤지만 개인적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이들을 노동자로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은 신성하다. 그러나 신성한 노동이 무엇인지, 성매매방지법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고민이다.
독자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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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 향후 몇년간 우리나라에서 성매매 여성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성매매 여성들이 노조를 만드는 것은 포주, 업주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노조라고 할 수도 없겠죠. 근데 그건 포주로부터 탈출하는 것 보다 더 어렵습니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요? 설사 포주와 관계없이 자영업?을 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있다 한들 자신을 드러내고 노조를 만들 수 있는 사회환경이 아닙니다. 성 문제에 대하여 대단히 자유롭고 성매매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에서도 성매매 여성들을 자신을 '성매매하는 사람'으로 낙인찍은 '등록절차'를 거부하여 노상매춘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유럽과 같은 섹스워커들의 노조가? 이건 정말 환상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기사는 성매매 여성들의 현실도 모르는 가쉽 기사와 다름없는 것 같군요. 2004-10-27 오후 12:01:06
여성노동자 : 성매매를 노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문제는 '성'을 그것도 여성의 '성'을 상품처럼 사고 파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이다. 성매매노동이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이들이 여성으로 인간으로 가지는 존엄성에 대한 문제는 다뤄질 여지가 없다. 성매매를 단속하니까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여성이 생존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적으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노동으로 먹고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다른 노동자들처럼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일자리 마련, 직업훈련, 사회복귀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저임금노동에 시달리고 가정안에서 이중적 착취를 당하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고서, 그리고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의 비도덕적이고 비인간적인 작태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없이 이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4-10-26 오후 4:3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