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페미니즘 없이는 '또 다른 세계'도 불가능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 7월 3일,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 여성들의 행진에 동참하자!


동시대 페미니즘으로서 여성운동은 지난 30년 동안 세계를 가장 많이 변혁해온 사회운동이다. 우리는 여성이 자신의 가치(존엄성)와 권리를 의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세계를 변혁했다. ‥ 1980~90년대 신자유주의와 우파의 전진에 따라 여성운동은 여성이 자신의 저항을 세계화 할 수 있도록 투쟁했다.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세계여성행진은 배제와 증오 위에서 번영하는 억압의 체계로서 가부장제·인종주의·자본주의가 우리의 생명과 세계를 상품화하는 것에 대한 반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세계적 행동을 위한 페미니즘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2000년에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행진을 조직했고 또 오는 2005년에도 또다시 행진을 조직할 것이다.
(세계여성행진, 2003년 세계사회포럼 평가 中)


1995년, 페미니즘의 국제주의에 있어서의 두 개의 계기
올해로부터 10년 전인 1995년은 페미니즘의 국제적 논의와 실천에 있어 두 가지 차원에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해이다. 하나는 12개 주요 부분의 전략목표와 행동 계획으로 구성된 북경행동강령을 채택하고 성주류화 전략을 공식화한 제 4차 유엔 세계여성대회라는 계기이다. 다른 한편 북경여성대회에 참석한 일부의 여성활동가들은 같은 해 4월 캐나다의 퀘벡에서 10일간 진행된 ‘빵과 장미를 위한 행진’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시킬 것을 결의했는데, 이는 2000년의 행진 이후 바로 지금의 두 번째 릴레이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그 출발에 있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북경여성대회(성주류화 전략)와 세계여성행진은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여성운동이 조직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다른 차원의 계기는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인식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에 있어 명백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는 두 개의 계기가 가지는 기원과 성격의 측면에서 일면 자연스런 귀결이며, 오늘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넘어 대안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형성에 있어 각기 다른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하나의 계기, 북경여성대회
세계여성대회는 유엔이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선정한 것에 기원을 두는데, 같은 해 멕시코에서 열린 1차 세계여성대회에서는 ‘UN 여성 10년(1976~1985)’을 선포한다. 이 10년의 계획은 여성을 생산에 적극 참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는데, 많은 발전도상 국가들에서 여성이 발전의 혜택에서 배제되었다는 인식 하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으로 여성을 보다 적극적인 생산의 주체로 재정의 하려는 시도이다. 그 후 1980년의 코펜하겐 여성대회를 거쳐 ‘UN 여성 10년’을 평가하는 자리였던 나이로비에서의 3차 세계여성대회는 지난 10년의 계획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음이 평가된다. 여성의 의사결정 능력과 시장에서의 협상능력의 취약함이 주요 원인으로 제기되었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성주류화 전략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1995년 북경여성대회에서는 ‘인간중심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여성선언문에 근거해 “체계적인 절차와 메커니즘을 향한 도약을 의미하며 젠더이슈를 정부와 공공기관의 모든 의사결정과 정책실행에 고려하여야 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성주류화 전략이 공식화된다. 이에 따라 12개의 행동강령이 채택되었는데, 빈곤, 여성에 대한 폭력, 경제, 교육 및 훈련, 건강, 무력 분쟁, 경제, 권력 및 의사 결정, 제도적 메커니즘, 인권, 미디어, 환경, 여아(女兒)등의 12개 주요 의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세계여성대회의 기원, 그리고 유엔을 중심으로 세계의 NGO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라는 그 성격 상 성주류화 전략은 일국 차원에서는 각종 정부 기관의 구조와 정책결정, 예산 배분과 같은 쟁점이, 국제적 차원에서는 각종 국제기구들에 대한 압력과 개입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따라서 북경여성대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페미니즘의 국제적 실천과 논의에 있어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략의 주요 방향이 정부와 국제기구들에 여성적 의제와 절차를 어떻게 강제할 것인가에 맞추어 지는 것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서 이러한 의제들에 대한 확장된 토론은 북경대회 이후 사실상 봉쇄되었고, 그에 대한 권한과 책임은 사실상 각 국 정부로 ‘이관’되었다. 그에 따라 참여하는 NGO와 여성운동은 정부의 정책실행에 대한 감시자, 또는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았다.


또 하나의 계기, 세계여성행진
북경여성대회가 열린 1995년 4월, 캐나다의 10개 연방 중의 하나인 퀘벡주에서는 850여명의 여성들이 퀘벡여성연맹의 주최로 여성들의 빈곤을 제거하기 위한 분명한 조치를 요구하며 10일간의 행진을 진행한다. 이들 중 일부가 북경여성대회 참여하여 퀘벡의 행진을 세계화 할 것을 결의하고, 1998년 몬트리올에 모인 65개국 140명의 대표자들은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 제거를 행진의 두 가지 의제로 채택, 이에 관한 17개 요구목록을 작성하여, 2000년에 전 세계적인 행진을 조직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8일부터 세계여성행진이라는 세계여성운동의 네트워크 결성과 함께 세계 빈곤철폐의 날인 10월 17일까지 까지, 전 세계 여성들이 릴레이 행진을 조직하게 된다. 세계여성행진은 결성 이후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를 중심으로 세계 여성들의 요구와 행동을 조직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세계사회포럼에의 적극적 결합 등과 같은 활동을 통해 대안세계화 운동에 페미니즘의 과제를 결합 내기 위한 활동을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활동의 과정에서 북경행동강령이 채택된 지 10년인 올해 동일한 방식의 두 번째의 세계 릴레이 행진을 기획하였고, 2004년 세계여성행진 총회에서 채택된 평등, 자유, 연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중심 가치로 하는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이 이번 릴레이 행진의 기초가 된다. 퀘백여성연맹의 활동가로서 세계여성행진 사무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브리짓 베르디에르는 세계여성행진을 ‘되돌릴 수 없는 운동’으로 표현하며, 세계여성행진이 국제적인 수준에서 ‘성공’했던 이유가 행진이 내세우는 ‘빈곤과 폭력’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가지는 보편성을 꼽는다. 이와 같은 보편적인 목표 하에 각 국가별, 대륙별로 제기하고 있는 목표와 의제들은 최저임금 보장, 무상의 안전한 낙태에 대한 권리, 토지개혁, 주거권, 빈곤, 육아지원, FTA 협상 중단,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여성의 성기절단, 살해 반대 등 이들 모두가 동시대 여성운동의 요구라는 것이 매우 놀라울 만큼 다양한 차원이다. 또한 이러한 요구들을 조직하고 실천하는 각 국가, 대륙별로의 여성운동의 역사와 성격 역시도 그러하다. 세계여성행진은 아직 형성 중인 운동인 동시에, 여성들의 보편적 요구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95년 이후 한국의 여성정책
한국정부는 지난 2월 뉴욕에서 북경행동강령 10년의 평가를 목적으로 하는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총회에 참석하여 지난 10년 간 북경행동강령이 제시한 바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밝혔다. 여성발전기본법 제정(1995), 여성부 신설(2001)등 여성의 공적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제도, 성폭력특별법(1994), 가정폭력특별법(1997), 성매매방지법(2004)등 여성에 대한 폭력 및 성적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 등 여성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마련해 왔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대되어 왔다고 말했다. 북경여성대회의 선언과 행동강령을 적극 수용하여 성주류화 전략을 운동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했던 한국의 주류 여성운동들의 평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구체적인 실행과 현실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 정도가 그 차이라 할 수 있다. 북경행동강령 실행 10년을 앞두고 작년 6월 태국에서 개최된 '북경+10 여성NGO 포럼'을 전후한 평가에서 여성단체들의 핵심적 평가는 유엔 여성차별위원회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여성정책이 ‘법·제도상의 평등’과 ‘실제상의 평등’ 간의 괴리가 심하다는 점으로 모아진다. 여기서 말하는 법·제도상의 평등은 한국정부가 지난 10년의 성과로 소개한 것들이다. 그리고 실제상의 평등은 여성 비정규직의 확대,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차별, 직장과 가사의 양립 지원정책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를 의미한다. 성주류화 전략의 방향에 따라 공적영역으로 여성들이 진출하고 정부의 정책결정에 개입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데 이제까지 주력했다면, 이제 이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2005년 한국 여성의 현실
성주류화 전략의 기원이 되는 ‘UN 여성 10년’이 1960·70년대의 발전이 지나치게 가혹한 여성의 희생 위에 기반해 있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고, 구조조정에 있어서의 보다 ‘인간적’인 면모의 도입이 성주류화 전략이라면, 한국에서의 빈곤의 여성화가 직장과 가사의 양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의 부족에 따른 것이라는 주류 여성단체들의 인식은 매우 정확하다. 이제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으로 인한 여성들의 이중부담을 덜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고, 앞서 마련된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가져다 줄 실제적 평등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눈만 뜨고 살 수 없듯이, 정부와 여성부, 여성단체들이 한목소리로 그 성과를 칭송하는 각종 여성관련 제도들의 한 편에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또한 직시해야 한다. 여성들의 불안정한 노동에 돌이킬 수 없는 쐐기를 박아 넣을 비정규직 관련 법 개악안 제·개정은 단지 몇 개월 유보되었을 뿐이고, 160원이 인상된 시급 3100원, 월급 70여 만원의 최저임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라는 인간적이기는커녕 피도 눈물도 없는 이 냉혹한 현실을 말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낮아지는 출산율에 대한 책임은 여성들의 ‘의지’ 문제로 전도되고, 여성부의 여성가족부로의 개편이 말해주듯 여전히 여성문제에 대한 국가의 접근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지 않는다. 여성인력활동이라는 이름 하에 가사와 직장의 양립이 의무처럼 장려되고 있지만, 가족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지위는 절대 변경될 수 없다는 경고이자 단속인 셈이다.
또한 이즈음 한국에서의 여성의 현실을 말하는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존재들이 있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 등장하는 이주자들처럼 때로는 투명인간으로, 때로는 하인처럼 또한 언제든지 범죄자라는 낙인에 휘둘리며 그렇게 존재했던 이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단 한순간도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이주여성들과 성매매 여성들의 문제는 더 이상 부재하는 것인 양 가장할 수 없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이주 여성들의 유입은 국제결혼, 이주노동, 성산업 등 경로도 날로 다양해지고 그 숫자만도 이미 40 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주여성노동자들의 경우 이주노동자 일반이 그러하듯 기본적인 노동권도 보장받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성폭력의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체 이주여성의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치할 만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여성의 경우 마을 전체의 감사 하에 각종의 가사노동과 농사일, 직장일 등 이중삼중의 노동을 수행하면서 언어차이, 문화적 차이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없이 거의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가 다반사다. 어떤 경우이든 이주여성들의 성산업으로의 유입은 매우 빈번하다. 또한 작년 하반기 성매매방지법의 제정과 시행 이후 성매매여성들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고 발언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매매방지법으로 대표되는 우리사회의 주류적인 성매매에 대한 접근이 성매매 여성에 대한 도덕적 단죄에 기반해 자신들의 인권과 실제 현실을 전혀 고려치 않는다고 주장하며, 스스로를 성노동자라고 호명하고 자기 조직화를 진행 중에 있다. 역사적 가족형태가 경제적 자립의 한계를 볼모로 여성을 가족 내로 유폐하고 남성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게 하는 한편, 가족 밖에서의 남성의 성욕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아 온 가부장제라는 현실을 삭제하고서는 성매매에 접근할 수 없다. 또한 성산업의 확대를 노골적으로 의도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다른 얼굴을 감춘, 금지주의라는 국가의 개입으로 성매매의 폐절은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더 이상 피해자의 지위에만 머무는 존재들 일 수 없다.


7월 3일,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행진에 동참하자.
이러한 여성들의 다양한 현실과 요구는 물론 단일한 하나의 이슈로 수렴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상호 이해와 연대를 확장하는 과정을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역사적 가부장주의라는 구조를 드러내고 그를 변화시키기 위한 공동을 노력을 조직할 수 있다. 빈곤과 폭력이라는 보편적 의제에 기반해 세계 곳곳의 여성들과 연대하고 공동의 실천을 조직하고 있는 세계여성행진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형성해야 할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는 각 국가별, 대륙별로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들이 존재하고, 전통과 종교에 기반한, 또한 전쟁이 야기하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고발되고 있다. 또한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의 ‘성노동’이라는 접근을 둘러싼 논쟁처럼 의제와 운동의 전략에 있어서의 차이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보편적 의제를 통해 보다 많은 여성의 연대와 결집을 도모하는 세계여성행진의 전략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으로서 우리는 여성들의 요구와 의제가 정부나 여성기구에 의해 대리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자기조직화와 연대, 즉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통해 제기되고 형성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동시에 이는 세계여성대회 및 성주류화 전략을 방향으로 하는 여성운동과의 가장 큰 차이이기도 하다). 이는 다양한 여성의 요구와 지향을 조정하고 수렴할 수 있는 운동의 운영원리를 계발하고 공동의 지향을 형성할 수 있는 필수적인 토양이다. 또한 대안세계화 운동, 사회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인데, 세계여성행진이 세계사회포럼에 결합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는 그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여성의 현실을 변혁하려면 세계를 변혁해야 함을 알고 있듯이, 여성과 페미니즘 없이는 ‘또 다른 세계’도 불가능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넘어 대안적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전세계 여성들의 행진에 동참하자. 3월 8일 브라질 상파울로를 출발하여 미주와 유럽, 호주와 일본을 거쳐 7월 3일 한국에 도착하는, 빈곤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 여성들의 투쟁과 연대의 의지를 두 팔 벌려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