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안 강행 처리의 교훈
닭쫓다 지붕 쳐다보는 격, 비상한 대응 준비해야
참세상
27일 밤 우려하던 사태가 발발하고 말았다. 이경재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고 논란이 돼온 비정규직법안을 통과시켰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석한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기간제 및 파견직 근로자의 고용기간을 각각 2년으로 하고, 기간제 고용기간 만료 후 고용의제로 하는 골자의 '비정규직보호입법'을 처리, 법사위로 넘겼다. 파견근로자보호법 개정안, 기간제근로자보호법 제정안, 노사정위원회법 등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이다.
정부가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안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 등 두 개의 안을 던진 건 2004년 9월, 그리고 두 달 뒤인 11월 입법 발의되었고, 15개월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두 법안 제출 당시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사실상 제2의 정리해고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시기 정리해고제가 수많은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가고, 생존 위협과 인권 유린의 수단이 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두 법안이 통과되면 비정규직의 확산과 상시적 고용불안에 시달릴 것이 명약하다는 분석이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는 2004년 열린우리당 당사 점거를 시작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을 추동했고, 11월 총파업 당시 국회 타워크레인 점거농성을 벌이면서 비정규직법안의 문제점을 사회 전체의 문제로 부각시켰다. 노동자의 저항은 정당했고, 비정규법안 철회와 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노력은 2005년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나 노무현정권은 서두르지 않았다. 입법 강행 의사와 합의 의사를 수차례 반복하며 민주노조운동의 저항과 대응을 교란했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한편으로는 노정, 노사정 대화를 유도하고, 한편으로는 비정규직 보호의 명분을 내세워 입법 의지를 강조하는 지공 플레이를 펼쳤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민주노조운동의 저항과 대응 수준을 한눈에 헤아리며 약점을 노려왔다. 이윽고 민주노총 보궐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기동적이고 주도면밀한 작전으로 비정규직법안을 통과시켰다.
돌아보면 입법을 둘러싼 소동은 끊이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현장의 투쟁을 조직하기보다 상층 협상과 교섭 전술에 의존했다. 법안소위 상정시 총파업으로 한걸음 물러나고, 법안소위 통과시 총파업으로 또 한걸음 물러났다. 실질적인 아래로부터의 총파업 준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이런 가운데 국가인권위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취지를 반영한 권고안을 내고, 정부안, 열린우리당안, 한나라당안, 한국노총안, 민주노총안, 시민사회단체안, 민주노동당안 등 갖가지 안이 제출되었다. 국회 일정과 맞물리는 가운데 밀고당기기가 계속되었다. 결과는 열린우리당안과 한나당안의 절충으로 귀결되었다. 여기에 진실이 있다.
비정규직법안이 처음 던져질 때부터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었다. 하나는 상층의 협상과 교섭 전술로 풀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의회에 의존해서 풀어갈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법안은 자본의 노동유연화 요구가 압축된 법안이라는 점에서, 다시 말해 자본이 노동을 통제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법안이다. 자본은 노동자의 저항을 관리하는 가운데 사활을 걸었고, 최소한 정부안으로의 법제화를 노려왔다.
지금 민주노총은 닭 쫓다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버렸다.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조합원의 저항을 조직하기에 앞서, 당장 투쟁동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상층 협상 전술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사회적 교섭을 통해 실익을 취하겠다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갖는 본질적인 한계가 드러난 셈이다. 정리해고제의 사례에서 확인되듯이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된 후 투쟁을 호소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민주노동당이 추진한 권리입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현실의 힘 관계를 고려할 때 그것은 아주 부차적인 일이었다. 사유제한 조정 안을 제시한 것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2년간 양극화 해소와 자유무역협정(FTA) 문제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한다. 자유무역협정은 노동유연화를 근간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속성을 갖는 것이므로 양극화 해소와 연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이다. 이같은 발언이 거듭 강조되는 시점에서 비정규직법안 강행 처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 각별하게 주목해야 한다.
경총 등 사용자단체들은 "실업을 악화시킬 것"이라는둥 비정규직법안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며 연막을 피우는 가운데 입법 추진에 힘을 실어주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넘쳐나는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며 입법의 정당성을 설파하고 있다. 이제 다수의 힘의 논리에 따라 비정규입법안의 국회 처리가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로드맵 입법 추진 일정도 가시권에 들어올 것이다. 언제나 그랬지만 지금은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비상한 대응에 나서야 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