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 4월호 갈월동에서] 중에서
대추리 땅의 속빛깔
장진범 | 정책편집부장
포크레인이 파헤친 대추리 땅의 속빛깔은 회색이었다고 한다.
회색 갯벌을 갈색의 옥토로 만든 주민들의 평생 세월을
미군과 정부는 한 나절 만에 파괴하려 든 것이다.
검찰은 박래군·조백기 활동가에게 청구한 구속 영장에서,
평택 투쟁이 외지인들의 부추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물론 이간질을 통해 투쟁을 잠재우려는 저들의 책략이지만,
한편으로는 국가에 순종할 것만 같았던 늙은 농민들이
‘특수공무집행방해’자로 나서는 장면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지배계급들의
무능력과 깊은 당혹감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듯 국가의 폭력은
그들이 미국의 앞잡이라는 점에서 비롯하는 것만은 아니다.
흙빛깔에 담긴 주민들의 피땀과 역사를 읽지 못하는 맹목.
대중들이 사적 ‘이해관계’와 ‘집단이기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이념을 체현하는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공포.
국가공동체의 행정 명령과 불의한 법질서에 불복종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대항공동체의 설립을 인내하지 못하는 독단.
이는 비단 평택 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저 잘난 ‘민주화’ 세력이
앞장서 자행하는 반민주적 폭거의 근본 원인이다.
민주주의를 타락시키는 이 같은 불의에 맞섬과 동시에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 기도로 위협받는
평화를 지키려는 시민들을,
‘외지인’이라는 이름과
포크레인·용역깡패라는 물리력을 동원해
폭력적으로 배제하려는 저 ‘참여정부’에게,
시민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에 대해
참여와 결정권을 갖는
당사자이자 주권자라는 자명한 진리를 투쟁으로 가르치는 것.
오늘날 민주주의는 바로 그 자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