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았다고 해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시각적 발견이, 꼭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우리가 보고도, 보지 못하는 일들이 즐비하다.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숨은 그림은 그것을 찾으려는 사람에게 "쨘!" 하고 나타날 뿐,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나 여기 있소" 하고 얼굴을 내밀지는 않는다. 맑은 하늘 아래, 너른 들녘 위로, 시커먼 헬리콥터가 뜨고 내렸다. 무장경찰이 난입해 마을과 학교를 부수고, 늙은 농부들의 팔과 허리를 꺾었다. 제 나라 사람들을 지켜야 할 군인들은 남의 나라 군대 앞에 굽실거리며, 논과 밭을 파헤치고 철조망을 둘렀다. 퍼렇게 벼가 올라오는데도, 누렇게 보리가 익어 가는데도, 늙은 농부들은 '자식 같은' 곡식을 어루만질 수 없었다. 김원중은 노래했다. 아무도 이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주지 않아, 너무도 외로운 섬이 되어버린 빛고을 광주. 그 바위섬의 고독과 단절을 노랫말 속에 숨겨 세상 사람들의 입에 건넸다. 대추리는 광주와 다르다. 군인들은 총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늙은 농부들이 사흘이 멀다하고 운명을 달리 한 적이 있지만, 총에 맞아,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죽이고 난 후 보상금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고, 살아 있을 때 보상금을 주겠다는 것이니 정부로서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허나 외로움은 한 가지다. 대추리는 '섬'이다. 대추리의 늙은 농부들은 아무라도 붙잡고 하소연한다. "우리를 욕해도 좋으니, 우리 마을에 꼭 한 번만이라도 와 보라"고, "이 마을 사람, 단 한 명이라도 붙들고 우리 살아온 얘기 좀 듣고, 저 너른 들녘에 한 번 서 보라"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추리는 다 안다. 대추리에 대해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식상하거나,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허나, 그럴까. "대추리에 한 번이라도 와 보라"는 늙은 농부들의 절박한 하소연을 한 번이라도 들어주고서 대추리를 지겹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대추리의 '순진한' 농민들을, '영악한' 외부 불순세력들이 조종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사람들이 대체 땅값을 얼마나 올려 받고 싶어 저 난리를 피우는 것인지, 넌지시 물어도 보자. 죽봉과 삽으로 무장한 '농민군+극렬좌익군'이 선량한 경찰과 군인들을 어떻게 위협하고, 폭행하는지도 감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추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 무엇인지, 우리는 다 아는 것 같은데,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 대추리에 대해 정말 알고 있니?" 사진은 평범한 나무 사진이다. "그냥 나무 사진이네"하고 스쳐보면 그만이다. 대추리 노인정 바로 맞은 편에 아담한 숲이 하나 있는데, 지난해 꼭 이맘때 사진을 찍었다. 그 숲에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솔부엉이'가 해마다 둥지를 틀고 새끼를 쳐 왔다. 이 얘기를 듣고 나면, 나무사진이 달라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진에 솔부엉이가 있는 거야?" 자세히 살펴본다면 솔부엉이 세 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찾기 쉬운 곳에 있지만, 좀처럼 찾기 어려울 수도 있다. 5분 이상 사진을 봤다면, 부탁하건대 5분만 대추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당신은 솔부엉이 다섯 마리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보았다고 해서,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시각적 발견이, 꼭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대명천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숱한 미디어를 통해 지겹도록 보고서도, 정작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