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민중 행동의 변함없는 친구이자 선배인 한수와 언제나 겨울밤 아랫목처럼 따뜻하고 차분한 희정언니와 통화를 했다. 예전부터 홈페이지에 안부글이라도 올리겠노라 하고선 늘 방문조차 못해보고 지내다, 오늘에야 글을 한 편 올린다.
모장애인 단체에서 발간하는 기관지에 실린 내 글이다.
통역을 하면서 장애인 단체와 함께 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실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에게 관계된 것 중에서 나에게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라고 맑스가 말했던가..
사뭇 한 가지만 보기 쉬운 삶 속에서 주변의 모든 문제와 목소리들에 시선을 보내고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싶다.
다들 안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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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기하게도, 나는 살아오면서 작년 4월 무렵에야 처음으로 장애인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전 세계 인구의 10%가 장애인이라는데, 따라서, 교육 과정을 밟아 오면서, 한 번쯤은 교실에서라도, 아니면 같은 학교 다른 반 교우로라도, 아니면 가까운 이웃 에서라도 마주쳤을 법한데, 단 한번도 직접 대면해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였을까, 장애인 이슈가 사회 구조적 모순의 중심에서 멀리 있지 않고,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단상 정도 이외에, 사실 어떤 관심도, 주의도 따로 기울여 볼 기회도, 계기도 없었다.
따라서, 장애인의 관점과 이슈에 대해서는 무지하다시피 했던 내가 DPI 아태 지역 역랑 구축 워크샵(4월)과 인권 포럼의 선진국 교통 시스템 견학(5월)을 계기로 그야말로 다행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구축하고, 나아가 전반적인 인권에 대한 나의 개념도 그 지평을 한 단계쯤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된 듯싶다.
세계 사회 포럼에 자원 봉사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조우하게 된 한 노동 운동 활동가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회사를 그만 두고 마침 국제 회의 비수기라서 한참 신나게 빈둥거리고 있을 무렵, 오랜만에 연락을 해 온 그 선배가 한 장애인 단체 수행 및 순차 통역을 의뢰했다. NGO인 만큼, 통역료를 충분히 지급할 순 없으나, 의미 있는 일이니 다녀와 보라는 조언이었다. 조합원이 수백, 수천인 노동 조합도 예산난에 허덕이는 판국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소수로 구성된 단체라면, 살림이 넉넉치 못한 것이 일견 타당하겠다 싶기도 하고, 선배 말마따나 내게도 보람 있는 일이겠다 싶어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런데 수락은 흔쾌하였으나,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저런 우려가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우선은 자료도 없이 커버해야 하는 통역의 주제가 생소하다는 것 하나, 또 통역 자체도 사실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인데, 장애인 단체라면 통역 이외에도 내가 알아서 처리해야 할 부분이 많지는 않을 까 하는 점 하나, 그리고 가장 해결하기 난망한 부분, 장애인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까, 하는 점. 사실 마지막 부분은 장애인 운동의 활동가들과 수없이 대화하고 관련 이슈를 둘러싼 국제 회의에 몇 차례 참석해 본 경험이 생긴 지금도 확실한 결론은 내릴 수 없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장애인 그룹이 장애인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개개인 모두가 단일한 그룹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장애인을 어떻게 만나고 행동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보면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일천하고 초보적인 문제 설정이 아니였을까 싶기도 하다. 모든 장애인이 동일한 경험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됨됨이와 성격도 천지 차이일 것이다. 오랜 운동을 통한 내공으로 그 깊이가 심연 같아 너그럽게 열려 있는 이도 있을 테고, 가슴에 단단히 못을 박고 사회적 편견에 편견으로 맞서는 사람도 있을 테며, 비장애인이나 이웃 동료의 잘잘한 도움에 대해 고마워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도움이 예의가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해, 도움을 당연히 여기는 사람도 있을 테다. 성격이 좋아 쉽게 어울릴 수 있을 사람도 있겠고, 또 내성적이어서 가까이 가기 어려운 사람도 있으며, 늘 남을 배려하느라 소심한 사람도 있고, 지나치게 솔직해 가끔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것이다. 겪어 보니 그렇더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우스꽝스럽게도 일단 모든 장애인을 동일한 존재로 생각해서 판단하고 나름의 ‘대응’ 자세를 고민했던 것이다.
어찌 됐건, 그러한 고민을 현실에서 풀어야 했던 처음은, 내가 단체 관계자와 관련 일이 있어 모 정부 기관에 방문했을 때였다. 목발을 짚고 서류 가방을 든 채 천천히 걸어 오시는데, 이 걸음의 템포를 맞춰, 기다리면서 함께 걸어야 할 것인가, 그냥 나 혼자 알아서 걸어가 먼저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할 것인가부터가 관건 이었다. 혹여 내가 기다리는게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그렇게 되면 내가 너무 ‘오버(overaction)’하는 것은 아닌지, 목발을 짚고 가방을 들기가 힘들 것 같은데 내가 저 가방을 들어준다고 해야 할지, 가방을 들어 준다는 말이 자칫 동정의 시선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속성으로 스쳐 지나갔다. 상대가 장애인 운동을 하는 사람이기에 고민이 더 깊었을 수도 있다. 고민 끝에 그냥 천천히 먼저 걸었다. 물론 가방도 못 본채 딴청을 피우면서 말이다. 내 딴에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몹시 피곤한 귀가 길에 지하철에서 할머니를 보고 다른 사람이 비켜 주겠지 하며 딴청을 피우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딴청’이었다. 그런데, 내 판단이 ‘역오버(reverse overaction)’였다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분 후였다. 마중을 나온 나이가 지긋하신 관계자가 ‘내 심리적 갈등의 핵심에 있던 그 가방’을 망설임 없이 선뜻 받아 들었고, 순간 나는 좀 지나친 표현을 하자면 ‘패륜아’가 되 버린 듯 한 민망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흔쾌히 가방을 맡기고 양손에 아무 것도 들지 않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도 한결 편해 보였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내가 가방을 들어 드리겠다고 했고 고맙다는 말도 들었다. 잠깐 이었지만, 나도 마음이 편했다. 그 이후로 비슷한 장애를 가진 다소 젊은 분과 함께 길을 걸었을 때는 ‘가방을 들어 줄 것인가’에 대해 다소 편하게 물어 볼 수 있었다. 그 분은 괜찮다고 거듭 거절을 했다. 그 땐 잠깐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생각되기도 했지만, 그 오해는 금방 풀려서, 상대도 내 호의를 호의 정도로 받아 들이는 것 같았고, 거절한 이유는 외지에서 더운 날씨라서 나도 힘들 것을 배려한 탓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내오면서 경험해 보니, 그 분은 항상 그렇게 타인을 배려하는 씀씀이가 유달리 깊은 분이였다.
내가 가장 즐거웠다고 회상하는 때는 DPI 지역 워크샵 행사를 참가했을 때다. 파파뉴기니에서 온 독특한 장애 여성이 내 추억에 있다. 다리를 경미하게 저는 장애가 있었는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얼굴에 새긴 못생기고 작은 문신이었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고, 화장 문화 등 외모 지상주의가 트렌드인 한국적 시선에서는 상당히 우스워보이는 문양의 그 문신에 대해 내가 물었을 때, 그 여성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For fun”, 재미있어서 얼굴에 그토록 어이없는 문신을 새겼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얼굴 뿐만이 아니였다. 손등에도, 팔뚝에도 여기 저기 문신이 있다. 헤어 스타일은 또 얼마나 기이하던지, 흑인 머리처럼 부풀어 오른 머리에 편의상 볼펜을 꽂고 다녔다. 그녀와 만찬 식사때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은 내 싸이 앨범에도 올려 놓았다. 여튼, ‘For fun’이라니, 얼마나 명쾌하고, 경쾌한 답변인가. 그 대답 한마디는 이 세상에 산재한 모든 복잡한 고민과 이론을 깨끗하게 정리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있다. ‘나와 다름’, ‘차이’를 ‘틀림’, ‘오류’로 간주해 정정하고 배제하고 짓밟는 허위 의식을 그야말로 ‘재밌게’ 베어 버리는 통쾌한 철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떤 의미 심장한 이유 없이도 우리는 얼마든지 다르게 살며, 또 이미 처음부터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개성과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중심으로부터 반지름이 모두 동일한 완벽한 원이 이론상으만 존재 할 뿐, 실재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표준화된 인간도 존재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그 자체로, 각자가 다른 그 자체로 이미 완벽하고 완성된 존재이며, 동시에 모두 부족하고 결핍된 존재라는 것을 그녀의 한 마디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장애인 그룹에 대해서 굳이 특별하게 생각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물론 사회 구조적 모순과 잘못된 무의식, 문화가 만연된 세계 곳곳의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절차적인 인권 보호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테고, 이를 통해 무엇보다고 장애인의 접근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장애인에 대한 나의 시선이 서른 살이 되어서야 안정화되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통합 교육이 이루어지고,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차이를 개성으로 인정하는 사회였더라면, 나는 어릴 적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자주 만났을테고 그랬더라면,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배제당하지 않은 탓에, 내 관점과 무의식도 훨씬 진보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북한을 두려워하고, 자본주의를 예찬하며, 미국을 동경하고, 동성애를 병으로 치부하며, 여성을 ‘가녀린’ 존재로 이상화한 내 어린 시절이 잘못된 정보와 교육의 병폐였던 것과 동일한 맥락으로 ‘장애인’을 만날 기회를 차단당했는지도 모른다.
요즘, 간혹 비장애인들을 만나, 장애인 이슈에 대해 스치듯이 이야기 하다 보면, 이들의 관점이 예전의 나만큼이나 일천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장애인이므로 무엇이든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선량’을 자처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마음 편한 대답일 수 있겠으나, 이러한 시혜적인 시선에 대해서는 스스로 성찰하고 고민해 보라고 묻고 싶다. 거듭 말하지만 구조적으로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시스템은 갖춰 줘야 하고, 기회의 평등을 넘어 결과의 평등이 도출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인텐시브가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하며, 그것이 비단 어떤 특정한 그룹에게만 특혜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안녕과 우리 모두의 인권 증진에 힘을 실어준 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서 관계를 맺어 나갈 때, 한 개인이 갖는 다양한 특성, 그리고 그 특성의 총체적 결정체로서의 해당 개인의 인격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특성을 고집스럽게 바라보고 ‘오버’해서 자신을 ‘베푸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분명히 일관성이 없는 자세이다. 인간 관계를 맺다 보면, 싫은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으며, 성격이 맞는 사람도 있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힘들어 보이면 도와 주고 싶을 때도 있고, 나부터가 죽도록 피곤하거나 에너지를 충전해야 할 상황이면, 슬쩍 모른척 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즉, 요지는 장애인에 대해서만 일관되지 않은 자세를 보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 하지 않는 것, 올바른 원칙을 정립하고 일관된 삶을 살아 가는 것이며 그것이 근본적인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짜피 모두가 완벽하며, 또 동시에 부족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내 처지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 중 몇 명이나 사회적 약자가 아니겠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수적으로는 사회적 약자가 ‘주류’인데, 우리 사회의 ‘힘의 주류’는 엉뚱한 사람들이다.) 글을 완성하고 나니 '보이스'의 원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나, 정성과 진심을 담았으니만큼 의미 있게 읽어 주시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