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 핵 이용’, 그 불가능한 꿈
'핵실험 반대'를 넘어 근본적 반핵 운동으로!
수열
* 출처: http://www.sarangbang.or.kr/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2005년 2월 핵보유 선언과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 실험에 뒤이어 마침내 지난 10월 9일 북한 당국이 핵실험을 단행했다. 한반도 일대에 군사적 긴장과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있으며 동시에 동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핵확산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10월 14일 UN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되고 일본과 같은 주변국들의 핵무장 시도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일각에서는 한국 역시 핵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배제와 위협의 편에서 강압적·군사적 대응방안으로 일관해온 미국과 이를 위시한 여타 국가들의 적대적 대북 정책이 오늘날 북한의 핵실험 사태를 부른 원인이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처럼 북의 핵실험이 동아시아 비핵지대화를 향한 시도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핵에 의한 핵 억지는 환상일 뿐이며, 오히려 핵 경쟁만을 확산시키기 때문이다. 핵보유국 사이에서는 1%의 전력 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존립과 권위를 위협하기 때문에 핵을 보유한 나라들일수록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것이 양적 증대와 질적 개량과 같은 핵무기의 수직적 확산을 하게 되는 계기다. 더구나 ‘벙커버스터’나 ‘열화우라늄탄’ 등과 같은 제한적 핵무기의 사용이 현실화되어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오히려 제한적인 핵무기의 사용이나 재래식 무기를 통한 국지적 혹은 전면적 전쟁 발발의 위협이 더욱 높아질 뿐이다. 따라서 절멸의 공포를 기반으로 한 체제 보장 시도는 중단되어야 하며, 이와 함께 북한 민중들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인 대북제재를 철회시키고, 전쟁 위협을 통해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한미 군사동맹을 해체하기 위한 즉각적인 움직임들이 필요한 때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근본적으로 핵, 원자력의 사용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평화적인 원자력’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핵무기로 전용되는 것이 문제이지 원자력 발전 자체는 필요한 것으로 여긴다. 평화적으로만 사용된다면 원자력 발전은 인류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평화적인 원자력’은 환상일 뿐이며, 원자력 발전은 근본적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원자력의 상업적 이용은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1945년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핵무기 개발에 뛰어 들었고, 1949년 소련에 이어 1952년에는 영국까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1953년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 원자력 기술을 제공하는 대신 이를 감시하여 무기 제조를 방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다시 말해, 원자력 발전은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고안된 에너지원이 아니라 핵무기 보유국의 증가라는 핵무기의 ‘수평적 확산’을 막기 위한 일종의 타협안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경우 2차 대전 당시 원자탄 개발에 참여했던 제너럴일렉트릭과 웨스팅하우스가 상업용 원자로와 핵연료 개발을 주도했고 군사용 원자로를 기반으로 원자로 개발을 시작한 것을 보면, 원자력 발전을 민간 기업이 담당하더라도 그것이 군사적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처음부터 정부 주도로 원자력 발전 프로그램이 진행된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기체냉각흑연로’를 이용해 상업용 전력 생산과 동시에 군사용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어 상업적 원자력 발전이 군사적 목적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원자력 발전 국가들의 속내
원자력 발전 프로그램이 전력 생산만을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 많은 나라들에서처럼 거대규모의 연구 기관으로 시작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처음부터 거대규모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는 것은 미국의 대규모 원자력 시설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원자력 발전 시설이 2차 대전 당시 핵무기를 개발했던 군사 시설에서 출발하였으며 지금도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04년 한국의 플루토늄 추출 연구를 중단시킨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원자력 발전을 진행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은 핵무기 개발 기술에 해당하는 실험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오고 있다. (**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82년 연구용 원자로에서 플루토늄 6g을 추출하고, 2000년 레이저분리장치로 0.2g의 우라늄을 분리했다.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고 연구를 중단하기로 했지만, 당시 국내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핵물질을 확보할 수 있는 초기 기술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7960t의 사용후 핵연료가 원자력발전소 안에 보관돼 있다. “핵무기 개발능력 어느 정도? 한국도 3달이면 만든다” 中. 한겨레, 2006. 10. 20.) 지난 5월, 일본은 1995년 나트륨 유출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고속증식로 ‘몬주’의 재가동을 결정했다. 겉으로는 잉여 플루토늄을 다시 원자력 발전에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핵연료는 재활용 할 수 있다’는 환상은 안정성과 경제성 모두에서 이미 깨졌다고 평가된다. 일본의 목적이 ‘원자로급’ 플루토늄보다 순도가 더 높은 특급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매년 평균 핵무기 1천여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5톤의 플루토늄을 추가 확보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으며, 2020년까지 대략 145톤에 달하는 비축량으로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의 무기급 플루토늄 보유국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여타의 많은 나라들은 북한의 핵실험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핵무기 개발을 위한 절차들을 차근차근 밟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반생명적, 반민중적 폭력
원자력 발전은 찬성론자들이 선전하는 것처럼 안전하지 않으며 반영구적이지도 않다. 원자력 발전이 시작된 이후 ‘사용 후 핵연료’인 ‘고준위 핵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한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기껏해야 냉각하여 임시 보관하고 있을 뿐 영구처분장 장소조차 확보하지 못한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핵폐기물을 지층 깊은 곳에 처분한다고 하더라도, 그 지층의 움직임을 장기적으로 예측하여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방사능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현재 전 세계에는 430여 개의 원자로가 있고 지금의 발전량만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천연 우라늄은 앞으로 50년이면 고갈된다. 또한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는 위험한 시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핵무기의 경우에는 절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시설 근무자나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적 감시와 통제를 정당화한다. 부안의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과 관련된 투쟁에서 알 수 있듯 원자력 발전은 근본적으로 주민 투쟁과 국가 폭력을 부를 수밖에 없다.
또한 원자력 발전이 화력발전을 줄여 지구온난화를 해결할 수 있는 대체 에너지원은 더더욱 아니다. 태양에너지가 변형된 형태인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핵에너지는 물질의 내부구조를 변형해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생성해낸다. 따라서 지구의 에너지 총량이 증가하게 되고, 이것이 지속될 경우 지구의 온도 평형이 파괴되고 기후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반핵 투쟁으로!
우리가 계속해서 원자력을 이용하는 한 결코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으며 핵무기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핵에 대한 여론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 지금, 지속적인 핵 위협을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자신들이 진행시켜온 핵무장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진정한 평화의 길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수열 님은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