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침공이 임박했다?
부시 미 대통령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5차례 언급하며 테러지원국으로 꼽아…페르시아만에는 항공모함 2척이 배치되어 2003년 이라크와 비슷한 전운 감돌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최근 미국에 적대적인 시아파 극단주의자들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란으로부터 직접 지휘를 받는다. 알카에다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미국인을 많이 살상한 헤즈볼라 같은 테러조직에도 자금과 무기를 대주고 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1월23일(현지시각)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5차례 입에 올렸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움직임 때문에 ‘유엔의 제재를 받는 나라’로 묘사했다. 그가 지난 2002년 새해 연설에서 이란을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부른 것을 기억한다면, 이날 연설을 들으며 ‘2003년의 이라크’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미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가 미 워싱턴주 브레머턴의 키트샙 해군기지를 빠져나가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최근 스테니스호를 페르시아만 연안에 증파하면서, 이 일대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사진/ 미 해군 제공)
걸핏하면 제기됐던 가설?
‘음모론’일 뿐일까? 물론 지금으로선 성급한 단정일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단순히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란 지적도 제법 설득력이 있다. 하긴 ‘악의 축’ 발언 이후 지난 5년 세월, 걸핏하면 제기됐던 가설이 아니던가. 이라크 침공 직후에도 ‘다음 차례는 이란’이라는 주장에 제법 무게가 실렸지만,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우려’는 아직까지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근의 변화는 분명 심상찮다. 이란을 둘러싼 안보 지형이 최근 급격히 휘발성을 띠면서, 페르시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동안 ‘휴지기’에 들어간 듯 한가한 모습을 보여온 미 해군 항공모함 드와이트 아이젠하워호가 다시 페르시아만 연안에서 경계를 강화한 것은 지난해 12월 들어서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이 일대에 또 다른 항공모함 존 스테니스호를 증강 배치할 것임을 밝혔다. 페르시아만 연안에 항공모함이 2척이나 배치된 것은 지난 15년 동안 단 5차례뿐이다. 첫 번째 사례는 지난 1991년 제1차 걸프전 초기였고, 두 번째는 1996년 ‘사막의 습격’ 작전이 임박했을 때다. 1998년엔 ‘사막의 여우’ 작전에 앞서 배치됐고, 이어 2003년 봄 미 항모 2척이 다시 페르시아만 연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라크는 전쟁을 맞았다. 이란으로선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항모 1척이 움직이면 그에 딸린 전투기와 각종 유도무기, 구축함과 초계함, 잠수함과 보급 선박이 통째로 따라다니게 된다. 미 국방부의 자료를 보면, 증파가 결정된 존 스테니스호의 경우 항모를 호위하는 각종 군함 7척과 잠수함 2척, 8개 비행대대 등이 함께 움직인다. 페르시아만 연안 해역이 미군 함정으로 북적이다 보니, 지난 1월9일엔 미군 핵잠수함과 일본 유조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미 해군과 이란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눈여겨볼 대목은 또 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아프리카의 케냐에서 중동을 거쳐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까지를 아우르는 미 중부군 사령관을 교체했다. 전통적으로 육군이나 해병 출신 4성 장군이 맡아온 중부군 사령관에 임명된 인사가 뜻밖에도 윌리엄 팰런 해군 제독이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전형적인 함포외교”라고 지적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투가 대부분 경무장 보병이나 해병을 중심으로 한 육상전임을 감안할 때, 해군 제독을 중부군 사령관에 임명한 것은 이란을 겨냥한 것이란 게다. 전격 교체된 존 애비자이드 전 중부군 사령관은 이란을 겨냥한 군사행동에 대해 반대해왔다.
△ 신임 미 중부군 사령관에 임명된 윌리엄 팰런 해군 제독이 부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설을 하고 있다. 중부군 사령관에 해군 출신이 임명된 것은 이란을 염두에 둔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사진/ REUTERS/ NEWSIS/ JIM YOUNG)
미 중부군 사령관에 ‘해군 제독’
지난 1월9일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에르빌의 이란 영사관을 미군이 급습한 것도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국제법적 관례에 따라 치외법권이 인정돼야 할 외교시설에 무장군인을 동원해 침투한데다, 신분을 보장받아야 할 공관 소속 이란인 직원 5명을 체포한 것은 명백한 ‘도발’이다. 이날 작전은 “부시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 변수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1월24일 북부 해안도시 헤르즐리아에서 열린 연례 안보회의의 연설을 온통 이란 문제에 집중했다.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가 공식 석상에서 공공연히 다른 나라를 ‘지도에서 쓸어내버리겠다’고 말하고, 또 그런 행위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수단까지 마련하고 있다면, 어떤 나라라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런 위협을 막을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지칭한 발언이다.
이에 앞서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1월7일 “이스라엘군이 지하 핵시설 파괴용 소형 핵무기인 ‘벙커 버스터’를 동원해 나탄즈 우라늄 농축공장 등 이란의 핵시설을 공격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최근 <예루살렘포스트> 등 현지 언론을 통해 나온 “이제는 이란을 겨냥한 군사행동에 나설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는 에프라임 스네 국방차관의 주장이나, “부시 행정부가 이란을 공격할 정치력이 없다면, 이스라엘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오데드 티라 전 이스라엘군 포병사령관의 발언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두 번째 항공모함이 걸프 해역으로 향하고 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 체제도 이미 걸프 해역에 배치 명령이 내려진 상태다. 이란에 미군이 집중하는 사이 도발 기회를 엿볼지도 모를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해 한국에 F-117 스텔스 전투기 편대도 배치됐다. …오는 2월 말이면 이란을 겨냥한 군사행동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다.” 군사전략 전문가인 샘 가디너 미 공군 예비역 대령은 1월16일 캐나다의 진보적 연구단체 ‘지구화연구센터’에 기고한 글에서 부시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직접 공격을 선택할 경우 밟게 될 ‘위기 고조’의 수순을 이렇게 내다봤다.
“먼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를 중심으로 구성된 여론팀이 이라크 침공 때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한 여론전에 나설 것이다. 페르시아만 일대 국가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에도 유럽 기반 미사일 방어망이 증강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 내부 미군 기지에 전투기가 증강 배치되는 한편, 일부는 아프가니스탄에도 배치될 것이다. 이어 이라크에 증파되는 미군 병력 가운데 일부가 ‘이란의 침투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이란-이라크 국경 지역에 배치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 공군 공중급유기가 이란 인근 지역에 배치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최종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이란을 겨냥한 군사행동은 이로부터 며칠 안에 이뤄질 수 있다.”
단 하나 부족한 건 ‘스파크’
“이란 문제를 다음 단계로 끌고 갈 계획은 없다”는 백악관 쪽의 설명이 현재로선 진실에 가까운지 모른다. 하지만 페르시아만 일대의 휘발성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것도 분명하다. 활활 타오를 만한 연료도 확보돼 있다. 단 한 가지 빠진 것은 불을 댕길 ‘스파크’뿐이다. 차기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론 폴 하원의원(텍사스주·공화당)이 최근 언론 기고문을 통해 “(베트남전 확전의 불씨가 된) ‘통킹만 사건’ 같은 일이 조작되면서, 이란 침공의 명분을 주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