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는 충분히 안전한가?
[투고-문제 제기와 성찰을 위해] 광우병, 이윤추구의 필연적 부산물
지난 2일과 3일, 그리고 6일과 7일 청계천, 여의도에서 평균 1만 5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가 불꽃을 일게 했지만, 집회 현장에서는 쇠고기 수입 반대 이외에도 학교 자율화 반대, 0교시 폐지, 대운하 반대, 의료 민영화 반대, 한미 FTA 반대 등 정부의 정책에 대한 다양한 비판들이 자유 발언 속에서 이어졌습니다.
정당한 불안
이렇게 촛불 시위가 불타오르자, 정부는 이것을 무마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정부는 사람들이 광우병에 대해 가지는 불안이 과장된 것이라고 말하면서, 온갖 통계와 논문을 들먹이며 미국산 쇠고기가 90% 이상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정부와 기업들은 대중들의 근거 있는 불안을 항상 축소하려고 애씁니다. 예컨대,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에 대한 불안, GMO에 대한 불안에 대해서도 전문가를 동원해 대중들이 과장된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핵과 같이 작은 가능성의 결과가 참혹한 경우, 광우병과 GMO와 같이 그 시작이 불분명하고 결과가 대규모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그 위험 요소를 없애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합니다.(혹시 사스가 기억나시나요?)
인터넷이나 집회에서 볼 수 있는 ‘광우병 쇠고기에 5천만이 다 죽는다’는 말은 언뜻 보기에 너무나 과장된 말입니다. 하지만 대중들이 ‘5천만이 다 죽는다’고 말하는 건 모두가 죽을 거라는 객관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불안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사입니다.
소수가 죽는다 하더라도 그 소수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부자보다는 서민, 빈민, 학생, 군인이 그 소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즉, 광우병이 자신에게 발병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낮은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적은 확률이나마 위험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수입을 기어이 하겠다는 것 자체에 화가 나는 거 아닐까요.
▲비위생적 공간에서 사육되고 도축되는 미국 소들.
광우병을 피하려면 한우를 먹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반드시 막아야합니다. 먼저, 먼 거리에서 수입되는 식품은 엄청난 환경비용(오염)을 만들어냅니다.
쇠고기뿐만 아니라 많은 먹거리들이 수천km를 돌아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고, 이런 이동은 자연에 대한 부담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낮은 가격으로 수입되는 많은 식품들이, 이것이 다국적 기업의 통제 하에서 생산되는 과정에서 지역민, 대지를 수탈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고기를 부러 사먹을 필요도 없습니다.
게다가 쇠고기 협상은 한미 FTA를 위해 노무현 정부가 한국이 미국에게 주었던 밑밥이었구요.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 막는다고 사람들이 광우병에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우는 풀과 짚을 먹으며, 한가롭게 목장을 거닐면서 살아갈까요? 아닙니다. 한국의 축산 농가는 미국에 비해 훨씬 영세하지만, 동물들을 좁은 곳에서 키우며, 항생제를 주사하면서,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은 미국과 똑같습니다.
물론 개개 축산 농가들이 비도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건, 한국의 축산업 사이에서도 이윤 경쟁이 치열해서, 다국적 기업이 만들어낸 가격 대비 열량이 높은 값싼 동물성 사료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윤이 우선인 세계는 농업과 축산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왔고, 광우병이라는 문제를 만들어냈습니다.
한국에서도 2001년까지는 소의 부산물을 소에게 먹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소의 부산물은 금지되었지만, 닭과 돼지의 부산물은 소에게 먹일 수 있었습니다. 소→돼지, 닭→소로 광우병 인자가 옮겨가는 ‘교차오염’의 가능성이 한우에게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졌을까요? 한국에서는 0.24%의 ‘건강한 소’에게만 검사를 실시합니다. 국제수역사무국에서는 ‘건강한 소’가 아닌 ‘광우병 고위험군인 병든 소’에 대한 검사를 거치는 국가에 대해서만 안전 등급을 줍니다.
때문에 한국은 국제수역사무국에 광우병 등급 심사를 받으려다 포기했습니다. 미국과 동일한 등급으로 판명된다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막을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광우병으로 죽는 경우에도 그것을 제대로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크로이펠츠 야콥병의 확진에는 부검이 필요한데 한 번 쓰인 부검 도구는 원인 물질에 오염되어 일반 병원에서는 부검을 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한 부검 목적의 병원이 부족하며, 해부와 조직검사를 유족들이 거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광우병과 유사한 증상으로 쓰러진 한우들에게도 제대로 된 검사가 없었고, 산발성 크로이펠츠 야콥병, 그리고 인간광우병이라 불리는 변종 크로이펠츠 야콥병에 대해선 제대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먹거리를 만들려면
광우병의 문제는 현재의 축산 형태에서 벌어지는 문제 중 하나의 단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도 웰빙이나 유기농, 로하스(LOHAS.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생활양식-편집자)를 이야기하면서, 안전한 먹거리에 ‘개인적’으로 신경을 쓰고 있지만, 항생제 사용량이 최대이고, 좁고 열악한 우리에서 동물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의 축산업의 현실은 그다지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조류 독감은 급속도로 퍼져 수많은 닭이 죽게 만들었습니다. 호르몬과 항생제는 고기 속에 잔류해 우리에게도 들어옵니다. 우유도 호르몬과 항생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축산 형태에 반대하면서, 이윤에 쫓기지 않는,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어 낼 정책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윤에 쫓기지 않는 소규모의 생산 방식의 축산은 많은 고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지금의 수요를 뒷받침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고기를 많이 먹는 문화가 광우병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구조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건강에의 위협과 환경적인 오염을 많이 만들어내는 고기를 될 수 있는 한 적게 소비하거나, 조금 더 나아가 채식을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물론, 이런 이야기가 드러나는 방식이 그저 실태를 고발하는, 축산농가 분들을 벼랑으로 모는 것이 아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미 돌아가신 축산농민분들께 애도를 표합니다)
농민 운동과 환경 운동, 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걱정들이 한 데 모여 농민과 소비자들, 그리고 자연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합니다. 또한, 이런 흐름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거나, 최소한 막지는 않도록 요구해야 하구요.
그리고 운동 속에서, 그리고 정책 속에서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한미 FTA를 비롯한 'FTA들'에 대해서 반대해야 합니다. 지금 한미 FTA의 조항은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여러 정책을 기업들이 제소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광우병을 막고, 안전한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고 최소한 한국 내에서 이런 성과들이 보호받기 위한 최소한으로라도 'FTA들'에 대해 반대해야 합니다. (물론 더 많은 적극적인 반대 이유들이 있지만 대부분 아실 거라 생각하고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GMO식품 위험성을 홍보하는 모습(사진=환경운동연합)
광우병이라는 이슈에 묻혀버린 먹거리 안전의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GMO입니다.
지금까지 주로 사료용으로 수입되던 유전자조작 옥수수가 이제 식용으로 수입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3% 이상 GMO가 혼입되면 표시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 지켜지고 있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GMO가 1% 이상 혼입되면 표시하도록 되어 있고, GMO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먹거리는 다국적 기업들의 힘과 국가의 방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더 안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성찰 능력 갖춰야
이제 문제는 우리가 거리에서 이야기를 외치는 경험 속에서 얼마나 자신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저 우리 외부에 문제의 근원이 있고, 그것만 막으면 된다는 생각은, 다시 우리 앞에 이전의 문제들이 반복해서 나타나게 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이명박 정부의 몇 가지 정책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상적인 생각, 사회관계, 생산 관계 속에도 있다는 것이 알려져야 합니다.
학교 자율화, 0교시 허용에 대해서만 반대해서는 안됩니다. 교육 현장에 있어서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반인권적인 상황들 - 권위적이고 군사적인 관계들, 성적으로 줄이 세워지는 것, 경쟁이 만연한 것 자체에 대한 성찰에 이르러야 합니다.
물과 의료의 민영화에 대해서도 민영화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의 방식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물의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관리, 의료의 공공성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에 대한 고민들까지 함께 안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점은 광우병과 먹거리 안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로 광우병을 막고 싶다면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축산 방식, 이윤과 돈으로만 재단되는 사회 전체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광우병이라는 특정 질병 자체는 그저 동물성 사료를 먹이지 않는 것으로 조절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윤으로 모든 것이 재단되고, 그것을 위해서 동물들이 빽빽이 사육되는 상황에서는, AI와 광우병처럼, 호르몬과 항생제처럼, 다양한 질병과 위험들이 계속해서 생산될 수 있습니다.
검역 주권에 대한 이야기와 미국 쇠고기에 대한 반대는 광우병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지금의 움직임이, 이윤이 우선인 사회가 어떤 문제를 만들어내는지, 생태주의적인 고려가 없는 사회가 자연 뿐 아니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만들어내는지 이야기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 화석 연료의 지속적인 사용이 만들어 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인 기름 유출의 문제가, 그저 관리되지 사고로 여겨졌고, 한국인 모두의 도움으로 덮여졌던 것처럼, 지금의 광우병 사태가 그저 검역 강화와 미국 쇠고기 수입 저지로만 끝난다면, 한국 사회의 생태주의적 전환은 요원하리라 생각됩니다.
2008년 05월 09일 (금) 07:40:29 김민재 / 서울대 환경동아리 씨알 redian@redi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