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은 쌍용차 희망텐트촌 2차 포위의 날,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해요!
 
광주희망버스는 2차 포위의 날 쌍용차 평택공장으로 출발합니다!
 
신청,문의    010-4221-2560
출발 시각    1월 13일(금) 오후 2시  (오후 6시 후발이 가능한 분들이 있으면 따로 출발합니다)

출발 장소    추후 공지
일정             평택 공장 앞 문화제, 행사 등 참가
                     천막에서 1박 후 다음날 오전 10시 출발
                     (함께 준비하고 싶은 기획은 말씀해주세요^^)

참가비         3만원 (학생은 1만 5천원)
준비물         숙박을 대비한 방한용품, 물, 먹거리,
                     개인텐트(신청자 수에 따라 공동 천막을 준비할 수도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연락주세요)
 
 
04년 쌍용차의 졸속 해외 매각과 09년 중국 상하이차의 경영 포기

 
코란도, 무쏘, 카이런, 액티온 등 SUV(지프형 차)로 유명한 쌍용차. 중국 상하이차는 2004년 10월, 대우그룹 해체 후 은행 채권자들에 의해 관리되던 쌍용차 공장을 헐값에 매입합니다. 당시 해외자본이 기술만을 유출해갈 것이라던 노동조합, 시민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졸속으로 해외매각을 주도하였고, 결국 현실이 되었습니다. 불과 4년만인 2009년 1월 상하이차는 법정관리 신청으로 경영권을 모두 포기합니다. 상하이차의 자본을 투입해서 빚을 갚고 회사를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손을 떼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기술투자를 하겠다던 약속을 깨고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으며, 온갖 방법으로 알짜배기 엔진 기술만 빼간 상태였습니다. 헐값에 사서 살만 발라먹고 뼈를 버린 꼴입니다. 해외자본의 먹튀 사건입니다.
 
정부와 상하이차는 아무 책임 없이 2,646명의 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

 
2009년 4월 8일, 회사를 다른 산업자본에 되팔기 위해 전체 7,200여 명 중 무려 2,646명을 자르는 계획이 발표됩니다. 치열한 자동차 업계에서 기술 이전에만 기를 쓰고 신차 개발은 하지 않았으니 점유율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외국자본 투자 유치라는 명목으로 해외매각을 주도한 정부는 공적 자금 투입 등의 방안을 내지 않았고, 이런 결과를 초래한 상하이차는 회생을 위한 자본을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이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씁니다. 16, 17년 넘게 젊음을 바쳐 일한 공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나가라는 것입니다.
 
77일간의 평택공장 점거와 정리해고 철회 요구 구사대, 용역깡패, 경찰의 처참한 폭력

 
정리해고에 맞서려는 974명과, 정리해고자가 아님에도 함께하려는 60여명의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을 점거했습니다. 평택공장에서는 사측 구사대와, 30억원에 고용된 용역깡패들, 경찰들의 폭력이 난무합니다. 용역깡패들은 쇳덩이인 볼트를 새총으로 쏴서 상해를 입히고, 경찰 헬리콥터는 하늘을 날며 피부에 화상을 입히는 최루액을 뿌렸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고성의 음악을 틀어 잠도 못 자게 만들며, 물과 전기를 끊고 의료진이 출입할 수조차 없게 하였습니다.
 
468명의 무급휴직 전환과 희망퇴직 2,405명, 정리해고 159명, 징계해고 44명

2009년 8월 6일, 77일간 극한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결국 사측과 협약을 했습니다. 974명 중 48%인 468명은 무급으로 휴직을 해서 1년 후 생산물량에 따라 순환 근무를 하기로 약속하고, 나머지 52%는 희망퇴직하거나 하청업체 근무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희망퇴직으로 2,405명, 정리해고로 159명, 징계해고로 44명이 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되었습니다.
 
생활고와 약속 미이행, 절망과 스트레스 죽음의 공장이 되어버린 쌍용차

하지만 해고되지 않은 ‘산 자’든, 무급휴직, 희망퇴직을 한 ‘죽은 자’든 절망에 빠지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40~50대인 희망퇴직자들이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얼마 없었고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심지어 쌍용차 출신이란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생산물량이 증가했을 뿐더러 2010년 11월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에 매각되어 공장이 안정화되고 있음에도, 무급휴직자중 단 한 명도 공장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약속은 전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산 자들은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언제든 짤릴 수 있다는 스트레스를 더욱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년동안 산 자와 죽은 자, 그 가족들을 통틀어 뇌출혈,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거나 자살한 이들이 스무 명에 가깝습니다. 더 이상 부고를 알리기에 버거운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희망버스가 달려가는 그곳, 희망텐트촌에서 새로운 희망을 지핍시다

이런 가운데 쌍용차 노동자들이 2011년 12월 7일 더 이상의 죽음은 안 된다며, 평택 공장 앞에 텐트를 치고 공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모두 함께하자며 희망텐트촌을 만들었습니다. 11년 12월 23일 ‘와락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으로 희망텐트촌 1차 포위의 날 행사를 진행하였고 많은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함께하였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 해고자들과 함께하려 한 수많은 사람들, 희망버스의 힘으로 1년 후 재취업을 약속받았듯, 죽음의 공장이 되어버린 쌍용차에도 새로운 희망을 지펴내야 할 때입니다. 2012년 1월 13일 2차 포위의 날에 평택으로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