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일요일 16일, 부산에서 김주익, 곽재규열사 장례투쟁이 있습니다.
< 보도자료 03. 11. 14(금) >
11월 14일 금속노조,한진중공업 노사 잠정합의
손배가압류 철회, 이후 손배가압류와 부당노동행위 재발방지대책 분명히 세워
김주익 열사 크레인 농성(6/11) 156일차
총파업(7/22) 115일차
김주익열사 사망(10/17) 29일차
곽재규열사 사망(10/30) 16일차
김주익 열사와 곽재규 열사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두 명의 귀한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졌습니다.
11월 13일 오후 3시부터 시작된 제 7차 교섭이 여러번의 정회 끝에 오늘 오후1시
25분 경에 금속노조와 한진중공업 노사는 잠정합의에 도달하였습니다.
이번 잠정합의에서는 두명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손배가압류와
부당노동행위 문제를 해결하고, 이후 재발방지대책을 분명히 세웠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손배가압류를 즉시 철회하고, 이후 노조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양성집 전무, 김재천
전무 해임 등 책임자 처벌문제도 합의했습니다. 이후 비조합원인 관리자들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노조가 제기할 경우 징계방안도 마련했습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조합원들의 고용안정방안에 대해서도 분명히
못박았습니다.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일방적 인위적인 인원조정을 하지 않기로
했으며, 불가피한 인원조정이 있을 경우 노사합의를 분명히 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이 노조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해고 또는 강제사직 한 15명에
대해서도 본인 의사를 존중하는 속에서 복직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불법해고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해고당한 현 노용준 부지회장의 징계도
철회되었습니다.
그 외 임금은 △기본급 10만원(2003년 1월 1일부토 소급)△생산장려금 100만원
△성과급 통상임금 100%로 결정났습니다. 한진중공업은 공개사과를 하기로
했으며, 파업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일절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서도 2003년 8월 22일 합의한 금속노조 중앙교섭 합의안을 내년 3월
1일부로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도 내년 3월 1일부터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진중공업이 대기업중 최조로
산별협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합의 이후 대기업에서도 산별적
노사관계가 정착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구체적인 잠정합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잠정합의 내용]
1. 임금부분
(1) 기본급인상 : 기본급 10만원 ( 단 소급적용시기는 2003년 1월 1일부로
한다.)
(2) 생산장려금 : 타결즉시 100만원을 지급한다. 애도기간은 유급으로 한다.
(3) 성과급 : 타결즉시 통상임금 100%를 지급한다.
2. 단협부분
(1) 갱신 잠정합의안 별첨
(2) 기본협약 및 조합통일요구안 : 전국금속노동조합과 관계사용자가 2003년 8월
22일 합의한 금속노조 2003년 기본협약 및 조합통일요구안 합의사항을 2004년
3월 1부로 적용한다
3. 현안문제
(1) 회사 공개사과
① 대외용: 일간지에 공개하는 공개사과문은 회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내용으로 게제한다.
② 조합제출용: 회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과 분명한 사과의 내용,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 및 이후 재발시 회사에게 모든 책임이 있음을 확약하는
내용으로 공개한다.
(2) 책임자 처벌 문제
양성집, 김재천 전무는 해임한다.
송종국,김종원,김영수,오혁진,김재선,한천수 중징계를 전제로 회사에 일임하며,
오혁진, 김재선은 부산으로 전근배치하고, 정우진, 이상봉, 윤세환 직기장은
직위해제한다. 또한 상기인들은 향후 노사관계에 관여하지 않는다.
(3) 손배가압류 철회 : 회사는 즉시 손배가압류를 철회하고 원상회복하며, 이후
노조 활동을 이유로 손배가압류를 하지 않는다.
(4) 부당노동행위 관련
① 회사는 조합의 자유로운 조합활동을 보장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조합활동을 방해할 수 없다.
② 비조합원이 노동조합 활동에 지배개입하여 조합에서 제기할 경우 반드시
정직(1개월 이상)이상의 징계에 처한다.
③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한 직기장협의회는 해체한다.(사무실 폐쇄 포함.)
이후 직기장과 관리자 등은 일체의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아니되며, 조합에서
제기할 경우 반드시 직위해제 및 정직(1개월 이상)이상의 징계에 처한다.
④ 울산공장 교육생을 원직에 즉시 복귀시키며, 이후 조합과 합의없는 교육을
배치할 수 없으며, 본인 또는 조합과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전환배치시킬수 없다.
(단, 1,2,3차 교육생에 대해서 원직에 복직시키며, 원직이 소멸되었거나,
강제전배되었을 경우 본인의 동의하에 노사합의로 유사직종에 배치한다.)
⑤ 조합원의 탈퇴는 조합의 통보에 따르되, 조합원이 개별적으로 조합탈퇴에
따른 조합비 공제 중지요청을 할 시 회사는 조합의 서면 결정통보에 따른다.
(5) 고용안정확약서 : 회사는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하여 아래와 같이
확약한다.
① 회사는 현 수준의 적정인력을 유지하며 인원의 자연감소시 30일 이내
인원(정규직)을 충원한다.
② 회사는 경영상의 이유로 일방적 인위적인 인원조정을 하지 않는다.
③ 위 내용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한 인원조정이 있을 시 노사 합의한다.
(6) 해고자, 강제사직자 복직
① 이상규, 박성호, 강수열, 이정호(이상 4명 '부산'), 이흥석(이상 1명
'마산')은 2003년 12월 1일자로 복직하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
② 김영실, 조갑률, 박철민, 정판종, 나현균, 위성곤(이상 6명 '마산')은 2004년
7월 1일자로 복직하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
③ 재입사 대상자 박재근, 김경춘, 김용국, 조길표(이상 4명 '부산')은 2003년
12월 1일자로 복직하되,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
④ 박영제, 이정식, 김진숙 복직에 대한 건은 추후에 논의한다.
⑤ 복직 및 재입사자에 대해 원직복직 혹은 유사직종에 복직시키며, 근속년수를
인정하고 그처우는 입사동기생과 동일하게 적용한다.
(7) 징계
노용준 부지회장 징계를 포함한 2002년, 2003년 노조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해고
및 제반 징계는 모두 철회하며, 관련사안에 대해서 원상회복한다.
(8) 2002. 5. 30 무결 및 2002·2003년 간부파업기간 무결 : 무급으로 처리한다.
(9) 각종 고소고발 : 일체의 고소고발을 노사가 타결즉시 취하한다.
(10) 민형사 책임 불문
① 2002, 2003년 교섭 합의타결 시까지 노사간에 의견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제반문제에 대해 노사 쌍방 민형사상 신분상 책임을 일체 묻지 않는다. 제3자에
의한 인지사건은 탄원서 제출등의 선처 조치를 하며,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의거한 징계조치를 하지 않는다.
② 2002년, 2003년 교섭 합의타결 시까지 협력업체에서 제기하는 민형사상의
문제는 회사가 책임진다.
③ 10월 17일 이후 한진중공업 관련하여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제3자에 의한(경찰,
검찰등) 모든 인지사건에 대해서 탄원서를 제출하고, 추후 벌금에 대해서는
회사가 전적으로 책임진다.
④ 체포영장이 발부된 5명과 현재 재판계류중인자의 벌금은 회사가 책임진다.
4. 유족문제
(1) 유족대책
(2) 장례절차 및 비용
장례관련 일체의 제반 비용 및 기타 : 회사는 4억을 지원한다.
장례절차에 대해 회사는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주)한진중공업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은 2002·2003년 노사 단체교섭에 대해 위와
같이 잠정합의했음을 노사교섭위원간 확인서명으로써 확약한다.
2003년 11월 14일
앞으로의 일정
조합원찬반투표
장례일정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는 곧바로 내부논의를 거쳐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곽재규열사 장례위원회'로 전환한 뒤
장례절차에 착수할 것입니다.
참고자료 경과
1. 한진중공업 2002∼2003년 투쟁 경과
○ 2002년 3월 6일 : 관리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빌미로 한 강제사직,
3월20일 생산직으로 확대(650명)
○ 2002년 4월 12일 : 사측, 손배소 및 가압류 제기(4월20일 결정)
○ 2002년 4월 15일 : 사측, 잉여인력 138명 교육실시
○ 2002년 4월 30일 : 희망퇴직 관련 노사합의
○ 2002년 5월 30일 : 강제사직에 항의한 파업전개
○ 2002년 6월 6일 : 금속노조 가입
○ 2002년 8월 21일 : 임금교섭 관련 조정신청(8월29일 조정중지)
○ 2002년 8월 31일 : 교육훈련후 교육관련 노사합의를 어기고 사측, 45명
자택대기발령
○ 2002년 9월 9일 : 쟁의행위 결의
○ 2002년 12월 18일 : 제2차 임금교섭 재개
○ 2003년 1월 20일 ∼ 2월20일 : 부분파업 및 전면파업 전개
○ 2003년 2월 28일 : 2003년 임단협 요구안 사측에 전달
○ 2003년 3월5일∼4월3일 : 노동청 주선으로 3차례 노사 간담회 가졌으나 사측
입장변화 없음.
○ 2003년 4월 7일∼ 5월 14일 : 간부 야간투쟁
○ 2003년 6월 11일 : 지회장, 부지회장 삭발
○ 2003년 6월 11일 밤 11경 지회장, 현장내 3,4도크에 있는 크레인 점거하여
고공농성 전개
○ 2003년 6월 27일 : <악질 한진자본 규탄 금속노조 확대간부 결의대회>
○ 2003년 7월 22일 : 한진중공업 전면파업 돌입
○ 2003년 7월 23일 : 35m 크레인 주변 50여동의 천막 설치, 천막농성 시작
○ 2003년 7월 18∼19일 : 노동부 중재하에 노사협력팀과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징계철회 ▲임금 7만5천원 인상 ▲타결금 50만원 ▲성과급
100%지급 등의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하기로 구두 합의함.
○ 2003년 7월 24일 : 사측, 회사 임원회의에서 구두합의 내용이 승인되지
않았다며 합의사항을 번복함.
○ 2003년 8월 13일 : <금속노조 영남권 확대간부 한진중공업 규탄집회>
○ 2003년 9월 10일 ∼ 13일 : 추석연휴기간에도 천막농성 계속
○ 2003년 9월 11일 : 태풍 매미로 인해 크레인 180도 회전, 김주익지회장
구사일생
○ 2003년 10월 1일 : 한진중공업 투쟁과 관련, 6명의 간부에게 체포영장 발부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 변재규 금속노조 부양지부장, 정홍형
금소노조 부양지부 사무국장
김양수 한진중공업지회 수석부지회장, 김인수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
차해도 한진특수선지회장
○ 2003년 10월 초 : 사측, 150억원여를 민사소송하겠다고 밝힘.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에 합의하지 않으면, 현안문제 논의를 할 수 없다고 주장.
○ 2003년 10월 13일 : 사측, 한진중공업 마산특수선지회 180명 조합원에게
가정통신문을 발송. 10월 15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조합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청구 협박
○ 2003년 10월 14일 : 사측, 특수선을 이용하여 새벽 2시부터 크레인 뒤에 있는
선박 빼냄
○ 2003년 10월 14일 : 노조, 사측에 교섭 요구
사측, 김주익 지회장이 내려와야만 교섭할 수 있다고
교섭 거부
○ 2003년 10월 17일 : 새벽 김주익 지회장 35m 크레인 위에서 밧줄에 목을 매
자결
지회장 크레인 고공농성 129일, 한진중공업지회 파업
88일
※7월 24일, 구두약속 파기 후 회사쪽은 한진중공업지회 현안문제 (▲손해배상
가압류 해제 ▲부당징계 철회 ▲고용안정 협약서 작성 ▲해고자 원직복직
▲2002년 임금 및 단협 갱신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 등)와 관련해서 아무런 입장이
없는 상태임. 특히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불가와 핵심간부 사법처리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진전이 없음. 사측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개인손배가압류를
철회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혔으나, 급여가압류만 해제하고 주택과 퇴직금,
조합비가압류는 계속되고 있음.
2. 한진중공업 노조탄압 요약
- 조합원 수 : 1,265명(부산+마산+울산공장)
- 주 생산품 : 컨테이너선, LNG선 등 중대형 상선, 고속선, 특수선, 선박수리 및
개조
■ 주요 요구
가. 손해배상·가압류 해제
나. 부당징계 철회
다. 해고자 원직복직
라. 고용안정 협약서 체결
마. 2002년 임금 및 단협 갱신교섭 성실히 참가 등
■ 내용
- 2002년 2월 중순경 회사가 인력체질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를 단행해
650여 명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림.(희망퇴직, 권고사직 등등의 이름으로
자행됨.)
- 노사간 체결된 단체협약(제28조)에 따르면 60일전 통보하여 인원정리 및 절차에
관하여 협의하도록 되어 있어 노조에서는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하였으나 회사측은
노사협의로 주장하여 교섭에 불응하고 타결점을 찾지 못함. 이에 노조는
쟁의행위결의, 조정신청, 파업찬반투표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전면파업,
부분파업, 간부파업, 가두시위 등을 전개해 왔음
- 이에 회사는 2002년 5월부터 노동조합비와 김주익 지회장을 비롯하여 20명의
상집간부의 임금, 주택에 대하여 무려 7억4천4백여만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를 행하여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음. 그리고 김주익 지회장 등 간부 14명을
업무방해·폭행 등의 혐의로 사법당국에 고소고발하여 노용준 부지회장은 지난해
6월 한달여의 옥고를 치르고 벌금 400만원의 형을 받았음. 그 외 3명의 간부도
각각 벌금 100만원, 70만원, 50만원의 형을 받은바 있으며, 나머지 고발건에
대해서는 검찰조사 중임. 더구나 회사측이 고소고발한 간부 2명은 경찰수사 끝에
무혐의 처리되기도 하여 회사측이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하여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고소고발부터 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름. 이로 인해 지난 10월 1일
경찰은 고 김주익 지회장을 포함하여 6명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
- 결국 2002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2002년 단체교섭이 현재까지 타결되고 있지
않고 있음. 특히 회사쪽은 2001년 당기순이익 93억, 2002년 7천 6백억 매출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임금동결만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다.
- 이로 인해 노동조합 김주익 지회장이 2003년 6월 11일부터 지금까지 35M 고공
크레인에서 목숨을 건 농성투쟁을 129일동안 전개했고, 2003년 7월 22일부터
지금까지 88일동안 약 600여명의 조합원이 전면파업을 전개해왔다.
- 7월 18∼19일, 노동부 중재하에 노사협력팀과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징계철회 ▲임금 7만5천원 인상 ▲타결금 50만원 ▲성과급 100%지급 등의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하기로 구두 합의했으나 사측은 7월 24일에 합의사항을
번복함.
- 회사측은 '선 조업 후 교섭'을 주장하면서 대화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음. 노조의 교섭 요구에도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생각해보겠다"며 교섭요구를 묵살하고 있었음. 이는 그 동안
한진중공업 사측이 현장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임금교섭에
대하여서도 아무런 이유 없이 불참하여, 오히려 노사간의 불신의 벽을 조장하고,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하려는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노조관을 버리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임.
3. 김주익 열사 사망이후 경과 및 주요일정
10월 17일 아침 8:30경 김주익열사 35m 높이의 85호기 크레인위에서 목을 매고
자결한채 발견.
10월 18일 오전 10:00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동해방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 결성 기자회견( 경과 및
입장발표)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단병호(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민주노동당 대표),
정광훈(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김세균(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오종렬(전국연합 의장), 홍근수(자통협 상임대표), 정현찬(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홍연(전빈련 의장), 손호철(민교협 대표), 한상열(통일연대 상임의장),
서상권(범민련 부경연합 의장)
10월 19일(일) 입관식 : 11:00. 장소 85호 크레인 위.
민주노동당 진상조사단 활동
10월 22일(수) 1차 전국집회
10월 25일(토) 파병반대 집회참가
10월 29일(수) 2차 전국집회
10월 30일(목) 15:50경 곽재규 열사 4도크바닥 투신한 채 발견.
11월 6일(목) 민주노총 1차 총파업 : 10만참가. 부산역 집회 3천명.
11월 9일(일) 10:00 서울 한진해운센터 집회투쟁(2천명) 15:00 전국노동자대회
10만 결집
11월12일(수) 민주노총 2차 총파업 : 15만 참가. 부산역 집회 3천명집결.
11월13일(목) 7차교섭
11월14일(금) 노사잠정합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