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에 대한 한겨레의 평입니다.
헐리우드 영화의 양식 즉 '훈련영화'의 공식을 따라간 결과, 이 영화가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영웅주의적 시각으로 비춰지고 있음을
비판한 글입니다.
[한겨레] 남북관계 연구자로서 <실미도>가 탐탁지 않은 까닭… 역사성 간과해 평화통일 정책의 희생자로 묘사 나는 영화는 쥐뿔도 모른다. 하지만 684 북파부대를 다룬 영화 <실미도>에 대해 쓰려고 한다. 주제넘게 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 연출이나 연기력, 캐릭터 분석이나 평가 등은 하지 않겠다. <실미도>에 대한 영화적 분석은 영화평론가 같은 영상문화 전문가들의 몫이다. 나는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이 글의 목적과도 거리가 멀다.
‘감정의 과잉’ 혹은 ‘역사의 빈곤’ 평소 거의 영화관 출입을 않다가 얼마 전 <실미도>를 본 이유는 분단과 전쟁, 남북관계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마음이 불편했다. 나의 <실미도> 감상평을 요약하면 ‘감정의 과잉’ 혹은 ‘역사의 빈곤’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매우 우호적이다. <실미도>는 개봉 15일째인 1월7일 전국 400만 관객을 넘어서는 등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관객들은 살인적 훈련을 이겨낸 684부대 훈련병들의 불굴의 의지, 끈끈하고 거친 남성들의 동료애에 박수를 치고, 개인의 삶을 무자비하게 허물어뜨리는 국가 권력의 난폭함에 분노한다.
나는 <실미도>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의 판단을 존중한다. 내가 느낀 불편함이 타인이 느낀 감동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실미도>를 보고 난 뒤 극장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10대 두명이 볼일을 보면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야, 김일성 목을 딸 수 있었는데, 아쉽다.” “맞아, 그랬으면 통일도 되고 좋았을 텐데.” 영화 중반쯤 고된 훈련 끝에 살인병기로 완성된 684부대 부대원들이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고무보트를 타고 평양 주석궁을 향해 출동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북파 작전 취소 명령을 듣고 부대원들은 바다 위에서 “제발 북으로 보내달라”고 절규한다. 10대들은 개인을 무자비하게 망가뜨린 국가나 전쟁을 선동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김일성 암살 계획을 취소한 국가의 ‘변덕스러운’ 명령에 대해 화를 내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실미도> 공식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우리는 31명의 람보를 잃었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그토록 중요했던 것인가’ 같은 글들이 올라와 있다. 대중의 관심사에 예민한 한 스포츠신문은 684부대 소대장 김방일(59·영화 속 조 중사 실제 인물)씨를 만나 “만약 김일성
암살 계획이 시도됐다면 반드시 성공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싣기도 했다.
특히 실미도 31명을 영웅시하는 10대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김일성 모가지를 따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는 일부 관객들의 ‘위험한 감동’은 자칫 남북관계를 대립과 갈등으로 돌리려는 수구세력에게 악용될 수도 있다. 숱한 난관을 뚫고 최근 남북관계는 적대와 대립 관계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전제 위에서 교류를 통해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화해와 협력 관계로 돌아서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군 탱크가 평양 주석궁을 밀고 들어갈 때 통일이 이루어진다’며 역사를 뒤로 돌리려는 수구세력들이 있다.
국가주의 비판이 아니라 매몰이었다 강우석 감독은 개봉 전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실미도>는 국가주의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비극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교육대장역을 맡은 안성기가 중앙정보부 간부에게 “중앙정보부가 국가냐”는 말을 하는 장면을 찍을 때 기분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감독은 국가주의를 비판한다고 했는데, 일부 관객은 국가주의에 매몰되어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관객 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영화에서는 ‘윗대가리’의 김일성 암살작전 취소 명령에 맞서 ‘김일성 목을 따게 북에 보내달라’며 훈련병들이 처절하게 울부짖는 장면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실미도를 탈출한 훈련병들이 서울 대방동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진압군인들과 대치하며 최후를 맞는 순간에 남북 적십자 회담을 알리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영화에 나오는 훈련병들과 ‘김일성 목 따기=인생역전’이란 정서적 일치감을 이룬 일부 관객들이 정부의 변덕스러운 평화통일 정책이 실미도 영웅 31명을 죽였다는 ‘함정’에 빠질 장치가 영화 도처에 깔려 있다.
무엇보다 영화는 훈련병들이 실미도로 끌려오게 된 1968년의 적대적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영화 홍보 문구처럼 32년 동안 묻힌 실미도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면, 현역 군인도 아닌 31명의 시민들이 왜 1968년 봄에 실미도로 모이게 되었고 끝내 처절하게 숨지게 됐는지를 주목해야 했다. 실미도 사건의 뿌리는 분단과 이로 파생된 적대적 남북관계이고 1968년의 구체적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1968년 한해는 한국전쟁 이후 휴전 기간 중 가장 격렬한 해였으며, 비무장지대 안팎에서 심각한 사건들이 발생했다.”(주한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정전협정과 관련된 중대사건 일지’ 중에서) 1968년에는 남쪽으로 침투하던 321명의 북한
무장요원들이 사망하고 군사분계선 근처에서 181건의 남북충돌이 벌어졌다. 이 결과 145명의 국군, 18명의 미군, 35명의 민간인 등 198명이 전사하고, 240명의 국군, 54명의 미군, 16명의 민간인 등 310명이 다쳤다. 1968년 남북은 이틀에 한번꼴로 군사분계선에서 대포까지 동원해 교전을 벌이던 사실상 전시상태였다. 만약 일부 관객의 소망처럼 684부대원들이 김일성의 목을 땄다면 남북통일이 됐을까. 끔찍하다. 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당시 한반도 상황을 감안하면 십중팔구는 한반도 전면전으로 번졌을 것이다. 1970년대 접어들어 미국과 중국의 화해 등 동서 냉전의 긴장이 풀어지고 북한의 잇단 대남침투 작전이 실패하자 남북관계는 대결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다. 한반도는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를 간신히 넘기게 된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궁금해졌다. 북한은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최정예 현역 장교 31명을 남파해서 청와대 습격 사건을 일으켰는데, 왜 한국은 군번도 계급도 없는 밑바닥 인생들로 684부대를 꾸렸을까. 684부대 막내 훈련병 민호의 대사처럼 국가는 ‘아무도 모르게 써먹고, 아무도 모르게 없애버릴 계획’이었을 것이다.
작전통제권 없는 나라의 서글픈 현실 또 다른 구조적 원인은 당시 한국군의 전·평시 작전통제권이 모두 주한유엔군 사령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군의 대간첩 침투작전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대응 작전도 유엔군사령부 사령관의 책임 하에 수행됐다. 그런데 1968년 1월21일 청와대 습격 사건과 1월23일 발생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 처리를 두고 한국과 미국이 충돌했다. 유엔군사령부 사령관이 청와대 습격 사건에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다가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에 대해서는 데프콘2를 발령하고 전쟁 직전 단계까지 갔다.
이런 미국의 이중적 태도에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군이 보복공격의 일환으로 북진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당황한 유엔군사령부는 한국군 단독 북진을 막으려고 한국군에 대한 유류보급 통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군에도 최정예 특수부대 요원들이 숱했지만, 중앙정보부가 1968년 4월 실미도에 계급도 군번도 없는 민간인들을 급하게 모아 김일성 암살훈련을 시킨 것은 작전통제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실미도>에는 684부대원 31인의 처참한 운명과 군대의 작전통제권을 이방인에 맡긴 1968년 대한민국의 처연한 모습이 겹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