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안통과는 상식적으로 정말 어이없었습니다. 100분 토론에서 한나라당의원에게 '대통령의 불법자금이 1/10을 넘어서 자랑스러우십니까?'라는 유시민의 말은 참 공감이 가더군요. 똥뭍은 개가 겨뭍은 개를 그야말로 사정없이 나무라는 모양새는 대다수 국민이 어이없어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차떼기당이 저래도 되는거야?'
둘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통령탄핵안이 그들의 입장에서 올바른 선택이었는가하는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한국보수주의 이념정립의 실패와 당내분열로 인한 파국을 맞이하고 있었고,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분당으로 공중분해되는 위기에 직면해있었습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말입니다. 그러한 위기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그들의 선택은 제가 생각하기엔 최악의 실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무현의 화법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이성을 잃게 할만큼 매우 자극적이었지요. 혹시 노무현이 주도면밀한 계획 속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노무현의 치밀함보다는 한나라당의 무식함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나라당은 권력의 그늘아래서 커와서 그런지 노무현처럼 대중을 추수하는 방법에 도통 재주가 없습니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지속적으로 민생파탄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당을 쇄신하여 새롭게 중산층의 열망을 조직하는 것입니다. 차떼기당이라는 딱지도 점점 잊혀지고, 차근차근 일을 풀어가다보면 적절한 기회가 올 것인데, 너무 욕심을 부린 듯합니다. '과유불급'
이유야 어떻든,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초유의 카드를 사용했던 결과로 당장은 주도권을 빼앗고, 당내부의 결속을 꽤했을지 몰라도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음은 곧 드러날 것입니다.
노무현의 파퓰리즘적 호소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절규는 방송을 통해 하루종일 방영되었고, 그 결과는 열린우리당의 급속한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에다 한총련까지 결집해냈습니다. 그 기세는 민주노동당마저도 휩쓸어가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신자유주의에 의한 민중생존권의 파탄에 맞서기 위한 쟁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당장 내일 울산에서 있을 비정규직열사 전국집중판이 어떻게 될지 걱정됩니다. 앞으로 총선에서의 구도는 명확하게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의 구도로 귀결되겠지요.
민중운동세력은 대통령탄핵의 블랙홀앞에서 그야말로 멍~한 상태가 되버렸습니다. '노무현도 나쁜 놈이고, 한나라당도 나쁜 놈이다.'까지는 가능합니다만, 이것이 정치적 허무주의로 귀결되버리는 마당에 민중운동이 설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만 합니다. 참 힘들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