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인파는 누구를 위한 물결인가
안윤길 (노동자 시인) 읽음: 363
작성일: 2004년03월16일 15시44분43초
오래전, 정확히 말해서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 파업투쟁이 생각난다. 그 뜨거웠던 여름, 아스팔트를 달군 치열했던 파업은 우여곡절을 거쳤다. 당시 김광식 집행부는 정리해고를 받아들였고 그때, 중재위원으로 내려와 있던 노무현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볼을 푸들푸들 떨면서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선을 바꿔야 한다."고.
나는 그 장면이 너무도 섬뜩했기에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의 그 얼굴표정이 내게는, 이제 한국의 노동운동은 전투적, 계급적 운동에서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국민적 화합적 노동운동으로 바꿔야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너무도 섬뜩했다. 그런데 그 노무현이 대통령까지 되자 더욱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이후로 민주노총의 주도세력인 한국의 대공장 노조들은 이기주의, 조합주의로 흐르면서 관료화되어 오늘날 대공장의 현장은 철저히 망가져 계급적인 정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뿐인가. 대공장의 영향은 결국 중소공장 나아가 전국에 확산되어 정리해고가 판치더니, 결국은 대량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말았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것이 한국자본주의의 생리인가. 더러운 초국적자본, 미제국주의엔 꼼짝 못하는 비굴한 인간들이 애꿎은 노동자 민중에겐 철저히 악랄하고 착취적이다. 그 착취에 눈이 뒤집힌 자본가와 노무현정권의 횡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분신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는 다신 뒤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한해다. 배달호에서 이현중, 이해남, 농민 이경해, 김주익, 이용석, 그리고 해를 넘겨 박일수까지 이어진 열사들의 행진 ! 이것이 누구의 작품인가?
비정규직으로는 너무나 힘에 겨워 못 살겠다고 부르짖는 노동자들 입에 해고 딱지를 처먹이고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입에다가 수십 억씩 가압류를 처넣은 주범은 누구인가? 견디다 못해 온몸에 신나를 뒤집어쓰고 분신하는 노동열사들의 행진 주범은 노무현정권이 아니던가? 누군가 표현했듯이 결국 조폭들의 나와바리 전쟁(탄핵정국)으로 이어지는가. 시방 광화문을 가득 메우는 인파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물결인가.
지금 미포만 울산대학교병원 영안실에는 박일수 열사가 싸늘하게 누워있다. 현중 재벌은 하청노동자들이 '비정규직도 인간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크레인을 점거했다는 이유만으로 크레인에 오른 하청노동자 3명을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두들겨 패 '떡방티'를 만들어 놓았고 한 명은 현재 구속된 상태다. 현중 재벌은 지난해 퇴사자라며 어용노조를 동원해 박일수 열사를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분신대책위'는 어용노조와 협상을 하라며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하청노동자 권익을 보장하라며 연일 각 정문을 돌며 집회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목적을 가진 불순세력이니 뭐니 하며 요란을 떨어댄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회사를 지키기 위한 '자원봉사단'이란 이름으로 구사대를 발족하여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고 있다. 참으로 대단한 현중 자본이다.
박일수 열사는 이렇듯 죽어서도 하청노동자로 차별을 받으며 기막히게도 자본가 국회의원 만들기(?)에 이용당하고 있다. 싸늘한 영안실에 드러누워서 말이다. 우린 이토록 절박한데 무정하게도 이놈의 탄핵정국이란 놈은 우리에게서 관심조차 뺏어가고 있다.
이런 시기에 탄핵정국이라고 우리도 덩달아 광화문에 나가 춤을 춰야하는가? 오늘날 노동자민중의 참담한 현실을 양산한 주범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단지 노무현정권이고 또 노무현을 탄핵한 한-민-연을 비롯한 자본세력들 뿐인가. 그럼 우린 그동안 뭘 했던가. 오늘의 이 정국에 굳이 책임론을 펼친다면 우리는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 노파심은 광화문의 저 인파의 물결이 결국은 아직도 집권장악을 못한 노무현의 집권을 더욱 굳혀주고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의석 장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모인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단지 나는 저 광화문의 인파의 물결이 이 해괴한 세상, '친노세력', '반노세력' 가릴 것 없이 싹 쓸어 엎어버리는 물결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