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탄핵?!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읽음: 516
작성일: 2004년03월16일 15시43분15초
2002년 말 대선을 하루 앞두고 정몽준 의원은 전격적으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그 결과 적지 않은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노후보 지지로 돌아서고 말았다. 이는 권영길 민주노동당후보와 노무현 민주당후보간의 차이를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개혁의 정도의 차이로 밖에 각인시키지 못했던 민주노동당의 우경화 된 선거전략과 관련이 적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정 의원은 의도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역시 '자본가출신 정치인'답게 결정적인 순간에 진보정당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로부터 일 년 남짓 지난 2004년 3월 현재, 우리 사회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노무현대통령 탄핵으로 엄청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탄핵은 상당부분 노 대통령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 법학자의 표현대로, "파리 잡으려고 도끼 휘두르는 꼴"의 코미디이다.
한나라당 등은 얼마 전 노 대통령이 시민혁명을 이야기하자 이를 좌파적 발상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결국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한 이번 탄핵발의를 통해 스스로 시민혁명을 선동, 교사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총선을 앞두고, 경기 종료 5분전에 5골 짜리 자살골을 넣고 만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촛불시위를 불러 일으켜 승패를 갈랐던 효순·미선 사건, 그리고 막판 노무현 지지세력의 결집과 동정표를 유도해 마지막 승기를 잡게 해준 정몽준 의원 지지철회와 같이 총선에서 노무현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동정표를 유도해주는 계기를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앞장서서 노 대통령에게 헌납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려되는 것은 이처럼 한심한 탄핵조치로 정치지형이 완전히 반노대 친노의 대결, 즉 꼴통보수 대 합리적 보수의 대력 구도로 전환되면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 들이 이번 총선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탄핵사태는 오는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득표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은 역시 끝까지 진보정당에 물을 먹이는 꼴 보수 세력임을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가 진짜 우려되는 것은 이번 탄핵으로 수구세력으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받는 순교자로서의 노무현이라는 이미지가 과잉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이라크에 두 차례나 파병을 하고, 노동자들의 연이은 분신과 자결을 야기시켜 왔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노동자들을 질책하고, 한. 칠레 자유무역협정을 강행하는가 하면,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교육정보행정시템(NEIS)의 강행을 지시하였다. 부안 핵 폐기장 설치의 일방적 추진 등으로 환경을 파괴하려 하고 주민자치를 침해해 온 당사자인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현재 망각되고 있다.
민중생존권과 평화와 같은 문제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요즈음 쟁점이 되고 있는 부패문제만 해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심심하면 리무진 대 티코니, 10분이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느니 하면서 한나라당의 차떼기에 대한 자신의 상대적 깨끗함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지난 대선에서 후보를 냈던 진보정당에 비교할 때는, 노 대통령의 불법정치자금은 810억 원 대 113억 원이 아니라 113억 원 대 빵이다. 즉 노 대통령은 진보정당에 비해 10배 정도가 아니라 무한대만큼 많은 불법자금을 쓴, 다시 말해 진보정당후보에 비해 무한대만큼 부패한 정치인에 불과하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은 잘못된 것이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탄핵이 필요한지 모른다. 즉 노 대통령이 그동안 저지른 평화파괴, 민중생존권 파괴, 인권파괴, 환경파괴, 그리고 부패에 대한 민중탄핵 말이다.
사실 제 1차 이라크파병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라크파병이 헌법에 규정된 평화준수 조항을 어긴 위헌적 조치라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두 말 할 필요 없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특히 한나라당은 부패한 정치집단으로, 노 대통령을 탄핵할 자격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민중은 다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철회돼야 하지만, 그렇다고 노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준 반민중성, 반민주성까지 함께 잊어 버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