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사태는 유고민중의 힘으로
미국의 독선과 밀로셰비치의 차이는 없다.
클린턴은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에 대한 사과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러나 비극적인 실수와 계획적인 인종청소 사이에 명확한 구별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 이전에 있었던 25차례의 오폭과, 두달여 나토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살상, 코소보 알바니아인 수십만명을 난민으로 전락시킨 것도 ‘비극적인 실수’인가? 나토 회원국인 터키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쿠르드족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과, 그들이 훈련시키고 자금을 대준 세력에 의해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범죄행위가 밀로셰비치의 ‘계획적인 인종청소’와 무엇이 다른가?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이 지역분쟁에 개입하면서 내놓은 ‘인도주의’라는 수사는 언제나 선별적이다. 때문에 군사적․경제적, 혹은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등장하는 군사적 패권주의는 밀로셰비치의 인종주의적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심판받아야 한다.
유고사태의 발단, 그리고 최대의 수혜자는 밀로셰비치이다.
1996년~1997년 겨울, 유고에서는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10주 동안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야당측의 승리로 끝난 선거를 무효화시킨 것이 발단이 되었던 이 시위는 밀로셰비치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투쟁임과 동시에 서구 시장주의 경제진입이 가져온 부정적 후과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1980년 티토사망 이후 구유고연방은 정치적 불안과 함께 경제위기에 빠져들었다. 임금동결, 정부예산 감축, 민영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전제로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지금의 한국과도 같이 노동자 정리해고와 복지정책 축소로 드러났으며, 여기에 구유고연방이 자랑하던 무상의료와 공교육체제마저 파괴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경제적 파탄 상태가 가장 심했던 지역이 현재의 신유고연방 지역이며, 이러한 경제위기는 또한 개별 공화국들이 자본주의로 긴박당하면서 분리주의를 선언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89년 세르비아 공화국의 대통령에 오른 밀로셰비치는 분리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와 내전을 벌이고,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등 국민들의 불만을 ‘세르비아 민족주의’로 봉합하려 하였다. 공식적인 발표로도 실업률이 27%에 달하고 22만명이 극빈상태에 놓였으며, 이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 거의 폭발상태에 이른 상황을 교묘하게 인종적 적대감으로 무마시켰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의 나토공습은 밀로셰비치의 독재에 저항하고 코소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던 유고 내 민주세력들의 입지를 축소시켰으며, 그리하며 밀로셰비치를 이번 전쟁의 최대수혜자로 만들었다.
사태해결의 주체는 유고민중이어야 한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고통을 접한 세계 진보진영이 이들의 독립을 옹호했음은 물론이다. 일부에선 현 사태를 세르비아군에 의한 인종학살로만 보면서, 코소보 해방군에 무조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인종간 분쟁은 단지 그 자체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해방운동 역시 언제나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코소보해방군처럼 강한 적과 대적하기 위해 강대국에 의지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 코소보해방군은 또한 밀로셰비치에 저항하는 세르비아내 민주세력과 동맹하기보다는 알바니아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지원을 구하기도 했다. 이것의 운명적 결과는 암시장 거래로 생계를 유지하고 후세인과 서방사이를 저울질하면서 마피아로 타락한 쿠르드민족 해방조직과 다를 바 없다. 점점 나토의 부속이 되어가는 코소보해방군이 알바니아 민중에게 희망일 수 없으며, 희망이어서도 안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유고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나토가 발칸에서 조건없이 철수하고 자생력있는 유고민중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건강한 민주세력에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클린턴은 중국대사관 오폭 사건에 대한 사과성명을 발표하면서 “그러나 비극적인 실수와 계획적인 인종청소 사이에 명확한 구별을 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 이전에 있었던 25차례의 오폭과, 두달여 나토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살상, 코소보 알바니아인 수십만명을 난민으로 전락시킨 것도 ‘비극적인 실수’인가? 나토 회원국인 터키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쿠르드족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과, 그들이 훈련시키고 자금을 대준 세력에 의해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범죄행위가 밀로셰비치의 ‘계획적인 인종청소’와 무엇이 다른가?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이 지역분쟁에 개입하면서 내놓은 ‘인도주의’라는 수사는 언제나 선별적이다. 때문에 군사적․경제적, 혹은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등장하는 군사적 패권주의는 밀로셰비치의 인종주의적 파시즘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심판받아야 한다.
유고사태의 발단, 그리고 최대의 수혜자는 밀로셰비치이다.
1996년~1997년 겨울, 유고에서는 수십만명의 시위대가 10주 동안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야당측의 승리로 끝난 선거를 무효화시킨 것이 발단이 되었던 이 시위는 밀로셰비치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투쟁임과 동시에 서구 시장주의 경제진입이 가져온 부정적 후과들에 대한 저항이었다.
1980년 티토사망 이후 구유고연방은 정치적 불안과 함께 경제위기에 빠져들었다. 임금동결, 정부예산 감축, 민영화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전제로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던 것이다. 이는 지금의 한국과도 같이 노동자 정리해고와 복지정책 축소로 드러났으며, 여기에 구유고연방이 자랑하던 무상의료와 공교육체제마저 파괴되자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였다. 경제적 파탄 상태가 가장 심했던 지역이 현재의 신유고연방 지역이며, 이러한 경제위기는 또한 개별 공화국들이 자본주의로 긴박당하면서 분리주의를 선언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89년 세르비아 공화국의 대통령에 오른 밀로셰비치는 분리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 및 크로아티아와 내전을 벌이고,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하는 등 국민들의 불만을 ‘세르비아 민족주의’로 봉합하려 하였다. 공식적인 발표로도 실업률이 27%에 달하고 22만명이 극빈상태에 놓였으며, 이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 거의 폭발상태에 이른 상황을 교묘하게 인종적 적대감으로 무마시켰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의 나토공습은 밀로셰비치의 독재에 저항하고 코소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하던 유고 내 민주세력들의 입지를 축소시켰으며, 그리하며 밀로셰비치를 이번 전쟁의 최대수혜자로 만들었다.
사태해결의 주체는 유고민중이어야 한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고통을 접한 세계 진보진영이 이들의 독립을 옹호했음은 물론이다. 일부에선 현 사태를 세르비아군에 의한 인종학살로만 보면서, 코소보 해방군에 무조건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인종간 분쟁은 단지 그 자체에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민족해방운동 역시 언제나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특히 코소보해방군처럼 강한 적과 대적하기 위해 강대국에 의지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 코소보해방군은 또한 밀로셰비치에 저항하는 세르비아내 민주세력과 동맹하기보다는 알바니아 우익 민족주의자들의 지원을 구하기도 했다. 이것의 운명적 결과는 암시장 거래로 생계를 유지하고 후세인과 서방사이를 저울질하면서 마피아로 타락한 쿠르드민족 해방조직과 다를 바 없다. 점점 나토의 부속이 되어가는 코소보해방군이 알바니아 민중에게 희망일 수 없으며, 희망이어서도 안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유고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나토가 발칸에서 조건없이 철수하고 자생력있는 유고민중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건강한 민주세력에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