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0.8-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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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사회운동의 재편이 필요하다

정종권 | 정책기획국장
정세와 정치지형, 그리고 시민운동

'정세'라는 개념과 '정치지형'이라는 개념을 구분해보자. 정세가 해당 시기 계급관계의 갈등, 투쟁의 특징과 양상을 표현하는 개념이라면, 정치지형이란 계급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정치지질학적 특징을 의미하며, 중장기적 시간의 결과로 퇴적되고 응집되어 온 사회적 질서(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흔히 극우반공체제, 국가보안법 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을 지칭하는 것이며, 지배집단이 권력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고 사회를 관리하는 메커니즘과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다.
정세와 정치지형은 서로 무관한 관계일 수 없다. 정세에 대한 분석과 실천계획 속에서 정치지형을 변화시키고 전복시킬 수 있는 투쟁의 방향과 계획을 설정해야 하며, 그 역의 관계도 성립되어야 한다.

'정세의 변화와 정치지형의 전환, 계급관계의 전복', 이 세가지 범위는 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현재 정세에 대한 분석과 투쟁의 계획이 정치지형의 변화를 추동하는 계획 속에 배치되어야 하며, 그 궁극성은 계급관계의 전복을 지향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점진적이거나 관념의 계획처럼 순차적이고 질서정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실의 변화가 가지는 역동성과 예측불가능성은 근본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략과 계획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지형의 의미에서 '정치세력화'란 좁게는 민중운동의 정치적 이해를 합법공간에서 대변하는 주체의 형성과 정치지형에 대한 개입을 의미한다. 그리고 넓게는 기층 민중운동과 정치적 전선운동(사회운동을 포함하여), 진보정당운동의 '정치적 벨트'가 하나의 독자적인 실체로서 부각되면서 정치정세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적 실체화'를 이루어내는 과정과 경로에서 다양한 노선과 경향이 존재할 수 있다.


정치적 실체로 등장한 시민운동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의미는 이러한 정치지형의 맥락에서 사고되어야 한다. 시민운동의 주장과 정책들, 각각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사회적 의미와 효과를 분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시민운동의 전체적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시민운동은 한국 사회의 정치지형에서 자유주의적 정치(!)집단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배·피지배의 갈등과 격돌의 장에서 중재자이자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담보하는 사회적 실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이 역할을 수행했던 세력, 개인, 집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의미에 불과하였으며 그 결과 관변집단화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 시민운동은 과거 민중운동이 그러했던 것처럼,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독립된 하나의 사회적 실체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파괴력과 정치적 영향력은 과거의 민중운동을 능가하고 있다. 시민운동 전체를 자유주의와 등치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 효과는 한국 사회에서 부재했던 또는 억압되었던 자유주의적 정치담론을 실체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사회적(정치적) 실체로서 시민운동의 등장이 가지는 정치지형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있다. 시민운동의 등장이 예외적이고 비(非)본질적 의미에 불과하다면 각각의 현안과 입장, 정책과 실천에 근거해서 '일면 연대, 일면 비판'의 입장을 견지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내포한다면, 그 변화의 의미를 읽고 분석하고 실천방침으로 구체화시켜야만 한다.

정치지형에서 이들은 보수정당의 지배구조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실체로서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이 아닌 '시민적 정치세력'이 하나의 권력으로 부상했으며, 이들의 정치적 특징인 합의주의와 개혁주의가 보수정치집단과 민중진영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계급투쟁과 갈등의 본질적·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갈등의 합리적 조정과 관리가 주요한 정치활동의 패턴으로 등장하였으며, 이를 담당하는 조직적 실체가 등장하였다. 이 점이 과거의 이데올로기적 조작/관리와 다른 점이다. 이는 두 가지 실천적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는 민중적 정치세력과 시민적 정치세력의 경쟁과 갈등이 본격화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점에서 양자는 민주진보운동의 헤게모니를 다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투쟁과 갈등을 합리화시키려는 지배구조의 완충장치를 어떻게 돌파하면서, 사회적 모순의 근본적 해결을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시민운동의 정치지형상 의미는 민중운동의 해체와 개량화를 위한 구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투쟁의 급진적 전개를 가로막는 완충장치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개별 시민운동에 대한 태도와는 별도로, 시민운동적 담론에 대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태도와 입장을 견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결국 시민운동의 내적 논리를 해체시키고 재구성하는 문제이다.


사회운동(시민운동)의 스펙트럼: 내부의 전선

현재 사회운동(시민운동)의 내부 지형은 경실련을 핵심으로 하는 시민단체협의회, 참여연대를 핵심으로 하는 개혁적 중간단체, 그리고 민족민주운동이라 불리우는 세력과 급진적 성격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사회단체들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경실련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또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세력으로 자임하는 세력이 핵심 부위에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운동 초창기의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민중운동에 대한 배제와 해체를 지향하고 시민운동 담론을 정립하려는 세력이다. 그러나 이들의 담론은 신자유주의적 담론이며, 현 정부와의 정책적 파트너쉽을 공유하고 있는 세력이다.
반면 1990년대 후반부터 시민운동의 주도세력으로 부각하고 있는 참여연대의 경우는 보다 복합적이다. 이들은 명시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액주주운동을 비롯하여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대해 이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와 정책을 본다면, '신자유주의 반대'는 하나의 수식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며 반(半)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또는 이들을 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헤게모니그룹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경실련과 달리 민중운동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나타내지 않으며, 오히려 진보적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연대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의 변화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현실이 존재한다.

1990년대 초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대변되는 정치지형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하지 못한 민중운동은 조직력과 영향력이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경실련류의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의 역사적 종결을 선언하고 시민운동으로의 대체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은 문민정부의 실정과 탄압으로 인해 다시 자신의 전열을 정비하고 투쟁의 질서를 재구축하기 시작하였다. 노동운동은 과거 노조간 협의회 수준을 넘어 민주노총이라는 전국 중앙조직을 건설하는 등 오히려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며, 농민운동과 학생운동도 조직적 복원을 이루어내면서 1990년대 초반 민중운동의 위기 국면을 일정 정도 극복해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시민운동이 민중운동에 대해 경쟁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표명한다는 것은 조직적, 대중적 근거를 갖지 못하고 상층의 여론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에게는 하나의 도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민중운동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전환하여 '민중운동에 대한 개입과 운동의 논리구조를 시민운동적으로 전환시키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 참여연대류의 태도가 가지는 의미이다.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 내의 개혁적 중간세력들은 2000년 4·13총선에서 400여개의 단체들이 결집하여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하였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이었다. 사회운동 내부의 노골적 신자유주의 세력과 반체제적 사회운동세력을 주변화시키면서 개혁주의적 세력의 헤게모니가 확립된 것이다.

이들 프로그램의 특징은 '권력 감시와 제도 개혁, 계급적 문제에 대한 침묵'으로 집약될 수 있다. "문제의 출발점인 구조조정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가 아니라, 구조조정이 낳고 있는 파괴적 결과를 순화시키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제도개혁에 집중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현실적 역할"이라는 민주노총 한 활동가의 지적과 비판은 정당한 것이다.
민족민주운동과 급진적, 진보적 사회운동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영향력의 쇠퇴를 서서히 경험하고 있다. 이들을 반체제적 사회운동이라고 통칭할 수 있다면, 이들 반체제 사회운동은 시민사회 영역에서 하나의 정치적 블록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산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동, 인권, 보건의료, 민족문제 등 각각의 영역에서 원칙적 목소리를 내고 독자적 실천을 조직하고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경향성을 창출하지 못하고 정치적·조직적 블록으로 발전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 내부의 지형에 대한 고민은 시민운동 그 자체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운동과 민중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전체 진보운동에 대한 정치적 지도력과 영향력이 어디에서 형성되는가에 있다. 1980년대 군사독재적 상황에서 운동의 지도력이 비합법 정파와 같은 정치서클과 재야의 명망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한 정책집단과 정치그룹에서 형성되고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운동의 내부 지형과 이데올로기적 경향의 흐름, 헤게모니 집단의 정체성은 단순히 시민운동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민중운동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기에 시민운동 내부의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해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 개혁적 중간세력이라는 헤게모니 집단의 본질과 성격에 대해 공통된 인식상에서 대응 방침을 공유하는 것, 반체제적 사회운동의 조직적·정치적 단결과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특정 운동 내부의 구분 정립이라는 수준을 넘어, 전략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시민사회(사회운동)의 정치적 블록화가 의미하는 것

개혁적 중간세력들은 총선시민연대에 대한 자족적인 평가에 근거하여 중장기적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자신들만의 계획이 아니라 한국 사회운동 전체를 재편하면서, 운동진영 내 중심 프로그램으로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제도개혁의 줄기를 정치제도 개혁과 사회보장제도 개혁으로 나누어, 주요한 민중조직을 포섭하여 진행하려는 계획인 것이다. 제도개혁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며, 불필요한 활동도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개혁 투쟁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다. 제도개혁의 의미를 사회적 모순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면서, 모순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구조와 사회체제의 문제를 탈각시키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 문제가 증폭된다면 계급투쟁의 발전과 병행이 아닌, 계급투쟁의 관리집단으로, 사회적 모순의 보완장치로서의 시민운동과 제도개혁은 더욱 공고화 될 것이다.

하반기 정국의 핵심의제는 양축으로 나누어진다. 우선 금융과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비정규직화로 대변되는 노동의 극단적인 불안정화를 낳고 있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후과로 나타나고 있는 국가보안법, 주한미군 등의 문제가 두번째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개혁집단의 연대 기구들은 하반기 정세의 핵심변수들에 대한 분명한 태도와 입장, 실천의 계획을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적 장치를 개선하고 정비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구조조정의 사회적 부작용과 파괴적 효과를 줄이고 보완하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세분석이 무의미해지고, 정세의 핵심변수를 중심으로 투쟁과 실천의 계획을 설정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력해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참여연대가 주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칭)시민사회개혁연대', '(가칭)사회권연대', '2000국감시민연대' 등 사회적·정세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지난 7월 20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는 <노동운동, 시민운동, 진보정당의 발전전략 공동워크샵>을 가졌다. 이 토론에서 주발제자인 참여연대의 김동춘 교수는 "노동+시민+정당이 국가보안법, 정치관계법 개폐운동을, 노동+시민이 우리사주 경영참가운동을, 노동+정당이 비정규직 보호와 조직화운동을, 시민+정당이 지자체 선거 공동대응"을 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 자체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시민운동의 위상 자체를 준(準)정당조직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은 읽을 수 있다. 사회운동 자체는 정치적 성격을 띨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 탈정치적 비정치적이라고 규정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방식인 것이다) 정치성 자체를 문제삼을 수 없다.

문제는 어떠한 정치, 누구의 정치, 무엇을 지향하는 정치인가에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적 중간세력들의 정치관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이다. 정치의 내용과 정책과 이념성을 평가의 기준에서 탈각시키면서 투명함과 합리성, 참신함이라는 형식적 측면을 절대가치화하는 것이 바로 시민운동의 정치이다. 이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해결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의 합리적·제도적 타협과 조정을 지향하는 정치이며, 각종 정치집단(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보수와 진보를 뛰어 넘어)에 대한 압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이자, 계급적 갈등과 대립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는 정치가 바로 개혁주의의 정치이다. 이러한 개혁적 중간세력의 헤게모니는 시민운동 내부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위의 개혁연대의 경우처럼 때로는 진보정당을 파트너로 하고, 때로는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하여 자신의 프로그램을 실행하려고 한다. 이것은 개혁적 중간세력(나는 이를 자유주의적 경향이라고 규정한다)의 정책 프로그램과 정치적 경향성이 정당운동과 대중운동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역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시민단체를 자신의 대외적 정치 창구로 삼으려는, 대중조직과 정당의 활동패턴을 형성하기도 한다.
시민운동 내부(이것은 우리 사회와 진보운동 전체의 내부이기도 하다)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일정하게 수렴되면서 큰 줄기로 형성되고 있는 현실, 이 중 우익적 흐름과 중간파 흐름이 하나의 물질적이고 정치적 실체로서 등장하고 있는 현실. 지금까지의 서술은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반체제 운동의 흐름들은 분산되고 고립되어가면서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하나의 문제제기이다.


급진적 사회운동세력의 정치적 블록화를 형성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발전 양상은 일반적으로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분화의 방향으로서, 운동 영역과 운동 주제를 더 전문화시키면서 정책과 실천을 집중하고 예각화시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수렴의 방향으로, 정치적 경향성과 이념적 지향성의 측면에서 다양한 부문과 영역의 개별 운동들이 연대하고 수렴되는 것이다. 즉, '운동의 전문화와 정치적 블록화', 이것이 현재 사회운동의 두가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주거운동, 실업운동 등의 운동단위로 분화되고 전문화되어 가는 것이 운동의 현실이며, 여기서 시민운동적 논리가 낳은 부작용의 하나가 '운동의 전문가주의'이다. 운동 주체의 능력과 시각을 전문화시키고, 보다 심층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전문화는 긍정적인 점이다. 그러나 운동의 과제를, 해당되는 전문집단(개인, 단체)의 운동으로 제한시키는 전문가주의는 타파해야 할 요인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6·15 공동선언의 사회적 후과로서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 문제 등 남북관계의 요인들이 하반기의 핵심적 정세변수라고 언급하였다. 이는 구조조정이 노동운동의 문제로,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 문제가 통일운동과 인권운동의 문제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민중운동, 진보운동 전체의 과제인 것이다. 하반기 정세전망 속에서 투쟁과제와 목표를 공유하였다면 이것은 특정 부분의 몫이 아니라 운동 전반이 공유하고 책임져야 하는 몫이며, 다만 실행하는 방식과 경로가 다양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시민단체협의회, 총선시민연대, 개혁연대와 같이 중장기적 목표를 공유하는 연대의 틀이 만들어지고 확대되고 있는 것도 사회운동의 현실이다. 이것은 특정한 공동의 투쟁과제를 위해 한시적으로 조직되는 특별기구나 대책기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는 각각의 분화된 영역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운동들이 중장기적인 '정치적' 목표를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정치적 블록'으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하반기 정세와 정치지형, 사회운동 내부의 지형 변화 속에서 우리는 실천 과제를 공유하고, 이를 공동으로 책임지고 실천할 수 있는 '정치적 블록'을 사회운동 내부에서 형성할 필요가 있다(이는 시민사회의 내부적 분화인 동시에 시민사회 담론의 해체를 지향한다). 물론 이것은 사회운동 내부의 급진적·진보적 블록을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기본 대중조직과 정당을 포함하는 민중운동의 전선운동을 어떻게 형성하고 추동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과 맞물려 있다. 신자유주의 블록과 반(半, semi)신자유주의 블록에 맞서 반(反, anti)신자유주의 블록을 형성하는 것. 또는 신자유주의 시민운동의 비(非)헤게모니 그룹과 헤게모니 그룹에 맞선 신자유주의 반대 그룹을 형성하는 것.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수식어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동의 정치강령과 실천 방향을 확립하고, 주요한 영역과 지점에 대한 원칙적 태도와 입장을 공유해야만 한다. 또한, 이러한 공동의 정신에 근거하여 조직의 형식과 틀을 만들고 전체 사업의 골격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실제 내용은 선험적으로 주어져서는 안된다. 경향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하나의 정치적 요구와 목표로 정식화하고, 이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구체화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정치적 블록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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