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사회운동
  • 2014/12 창간준비2호

공무원연금 개악을 둘러싼 쟁점들

  • 김태훈 사회진보연대 정책선전위원
연금 삭감 논란에도 공무원의 인기는 여전하다. 10월 지방7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127 대 1을 기록했다. 
 
공무원연금 문제는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바람직하지 않고 절차도 큰 문제가 있지만, 진보진영이 공무원연금 지키기를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싸움으로 보고 지지해야 하는가? 진보진영 내에서도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후상박의 원리를 적용(연금액이 높은 고위직 공무원의 연금을 더 많이 삭감)해서 해결하자는 주장과 재정적자는 정부와 자본의 책임이므로 삭감을 전제로 한 양보론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국민과 공무원 모두를 설득하기에는 충분한 근거나 대안이 부족해 보인다.   
 


정부 여당 공무원연금 개혁의 문제점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는 근거는 국가재정 안정화, 하후상박 제도 설계,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제고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 공무원연금 구조와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재정적자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공무원연금은 소득비례 연금이라 하위직급과 고위직급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전혀 없어서 고위직에게 유리하며, 국민연금에 비해 낸 것보다 더 많이 받아간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개혁안은 다음과 같다. 현직 공무원의 경우 기여금은 더 내고 연금은 덜 받는 방식으로 바꾸고, 지금 연금을 받고 있는 퇴직공무원은 연금의 일부를 삭감한다. 신규 공무원의 경우는 국민연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기여금을 내고 연금을 받는다. 연금액 산정 시 소득재분배 기능을 도입한다. 민간의 39퍼센트 수준인 퇴직금은 대폭 상승시켜서 퇴직연금으로 분할 지급한다. 
 
 
 
이것은 명백한 개악이다. 공무원연금 제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후 소득의 적정성에 대한 고려, 재직 시 낮은 임금과 기본권 제한을 보상하는 공무원연금의 특수한 성격에 대한 고려가 없다. 현재 개혁안은 새누리당이 제시한 취지에도 합당하지 않다. 공무원연금 적자 규모는 감소하지만 퇴직금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국가가 부담할 총재정을 따져보면 재정 절감효과가 낮아진다. 소득재분배는 바람직하지만 하위직 공무원도 삭감을 적용받기 때문에, 재분배되는 금액이 너무 낮아 사실상 ‘하박상박’이다. 형평성의 경우 상향평준화도 가능하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은 점차 낮아져 2027년에는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이 40퍼센트까지 줄어들 예정인데, 이를 중단하고 오히려 소득대체율을 높여 공무원연금과의 격차를 줄이는 방식도 가능한 것이다. 

새누리당의 개혁안은 공무원의 노후를 공무원연금을 통해 보장하는 방식에서 국민연금 수준의 공무원연금과 사적퇴직연금의 2층 구조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 변화의 이익은 공무원들의 노후 불안을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판매의 기회로 삼을 재벌 민간보험 회사가 가져간다. 결국, 작금의 공무원연금 개악은 신자유주의 연금 개혁 모델을 그대로 따르면서 공무원에 대한 원한의 감정을 동원하여 유동적 중간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사수 투쟁으로 충분한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비롯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는 공무연연금 개악 저지와 공적연금 강화를 내걸고 반대 투쟁을 조직했다. 그 성과로 11월 1일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집회에 12만 명이 참가해 여의도를 가득 메웠다. 이러한 투쟁은 공무원연금 삭감이 아니라 국민연금, 기초연금을 포함하는 공적연금 전반의 적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 지형을 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투본과 간담회를 열고, 정부와 여당에 ‘공적연금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요청했다.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 시 합리적 연금개혁에 동참한다는 것도 밝혔다. 노후 소득 보장의 적정성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조화시키는 다른 전문적 해법을 사회적 합의체를 통해 찾아보자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입장으로 볼 수 있는 김진수 교수의 제안은 추가적 부담 없이 퇴직자를 포함한 모든 공무원연금을 15퍼센트씩 삭감하고, 상하한선을 150만~350만 원으로 해 하후상박을 강화하는 방식이다. 

노동자연대 장호종 활동가는 이 제안을 ‘하위직 공무원 노동자의 애환에 공감하면서도 정부의 재정 안정화 논리를 절반쯤 받아들이는’ 양보론으로 평가한다. 하후상박 논의에 대해 최하층 일부에 생색을 내며 전체 복지 수준을 하향 평준화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는 전형적 신자유주의 수법이라고 비판한다. 일단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에 서면 연금을 상대적으로 더 받는 노동자에게 희생을 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공무원 노동자들이 분열된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파상 공세를 막기 위해 단호한 투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경한 투쟁은 공무원 노동자의 내부적 단결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 계급의 단결에도 유의미해야 한다. 현행 공무원연금을 사수하자는 입장으로는 공무원이 아닌 다른 노동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동반되지만 현재 구체적인 로드맵을 가지고 방안이 제출되는 상황은 아니다. 

공무원 노동자가 국민연금 강화까지 요구안으로 내걸고 끝까지 싸우거나, 모든 노동자들도 국민연금 강화를 위해 조직적 투쟁에 나서자는 주장이 원론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용불안과 저임금 속에 노동조합 가입조차 엄두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를 바꿔내기 위한 고민이라기엔 빈 구멍이 많다. 공무원의 비타협적 투쟁은, 전투력은 강하지만 지지 기반이 허약한 반대파를 공격하여 정당성을 채우는 박근혜 정부의 통치전략에  역이용될 수 있다. 조직노동자들이 단호하게 싸우는 것은 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대중들과 소통하는 작업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대안적 개혁론은 실현가능성이 있는가

공적연금의 문제는 재정 지출과 노후 소득 보장의 적정성, 세대 내·세대 간 형평성이라는 실증적 문제와 규범적 문제가 혼재된 고차방정식이다. 해법도 다양하다. 참여연대 김남희 복지노동팀장은 노동시장의 격차가 심각한 상황에서 기여율(보험료)을 올리기가 어려우므로 현재 사용자가 부담하는 퇴직연금의 절반을 공적연금 영역으로 포괄하면서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을 끌어올리자고 주장한다. 노동당 김형모 당원은 특수직역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통합하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특수직역연금 수준으로 인상시키면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다시 높이자고 주장한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운영위원장은 기초연금 인상이 가장 사회연대적 방식의 답이라고 주장한다. 
 
모두 의미 있는 제안들이지만 아직까지 진보진영 내에서 합의 수준은 낮은 실정이다. 재정문제를 빌미로 한 지배계급의 분할적인 복지 개악시도에 맞서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라 정책대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활발하게 만드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진보진영의 복지담론이 재정안정성을 보장 수준의 적정성이나 제도의 형평성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과 재계가 시도때도 없이 제기하는 재정문제는 사실관계부터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한국은 고령화를 고려하더라도 OECD 국가 평균과 비교했을 때 재정확대 여력이 있는 편이다. 

또한 성장의 과실을 독식한 재벌과 부유층에 대한 증세라는 해법도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연금개혁도 계급투쟁의 결과라는 점에서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도 계급 역관계의 역전을 위한 헤게모니적 실천이 없으면 실현과정에서 질곡을 겪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연금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등 다른 복지에 비해 공무원연금의 적자 보전은 정당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내 재분배의 문제와 노후소득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해 빈곤을 확대시키는 국민연금, 기초연금의 문제를 더 중심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연금 사각지대 문제를 폭로하고 쟁점을 선도해야

노인 빈곤과 공적 연금의 위기는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 가족의 위기에서 비롯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의 지속가능성이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의미한다. 연금 사각지대와 격차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반영한다. 기본적인 보장 수준도 낮은데, 취직을 늦게 하거나 고용이 불안정할 경우 가입기간이 줄어들어 연금액은 더욱 낮아진다. 임금 격차는 연금 격차로 이어진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기존 공적연금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기반은 강하지 않다. 국민연금 개악이 큰 저항 없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시민들은 연금의 혜택을 제대로 경험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공적연금이 사적연금보다는 좋으니 지켜야한다는 주장만으로 투쟁하기 어렵다면 오히려 이미 부실한 공적연금의 문제를 폭로하면서 연금 개혁 의제를 선점하여 주체를 조직하는 것이 어떨까. 노후를 보장할 수 없는 공적연금의 문제를 폭로하는 것은 복지제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업, 고용불안과 저임금, 노동시장 양극화의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복지 제도,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에 대한 노동자, 시민사회의 통제력을 강화해 나갈 때 정책대안에 대한 사회적 토론도 활발해질 수 있다.

정부 여당 개혁안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반대하되 공무원연금 문제를 넘어 한국 노동자들의 노후와 미래를 논쟁해야 한다. 또한 제도의 당사자들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절차적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는 점 또한 강력하게 비판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을 복지 문제에 대한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고민과 실천을 한 단계 진전시키는 계기로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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