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세계
  • 2015/01 창간준비3호

섬유산업과 글로벌 착취구조②

생명보다 중요한 패션은 없다

  •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2013년 12월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최저임금은 3년 만에 올라 기본급과 수당을 포함하여 월 5300타카(약 6만 8000원)가 되었다. 그러나 민간 수출가공공단(EPZ)인 한국EPZ에 있는 영원무역 계열사 신발공장 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최저임금은 인상되었지만 교통수당이 400타카에서 200타카로 줄었고, 50타카를 공제하고 제공되던 무료 점심식사가 폐지되고 대신 지급된 식비 650타카는 점심값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인근 치타공EPZ에 있는 같은 영원무역 신발공장 노동자들과 비교해 봐도 임금이 낮았다. 

노동자들은 이에 항의하여 작업을 멈추고 공터에 모였다. 경찰이 동원되었고 경찰이 쏜 총에 머리를 맞은 20세의 여성노동자가 사망했다. 국제노총은 방글라데시 정부에 서한을 보내 경찰의 총격을 정부가 공개적으로 엄책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촉구했다. 캄보디아 실태조사를 마치고 해외 진출 한국 기업의 인권·노동권 침해를 감시하기 위해 모인 단체들이 이번에는 8월 방글라데시로 현지 조사를 다녀왔다.
 

영원무역: 혜택은 누리고 노동자 권리는 외면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은 전체 수출액의 80퍼센트, 국내총생산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다. 400만 명이 고용되어 2000만 명을 부양하고 있다. 공장주의 90퍼센트가 동아시아 해외자본인 캄보디아와 달리 현지 자본 비중이 높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계 인사의 상당수가 의류산업 관계자다. 그러나 영원무역은 이런 상황에서도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방글라데시 곳곳에 의류 신발 등 17개 생산법인과 1개 항공사를 운영하며 약 6만 8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영원무역의 인권·노동권 침해는 이번에 처음 문제시된 것이 아니다. 2010년에도 영원무역이 위치한 치타공 수출가공공단에서 인상된 최저임금 적용을 둘러싸고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시위도중 5명이 사망하고 심지어는 노동자들이 실종되는 일도 있었다. 1997년에는 노동자들이 요구사항을 모아 영원무역에 전달하려고 시도했다가 800명이 기소(9명은 구속)되고 97명이 해고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영원무역은 현지 뿐 아니라 국제 노동계에서 반노동자 기업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은 영원무역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의 재봉틀’ 의류산업 공급사슬망 맨 끝의 위험한 노동 

2012년 말 최소 112명의 목숨을 앗아간 타즈린 패션공장 화재, 2013년 1000명 이상을 한꺼번에 죽게 한 라나플라자 공장 붕괴 사고는 ‘패스트패션’의 공급사슬망 맨 끝에 놓인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만방에 알렸다. 단지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바깥에서 문을 걸어잠그는 관행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어도 제대로 대피할 수 없었던 현실, 건물 붕괴가 예고되었음에도 바이어들이 정한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야근을 강요당했던 현실. 이 사건으로 이런 위험천만한 노동 환경을 이용해 가장 싼 값으로 생산된 제품을 빠르게 공급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글로벌 의류브랜드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섬유 의류 노동자를 포함하여 전세계 제조업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인더스트리올(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은 브랜드들이 납품을 받는 공장 전체의 안전점검을 책임진다는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소방안전에 관한 협약>을 발의하여 150개 브랜드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현지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브랜드들이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데까지만 책임질 뿐이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안전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공장의 시설보완 또는 폐업에 따르는 비용, 이에 따른 노동자들의 실직은 브랜드들의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조사과정에서 만난 현지 활동가들은 당장 2014년 5월까지 1차 점검으로 19개 공장이 폐쇄 판정을 받았고 이로 인해 1만 4000여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비판했다.
 

세계적인 관심 속, 노동자 권리는 확대되는가?

출국 전 준비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현지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기로 한 활동가와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있었던 탓이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한 날 경찰에 의해 단식투쟁은 강제해산되었다. 단식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속한 투바패션의 모기업인 투바그룹의 회장은 다른 자회사인 타즈린패션 화재사건으로 인한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중이었다. 체불된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자 의류협회 관계자들은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장이 석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단식농성이 강제 해산되자 회장은 보석으로 석방되었고, 체불된 석 달 임금 중 한달치만 지급한 후 투바패션은 폐업해버렸다. 그래서 공원에 모인 노동자들과 10분가량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진을 찍고 나니 경찰 특수대가 우리의 신원과 동선을 집요하게 캐려고 했다. 현지 활동가들의 어려운 활동조건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된 것이다. 

어렵사리 각기 다른 의류산업 노조연맹 및 유관단체 네 곳의 핵심 활동가, 한국 업체 노동자 십수 명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노동부장관, 의류산업협회 부회장, 주방글라데시 한국대사, 한국 업체 관계자들도 면담을 했지만, 활동가들과 노동자들과의 면담이 현실을 파악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 위험한 노동환경과 낮은 임금이 지속되는 이유는 한 마디로 이렇게 설명이 되었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2014년 붕괴한 방글라데시의 라나플라자 공장
 

노조 설립은 어렵고 해고는 쉽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한국정부도 비준하지 않은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87호)을 비준했다. 그러나 노동법은 노동조합 설립 절차를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어서 ILO로부터 법 개정을 수차례 권고 받았다.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한 사업장 내 노동자 30퍼센트 이상이 가입해야 하고 사용자의 승인이 있어야 했다. 라나플라자 이후 국제적 압력으로 2013년에 법이 일부 개정되어 사용자의 승인 없이도 노조설립이 가능해지긴 했다. 그러나 여전히 법은 노동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의류공장이 밀집한 수출가공공단 안에서는 노조설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전반에 5700개 정도의 공장이 운영되고 있지만 노동조합 수는 160여 개에 불과하다. 절반 가량은 2013년 법 개정 이후에 설립된 것인데, 그나마 사용자가 설립하거나 실체가 없는 노조도 다수 포함한 수치라 했다. 국제노총이나 ‘무역과 노동기준 연계’를 주장해 온 미국의 노조들은 이런 이유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에 노동법 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해고 요건도 느슨하다. 정리해고는 한 달치 임금, 개별해고는 세 달치 임금만 보상금으로 지급하면 그만이다. 노동력이 풍부한 데다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지도 않아 공장주들은 손쉽게 노동자들을 채용하고 해고한다. 경력이 높은 노동자들을 주기적으로 해고하는가 하면 불만을 제기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기도 한다. “전체 노동자가 7000명 가량인데 주기적으로 절반 가량의 노동자들을 갈아치운다.” “불만을 제기하면 곧바로 해고된다. 백지를 내밀며 서명하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백지가 사직서로 둔갑해 있었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퇴근길 버스정류장에서 지역 폭력배들에게 사원증을 빼앗겼다. 사원증이 없어서 공장에 들어갈 수 없었는데 관리자가 무단 결근으로 처리한 뒤 징계 해고해 버렸다.” 이런 현실에서 웬만해서는 노조를 결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노사관계에 동원되는 국가 폭력

캄보디아 의류업체들이 공수부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이들을 노무관리에 동원하는 것처럼 방글라데시에서는 지역 폭력배들이 공장주들을 도와 구사대 역할을 한다. 공장주들은 이들에게 약간의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노동자들을 ‘외지인’이라 칭하며 지역 폭력배로 하여금 적대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유사시에 이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2010년에는 ‘산업경찰’도 창설되었다.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진압하는 역할을 전문으로 하는 경찰이다. 공단 주요 거점에 초소를 두고 동향을 살핀다. 이뿐만 아니라 긴급행동대대이라고 불리는 대테러부대도 시위가 발생하면 투입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활동가 납치와 살해도 문제다. 인터뷰를 위해 방문한 방글라데시노동자연대센터(BCSW) 사무실에는 2012년 정보기관의 사찰을 받던 도중 납치되어 살해된 이 단체 출신 활동가 아미눌 이슬람(Aminul Islam)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공장주들은 체계적인 국가 폭력으로 노동자들의 저항을 위협하고 통제해 온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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