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평등
- 2015/07 제6호
노인빈곤 갑론을박, 다시 기초법 개정을 옹호한다
2명 중 1명이 겪는 비참한 노년
우리나라의 2011년 기준 노인 빈곤율은 48.6퍼센트로 OECD 국가 평균인 12.4퍼센트의 세 배가 넘는다. 이웃나라 일본의 19.4퍼센트와 비교할 때도 두 배를 훌쩍 뛰어넘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복지제도를 갖춘 프랑스의 5퍼센트 남짓과는 비교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가난’ 이라는 상태가 단지 숫자로 인식할 수 없는, 살갗을 맞부딪치며 대결해야 하는 구체적인 고통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며 위기 대처 능력을 감소시켜 위험에 빠지기 쉽게 만들고, 심각한 경우 생존을 어렵게 한다. 하루하루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행해야만 하는 일(먹고 잠을 자는 일 등)은 미룰 수 없다는 점에서 긴급성을 가진다. 이것이 절반의 노인들이 매일 겪고 있는 위험이다.
우리나라에는 가난한 이들의 소득보장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있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모든 국민에게 최저생계비만큼의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의 제도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넓은 사각지대와 낮은 보장수준이라는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수급을 받는 노인들에게 제공되는 수준은 처량하고, 이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현실은 더 가혹하다.
노인 자살을 방조하는 복지제도
지난 해 서울 강남의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수급조차 받지 못하는 노인이었다. 남편 사후에 알게 된 혼외자녀가 법률상 가족관계 증명서에 남아있어 부양의무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실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 소명해 보았지만 ‘그러면 DNA 검사라도 해 와라’라는 야박한 답변을 받았다. 구차한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아 수급신청을 번번이 포기하는 할머니는 폐지수집과 노인일자리 사업, 기초연금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초연금을 다달이 20만 원 받고, 노인 일자리 사업에서 20만 원을 벌지만 이 사업에는 일 년 중 최대 6개월만 참여할 수 있다. 할머니 집의 냉장고에는 누가 버린 것을 주워왔다는 묵은 쌀과 고추장이 전부였다. 임대아파트 재계약을 앞둔 상황에서 할머니는 어렵게 모은 돈을 얼마 전 무릎 수술비로 예기치 않게 사용했다며 난처해하고 있었다. 수급자 노인들은 재계약시에 부담이 적은데 수급도 못 받는 할머니는 임대아파트에서도 쫓겨날 상황이니 부당하고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수급을 받는 노인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지난 2월 70대 기초생활수급자 할아버지가 서울 용산구 단칸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단칸방에는 화장실조차 없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통장에 남은 돈은 고작 27원이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연금을 모두 받고 있었으나 49만 9290원의 정부지원금 중 30만 원은 의료비로 지출하고 있었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보고 기초연금만큼을 수급비에서 삭감한다. 기초연금이 10만 원 오르거나 물가인상률에 따라 오른다 할 손 기초생활수급자 노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수급비에서 다시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급여를 받는 노인들조차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고 홀로 죽어간다.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독소 조항
현재 800만 이상의 빈곤층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단 13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6퍼센트에 불과하다. 전체 노인인구 600만 명 중 절반인 300만 명이 빈곤하다고 볼 때 최저생계비를 보장받는 수급노인은 40만 명도 되지 않는다. 빈곤층 노인 가운데 실제 복지를 받는 사람은 13퍼센트에 불과하다.
이처럼 넓은 사각지대는 수급자 선정기준의 불합리에서 기인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 선정기준은 ①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가, ②부양의무자기준에 부합하는가, 두 가지다. 특히 노인세대에게 이 기준은 ①의 경우 재산의 소득환산(재산을 소득으로 봄)으로, ②의 경우 자녀의 재산 및 소득의 문제로 드러난다. 노인들 사이에 풍문으로 도는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집 있고 자식 있으면 못 받는다’는 이야기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의 빈곤층은 몰라서 복지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도 신청할 수 없거나 이미 탈락한 것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최저생계비 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300여 비수급빈곤층 가구의 70.5퍼센트가 과거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신청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들 중 54.5퍼센트가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탈락했다.
연금이 품지 못하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올해 상반기 국회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바로 연금이었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시작으로 공적연금 강화에 대한 여러 논의의 장이 열린 것은 긍정적이나 기초연금을 포함한 현재 연금정책들은 당면한 가난한 노인들의 삶을 개선하기에 아직 먼 대안이라는 것 또한 인식해야 한다. 여러 문제점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이들의 복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초연금 강화가 필요하나 생활보장에 걸맞은 액수에는 미치지 못한다. 기초연금 외에 사적부조, 공적연금이나 사적연금 등 다른 소득이 없는 노인이 기초연금만으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초연금이 보편적 성격을 가졌다는 훌륭함과는 별개로 빈곤정책의 핵심은 보장수준이다. 만약 기초연금이 대폭 올라 40만 원 수준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 생활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더불어 노인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65세 이상 노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평균 은퇴연령이 53세가 된 상황에서 65세에 다다르지 못했더라도 가난에 빠진 이들은 많다. 고독사의 가장 많은 인구 범주가 ‘50대 독신 남성’ 이라는 통계는 시사점이 있다(‘평균 은퇴연령 53살, 갈수록 빨라진다’, 한겨레, 2012.12.13.).
둘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 상승과 사각지대 해소 효과가 노인빈곤율 하락에 기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양분화된 노동시장구조와 이로 인해 안정적인 국민연금 가입자가 정규직에 한정되어 있는 상황, 빈곤층의 노동 경험이 비연속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 수령이 빈곤층에게도 확대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정규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82퍼센트, 전체 임금노동자의 가입률이 68.4퍼센트인 것에 반해 수급빈곤층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22.2퍼센트, 비수급빈곤층의 국민연금 가입률은 36.5퍼센트로 월등히 떨어진다.
기만적인 ‘세 모녀 법’ 차버리고, 기초법 개정에 다시 나서자
셋째,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적절한 소득에 대한 권리를 핵심 가치로 삼는 급여라는 점에서 빈곤층의 유력한 소득보장체제가 될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비를 ‘권리’로 보장한다. 특히 인구학적 기준을 폐지하고 빈곤에 처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성격을 갖는다. 비록 낮은 최저생계비와 부양의무자기준 등 독소 조항이 제대로 된 작동을 가로막고 있었으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회권적 기본권이라는 성격은 그 자체로 제도의 주요 특징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잔여적 범주에 속하지만, 필요한 사람에게 일정 기준 만큼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갖는다.
7월 1일, ‘세 모녀 법’ 이라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15년만의 대개정, ‘세 모녀 법’ 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 모녀는 단 한가지의 급여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럴듯한 포장 뒤엔 개선되지 않은 과제와 최소한의 권리성이 파괴될 위험성이 숨어있다. 빈곤사회연대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수급상담전화 운영과 거리상담, 수급신청운동, 이의신청운동을 진행한다. 제도의 변화를 빌미로 나타나는 수급권자들의 권리 파괴를 방어하고, 제도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노인들 중 아픈 사람은 60.9퍼센트, 가난한 이들은 49.2퍼센트다. 그러나 60대 이상 노인의 자살충동 원인 1위는 가난이다. 아픈 몸보다 가난이 더 두려운 현재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미래에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수급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기초법의 제대로 된 개정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은 당면한 우리의 과제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대를 통해 빈곤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을 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