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주노동자 10인 무죄 석방을 위한 대책위 활동
-한국정부의 인종차별적 수사, 재판, 긴급보호를 규탄한다!!
태흥건설산업의 인천 신항만 공사현장에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12시간 주야맞교대로 일하던 180여명의 고용허가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월 24만원 식대를 공제하고, 12시간으로 인정하던 근로시간을 11시간으로 삭감하겠다고 하자 이에 반대하며 두 차례에 걸쳐 6일 간 집단적으로 근로제공을 거부했다. 다행히 별 충돌 없이 회사와 합의했고, 공사현장은 다시 분주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최초 사건 발생 8개월이 지난 시점인 올해 3,4월 말 회사의 고소 없이 인지수사를 진행한 경찰에 의해 업무방해, 공동폭행·상해, 강요죄로 10명이 전격 체포․구속되고 검찰에 의해 각각 징역 3년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을 구형받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언론보도와 ‘베트남 이주노동자 10인 무죄석방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활동을 통해 뒤늦게나마 한국사회에 알려졌다.
수사, 재판 과정의 인종차별적 요소들
국선변호인으로부터 사건을 인계받은 대책위 변호인단은 제대로 된 심리를 6월 16일 단 한 차례밖에 하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에도 수사와 재판의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찰과 검찰은 현장관리자의 증언만으로 구속된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이번 파업의 주동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회사와의 합의 과정을 보면 경찰과 검찰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이 확인된다. 사측은 지도부와의 교섭이 아니라 식당에 180명 전체가 모여 회사 측의 의견에 대해 환호와 야유로 통과여부를 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명의 피의자 중 한 명은 태흥건설에서 일을 시작한 지 3일 밖에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힘들었다는 점에서 검경의 억지수사를 반증하고 있다.
반면 변호인단은 파업주동자를 지목한 현장관리자를 증인으로 신청했는데, (합법적 권리라고는 하지만)그는 무엇이 두려웠는지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며 피의자와 방청객들의 퇴장을 요청한 후 텅 빈 법정에서 증언을 했다.
한편, 파업 참여를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는 경찰과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피의자들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게다가 본 재판에서 다뤄지고 있는 폭력사건은 파업과 무관하게 사사로운 다툼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모두 합의하여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들이었다. 지금까지 경찰과 검찰은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불법파업을 주동하고,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동료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했다”고 주류 언론들을 통해 여론을 호도해왔다. 퍼즐을 맞춰도 한참 잘못 맞췄다.
통역도 제대로 안 되는 재판이 공정할 수 있는가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어의 장벽’이었다. 법원에서 고용한 베트남 통역사는 변호사, 검사, 판사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통역해온 것 같았다. 재판을 함께 방청했던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대책위 원옥금 활동가는 통역의 50% 이상에서 오역과 내용의 불충분함을 지적했고, 재판 내내 통역사의 통역이 원활하지 않는 부분에서 보충을 하는 역할을 했다. 정확한 지적에 통역사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마지막 재판이 돼서야 이주노동자들은 재판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경찰 조서는 짜깁기 레포트인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엉터리로 짜집기 한 경찰의 조서였다. 이날 재판에서 경찰이 피의자들에게 조서를 정확히 숙지시키지 않은 채 사인을 강요했음이 드러났다. 변호인단은 A 피의자의 조서 내용을 B 피의자에게 그대로 갖다 붙여놓고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사인을 받은 사실을 찾아냈다. 그동안 이런 문제제기 없이 조사와 재판이 얼렁뚱땅 진행됐으니 이주노동자들이 지난 3개월 동안 경찰서, 구치소에 갇혀 느꼈을 고충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경찰과 검찰의 끼워 맞추기 수사에 제동을 건 재판 결과
6월 23일 목요일 이 사건의 선고공판이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인도 노동기본권의 향유주체”가 되고, “피고인들의 각 파업이 위력에 해당하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검소가 공소의 핵심으로 강조했던 업무방해죄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과 검찰의 끼워 맞추기 기획수사에 제동을 건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한편, 파업과 무관하게 개인 간 다툼에서 발생한 강요와 폭처법 위반으로 기소된 7명에 대해서는 벌금과 함께 “징역형을 선고할 경우 출입국관리법상의 강제퇴거 대상이 되는 점”을 고려하여 대부분 선고를 유예했다.
강제퇴거 시 심각한 삶의 위협을 참작하여 이례적인 판결을 내린 것이다. 집행유예를 받은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8명은 판결을 통해 석방되어 자유를 누려야 할 상황이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막가파식 인신구금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에게 자유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경찰과 검찰이 씌운 불법의 굴레를 벗자마자 이번에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이하 출입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구속했다. 구치소로부터 이주노동자 석방을 통보받은 출입국은 출입국관리법 위반 여부를 심리한다며 석방되기도 전에 곧바로 ‘긴급보호명령서’를 발부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신병을 인계하여 외국인보호소로 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또 다시 공권력 남용에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는 다음과 같이 무참히 짓밟혔다.
첫째, 엄격히 구분되는 구치소에서의 ‘석방’과 출입국의 ‘긴급보호’ 절차를 출입국은 관례적으로 지키지 않았다. 이는 만연한 출입국의 편법이다. 둘째, 출입국은 변호사를 기만하고, ‘긴급보호명령서’ 사본 제시 요청을 묵살하려 했다. 달아나려는 출입국의 버스를 가로막고 사본을 입수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명령서 중 긴급보호의 ‘시작과 종료’ 시간이 동일하고, 담당 공무원의 이름과 서명이 없는 등 공문서로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까지 출입국이 인신을 구금하는 공문인 긴급보호명령서를 마치 자신들의 백지수표 인양 남용해온 데 따른 필연적 결과이다. 하지만 조사과장은 단순한 오기이고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출입국관리사무소가 아닌 추방추진사무소
이주노동자들을 두 번 울리는 막가파식 인신구금에 항의하기 위해 대책위는 출입국소장 조사과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진행과정에서 대책위는 이주노동자를 인격체가 아닌 짐짝으로 취급하는 출입국의 작태에 경악했다.
면담 진행과정에서 총책임자는 물론이고 직접 신병을 인계한 현장담당자 조차 3시간이 지나도록 누가 어떤 죄목인지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구치소에서 외국인 출소 통보가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감금해왔던 관행이 이제야 대책위와의 면담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더군다나 출입국관리법 제11조 제1항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출입국법위반혐의를 심리하여 강제퇴거를 결정한다는 과정도 이주노동자들의 신상, 죄목 뿐만 아니라 법원의 판결문조차 검토하지 않고 무조건 강제퇴거 시켜왔음이 확인됐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책위는 출입국에 강제퇴거 반대의 입장을 담은 법원의 판결문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법원으로부터 판결문을 받아오는 체계조차 없던 출입국은 오히려 대책위에게 판결문을 부탁했고, 법원의 판결과 출입국의 심사는 별개의 과정이라는 주장을 했다. 게다가 당시 출입국 관계자들의 손에는 이주노동자들의 범죄성만 부각하는 경찰과 검찰의 조서, 공소장만 들려있었다. 오로지 이주노동자 강제퇴거 성과에만 골몰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진짜 명칭은 ‘추방추진사무소’였다.
사람과 인권위에 군림하는 출입국의 제왕적 행태
불법적 긴급보호에 항의하기 위해 6월 24일 출입국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건설, 공무원, 금속노조 등 노조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 그리고 지역 운동단체들이 사안의 심각성 때문에 긴급하게 모여 규탄발언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서 인천출입국 조사국장을 비롯하여 직원들은 기자회견 장소에 난입하여 소란을 피우고, 공익근무요원을 동원하여 참가자들을 불법채증하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참석자들의 분노를 샀다. 6월 28일 또 다시 50여명의 인천지역 노조, 진보정당,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출입국을 규탄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출입국은 지금까지 무조건적으로 200만원 벌금 이상의 이주노동자들을 추방시켜왔지만 대책위의 강력한 투쟁과 KBS와 인천방송 등 언론 보도로 세간의 주목을 받자, 부담을 느끼고 일주일 만에 5명을 석방시켰다. 지금까지 구치소에서 인계한 이주노동자들을 판결문을 보지도 않고 90%이상 강제퇴거 시켰던 관행이 깨진 의미있는 석방이었다.
심판받아야 할 법무부의 적반하장
석방의 기쁨도 잠시일 뿐 검찰과 출입국은 이주노동자 탄압의 고삐를 다시금 죄어왔다. 검찰이 6월 29일 항소를 하고, 출입국은 6월 30일 또 다시 ‘긴급보호명령’을 남발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다른 건의 벌금 때문에 구치소에 있다 석방된 이주노동자를 6월 23일과 동일하게 편법적 ‘긴급보호’로 구금한 것이다.
인종차별적 수사와 보호제도는 이번 투쟁을 통해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법무부는 반성은커녕 항소와 긴급보호로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다. 대책위는 항소심을 통해 짦았던 1심 심리과정에서 제기하지 못했던 문제점을 낱낱이 고발하고, 최소한의 견제장치조차 없는 ‘보호제도’를 폐지하는 투쟁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