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인천 지부 활동


12시간 맞교대, 휴일 없는 공장에 변화가 생기기까지

㈜아모텍 노동자들과 함께한 한 달

인천지부
직원 2명의 과로사 그리고 아모텍의 비약적인 성장

故 임승현씨는 31살의 나이에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6개월 동안, 단 하루 연차휴가를 사용하고 조회시간을 포함하여 매일 12시간 30분씩 일했다. 임승현씨는 자기 일이 끝나면 동료들의 일을 도와주고, 4년여를 근무한 숙련도가 있어서 전산 및 관리 업무까지 도맡아했다. 그러다보니 ‘너 없음 안 된다’는 말에 다른 직원들보다 더더욱 일을 쉬기 힘들었다. 그런데 임승현씨가 사망한 뒤 회사는 잘못된 음주문화를 개선하자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임승현씨가 죽은 이유는 고인이 평소 술 먹기를 좋아한 탓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망인인 故 권태영씨는 커먼모드필터(CMF 핸드폰 노이즈 방지 장치)의 품질, 불량률 개선, 설비 개선 업무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다. CMF는 NFC안테나와 함께, 아모텍을 2011년 적자에서 2012년 1800억 매출, 170억 영업이익으로 돌아서게 한 주역 제품이다. 1년 만에 영업이익은 7.5배, 매출액은 2배 가까이 뛴 것이다. 아모텍은 2013년 영업이익으로 250억 원을 기대하고 있는데, 2년 만에 영업이익이 11배나 증가하는 것이다. 故 권태영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은 실수로도 회사 전체에 엄청난 재산상의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 업무를 수행한 셈이다.

사람이 2명이나 죽었습니다. 뭐라도 바꿔냅시다.

12시간 주·야 맞교대에 바쁠 땐 휴일도 없이 일하는 공장은 한국에 매우 많을 것이다. 그러다 노동자가 다치고 병에 걸리고 죽는 일 또한 얼마나 많겠는가. 가족 또는 동료의 죽음을 기억하고 바꿔내려는 이가 없다면 그냥 슬퍼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아모텍에는 다행히 유족과 연락이 닿아 산재신청을 할 수 있었다. 이에 인천지역 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이하 사업단)은 더 이상 과로로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로 했다.
6월 26일 ‘살인기업 아모텍 규탄 및 노동부 고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회사에 회장 명의의 사과문,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그리고 아모텍을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파견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33일 동안 총 34회 아모텍 앞 선전전을 진행하게 되었다.

순환휴직 꼼수 그만 부리고, 휴업수당 지급하라!

기자회견을 하고 노동부에 회사를 고발하자 아모텍은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칩 사업부 노동자들을 토/일 번갈아가며 순환휴직을 시켜 노동시간을 단축시켰다. 그러나 물량에는 변화가 없었으므로 노동강도는 강해지고, 임금은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했다. 또한 안테나 사업부는 물량이 없어 강제로 1~2주 휴업을 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를 꼬집는 선전전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외에도 제조업 불법파견, 노동법 소책자를 배포했다.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닌 ‘근로기준법’에 대한 정보에 사람들이 관심 있게 반응하는 것이 느껴졌다.

수요일은 잔업 없는 날로! 아모텍 노동자, 생전 처음 회사 운영에 참여하다.

그리고 7월 6일(토), 결정적으로 회사는 석식시간(무급)을 30분에서 1시간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피로도 방지하고 근무시간도 줄이겠다는게 이유였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겐 퇴근 시간은 그대로인데 무급 휴식시간이 늘어나서 임금은 줄어드는 개악안이었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개악안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7일) 이를 지적하고,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시에는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그러자 회사는 곧바로 석식시간 변경은 회사 방침이 아니라며 번복하더니 직원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7월 8일 조회시간에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투표를 실시했다. 이것으로, 석식시간 확대는 철회되고 수요일 잔업 없는 날, 주말 중 하루는 휴무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아주 어설프긴 하지만, 회사 방침에 노동자 투표를 실시하다니, 대부분의 아모텍 노동자들에게 이는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7월 10일(수)은 월급날이자 아모텍의 첫 번째 잔업 없는 날! 모두가 일제히 6시에 회사를 나와 술 한잔 걸치며 이 일에 관해서 얼마나 수다를 떨까? 그래서 약소하게나마 레모나와 초코바에 편지를 동봉하여 노동자들에게 나눠줬다. 여태까지 유인물 한 장 안 받던 분들도 ‘뭐지?’ 하며 받아들고, ‘어머, 먹을거다!’하며 수다 떨며 회사를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밝았다. 그리고는 선학역 근처 술집을 당일 퇴근한 아모텍 직원 200여명이 꽉 채웠다는 소문이.. ^^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33일 동안의 출근 선전전

사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걸 보면서 정작 노동자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 그 시위가 평일 주말 안 가리고 ‘매일매일’ 이어지고, 회사에 실제로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를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시선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우, 당신들이 시위해서 우리 임금 얼마나 깎인지 알아요?’ 하며 역정을 내던 분이 수고한다고 웃어준다. 처음 선학역에서 유인물을 배포했던 날 ‘어 이거 우리 얘기 아냐?’하고 신기해하던 남자분이랑은 이제 서로 얼굴을 알아보고 웃으며 인사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자들이 ‘시위자’를 지지하는 분위기로 돌아섰고, 그것이 회사에 가장 큰 압박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끌어내다.
33일 동안의 싸움으로 회사는 노동자들의 동의 절차를 걸쳐서 근로시간 단축(주당 73.5시간에서 주당 60시간으로)과 임금인상안을 이끌어냈다.

근로조건 개선안

1) 매주 일요일은 고정 휴무(단, 특정 부서는 토/일 순환 휴일)
2) 매주 수요일은 잔업 없는 날, 근무하는 토/일 연장근무는 2.5시간에서 2시간으로 축소
3) 시급 12.3% 인상 (최저시급의 경우 4,860원에서 5,460원)
4) 근속수당 인상
5) 2014년 설명절 전까지, 과로사 할 정도의 고된 노동에 대한 사과와 성과금의 의미가 담긴 일시금지급


또한 경비, 미화, 폐기물처리 노동자도 매년 업체 계약 단가 인상분을 노동자 임금 인상에 반영하기로 해 선전전 하는 내내 담소를 나누기도 했던 경비아저씨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아모텍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한 달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직접 나서지는 못했지만 600여명의 노동자들이 생전 처음 회사와 싸워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어설프게나마 노동조건에 대해 직접 투표하는 과정도 겪었다. 또한 연장근무시간 제한, 휴업수당, 조회시간 무료노동, 불법 파견 등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부조장 이하의 평사원들로 구성된 노동자 위원을 선출하고 노사협의회를 2013년 10월부터 운영하기로 했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는 이번 싸움의 성과들이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직접 보고 들은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는 분명 다를 것이라 믿는다. 7월 한 달 동안 쌓인 신뢰가 남아 있다면, 이후 아모텍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또 다시 찾아갈 수 있는 기회도 생기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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