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맞선 싸움, 인천/부천에서도 힘차게 진행 중!
2013년 7월 14일. 삼성 최초로 대중적인 민주노조가 탄생하고부터 지금까지 8개월 동안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고 그만큼 성장해왔다. 설립 직후 사측의 끈질긴 표적감사, 회유와 협박, 폭행도 이겨냈고 혹한에 노숙 농성도 해보았고 불가능한 일인 것만 같았던 파업투쟁도 해보았다. 삼성은 노조를 흔들려는 목적으로 해운대 센터를 위장 폐업했고, 아산과 이천 센터도 폐업을 예고했다. 하지만 오히려 조합원들의 사기는 높아지고 노조는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제대로 된 임금 및 단체협상을 쟁취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매일 계속되는 전 조합원 출근 선전전
인천과 부천에는 8개의 센터가 있다. 이 중 5개 센터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가 현재는 동인천, 남인천, 부천(신중동)센터 3개 분회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오전 시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밴드에는 전국의 출근투쟁을 알리는 소식이 가득하다. 이 중에서 동인천 분회와 부천 분회는 전 조합원이 매일 출근 선전전을 하는 분회 중 하나다.
이런 결의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처음엔 투쟁도 집회도 어색했을 사람들이 지금은 전 조합원이 매일아침 출근 선전전에 더해 이제는 점심, 저녁 선전전까지 지역별로 흩어져서 한다하니 그야말로 발로 뛰어다니는 분회들이다.
폐업?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3월 초, 해운대, 아산, 이천 센터가 폐업 공고를 냈고 3월 7일 해운대센터가 결국 위장폐업을 단행했다. 투쟁 초기부터 ‘폐업’은 노조 흔들기의 주요 카드로 예상해왔던 바였다. 예상은 했어도, 닥치면 두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운대 분회는 오히려 기운이 넘친다. 다시 돌아올 것임이 당연하기에 의연하고, 삼성의 위장폐업 덕에 오히려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후련하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의 분회들에서 “우리가 해운대다! 전국이 해운대다! 우리는 하나다!”하는 결의가 넘실거리고, 해운대분회 조합원들은 기동대가 되어 지역 주민 선전전, 미조직센터 선전전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폐업 협박을 가장 빨리 했던 곳이 바로 동인천 센터다. 귀에 못이 박히게 폐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당연히 폐업을 할 줄 알았단다. 하지만 동인천 분회 조합원들도 의연했다. 오히려 어디선가 할 폐업이라면, 우리 센터가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멀리 연대하러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빡세게 투쟁하겠다는 결의다.
노조하고 바뀐 ‘노동’의 방식
노조 시작한 지 8개월, 그 동안 바뀐 게 뭐냐고 묻는다면 숱한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동인천 분회의 경우 출범 초기 대부분의 외근 AS기사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사장이 하던 조회를 노동조합 조회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매일 아침 진행하는 실적 리뷰도 없어지고, 회사 운영의 주요한 내용은 시행하기 전에 은근슬쩍 조합원들에게 먼저 물어보기도 한단다. 노동조합 없었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또,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하는 일의 특성상 서로 도와가면서 일을 하기 보다는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팽배했다고 한다. 구하기 힘든 자재는 누가 있냐고 물어봐도 없다고 이야기하고, 후배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기술을 잘 안 가르쳐주려고 한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구하기 힘든 자재도 지금 필요한 동료가 있으면 선뜻 내어주는 사람이 생기고 나의 이익을 가장 먼저 챙기던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노동’으로 채우는 노동자에게 노동의 방식은 곧 삶의 방식이다. 때문에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변화도 엄청난 변화일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하려고 서비스에서 힘든 시기 버텼나봅니다.”
“입사 이래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노동조합 한번 못해보고 죽었음 정말 억울할 뻔했어요.” “이렇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수 있는데, 예전에 왜 그렇게 일했는지 모르겠어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갑자기 전국에 1500여명의 식구가 생겼다. 전국 각지에 동지들이 있으니, 어딜 가나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최근 부천분회는 서산에 조합원 수련회를 갔다가 서산분회와 함께 출근선전전을 하기도 하고, 치킨과 맥주를 제공받기도 했다. 또, 양산 분회 조합원의 부친이 계속되는 수술로 헌혈증을 구하자 전국의 분회에서 헌혈 열풍이 불기도 했다. 동인천 분회장님은 집회가면 반가운 사람이 너무 많아 국회의원이 된 것 같다며 껄껄 웃는다.
물론, 두려운 것이 없을 리는 없다. 동인천 분회 조합원들은 2월, 8일간의 파업과 사측의 고의적 콜 수임 제한으로 50만원에서 70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았다. 생계 압박은 가장 큰 투쟁의 어려움이다. 생계 걱정만 없다면 언제까지고 투쟁할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다.
2014년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사활이 걸린 해
지역의 힘을 모아 ‘우리’가 삼성을 이기자!
‘과연 이들이 삼성을 이길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탄생부터 지금까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초기 탄압을 이겨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창립식에서 380명, 8월 삼성 본관 앞에서 600여명, 노동자대회 때 800여명이 모였고 지난 2월 25일에는 1천명의 조합원들이 삼성전자서비스본사 앞에 모였다. 삼성이 폐업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움츠려들기는 커녕 오히려 조합원 수를 늘리고 있다. 새롭게 마산, 창원, 구포 센터가 조합에 가입했고 서울의 성북, 서수원 센터도 뒤를 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좀 더 많은 미조직 센터를 가입시켜 제대로 된 임단협을 체결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중요한 과제다.
▲ 부천분회, 동인천분회 결의문
인천/부천 지역의 경우 가입했다가 탈퇴한 곳과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았던 센터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또, 최근에는 동인천, 부천센터 사장이 동시에 관할 지역을 ‘광역화’했다고 선언했다. 각 센터들이 나눠서 담당하고 있는 지역을 확장해서 센터 간 담당 구역을 겹치게 만드는 것으로 파업을 대비하고, 조합원에게 생계압박을 하는 것이다.
많지 않은 수지만 강고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인천, 부천지역 분회를 지역적 차원에서 엄호하고, 미조직 센터를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힘을 모아 ‘우리’가 삼성을 이기자!
매일 계속되는 전 조합원 출근 선전전
인천과 부천에는 8개의 센터가 있다. 이 중 5개 센터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가 현재는 동인천, 남인천, 부천(신중동)센터 3개 분회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오전 시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밴드에는 전국의 출근투쟁을 알리는 소식이 가득하다. 이 중에서 동인천 분회와 부천 분회는 전 조합원이 매일 출근 선전전을 하는 분회 중 하나다.
이런 결의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처음엔 투쟁도 집회도 어색했을 사람들이 지금은 전 조합원이 매일아침 출근 선전전에 더해 이제는 점심, 저녁 선전전까지 지역별로 흩어져서 한다하니 그야말로 발로 뛰어다니는 분회들이다.
폐업?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3월 초, 해운대, 아산, 이천 센터가 폐업 공고를 냈고 3월 7일 해운대센터가 결국 위장폐업을 단행했다. 투쟁 초기부터 ‘폐업’은 노조 흔들기의 주요 카드로 예상해왔던 바였다. 예상은 했어도, 닥치면 두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운대 분회는 오히려 기운이 넘친다. 다시 돌아올 것임이 당연하기에 의연하고, 삼성의 위장폐업 덕에 오히려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후련하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의 분회들에서 “우리가 해운대다! 전국이 해운대다! 우리는 하나다!”하는 결의가 넘실거리고, 해운대분회 조합원들은 기동대가 되어 지역 주민 선전전, 미조직센터 선전전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폐업 협박을 가장 빨리 했던 곳이 바로 동인천 센터다. 귀에 못이 박히게 폐업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당연히 폐업을 할 줄 알았단다. 하지만 동인천 분회 조합원들도 의연했다. 오히려 어디선가 할 폐업이라면, 우리 센터가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단다. 멀리 연대하러 갈 필요 없이 여기서 빡세게 투쟁하겠다는 결의다.
노조하고 바뀐 ‘노동’의 방식
노조 시작한 지 8개월, 그 동안 바뀐 게 뭐냐고 묻는다면 숱한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방식,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동인천 분회의 경우 출범 초기 대부분의 외근 AS기사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여 사장이 하던 조회를 노동조합 조회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지금은 매일 아침 진행하는 실적 리뷰도 없어지고, 회사 운영의 주요한 내용은 시행하기 전에 은근슬쩍 조합원들에게 먼저 물어보기도 한단다. 노동조합 없었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또, 건당 수수료를 받고 일하는 일의 특성상 서로 도와가면서 일을 하기 보다는 개인주의적인 문화가 팽배했다고 한다. 구하기 힘든 자재는 누가 있냐고 물어봐도 없다고 이야기하고, 후배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기술을 잘 안 가르쳐주려고 한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구하기 힘든 자재도 지금 필요한 동료가 있으면 선뜻 내어주는 사람이 생기고 나의 이익을 가장 먼저 챙기던 사람들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노동’으로 채우는 노동자에게 노동의 방식은 곧 삶의 방식이다. 때문에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변화도 엄청난 변화일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을 하려고 서비스에서 힘든 시기 버텼나봅니다.”
“입사 이래 가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노동조합 한번 못해보고 죽었음 정말 억울할 뻔했어요.” “이렇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 수 있는데, 예전에 왜 그렇게 일했는지 모르겠어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갑자기 전국에 1500여명의 식구가 생겼다. 전국 각지에 동지들이 있으니, 어딜 가나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최근 부천분회는 서산에 조합원 수련회를 갔다가 서산분회와 함께 출근선전전을 하기도 하고, 치킨과 맥주를 제공받기도 했다. 또, 양산 분회 조합원의 부친이 계속되는 수술로 헌혈증을 구하자 전국의 분회에서 헌혈 열풍이 불기도 했다. 동인천 분회장님은 집회가면 반가운 사람이 너무 많아 국회의원이 된 것 같다며 껄껄 웃는다.
물론, 두려운 것이 없을 리는 없다. 동인천 분회 조합원들은 2월, 8일간의 파업과 사측의 고의적 콜 수임 제한으로 50만원에서 70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았다. 생계 압박은 가장 큰 투쟁의 어려움이다. 생계 걱정만 없다면 언제까지고 투쟁할 수 있다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다.
2014년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사활이 걸린 해
지역의 힘을 모아 ‘우리’가 삼성을 이기자!
‘과연 이들이 삼성을 이길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탄생부터 지금까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초기 탄압을 이겨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오히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창립식에서 380명, 8월 삼성 본관 앞에서 600여명, 노동자대회 때 800여명이 모였고 지난 2월 25일에는 1천명의 조합원들이 삼성전자서비스본사 앞에 모였다. 삼성이 폐업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움츠려들기는 커녕 오히려 조합원 수를 늘리고 있다. 새롭게 마산, 창원, 구포 센터가 조합에 가입했고 서울의 성북, 서수원 센터도 뒤를 이었다. 빠른 시일 내에 좀 더 많은 미조직 센터를 가입시켜 제대로 된 임단협을 체결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중요한 과제다.
▲ 부천분회, 동인천분회 결의문
인천/부천 지역의 경우 가입했다가 탈퇴한 곳과 처음부터 가입하지 않았던 센터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또, 최근에는 동인천, 부천센터 사장이 동시에 관할 지역을 ‘광역화’했다고 선언했다. 각 센터들이 나눠서 담당하고 있는 지역을 확장해서 센터 간 담당 구역을 겹치게 만드는 것으로 파업을 대비하고, 조합원에게 생계압박을 하는 것이다.
많지 않은 수지만 강고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인천, 부천지역 분회를 지역적 차원에서 엄호하고, 미조직 센터를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힘을 모아 ‘우리’가 삼성을 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