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사회운동학교] 6월 월례강좌 <한국전쟁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6월 월례강좌 < [한국전쟁 70년 특별강연] 한국전쟁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6월 29일, 본격적으로 장맛비가 떨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참석자들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강의와 질문까지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월례강좌 내용을 압축적으로 소개 합니다^^
먼저 한국전쟁의 연구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초반에 제기되었던 학계의 가설들, 최근 연구동향까지 망라하면서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쟁점들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수정주의(남침유도설)에 대해 최근 연구동향을 중심으로 비판하면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하여 국제적 관점과 내적 요인을 복합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남한의 도발에 말려든 것이라는 북한 정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1946년 반탁운동, 1948년 단선/단정의 실현, 1950년 한국전쟁으로 가는 시기에 국내외 조건들이 맞물려 한국전쟁으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후 본론에서 해당 시기의 쟁점과 당시 정세를 주도한 세력들의 활동을 살펴보았습니다.
해방에서 반탁운동까지의 시기에 주요 쟁점은 조선공산당이 당시의 정세와 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했는지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토지개혁, 그리고 신탁통치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신탁통치를 위한 새로운 임시정부 수립을 강력하게 반대한 기존 임시정부 세력은 반탁운동을 주도했고, 이 결과 단정수립으로 가는 주요한 조건이 충족 되었습니다. 자력으로 해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합국이 정한 룰(신탁통치)를 거부할 경우 남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이 시기부터 냉전이 격화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분단의 강을 건너게 됩니다.
반탁에서 단선/단정으로 가는 과정의 주역은 월남 개신교도들이 주축이 된 흥사단-서북청년단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로당을 비롯하여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여러 대중투쟁을 탄압하면서 테러를 자행했습니다. 단정에서 한국전쟁으로 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지점은 중국혁명이 승리하고 몇 만 명에 달하는 조선의용군이 북한으로 귀환한 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세력들의 활동을 살펴본 뒤 마지막으로 전쟁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성격과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의 구성이 변모하고 김일성이 부상하는 과정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강연 중간 중간에도 질문을 주셨지만, 긴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참석자들은 지치지 않고(^^)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주셨습니다.
Q1. 서북청년단세력이 이후 남한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로 부상했다는 말이 신기했다. 테러집단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 테러를 자행했던 서북청년단 자체는 곧 사라진다. 이후에 분화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육사로 가서 군부의 주도세력으로 변신하거나. 당시 물리적인 테러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이론적, 정치적으로 반공주의를 모색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사실 재야의 뿌리로 알려진 장준하의 <사상계>에도 서북출신들이 많았다.
Q2. 기존 PD의 시각은 수정주의와 친화적이었다고 볼 수 있나?
: PD에도 여러 정파가 있다. 소개한 입장은 여명인데 수정주의와 친화적인 것은 맞다. 당시 현실과 과학, 서사연 쪽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확정적으로 규명하진 않았다. 이후 연구과제로 생각했었다. 물론 1946년 시점에서 남로당이 단선/단정을 막고자 노력했던 노선은 지지했었다.
Q3. 미국의 식민지를 거부한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관점, 박헌영 숙청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 북한이나 NL의 입장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박헌영의 말만 믿고 전쟁을 일으켜서 실패했으니 숙청했다는 입장도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전쟁 패배의 책임을 누가 질것이냐는 당시에 열려있는 상황이었고 스탈린의 개입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강사는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에서 한국전쟁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초기 정세에 주목을 했던 이유는 당시 국제정세에 몰인식한 채 반탁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주의(특히 임시정부)세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고, 무비판적으로 이를 옹호하는 전반적인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한국전쟁하면 반공할아버지들, 민간인 학살, 빨치산 등 단편적인 이미지나 사건들만 떠올렸었는데요. 이번 강연을 통해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한국전쟁으로 귀결된 해방정국의 정세를 평가하고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도 인천지부에서 진행하는 월례강좌에 함께해주세요!
6월 29일, 본격적으로 장맛비가 떨어지는 궂은 날씨에도 참석자들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강의와 질문까지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월례강좌 내용을 압축적으로 소개 합니다^^
먼저 한국전쟁의 연구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초반에 제기되었던 학계의 가설들, 최근 연구동향까지 망라하면서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한 쟁점들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수정주의(남침유도설)에 대해 최근 연구동향을 중심으로 비판하면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관련하여 국제적 관점과 내적 요인을 복합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는 남한의 도발에 말려든 것이라는 북한 정부의 입장에 대한 비판을 포함한 것이기도 합니다.
정리하면 1946년 반탁운동, 1948년 단선/단정의 실현, 1950년 한국전쟁으로 가는 시기에 국내외 조건들이 맞물려 한국전쟁으로 귀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후 본론에서 해당 시기의 쟁점과 당시 정세를 주도한 세력들의 활동을 살펴보았습니다.
해방에서 반탁운동까지의 시기에 주요 쟁점은 조선공산당이 당시의 정세와 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했는지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토지개혁, 그리고 신탁통치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신탁통치를 위한 새로운 임시정부 수립을 강력하게 반대한 기존 임시정부 세력은 반탁운동을 주도했고, 이 결과 단정수립으로 가는 주요한 조건이 충족 되었습니다. 자력으로 해방하지 못한 상황에서 연합국이 정한 룰(신탁통치)를 거부할 경우 남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이 시기부터 냉전이 격화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분단의 강을 건너게 됩니다.
반탁에서 단선/단정으로 가는 과정의 주역은 월남 개신교도들이 주축이 된 흥사단-서북청년단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로당을 비롯하여 단선/단정을 반대하는 여러 대중투쟁을 탄압하면서 테러를 자행했습니다. 단정에서 한국전쟁으로 가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지점은 중국혁명이 승리하고 몇 만 명에 달하는 조선의용군이 북한으로 귀환한 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 세력들의 활동을 살펴본 뒤 마지막으로 전쟁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성격과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의 구성이 변모하고 김일성이 부상하는 과정까지 살펴보았습니다.
강연 중간 중간에도 질문을 주셨지만, 긴 강연이 끝나고 나서도 참석자들은 지치지 않고(^^)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주셨습니다.
Q1. 서북청년단세력이 이후 남한사회에서 엘리트 코스로 부상했다는 말이 신기했다. 테러집단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 테러를 자행했던 서북청년단 자체는 곧 사라진다. 이후에 분화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육사로 가서 군부의 주도세력으로 변신하거나. 당시 물리적인 테러활동에 회의를 느끼고 이론적, 정치적으로 반공주의를 모색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사실 재야의 뿌리로 알려진 장준하의 <사상계>에도 서북출신들이 많았다.
Q2. 기존 PD의 시각은 수정주의와 친화적이었다고 볼 수 있나?
: PD에도 여러 정파가 있다. 소개한 입장은 여명인데 수정주의와 친화적인 것은 맞다. 당시 현실과 과학, 서사연 쪽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확정적으로 규명하진 않았다. 이후 연구과제로 생각했었다. 물론 1946년 시점에서 남로당이 단선/단정을 막고자 노력했던 노선은 지지했었다.
Q3. 미국의 식민지를 거부한 민족해방전쟁이었다는 관점, 박헌영 숙청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 북한이나 NL의 입장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박헌영의 말만 믿고 전쟁을 일으켜서 실패했으니 숙청했다는 입장도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전쟁 패배의 책임을 누가 질것이냐는 당시에 열려있는 상황이었고 스탈린의 개입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강사는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에서 한국전쟁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초기 정세에 주목을 했던 이유는 당시 국제정세에 몰인식한 채 반탁운동을 주도했던 민족주의(특히 임시정부)세력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고, 무비판적으로 이를 옹호하는 전반적인 역사인식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한국전쟁하면 반공할아버지들, 민간인 학살, 빨치산 등 단편적인 이미지나 사건들만 떠올렸었는데요. 이번 강연을 통해 마르크스적인 관점에서 한국전쟁으로 귀결된 해방정국의 정세를 평가하고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도 인천지부에서 진행하는 월례강좌에 함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