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유치휴양림에서 가졌던 탄핵관련 토론회에서 사회진보연대의
말갈족(?)동지께서 발표하신 내용이 거의 대부분 담겨져 있는 글입니다.
원문은 사회진보연대 정세분석자료실에 탄핵토론자료집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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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국면 토론을 위한 10문 10답

“FTA반대, 파병반대, 민중생존권 쟁취" 등 "전쟁반대! 신자유주의 심판"로 요약되는 사회진보연대의 기조는 탄핵찬성/반대에 관한 입장이 다소 불분명해 보인다. 이번 탄핵사태에 대한 대응방향으로 제시되는 "신자유주의 심판"의 기조와 행동의 근거는 무엇인가?


- 탄핵을 반대한다는 주장에는 크게 보았을 때 두 가지 입장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노무현 정권을 전통적인 수구보수세력이 몰아내려는 음모이므로 이를 막아내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고("수구쿠데타" 반대), 다른 한편으로는 의회가 경미한 사유로 대통령을 탄핵하였으므로 이는 초법적인 행동이라는 입장이 있습니다("의회쿠데타" 반대). 그러나 탄핵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법적인 논박에서는 대체로 후자의 입장을 취하지만, 정치적인 토론에서는 전자의 문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의 "상대적 개혁성"을 인정하고 지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적인 문제로 남는 것이겠죠. 그러면 여야 정치세력의 역사와 현실이라는 맥락에서 이 문제를 간략히 살펴봅시다.

남한의 전통적인 지배세력은 제국주의에 철저하게 의탁한 반공친미적인 "매판우파"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이를 지지하는 대중적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민중의 저항에 취약했기 때문에 군부독재나 강력한 억압기구를 동원해서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의 우파세력은 탈냉전과 발전주의의 해체를 거치면서 노태우-김영삼 대통령을 내세우며 "문민화"(文民化)를 진행했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습니다 (YS는 "세계화"나 "신노사관계선언"을 추진했었죠). 하지만 그것이 극적으로 가속화된 계기는 물론 외환위기와 IMF 구제금융 사태였습니다.

그런데 경제위기 당시 미국과 국제금융기구는 오히려 "정권교체"를 선호했습니다 (그들은 DJ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했습니다). IMF 경제개혁은 재벌개혁이나 정부 구조조정과 같이 지배세력 내부의 반발을 불사하는 것이었으므로, 전통적인 지배층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요긴한 일이었던 것이죠. 따라서, 이제 보수화된 자유주의 세력이 신자유주의 개혁과 통치의 관리자로 전면에 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한국의 야당세력은 근본적으로 보수-반공주의에 뿌리를 두었고, 똑같이 "친미파"였습니다. 현재 노정권의 파병강행은 우연이 아닌 것이죠).

그러나 신자유주의 개혁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침해로 나타날 뿐입니다. 신자유주의 개혁에 따라, 재벌기업은 초민족적 금융자본의 이해에 종속하도록 재편됩니다 (이는 "재벌개혁"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노동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자들의 얼굴이 바뀌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대대적인 사유화를 단행하고, 농업,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자, 농민을 일터에서 쫓아내는 것이죠. 따라서 노정권의 "상대적 개혁성"은 핵심적으로는 "새로운 수탈체제"의 구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국면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이나 이라크 파병 등 전쟁강화 정책이 민중의 민주적 권리를 대대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하여 한통속이 되어 있는 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 보수세력을 민중의 힘으로 심판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탄핵사태에 대한 민중운동진영의 논쟁은 87년, 92년 대선 당시 벌어졌던 비판적지지 vs 독자적 정치세력화 논쟁과 동일한가? 만약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고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하는가?"

- 87년, 92년 당시 벌어졌던 「비판적지지 VS 독자적 정치세력화」논쟁과 민중운동진영 내의 탄핵찬반 논란은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탄핵무효 입장을 곧바로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볼 수 없고, 탄핵무효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라고 해서 그것이 탄핵찬성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탄핵에 대한 찬반으로 모든 정치적 입장을 결정짓고자 하는 세력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입니다.

사회진보연대가 탄핵무효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비판적 지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탄핵무효가 비판적지지로 흐를 위험을 가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위험일 뿐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민중운동이 탄핵찬반으로 나타나고 있는 기존의 정치, 정당의 파괴적 혼란 속에서 본래적 과제인 반전/반신자유주의의 쟁점을 스스로 검열하고 억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운동의 재개,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의 목표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총선결과 예측에 종속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87년, 92년 대선전술 논쟁의 핵심은 파쇼타도라는 주요공격방향에 대한 합의에 부가되는 주요타격방향 전술에 대한 논란에 있었습니다. 즉 DJ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세력을 타격/견인함을 통해 군사독재세력을 타도함에 있어, 자유주의 부르주아 세력에 대한 분할-견인과 연합의 측면을 강조하느냐, 분할-타격과 정치적 독립의 측면을 강조하느냐의 논란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97년 이후 전면화 된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라는 과제를 놓고 볼 때, 이전 시기의 주공방(타도대상)/주타방(분할타격견인대상) 전술의 틀은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를 사고하기에는 전혀 적절치 않습니다. 그것은 주타방 전술의 궁극적 관심사가 군부독재세력을 배제한 국가권력의 수립과 정당정치 내부의 헤게모니 형성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 전선복구라는 과제의 관심사는 주타방 전술의 그것과 다릅니다.
국가권력의 형태와 성격, 정당정치의 주도권이 아니라 기존 정치정당(과 조합)의 사회운동적 개조와 운동의 재개가 관건입니다. FTA/파병으로 대표되는 반전과 노동자 농민생존권 관련 쟁점들은 남한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기만적인 정치적 합의를 통해 봉합하려는 신자유주의적인 위기관리의 파괴적인 효과에 대항하고자 하는 사회운동적인 쟁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정치의 정당성과 대표성, 민주성의 위기가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탄핵-총선정국은 바로 이들 사회운동적 쟁점들을 대의(代議)하기는커녕 안팎으로 억압하며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결국 현 시기 민중운동진영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핵찬반 논란을 비판적 지지냐 독자적 정치세력화냐의 구도로 파악하는 것은 철지난 논란으로 민중운동의 자중지란을 자초할 뿐입니다. 탄핵찬반으로 강요된 분열과 종속을 반전 반신자유주의, 민중생존권 쟁취 운동의 독립적이고 단결된 흐름으로 극복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이번 탄핵사태는 민중운동진영과 무관하게 벌어진 단순한 지배정치세력간의 보수적 정쟁일 뿐인가?"

- 탄핵안이 거론되던 지난 3월초, 대부분의 정당지지 여론조사는 한나라당 20%, 열린우리당 30%. 민주당 12% 안팎의 결과를 보였습니다. 작년 10월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나라, 민주당 각각 10% 하락하고, 열린우리당 10% 상승하는 변화를 보인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꾸준히 개혁적 이미지를 형성해온 열린우리당의 1차 승리라고 평가할 만도 하겠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들 3당에 대한 지지도를 모두 합해 보아야 과반을 조금 넘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번 총선의 키포인트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여야 보수정당 모두는 ‘비장의 카드’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노무현정부가 출범한 이래로 노무현 개인의 정치스타일, 지지기반의 취약함에서 비롯되어 끊이지 않았던 각종 사건과 사고들입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대당하는 것 이상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고, 오히려 방탄국회, 쪽수대결을 일삼으며 야당 스스로가 자초한 퇴행적 수구세력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비장의 카드’는 ‘최대한 강력한 것, 상대방의 결점을 공략하는 방식의 네거티브 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바로 대통령 탄핵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탄핵사태는 여야 정치세력간의 위기감과 정쟁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하지만, 그 조건과 효과에 있어 대중들의 삶, 그리고 민중운동의 조건과 직접적으로 연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합니다.

한나라당이 겪고 있는 위기는 꽤 오래 전부터 (그 내부에서도)인식되었던 것으로 박정희 정권 이래로 유지되어온 ‘민족적 발전의 길’이라는 전망이 파탄난 것에서 기인합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노무현과 같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이 미국의 후견에 힘입어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등장했습니다. 현재의 지배세력은 공히 신자유주의 이외에 대안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난 16대 대선 직후 각 여야정당들이 ‘정치개혁’을 화두 삼아 진행했던 일련의 작업들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자본의 위기는 위기관리를 책무로 하는 지배세력에게도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막대한 정치자금의 축소, 구례의 정경유착의 일정한 해소, 대중들에 대한 배제와 포섭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정책구사, 대중동원 능력 등이 필요한데, 이것이 정치개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결국 지배정치의 위기는 자본의 위기에 따른 것인데, 정치개혁, 수구냐 개혁이냐 라는 허구적인 쟁점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차선책이라도 선택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시민단체들을 동원하고 포섭하는 전략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책과 지배계급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거세게 터져 나오는 것을 봉합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민중운동은 분열과 침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탄핵사태는 이러한 지배전략의 아주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지배세력 누구도 비정규직, 청년실업, 가계부채, 신용불량이 등 대중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법을 제시할 수 없고, 각 정치세력별로의 사소한 차이 역시 별반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탄핵국면을 지배계급 내부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대중들의 삶의 위기, 불만의 근원이 비정규직, 실업, 각종 세계화 정책 등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에 있음을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반신자유주의 투쟁전선을 구축하는데 민중운동이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탄핵사태는 87년 이후 전진해온 민주주의에 대한 냉전적 수구보수세력의 폭거라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물론 87년 항쟁의 성과인 대통령 직선제를 비롯한 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의 한계를 가진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탄핵사태는 그것의 발전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요?"

- 탄핵국면에서 표출되는 민중의 불만에서는 87년 시기 이미 표출된 바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쟁점인 국민주권의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민주권'이 좀 더 분명한 표현일텐데, 당연한 듯 보이는 말이지만, 우리는 '누가 인민인가'와 '어떻게 인민은 자신의 주권을 표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정치'가 이를 실질적으로 얼마나 억압해 왔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을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는 국회가 일방적으로 밀어부쳐서 통과시키며, 그 목표가 특히 87년의 성과물이라고 무의식으로 상상하고 있는 '대통령 직선제'를 공격하는 것일 때, 허구적 민주주의가 표상하는 한계와 민중들의 주권표출의 무능력성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87년의 대통령 직선제는 87년 항쟁의 성과가 아니라 지배세력이 민중스스로 자신의 궁극적 권리로서 요구하는 민중의 민주주의를 봉쇄하기 위해 제시한 타협의 결과물입니다. 이처럼 대통령 직선제는 '성과물'인 듯 보였지만 민중의 민주주의적 열망을 봉쇄한 도구였고, 사실 90년대 전체에 걸쳐 민중의 민주주의의 실질적 열망은 여기서 단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지금 탄핵 정국에서 그러한 87년의 봉쇄점을 단순히 '복구'하려는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태도는 민중 자신의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진전시키지 못하며, 신자유주의 하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 공격과 위협을 넘어서서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는 태도가 될 수 없습니다. 87년과 달리 사소한 성과물조차 쟁취할 수 없는 이런 소극적 '복구'의 노력은 복구가 끝난 후 다시 끝없는 절망과 자조로 돌아서게 될 길을 닦을 뿐입니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침해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유주의 세력 또한 안정적인 통치를 형성하지 못하고 계속적인 정치의 위기를 낳지만, 실질적 내용과 괴리된 이들의 자유주의적 외양과 또한 이들의 실질적 정책 지향을 호도하는 미디어 선동형의 정치 스타일은 계속 대중에게 '차악'의 논리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침해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의회주의의 틀을 넘어서서 생존의 기본적 권리를 전반적으로 위협하는 대대적인 공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육, 보건, 노동, 여성, 외국인노동자의 권리가 위협받고 있는 것은 냉전시기의 '그들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 아닌 것이죠.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70%이상이 탄핵에 반대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노무현 지지와 상관없이 수구보수세력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탄핵무효를 주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촛불집회를 노무현/열린우리당 지지일 뿐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한나라당의 논리가 아닌가? 또 그와 같은 태도는 대중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그릇된 태도가 아닌가?"

- 수많은 대중들이 촛불을 든 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기 위함은 아닐 것입니다. 나아 질 것 없는 삶, 민생에는 등돌린 채 정쟁만 일삼는 부패한 정치권, 급기야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지들 맘대로' 탄핵한 상황은 보수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분노를 폭발하게 하였습니다. 노무현정권 1년 동안 급격히 하락한 지지율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삶의 파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비정규직 확대, 노동탄압, 전쟁지원, 파병결정, FTA 승인. 이로 인한 삶의 고통속에서 민심의 이반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고, 그 상황은 한나라-민주당이 유례 없는 '대통령탄핵'을 감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탄핵이 결정되면서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은 탄핵으로 인한 대중들의 분노를 허구적인 보수-개혁구도 속에 가두고, 그 분노를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흡수하려 했습니다. 탄핵무효, 민주수호라는 구호는 이미 파탄난 노무현 정권을 다시금 민주세력으로 포장하였으며,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쟁점을 은폐하고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이 국면을 십분 활용하여 총선에서 승리하고 이후의 지지기반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죠. 이 상황은 '이라크 전쟁을 지원하고, 파병을 결정하고, FTA를 통과시킨 정권이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비껴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열린우리당 역시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나라당은 노무현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탄핵국면에서도 여전히 서로 흠집내기에만 일관하고 있는 저들과 다르게 우리는 신자유주의 개혁의 책임에 대해 단호하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대중들과 이야기해야 합니다. 언제나 역동적으로 시대의 흐름을 만들었던 건 대중들의 발언과 행동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그와 논쟁하고 소통하는 것입니다. 보수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고된 삶에 대한 호소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어떻게 모아져야 할지에 대해서요. 촛불의 힘이 또 다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게로 간다면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웠던 지난 몇 년간의 투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허물게 됩니다. 87년 운운하며 대중들을 호도하는 개혁세력을 명확히 비판하며,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강화하는 것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입니다.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는 본질적으로 의회 제도의 보완물이 아닌가요. 지금 상황에서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를 요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또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헌법개정은 어떻게 요구할 수 있습니까?"

- 물론 제도는 단지 제도일 뿐입니다. 특히, 대중운동의 활성화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직접민주주의를 전제로 하는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는 지배세력의 도구로 활용될 위험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를 올바르게,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은 대중운동의 활성화, 대중투쟁의 힘이 전제될 때 가능합니다. 그럼 왜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를 이야기하는가? 대중들은 정치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국회를 불신하고 있고, 정치적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지 보수정치,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대중들이 겪고 있는 정치일반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지금 ‘누가 다수당이 되느냐’라는 협소한 쟁점 속에 갇혀 ‘차악’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 선택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얌전히 가만있는 길 외에 다른 정치의 공간을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중 스스로가 대안이 되는 ‘다른 길’이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것은 국민발의, 국민소환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정치의 공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국민발의, 국민소환은 바로 이런 공간을 여는 대중운동의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중들의 정치적 의사와는 관계없이 노동법․집시법을 개악하고, 한칠레 FTA 국회비준안, 이라크 파병안을 통과시키는 등 신자유주의 개혁의 들러리에 불과했던 의회정치를 비판하고, 신자유주의 개혁을 직접 저지할 수 있는 제도로서, 민중들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국민발의제 쟁취를 위해 투쟁합시다!


"탄핵국면을 계기로 각급 대중운동은 탄핵을 둘러싼 입장을 놓고 혼란과 큰 논쟁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논란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 각급 대중운동이 탄핵을 둘러싼 입장을 놓고 논쟁을 벌이며 분열하고 만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논쟁의 중요성입니다. 민주노총, 전농 등 주요 대중조직들이 탄핵무효․민주수호 범국민행동에 참여했지만 상층차원의 결정이었을 뿐이고, 기층에서는 여전히 이견이 잠복되어 있습니다. 노무현 탄핵을 둘러싼 논쟁은 신자유주의 시대 민중운동의 발전전망을 놓고 둘러싼 논쟁과 거의 같은 성격을 띤, 실천적 논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논쟁은 기본적으로 오늘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어떻게 이해하고 비판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논쟁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민중운동 내에서 충분히 토론되지는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탄핵사태 직후 전국민중연대는 “정치폭거 탄핵사태, 민생외면 보수정치 심판하고, 진보정치 실현하자’는 기조아래,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진영의 단결을 바탕으로 탄핵정국에 대응하여 주동적이고, 적극적인 투쟁을 전개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탄핵무효 민주수호 범국민행동>에 대한 입장은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충분한 토론이 진행되지 못했고, 이견을 확인하는 데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이 국면을 민중운동이 적극적으로 타개해나가기 위한 주체적인 방침과 운동계획을 마련하고 제시하는 데에도 한계를 보였습니다.

현재 민중운동의 관건적인 과제는 다양한 사회운동의 과제들 예컨대 전쟁반대․파병반대, 농업 해체, 빈곤․실업 등의 쟁점에서 어떻게 더 보편적인 요구를 내걸 수 있겠는가? 어떻게 더 공동투쟁을 벌일 것이며 연대운동의 기틀을 마련할 것이냐의 문제일 것입니다. 탄핵사태를 거치며 민중운동은 큰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신자유주의 비판과 함께 새로운 사회운동 쟁점을 자기과제로 안을 수 있는지가 앞으로 우리 운동의 초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심각한 국론분열과 정치적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조속한 헌법재판소의 기각판결을 요구함으로써 현재 사태를 조기에 종결짓는 것에 뜻을 모아야하지 않겠는가? "

- 그 지지세력은 언론에 대한 압박이나 대중동원, 결정적으로는 총선 결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려하고 있습니다. 실제 탄핵 문제를 결정할 최종적인 권능을 헌법재판소의 손안으로 넘기려고 했던 셈인 거죠. 지금의 탄핵사태의 시작부터, 탄핵을 통과시킨 한민련이나 지금의 사태를 유도한 노무현-열린우리당 역시 이것이 총선전략임을 노골적으로 표명해왔습니다.

지금의 탄핵사태는 정당정치의 위기를 지배정치세력이 스스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는 지배정치세력이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위기가 정치개혁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광화문에 모인 대중들의 분노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결과한 대중의 삶의 위기와 이러한 지배정치에 대한 불신과 환멸이 결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헌재의 어떤 판결도 이 위기를 해결해주지 않으며, 사태의 해결을 헌재의 판결에 맡기는 것의 위험성도 보아야 합니다.

"탄핵무효"를 선전하는 세력은 헌법학자의 다수 견해가 반대고 대세가 탄핵 기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진정한 문제는 헌법재판관이 어떻게 판결을 내릴지는 판결문이 나올 때까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선출"된 자가 아니고 "임명"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순전히 개인이 생각하는 "법리"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따라서 범국민행동이 헌재의 조속한 기각을 촉구하는 것은 민중의 결정을 억압적 국가기구에게 대신 전적으로 맡기자는 주장과 같습니다. 헌재의 판단이 어떻게 나오든지 어느 한쪽이 받아들 수 없다고 선포하면 그 위기를 봉합할 수 있는 능력은 “군대”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선출된 자"에게 있다기보다는 "선출되지 않은 자"의 거대한 권력에 있습니다. 우리는 민중의 결정 권리를 그들에게 위임할 수 없습니다. 또한 민중운동진영의 역할은 지금의 위기를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라 여겨지는 상태로 되돌리고 안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탄핵국면으로 억압된 대중의 불만과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진정한 쟁점을 전면화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대다수가 탄핵무효를 주장하고,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들의 행동이 딱히 진보적인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현재와 같이 대중의 행동이 고양된 시점에서 이 열린 정치공간에 개입하여 헌신함으로써 대중행동을 급진화/좌익화하는 것에 복무해야 옳지 않나?

- 탄핵사태 이후 수십만의 대중들이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수구세력의 쿠테타’로 이번 사태를 규정하면서 자발적으로 광화문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민중운동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거리 두기를 하려는 입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최근 노무현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20% 안팎에 불과했다는 점과 파병에 대한 반대여론이 70%를 상회했다는 사실입니다. 광화문에 모인 대중들과 여론조사에 반응한 대중들이 전혀 별개의 집단이 아니라면, 현재 대다수의 대중들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파병은 물론, 노무현 정부의 각종 정책들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노무현정부의 탄핵에는 반대한다는 아주 복잡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일견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입장들을 현실적으로 양립 가능하게 하는 고리들이 ‘수구세력 반대’. ‘민주주의’, ‘국민들의 의사’와 같은 것들이고, 이는 현재 광화문에서 외쳐지고 있는 구호들입니다.

결국 대중들의 이러한 양가적인 태도는 어떤 것도, 누구도 지지하지 않지만, ‘최악’을 막기 위해서는 ‘차악’을 ‘차선’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자발적으로(!) 맞이하는 것에 이르게 됩니다. 노무현의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운 1/10 발언과 가식적인 겸손을 무기로 한 연극적인 정치쇼야말로 이 이율배반의 원점입니다. 그는 ‘악’을 심판하고자하는 대중의 분노를 한편으로는 ‘최악’과 ‘차악’간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양적인 차이로 교란하고, 이렇게 교란된 대중의 분노를 한발 더 나아가 “비록 자신이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만은 막고 봐야한다.”는 논리로 ‘차악에 대한 강요된 선택’이 아닌 ‘현실적인 차선으로의 자발적 참여와 선택’으로 호도하고, 교묘하게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나도 나쁜 놈이지만, 저놈은 몇 배나 더 나쁜 놈이고, 저놈을 막기 위해서는 나를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밀어 달라.”는 식의 이른바 상대적 진보론, 차악-차선 지지론은 3대에 걸친 신자유주의 문민정권들이 지겹도록 반복해서 사용한 타령이었습니다. 최악으로 낙인찍힌 한나라당, 민주당과 노무현-열린우리당이 추진하는 친미적이고 반민중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과 구상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이미 저들 스스로 인정하는 바입니다. 관건이 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저들의 본질적 동일성을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요구와 참여를 교묘한 방식으로 호도하고, 제한하는 대중조작적 참여정치의 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노동자 민중의 최우선적이고 유일한 선택은 누구에 의해 구성되고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부패한 정치권의 도토리 키재기에 거수기로 동원된 처지에서는 ‘최악’과 ‘차악’, ‘차선’과 ‘차악’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점을 대중들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행동해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민중운동의 역할과 개입이 필요합니다. 비정규직, 실업, 가계부채, 신용불량 문제 등, 대중들의 불만은 여기서 시작되어,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배세력 전반의 무능함을 향해 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계기와 공간이 형성되지 못했던 것인데, 이는 민중운동이 진행해온 반세계화-반신자유주의 투쟁이 그만큼 대중적 지지기반이 취약했다는 것을 역으로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현재 대중들은 ‘수구세력’들의 반격으로 이러한 문제들이 더욱 악화될 것을 우려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탄핵무효를 외치는 것이 결국 신자유주의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들의 지지기반 강화로 귀결될 뿐, 대중들 자신의 권리와 전혀 무관한 일임을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폭로해 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비정규직, 파병, FTA, 청년실업과 같은 가깝게 존재하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쟁점들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현재 대중들이 요구하고 있는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권리가 탄핵을 축으로 지배정치가 만들어 놓은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선전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발의, 국민소환의 요구가 부르주아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무엇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끊임없이 동원되고 허구적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지배정치와는 다른, 스스로의 요구와 권리를 제기하고 형성할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있음을 제시하는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주장되고 선전될 필요가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활동은 민중운동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현재 많은 민중운동 조직들이 탄핵무효운동에 가담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10여 년간, 짧게는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중운동이 진행해온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 그 내부적으로도 강력한 통합력을 가지지 못했던 현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탄핵무효운동에 대한 입장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비롯해 지배계급에 대한 태도에 근거한 것이며, 그에 따라 민중운동 내부의 이견과 분열을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탄핵사태 이후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탄핵국면에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이라는 민중운동의 임무와 역할을 올바로 인식하고 더욱 적극적인 실천을 전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활동에 주력해야 하나?"

-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남한에서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이름의 수탈과 횡포가 활개치지 않도록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복구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민중들이 바라는 것은 전쟁을 반대하고, 농산물 수입개방에 반대하는 처절한 농민들의 외침을 지지하고, 빈곤과 노동권 박탈에 저항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정치에서 배제되지 않는 진정한 민주적 권리를 쟁취하는 것입니다. 총선이 긴박하게 다가오면서 지배 정치권들은 대중들의 불만을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식으로 흡수‧무마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탄핵 찬‧반 말고는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이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에는 신자유주의 개혁 추진에 동원되는 양상으로 결과할 것입니다. 민중운동 진영이 탄핵 사태에 직면하여 탄핵 무효를 두고 대응을 달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되어 결국에는,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투쟁해왔던 그간의 성과들을 형해화하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에 제 민중운동 진영은 "신자유주의 반대/ 노동권 쟁취", "전쟁반대/ 파병철회", "국민발의, 국민소환" 등의 요구들을 전면적으로 제기하며 탄핵 찬/반을 넘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 전선을 형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노총 등 대중운동 단위에서는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쟁점을 전면에 부각하며 투쟁을 전개해야 할 것입니다. 총선에 후보를 내고 선거운동을 벌이고자 하는 진보정당 역시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에 대한 '예의바른 조언자'의 역할에 주저앉거나, 기존 언론에 입맛에 맞는 논리를 개발하는 데에만 몰입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쟁반대와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전선 복구를 위한 투쟁 속에 배치하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지금의 국면을 돌파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