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에 나온 기사인데요.. '집회금지법'이라는 말이
와닿네요.. 한번 씩 읽어보세요.. 요점 정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경찰청 주도 ‘개악’ 사실상 집회금지법


△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와 천영세 부대표 등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114돌 노동절 집회에서 비정규직 철폐 구호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있다. 개정 집시법에서는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이런 집회를 막을 수 있다.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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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판] 2003년을 사흘 남겨둔 지난해 12월29일 국회 본회의. 행정자치위원회가 대안으로 마련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3번째 안건으로 상정됐다. 행자위를 통과했을 때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최악의 개악안”이라며, 즉각 폐기를 주장한 법안이었다.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해 부랴부랴 수정동의안을 낸 천정배 열린우리당 의원이 단상에 나와 호소했다.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키면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가 사실상 경찰의 허가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표적인 구시대적 악법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표결 결과 수정동의안은 찬성 61명, 반대 121명의 큰 표차로 부결되고, 이어 표결에 부쳐진 원안은 137 대 37의 압도적 표차로 가결됐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집회 금지법’이라고 부르는 개정집시법이 통과되는 순간이었다.

개정집시법은 법안이 마련된 과정 자체가 미스터리였다. 애초 집시법 개정 논의는 박종희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01년 11월 대표발의로 개정안을 내면서 시작됐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외교기관 주변의 집회·시위 규제를 완화하는 등 긍정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이어 2003년에 접어들면서 한나라당의 박진·안상수·박승국 의원들이 각각 일부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3건의 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

그런데 행정자치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이들 4건의 안을 묶어 위원회의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그 내용이 크게 변질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발의한 개정안의 어디에도 없던 주요도로에서의 행진 금지와 소음규제 등 독소조항들이 추가된 것이다.

법안의 ‘변질’은 경찰청이 주도했다. 집시법 개정 과정을 지켜본 한 의원 보좌관은 “대다수 의원들이 집시법에 무관심한 사이 경찰청 관계자들이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행자위원들을 설득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이를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를 필요악으로 보는 경찰청의 그릇된 인식에 행정편의주의가 편승해 법률의 전체구조가 위헌적인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규정한다.

'주요도로 행진금지' 최악 독소조항
소음규제·신고제한 원천봉쇄 빌미
시민단체 “조속 재개정” 잰걸음속
여당내 반대 만만찮아 전망 불투명


시민·사회단체들이 개정집시법을 ‘집회시위금지법’으로 규정하고 반대하는 이유는,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거의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우선 제12조 2항에 삽입된 ‘주요도로에서의 행진 금지’ 규정이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개정 전의 옛 집시법에선 질서유지인만 두면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던 도로행진을 ‘교통소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라는 단서를 달아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게 했다. 서울의 경우 경인로~마포로~종로~왕산로~망우로 등으로 이어진 도로를 1개의 주요도로로 하는 등 모두 15개의 ‘주요 도로’를 지정하고 있어, 사실상 서울시내 대부분의 도로가 ‘주요 도로’에 포함된다. 경찰이 마음먹기에 따라 시내 모든 곳에서 행진이 금지되는 셈이다.

학교와 군부대 주변을 집회 금지·제한 가능 지역으로 포함시킨 규정(제6조3항)도 도시지역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원천봉쇄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개정 대상으로 지적된다. 서울의 경우 초·중·고교 등 학교시설이 2229개나 흩어져 있다. 어지간해선 집회장소를 확보하기조차 힘들다. 학교나 군부대 등 해당 시설의 불법행위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도 원천적으로 봉쇄될 수 있다.

새로 도입된 ‘소음 규제’ 규정(제12조3항)은 ‘침묵시위’를 강요한다. 현재 시행령을 마련 중인 경찰은 규제기준을 ‘낮시간 80㏈, 야간 70㏈’로 제시하고 있다. 일상적인 대화가 60㏈, 강남 등 복잡한 도심지역의 평소 소음이 80㏈을 육박한다. 확성기를 사용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다수의 군중이 함께 구호를 외치면 형사처벌은 물론 손해배상 책임까지 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밖에 집회신고를 집회 시작 720시간(30일) 전부터 48시간 전 사이에만 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여러달 전부터 준비해야 할 대형집회를 막는다는 점에서 재개정 대상으로 꼽힌다.

그동안 개정집시법에 대해 시민불복종 운동을 전개해온 ‘개악집시법 대응 연석회의’는 17대 총선 결과 유리한 지형이 형성됐다고 보고, 본격적인 재개정 작업에 나설 태세다. 우선 이달 10일께 각 정당에 재개정에 대한 찬반의견을 묻는 질의서를 보내고, 다음달 17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재개정안 초안을 마련한 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재개정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나라당의 반대가 분명한 상황에서, 열린우리당 당선자들도 성향에 따라 재개정에 대한 찬반이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개정 당시 수정안을 발의했던 천정배·임종석 의원 등은 재개정에 적극적이지만, 일부는 “시민불편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개정집시법을 옹호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안 표결 당시에도 정동영 의장과 정세균 정책위의장 등 10명은 찬성표를 던졌다.



이와 관련해 정세균 의장은 “문제의식이 없지는 않지만 당내에서 더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집시법 재개정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당내 논의 결과에 따라 재개정 여부와 그 방향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광섭 황준범 기자 iguass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