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촛불집회 유감, 저항을 조직화하자

수많은 이라크인의 죽음, 김선일 씨의 죽음,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생명
이 사라질지 모를 죽음의 선동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다. 살육의 먹구름
과 살고싶다는 피울음이 보이고 들리는 이 때, 우리는 답답한 마음으로 촛
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이고, 끝도 방향도 없는 연설을 듣다가 쓰레기를 치
우고 가라는 해산 명령과 함께 흩어진다. 답답하다. 정말 답답하다.

집회의 성격과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당장 집회자원봉사
단이라는 사람이 달려온다. 시민들이 보기에 안 좋으니 질서 있게 앉아 있
으라고 한다. 경찰도 끼어 들어 대열 안으로 들어가라 한다. 경찰이 마련
해준 사각틀 속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 질서인가? 그건 도대체 이 시기
누구를 위한 질서인가?

경찰 차량과 전경으로 장막이 쳐진 테두리 안에서만 맴돌고 있는 확성기
소리, 원래 시민단체들은 파병반대 하는 게 당연하고, 정부는 정부 방침대
로 간다는 노무현 식대로 되가는 무대가 아닐 수 없다. 노무현이 바라는
바대로의 모양이라면, 이런 걸 우리가 예전에 관변집회라 부르지는 않았는
지, 기억을 점검해보게 된다.

잡혀갈 것을 각오하고만 집회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아직 우리 사회라는
걸, 촛불의 안락함 속에서 우리는 잊고 있다. 그 초라한 집회․시위 권리
의 위상을 우리는 애써 무시하고 있다. 유모차를 밀며 가족 단위로 나와
평화롭게 참여할 수 있는 집회의 상을 보여줬다는 것, 시민들이 자발적으
로 이뤘다는 것 등등 촛불집회가 이룬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촛
불집회가 보여준 성과가 그 형식성의 유지로 똑같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촛불은 정신이었지, 형식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촛불은 시민
의 창조물을 바탕으로 계속 복제품만 찍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수많은 생명이 미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의 탐욕 때문에 사라져가고 있는
데, 그에 대한 반대를 조직화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희생도 치르려하지 않
는다. 전쟁을 벌이겠다는 정부를 상대로 과격해지지 말라니, 그럼 우리는
언제 과격해져야 하는가? 청와대로 진격하겠다는 학생들의 호소를 듣지 않
고, 쓰레기 치우고 가라는 시민의 질서의식이 강조되는 집회에는 이미 인
권의 처절함이 없다.

집회․시위를 통한 의사표현은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이다. 우리
는 경제적으로 가난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가난하다. 갇히고 박제화
된 우리의 목소리는 저들이 추진하는 전쟁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으
니 이토록 가난할 수 있는가?

1인 시위, 평화촛불집회, 야간집회가 아닌 문화행사라는 식의 ‘형식’으
로 더 이상 비켜가려 하지 말자. 아무런 희생도 치르려 하지 않고, 이 전
쟁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꿈이다. 이 전쟁이 도모되는 자리마다 찾
아가 점거하자. 이 전쟁에 찬성을 표시하는 정치인들을 쫓아가 멱살을 잡
자. 인의 장막을 친 경찰선 바깥에서 파병철회, 전쟁반대를 외치자. 그리
고 닭장차안에서 유치장에서 만나자.

노무현이 바라는 대로 더 이상 굴지 말자. 우리가 반대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자.

[인권운동연구소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