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이버투데이>에서 퍼왔습니다.



‘가난한 아빠’ 물먹이는 “아빠 힘내세요”

‘부자 아빠’ 찬양 비씨카드 광고…신용불량자 양산 주범이 “계속 긁어라” 재촉

“아빠 힘내세요!”

참 좋은 말이고, 노래다. 토끼같은 자식들이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아빠에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를 불러준다. 하루의 피로가 싸악 가시지 않겠나.

‘올챙이’ 노래처럼 1997년 MBC 창작동요제 입상곡인 “아빠 힘내세요” 노래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노래가 ‘비씨카드’ 광고와 만나면서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광고를 잠깐 보자.

두 아이가 나와 “아빠 힘내라”고 외친다. 참 기특하기도 하지. 귀여운 아이들과 토끼같은 송혜교가 나와 “도와드린다”고 한다. 황홀지경이다. 송혜교는 “대한민국 엄마 아빠 모두 힘내세요”라고 두 손 모아 파이팅을 외친다.

멍하니 광고를 보고 난 뒤 처음에 흥겨웠던 기분은 이내 사라지고 남는 것은 자괴감이다. “난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못났지.”

카드정책 실패 지적은 없고 CF광고 찬양만

많은 언론들이 비씨카드의 광고가 참신한 아이디어와 감성 자극으로 뜨고 있다고 연일 소개하기에 바쁘다. 10월 26일 <조선일보>는 “CF로 선풍적 인기 끄는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실었다. 광고주를 배려하듯 비씨카드 명칭이 선명한 CF 장면 사진도 친절히 덧붙였다.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평가는 네티즌들의 댓글만 봐도 훤하게 알 수 있다. 수백 건의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이 ‘신용불량 문제의 한 중심에 서있는 카드사가 이런 광고할 자격이 있나’로 모아진다.

“BC카드에서 조선일보에 돈 찔렀군. 모 카드사도 아니고, 사진에 BC카드가 대문짝만하게 써있네. BC 카드야, 이런 광고로 시선 끌어 어물쩡 넘어갈 생각 말고 대형마트 수수료 인상 중지해서 서민 좀 살려주라.”

“나 이 광고 너무 싫어하는데. TV 보다가 이거 나오면 짜증나더라.” “카드 빚으로 집 날리고도 힘내란 소리 나오나보자” “아빠, 힘내세요. ‘얼른 벌어서 카드 빚 갚으세요’라는 말이 생각난다.^^” “아빠 힘내세요. BC카드 해지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아빠. 힘내시려면 BC카드부터 꺾으세요. 이마트 가맹점 수수료 분쟁에 앞장섰던 나쁜 카드 입니다. 지들 잘못한 거, 소비자한테 돌리려는 애들이죠.” “하루에도 수백명씩 신불자 도장찍어주는 주제에 힘내세요 아빠? 육갑떠는 걸로 밖에는. 보통 어이가 없어야 말이지.”

“아빠 돈 주세요겠지. 애새끼들은 돈 달라고 꽥꽥 마누라는 돈 못 번다고 꽥꽥.” “꼭 신불자 되는 거 두려워하지 말고 열시미 카드 긁으라는 노래 같아서 시러요” “볼 때마다 황당한 CF…-_-; 뭘 힘내라는 건지? 아이가 하나도 아니구 둘씩이나. 얼마나 그어 댈 것인가!”

400만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빚 독촉, 가압류에 시달리다 삶을 등져야 하는 신용불량자 등의 암울한 시대상은 이 광고 속에는 빠져 있다. 세 자녀와 함께 투신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 어머니의 비극도 망각 속으로 사라진다.

“엄마, 다른 집은 잘 사는데, 우리 집은 왜이래?” 가장의 사업 실패로 카드빚 독촉에 압류까지 들어온 집안의 한 어머니가 아이의 고통을 달랠 길 없어 눈물로 호소하는 고민도 빠져 있다.






고단한 현실 외면 장밋빛 환상만 난무

우리 사회 대부분의 ‘가난한 아빠’, ‘평범한 집안’은 어떤 고민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까.

“기저귀, 분유 값 마련하려면 부지런히 잔업, 철야해야죠.”
“유치원 보내고 학습지에 태권도, 피아노 등 학원비에 등골 휘어요.”
“애들이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대요. 우유, 요구르트 떨어지면 난리나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갔다고 한시름 던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다. 물론 맞벌이 할 수 있는 여건만은 생기는 셈이다.

“휴대폰 사달래요. 그것도 디카폰, 엠피쓰리 되는 걸로 휴우~”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자꾸 보채요. 친구들 사는 집과 비교하니 살고 있는 집이 부끄러운 거죠.”
“최신 컴퓨터로 바꿔 달래요. (초고속인터넷) 메가패스도 깔고요.”

학원비, 옷값, 외식값, 장난감, 놀이공원 입장료…. 아이들 뒷바라지에 부모의 허리는 휘청거린다. 이제 남자 혼자 벌어서는 살림을 유지할 수도 없다. 도저히 맞벌이가 아니고서는 살림살이 대책이 서지 않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엄마인지, 이모인지 모를 송혜교는 “대한민국 엄마, 아빠 파이팅!”을 외친다. 돈 많이 벌어 ‘부자’되라고.

‘가난한 아빠’들은 “아빠 힘내세요!”를 들으며 ‘부자 아빠’가 되지 못하는 무능한 자신을 탓하도록 강요받는다.

‘부자 아빠’ 찬양 ‘가난한 아빠’ 외면

비씨카드의 “부자되세요!”에 이은 “아빠 힘내세요!”의 광고 속 배경은 적어도 30평 이상의 아파트이거나 단독주택이다. 부자를 찬양하며 “(부자)아빠 힘내세요!”라고 하는 걸 잘못 알아들으면 곤란하다. 생략된 ‘부자’를 잘못 이해한 ‘가난한 아빠’는 마음을 크게 상하고야 만다.

비씨카드 광고는 여러 ‘아버지 광고’의 결정판처럼 보인다. 불황기에는 어김없이 아빠들이 광고에 등장했다. 2002년 삼성생명의 “아버지, 삼성생명이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라는 ‘브라보 유어 라이프’에 이어 최근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 시리즈,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의 교보생명 광고 등. ‘아빠 신드롬’으로 불릴 만큼 요즘 광고들의 주류를 이룬다.

불황기에 금융회사는 주 고객인 남성, 아버지를 대상으로 타깃 광고를 벌인다. 광고는 점잖게 꾸짖는다. “무능력한 남자가 되지 말라. 돈 많이 벌라.” “당신이 어떻게 돈을 벌던지는 상관없다.”

이 광고를 보면, 베스트셀러였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을 묘하게 연상시킨다. 이 책은 노골적인 ‘부’의 찬양으로 대다수 ‘가난한 아빠'들의 가슴에 상처를 줬다.

이 책의 저자 기요사키는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투자할 때 자기 돈을 이용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며 “진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의 돈을 사용해 부자가 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미처럼 일해서 언제 돈 모으겠냐는 것이다. 이 기사의 제목은 “주식으로는 부자 못돼, 대출받아 부동산 투자를”이었다.

충청권으로 몰려간 땅 투기꾼들은 이 저자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거나 텔레파시가 통했던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들이 주식투자와 땅투기로 엄청난 돈을 모으는 것도 다 이런 ‘부자’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은 아닐까.

“무릇 모든 부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부를 분배하지 않는다”고 했다. ‘부유세’란 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는 강남 부자들과 한나라당을 보듯 말이다.

개미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은 미덕이 될 수 없다고 책과 광고는 똑같이 뇌까린다. 신문 기사와 방송 광고는 “돈이 부족한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가르치며 ‘부자 아빠’가 되기 위한 한 길에 떨쳐 일어서라고 주문한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아빠’가 “돈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한 일이다. “돈이 모이면 사람이 흩어지고, 돈이 흩어지면 사람이 모인다”고 했다. ‘가난한 아빠’들이여 세상을 향해 “돈 밝히지 말라”고 크게 한번 외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