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직접 나를 고발하라”


행자부의 ‘파업 공무원 징계’방침에 반기 든 이갑용 울산동구청장… 예산으로 협박할 경우 저항할 것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첫 깃발을 올린 ‘11월15일 전국공무원노조 총파업’이 사흘 만에 막을 내리고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처벌 논란으로 쟁점이 옮겨가자 이갑용 울산 동구청장의 소신 행보가 변수로 등장했다.



△ "나는 단 한사람도 처벌할 수 없다." 울산 동구청장 이갑용씨는 공무원노조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징계를 거부했다. 징계를 요구하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은 중앙정부의 권위주의적인 발상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사진 / 이용호 기자)



공무원노조의 파업 계획이 공표된 지난 11월4일 이후 초강경책으로 일관해온 행정자치부는 노조의 파업 중단 선언에도 아랑곳없이 각 지방자치단체를 강도 높게 압박하고 있다. “노조가 파업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고 사태가 완전히 해결된 게 아니다. 국법질서와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단순 가담자를 포함해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징계와 사법처리를 조기에 마무리하라.” 허성관 행자부 장관은 파업 철회 직후인 11월18일 오후 행자부가 임명한 전국 16개 시·도의 행정부시장, 부지사들을 긴급 소집해 파업 참가자에 대한 엄벌 지침을 시달했다. 허 장관은 “정부의 징계조치 요구에 불응하거나 회피·지연하는 자치단체에 대해서는 행정·재정적 불이익을 취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치단체에 공무원노조의 파업 봉쇄를 압박하기 위해 공언했던 △지방교부금 배분에 대한 불이익 △자치단체 고위 공무원에 대한 인사조치 △동조 자치단체장에 대한 고발 등 ‘3대 불이익 부과 원칙’을 파업 공무원 징계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행자부 관료, 직접 전화를 걸어와…


행자부가 지원하는 교부금으로 자치단체의 ‘돈줄’을 죄고, ‘동조 단체장에 대한 고발’ 방침을 공언하는 허성관 장관의 전방위 압박에 상당수 단체장들은 일단 순응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행자부는 파업 철회 선언 하루 뒤인 11월19일 전국 각 자치단체에 모두 1245명을 파면·해임하는 등 중징계를 요구했고, 각 자치단체는 22일 현재 이들 가운데 1112명을 직위 해제했다. 조만간 열릴 광역시·도별 인사위원회까지 행자부 치짐이 관철될 경우 ‘대량 해직 사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소속 이갑용 울산 동구청장의 소신 행보가 행자부의 압박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제2대 민주노총위원장을 지냈던 이 구청장은 “나는 단 한 사람도 처벌할 수 없다”면서 행자부의 압박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행자부가 파업 원천봉쇄 지침을 하달하자, 지난 11월10일 같은 민주노동당 소속 이상범 울산 북구청장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행자부 지침은 지방자치제도를 전면 부정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그는 11월18일 울산광역시 동구 화정동 동구청 2층 청장실에서 <한겨레21>과 단독 인터뷰을 통해 굴복할 수 없는 근거를 조목조목 들이댔다.

그는 허성관 장관을 비롯한 행자부 관료들이 공무원노조 파업을 불법 집단행동으로 규정한 근거부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공무원노조가 명백히 길을 잘못 가고 있고, 그에 대한 잘못을 시정하라는 행자부 방침이라면 나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에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나선 게 아니었다. 공무원 스스로 부정부패의 온상, 세금이나 축내는 ‘밥벌레’ 취급당하는 게 싫다며 ‘철밥통’이라는 그 기득권을 깨고 부정부패를 척결해 사랑받는 공무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행자부가 공무원노조의 이런 행동을 독려하지 못할망정 자치단체에 파업 찬반투표를 원천봉쇄하고, 파업 참가자에 대한 해고·파면을 요구하는 지침을 내린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행자부는 수많은 단체장들이 부정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부패한 6급 공무원이 수십개의 적금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조차 깨끗한 공무원이 되자는 지침을 일선 구청에 내려보낸 적이 없다. 그런데 밥벌레, 비리 온상, 철밥통이라는 불명예를 씻겠다는 공무원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조차 원천봉쇄하라 지시하고, 이제 1천명 이상의 밥줄을 끊는 해고나 파면을 요구하는 지침을 내리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

이 구청장은 특히 행자부 관리가 공문으로 주민이 직접 선출한 자치단체장에게 파업 봉쇄와 참가자 중징계 지침을 내린 것은 지방자치의 근간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적 만행이라고 분개했다. “파업 찬반투표 원천봉쇄, 엄중 징계 지침을 행자부 일개 국장의 이름으로 자치단체장들에게 내려보냈다. 어떻게 임명직 국장이 주민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자치단체장들에게 징계 지침을 일일이 정해주고 돈과 인사권으로 협박할 수 있느냐. 우리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이냐.” 그는 “행자부 관료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당신 때문에 (임명직 공무원인) 누가 다칠 수도 있다’고 압박하기도 했다”며 “구청장인 나에게 이런 전화를 하는데, 직접 전화를 받은 임명직 구청 공무원들은 얼마나 괴로운 나날을 보냈겠느냐”고 말했다.


“차라리 지방자치를 하지 말라”


그는 지난 11월16일 허 장관이 파업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단체장에 대한 고발 가능성을 언급하며 자신을 직접 겨냥한 것에 대해서도 “행자부의 부당한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무원노조에 대한 나의 정치적 소신을 이유로 나를 고발한다면, 차라리 지방자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오히려 “지방교부금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은 나를 뽑아준 18만 울산 동구 주민들을 볼모로 협박해 단체장의 소신을 꺾겠다는 비겁한 술책”이라고 일갈했다. 한발 더 나아가 행자부의 이런 태도가 노무현 대통령의 지방분권 약속이 위선이거나, 행자부 관료들이 도지사·시장·군수로 임명되던 내무부 시절로 회기를 원하는 행자부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진단까지 내놓았다. “노 대통령은 국민이 다 보는 앞에서 지방분권을 공언했다. 250명의 자치단체장들이 모인 자리, 또 여기 울산에서도 ‘지방정부에 예산을 공정하게 줘야 한다.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것을 다 풀어주라’고 말했다. 국민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대통령과 파업 참가자를 해고·파면하지 않으면 지방교부금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지침을 내리는 행자부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심이냐.” 그는 이어 “행자부 지침대로 중앙정부의 말을 안 듣는 단체장 다 없애고, 행자부 5급 계장을 하다 일선 구청장으로 내려오던 시절로 가자는 것이냐. 행자부 관료들을 시·도지사나 시장·군수로 임명하던 과거 내무부 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의 결론은 간단명료했다. “지방자치가 예산권과 인사권으로 협박하는 중앙정부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는 현실에서 내가 고발당하고 부서져도, 단 한명도 징계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래야만 주민자치와 민주주의가 살고, 뿌리를 내린다.” 그는 오히려 행자부의 지침이 구체화될 경우 주민들과 저항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교부금에 대해 단 1원이라도 손해를 가하거나, 나를 고발한다면 지체 없이 상경해 정부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전선을 최대한 확대할 것이다.” 그는 “공무원노조 파업이 워낙 비판받고 있지만 나는 주민자치와 민주주의를 위해 일어서 싸우자고 주민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고 덧붙였다.



△ 기초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308명이 파업체 참가한 울산 동구청. 구청장의 '징계 불가'는 다른 자치단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이용호 기자)





국법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대량 해고도 불사하겠다는 허 장관과 행자부의 방침에 정면으로 맞선 이갑용 구청장의 이런 소신은 파업 참가자의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데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308명이 파업에 참여한 울산 동구청의 책임자가 ‘처벌 불가’를 고수할 경우 다른 자치단체장들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돈줄’을 죄겠다는 행자부의 압박에 대규모 직위 해제로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대량 해직에 따른 공무원노조의 저항, 시민단체의 징계 최소화 요구를 감안해야 하는 단체장들은 동구청 공무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며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울산광역시(시장 박맹우)에서는 행자부의 강력한 징계 지침이 ‘약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울산시는 19일 현재 단 12명만을 직위 해제했다. 이갑용 동구청장이 징계를 거부하고, 이상범 북구청장도 중징계 지침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울산시가 총대를 메기는 부담스런 것이다.


행자부, 울산시 특별직무감사 나서다


‘엄벌’ 치침을 고수해온 행자부로서는 곤혹스런 상황이다. 행자부는 일단 파업 참여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최종 결정할 울산시를 다각도로 압박하고 있다. 행자부는 지난 17일 행자부 감사관실 4급 공무원을 단장으로 한 6명의 특별감사반을 울산시에 내려보내 특별직무감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특별감사반이 공무원노조 파업과 무관한 박맹우 시장의 재산등록 현황까지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파문이 더 커지고 있다. 울산시는 “시장에게 동구와 북구의 총파업 참가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반발했다. 한나라당 울산시당위원장인 최병국 의원(울산 남갑)도 “기초단체장의 직무와 관련된 범위를 광역단체장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감사반의 월권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 구청장도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싸우려면 나와 정면으로 싸워야지, 울산시장을 압박하는 것은 비겁하고 웃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차리리 노 대통령이 직접 나를 고발해달라”고 맞섰다.



△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공무원노조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징계에 불응하는 자치단체에는 행정·재정적 불이익을 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사진 / 한겨레 임종진 기자)



행자부는 표면상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허 장관이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법률 검토까지 끝냈다던 일부 구청장에 대한 고발 여부는 아직 최종 결심을 못하고 있다. 이 구청장 고발 절차를 담당할 행자부 자치행정과, 감사과, 복무과 관계자들은 “아직 이 구청장 고발 문제에 대해 지시가 내려온 게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이 구청장은 단호하다. 그는 이미 지난 2002년 11월 공무원노조의 연가투쟁 때 징계를 요구하는 행자부 지침에 맞서 “민원 불편을 최소화하는 범위 안에서 공무원에게 연가를 허락했는데, 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징계할 수 없다”며 거부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약식기소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그는 벌금 납부도 거부했다. 결국 보다 못한 울산 동구청 노조가 “우리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며 대신 벌금을 납부하며 마무리됐다. 그는 이번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과 허성관 장관을 향해 인식의 전환을 요구했다. “전교조 사태처럼 어느 정권에서든 공무원노조가 제 권리를 찾을 텐데, 노 대통령과 허 장관은 왜 수천명의 공무원을 대량 해직하는 일에 이름을 올리려고 하는가. 어차피 이뤄질 일이라면 개혁적이라는 참여정부, 노동·인권변호사 출신인 노 대통령이 책임지고 허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번엔 정말 안봐주나


2002년 공무원 투쟁 때도 11명만 징계… 강공 땐 집단 행정소송 사태 가능성도


공무원들의 노동권 쟁취 투쟁에 대해 정부는 항상 강력한 대응 지침을 하달했다. 하지만 시간과 여론은 정부의 지침을 무디게 했고, 공무원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었다.

지난 1989년 노태우 정권의 보수·강경파들이 주도한 ‘공안정국’ 가운데서 불거진 전국교직원노조 결성 운동은 그 대표적 사례다. 당시 상당수 교사들이 ‘참교육 실현’과 ‘노동3권 보장’을 명분으로 전교조 결성에 나서자 정부는 이들을 강하게 탄압했다. 총리실, 교육부, 법무부 등 11개 정부기구로 이른바 ‘관계기관 대책회의’까지 만들어 “단순 가담자까지 전원 해고한다”는 지침을 확정했다. 당시 보수언론들도 “스승이 무슨 노동자냐”고 전교조 운동을 정면 공격했고, 1500명의 선생님들이 해고통보를 받고 거리로 내몰렸다.

그러나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전교조를 합법화하고 현실로 인정했다. 길거리로 쫓겨났던 전교조 선생님들도 전원 복직됐고, 상당수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전교조는 현재 40만 교직원 가운데 4분의 1인 9만여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02년 말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며 공무원들이 연가투쟁에 나섰을 때도 정부는 초강경책을 고수했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파면 1명, 해임 8명 등 모두 588명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냈다. 그러나 실제 징계는 해임 4명, 정직 7명 등 11명에 그쳤다.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단체장들이 해당 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하고 광역 시·도 징계위원회가 최종 결정하는 현실에서 선출직인 각 단체장들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는 공무원을 무더기로 징계하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허성관 행자부 장관은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 11월16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사태는 파업이 아니며, 불법 집단행동”이라며 전교조와 같이 나중에 복직시켜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량 해직·파면 등 엄중 처벌 지침을 강행하고, 한번 쫓겨난 공무원은 영원히 공직사회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11월22일 현재 공무원노조 파업과 관련해 징계가 최종 확정된 자치단체 공무원은 2명이다. 광주광역시가 파업 돌입 이틀째인 지난 1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공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인 반영자(45·여·동구 환경위생과 7급)씨를 파면하고, 노조 광주지역본부장인 강기수(52·서구 건설과 6급)씨를 해임한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공무원들이 파업 하루 만에 업무에 복귀한 상황에서 행자부가 요구하는 일괄 해직·파면 등 중징계 조치가 내려질 경우 전교조 때처럼 집단 행정소송 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