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모니터 11호] (4.14~4.20)


[사회] 억측과 과장으로 드러난 ‘대량 인질 사태’
평화네트워크 최민

시아파 주민 대량 인질 사태?
지난 주, 바그다드에서 30km 떨어진 도시 마딘에서 수니파 무장저항세력이 사원을 공격하여 최대 시아파 150명을 인질로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알 자지라에 따르면 이 소식은 지난 주 목요일인 4월 14일 수니파 저항세력의 폭탄 공격으로 사원이 심각하게 파괴되었다는 시아파 지도자의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다음날인 4월 15일에는 복면을 한 무장세력이 차량을 타고 시내를 돌며 시아파 주민들을 체포하고, 시아파가 모두 마을을 떠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로이터 통신은 4월 16일 오전 기사를 통해 종파간의 갈등이 무장 충돌로 비화될 위험에 처한 바그다드 근교의 마딘에서 60명의 시아파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라크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는 또 로켓포와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15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마을로 들어와 인질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자 25가구 정도의 주민들이 마딘을 떠났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또 이 지역이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적대감 증대로 인한 주고받기식 인질극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전하면서, 이 지역이 저항세력의 잦은 공격으로 인해 “죽음의 삼각지대”로 불리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로이터 통신은 4월 16일 오후 기사에서 한 시아파 지도자는 인질의 숫자가 150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정부의 공식 발표는 이보다는 적었는데 보통 35명에서 100명에 이르는 인질이 억류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16일 밤 미군과 이라크군이 마딘 지역에 파견되었다. 물론 군사작전 이전 정부가 인질범과 평화적인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17일 오전 이라크 국방부 관리인 하이더 카윤은 이라크 군대가 마을을 기습해 시아파 15가구를 구출하고 5명의 인질범을 체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은 먼 곳에
해당 지역에서 한 종파가 깨끗이 사라질 것을 요구하며 100명이 넘는 인원을 인질로 하고 있다는 소식은 경악할만한 것이었다. 로이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론은 일제히 그간 우려됐던 이라크 내 종파간 분쟁이 본격화하는 조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17일 이후 전해진 소식은 이와 달랐다.
역시 17일 의회에 출석한 국방·안보 장관 카심 다우드는 “사람들이 갇혀 있다고 보고된 장소 세 군데를 기습했으나 불행하게도 인질을 한 명도 찾지 못 했다.”고 말했다. AP 통신은 4월 18일자 기사를 통해 마딘 지역의 납치 보도가 침소봉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4월 17일 마딘 지역에 급파된 AP통신의 사진기자와 카메라 기자들은 대규모의 이라크 군과 미군이 도시를 봉쇄한 것을 목격했으나 정작 도시 안에서 대규모 인질극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해왔다. AP 통신의 카메라맨은 17일 오전(현지시각) 마딘 시가지를 돌아봤는데, 도시 내에서는 찻집에도 손님이 붐비는 등 일상 생활이 평소와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오히려 일요일 오전까지도 북적이던 거리는 군인들이 시내로 진격하자 텅 비어 버렸고 가게들은 문을 닫았으며 7천여 명의 이 마을 주민들은 군사 공격을 두려워하여 집 안으로 숨어버렸다고 한다.
1500명의 이라크 군인들이 투입된 마딘 작전은 결국 ‘인질’과 ‘인질범’을 찾아내지도 못 하고 끝나고 말았다. 성과라고는 고작 4명의 반정부전사를 체포하고 부비트랩이 설치된 차량 7대와 큰 규모의 탄약 집적장을 발견한 것에 그쳤다. 그러나 그 성과마저도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마딘에 거주하는 아흐마드 알 우바이디는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이 지원하는 이라크 경찰과 군인들이 18일 오전 7시 쯤 마딘 시 중심으로 들어왔는데, 이 과정에서 저항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라크 군인들이 주민들의 집을 샅샅이 수색했으나 인질들을 찾지 못 했고, 대신 시민들의 소규모 화기들을 압수해갔다고 진술했다. 자신의 소형 총기도 압수당했다고 했다.

진실이 죽고, 사람들이 죽고
지난 12월 7일 자이툰 부대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가 거의 5개월이 지난 4월 13일에야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 사고로 자이툰 부대 경계를 맡고 있던 이라크 인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는 파병 한국군이 이라크인을 사망하게 한 최초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자이툰 부대 경계를 맡고 있다는 아르빌 지역의 민병대와 자이툰 부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사건을 그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또 자이툰 부대나 이라크 상황과 관련된 정보는 대체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전달이 되고 있으며 어떤 기준에 의해 걸러지고 왜곡되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하루에도 수십명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의 이라크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거짓’이 더 큰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 영향력있는 단체로서 미국의 점령 반대 입장을 고수해온 무슬림 학자연합(AMS)의 일원인 압드 알 살람 알 쿠바이시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일로 마딘이 또 다른 팔루자가 되지 않을지 큰 우려를 표했다. 그가 접촉한 마딘 주민들에 따르면 인질범이 없는 것이 확실한데도 마을에 공격이 가해졌다고 한다. 그는 또 이번 작전이 “수니파와 시아파 주민들이 조용하게 함께 살아가던 이 지역에 폭풍우를 일으켜 종파간 대립을 선동하기 위해 계획되었다.”고 비난했다. 만일 이라크 군인들이 마딘에 진입할 때 시민들이 저항했다면, 팔루자 못지 않은 비극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건을 수십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인질극 때문에 일어난 비극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유언비어가 불러온 헛소동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얘기인 것이다. 사실 팔루자에서 벌어진 2번의 ‘군사작전’ 역시 테러범들을 색출하는 데에는 실패했으며 수많은 민간인들을 살해했을 뿐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밖에 진실이 있고, 지금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은 목숨을 건 투쟁이 되어버렸다.


[경제] [Al-Ahram Weekly SpecialReport] 전후 2년 이라크의 현실 ①
번역: 대항지구화행동 이대리

"2년 전, 금번주 동맹군의 탱크가 굉음을 내며 바그다드로 들어왔다. 사담의 악명높은 동상의 붕괴는 독재정권의 몰락을 상징하였다. 하지만 2년 동안의 동맹군의 개입은 이라크인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을까? 정치, 사회 경제등 전 영역에 대해 애널리스트들과 실제 목격자들이 Al-Ahram Weekly에 점령의 대차대조표를 제시해 주었다."

13년 동안 이라크 사람들은 세계체제가 만들어낸 가장 포괄적인 국제적 경제재제 아래 놓여있었다. 이라크 사람들은 국제시장에서 어느 것도 판매하거나 구매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라크 기업들은 산산히 부서졌고, 기간시설은 녹이 슬었으며, 가족들은 굶주렸다. 이러한 믿을 수 없는 고통에 유일한 모면책이 UN의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재정은 전적으로 이라크 국민들 자신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이 이라크 민중들에 대한 억압을 지속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왔으며, 그 행정이 부패했다고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의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라크 정부와)확실한 단절을 할 것을 주장했고, 그래서 상황이 달랐으면 반대의 목소리를 내었을 사람들도 2003년 미국의 침공을 전술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전쟁은 정말 하나의 극한점이었다. 하지만 누가 미국 지배 아래서 상황이 훨씬 더 악화되리라 생각했을까?
믿을 수 없는 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2년간 이라크 경제 상황은 나빠지고, 생활조건은 악화되었으며 가난과 어린이 영양실조는 증가하였다. 수많은 이라크 내 비정부기구들에 따르면, 실업률은 65%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이 있었고 이라크 중앙통계국은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세계 식량 프로그램은 이라크인의 4명 중 1명이 무역부에서 배급하고 있는 식량배급으로 연명해 나가고 있으며, 2천600만명의 이라크 인들이 너무 가난하여 의약품과 같은 생활 필수품을 사기 위해 배급된 식량을 되팔아야만 한다고 추산하기도 하였다. 한편 UN 인권위 보고서와 오슬로에 본부를 둔 FAfo 응용사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 이후로 어린이 영양실조 비율이 두배에 달해 거의 8 %에 이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 기간시설의 노후한 상태 때문에, 수백만의 이라크 인들이 며칠씩 깨끗한 마실 물없이 살아가야만 하고 있으며, 또한 하루에 단지 4시간 동안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때때로 그들의 승용차에 넣을 휘발유를 구입하기 위해 온종일 줄을 서야만 하기도 한다.
국가 전체가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경제운용의 실패에 대해 이라크 정가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 또한 일정부분의 책임을 가지고 있다. 정말로 국제사회의 후원자들이 떠들석하게 이라크 재건 노력을 위해 수십억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자금의 단지 몇 퍼센트만이 실제로 배분되고 있다. 반면에 실제로 쓰여지는 이 기금의 대부분은 부패한 관리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쪽으로 길을 찾고 있다. 예를 들어 얘기하자면, 미국은 이라크내 주요 재건 계획들에 120억불을 지원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2004년 말까지 단지2십억불만이 실제 집행되었을 뿐이다. 이라크 정부는 국가 보조금을 절감함으로써 예산의 부족을 보충하려 하였으며, 심지어는 많은 가난한 국민들이 의존하여 연명하고 있는 식량배급을 점차 줄이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의 기획자중 하나이며, 세계은행의 새 대표인 폴 월포이츠는 이제는 유명해진 발언에서 이라크의 경제재건은 이라크의 재정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발언에서 그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름아닌, 이 일이 이라크 정부가 자신의 국민들이 굶어 죽는 것을 내버려 둘 때에만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많은 독립적인 단체들의 보고서는 이제는 이라크에 만연해진 높은 수준의 부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제 투명성 위원회는 긴급한 조처가 취해지지 않는다면 이라크는 “역사상 가장 큰 부패 스캔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는 모든 수위에서 존재하며, 부패한 공무원은 빼돌린 의약품, 의료장비, 석유등을 지하시장에서 팔고 있다. 또한 2004년 7월 발표된 국제고문감시위원회(IAMB)의 회계감사법인인 KPMG에 의해 수행된 회계감사는 석유 자산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는 석유 채굴에 대한 관리에 있어서의 허점, [동맹군 임시행정처(CPA)]가 맡고 있는 천연자원 관리행정에 있어서 관리의 허점, 이라크의 재정을 집행하는 부서들에 대한 확인된 부적절한 관리, 공개입찰 과정에 있어서 기준의 일탈, 이라크 내각 부서 대신에 CPA가 행한 지출과 관련하여 CPA의 적절치 못한 계약 감시등을 지적하였다. 게다가 지금껏 아마도 가장 놀라운 보고서가 제출되었는데, 이라크 재건에 대한 미국 조사위원회 대표는 이보고서에서 CPA가 이라크를 통치한 14개월동안 8십8억달러의 예산이 간단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이 사실은 다음의 질문을 하게 한다 : 점령군 관리들이 자신의 예산을 지키지 못하고 그들의 자금이 빼돌려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이라크의 재산에 대해서는 어떠할 것인가?
사실 부패는 현재 이라크 경제 상태를 설명하는 여러 요소들중 단지 하나일 뿐이다. 석유사업 복구의 실패가 다른 주요한 요인이다. 역사적으로, 이라크 석유 생산은 1970년대 일일 3백5십만 배럴에 까지 이르렀으며, 사담이 집권하자 마자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03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기간까지 생산량은 일일 2백5십만 배럴까지 안정화 되었다. 전쟁 발발 후 처음 몇 달동안 점령군과 미국 관리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 놓았다. 그들의 전망에 따르면 생산량은 빠른 시일 내 전쟁 전의 수준을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되었다. 그들의 낙관은 고질적인 부패, 재건 자금의 부족, 노동자들의 사보타지등의 결과가 명확해지면서, 점점 최조하였다. 이라크 2004 예산안은 생산량이 평균 1백5십만 배럴에 머물렀으며 2005년에는 1백8십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에 수출자료에서는 지난 두달동안 이라크가 일일 평균1백4십6만 배럴을 수출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라크 정부와 점령군 관리들은 이 수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이 수치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예상이 모순이었음을 인정하도록 재촉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12월 22일 이라크 재경부는 “우리는 생산량이 일일 3백5십만 배럴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마도 2005년 말까지는 말이다.”
석유생산량을 높이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군은 이라크 남부 석유저장소의 노동자들에게 폭력적인 대우를 강요해왔다. 노동자들은 항의의 뜻으로 지난 3월말 파업을 벌였으며, 이는 몇몇 미국 관리들을 당황케 하였다. 미국은 이라크 도처에 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점령을 패퇴시키는 가장 좋은 길이 이라크 석유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공격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그 결과 키르쿠크를 출발하여 터키를 경유하는 석유수출은 지난 2년동안 거의 가동되지 않았다. 2005년 3월 28일 주요 석유수송관의 수리가 끝났지만, 그 바로 다음날 폭탄공격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부는 송유관 구역을 지키기 위해 군의 일부를 동원하려 결정했지만 경비대원들이 무장세력을 두려워 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공격이 이루어지자 마자 자신의 자리를 비우고 도망함에 따라 이 노력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석유산업의 위기는 재건 프로젝트에 충달될 자금의 부족 사태를 빚었다. 이것은 생활조건이 비참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월 말, 공공사업부 장관 나스린 바와리는 이라크는 마실물에 대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매년 2억5천5백만불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공공사업부는 20003년 이래 1억불밖에 받지 못했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 이라크 인들은 마실물을 정기적으로 공급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중산층 조차도, 바그다드에 사는 가장 부유한 집안에서 조차 종종 상수도 공급이 예정에도 없이 끊기기도 하며, 다시 물 공급이 될 때까지 며칠을 기다리기도 한다. 어떤 바그다드 거주민들은 도시 한가운데 허가받지 않은 우물을 파서 물을 얻기도 하는데, 여기서 수많은 독극물 중독과 배탈의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남부 바스라에서는 콜레라가 발생하였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낙관주의자 였던 바와리는 이 상수도 예산의 차액을 보충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후원자들에게 다시한번 호소를 하였지만, 이라크 국민들의 마실 물에 대한 필요는 충족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대다수 이라크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분야, 전기분야의 복구는 전적으로 불만족한 상태이다. 이라크 기술자들은 1991년 전쟁당시 이라크 기반시설에 대해 자행된 믿기 어려운 대량파괴에도 불구하고 한달만에 전력공급을 원래대로 복구할 수 있다고 종종 자랑하곤 했다. 이 전쟁의 황폐화 속에서 남은 것이라곤 거의 하나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교해 볼 때, 오늘날의 상황은 쓴 웃음을 짓게 한다. 2003년 전쟁 직전의 시기에, 이라크 전력 기반시설은 평균 95,000MWh를 생산하였다. 이 수치는 전국에 전력을 공급하기에는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적절히 높은 수준이었으며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었다.. 2004년 11월부터 2005년 1월말의 기간동안 이라크 전력 기반시설은 단지 평균 80,000MWh을 끌어 모아낼 수 있었으며, 때때로 50,000MWh 이하로 떨어지기도 하였다. 이 결과는 나라 전역에 걸친 심각한 정전사태였으며 어떤 가정은 하루에 4시간 이하로 전기를 공급받고 있기도 하다.
전국의 송전망의 영구적 복구를 통한 파국의 해결대신에, 일시적인 해결 방법, 이라크 이웃나라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해결방법이 채택되었다. 이는 전쟁이 발발된 직후 2003년에 시작되었으며, 그 당시에는 일시적인 방법으로 고려되엇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라크는 시리아, 요르단 터키, 이란, 쿠웨이트로부터 전력을 구매하기를 계속하고 있고 현재는 이집트로부터 요르단을 통해 전력을 공급받는 협상이 진행중이다. 또한 2005년 3월 27일 이라크 전력부 장관은 이란으로 부터 34%, 터키로부터 300%이상 전력공급을 늘리는 협상에 들어갓다. 그 결과는 이라크가 사실상 에너지를 수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에너지 수입에 의존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었다.
정부관리들이 주요한 문제가 사실상 부족한 재정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승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점령군 관료들은 종종 끝이지 않는 전력부족사태의 책임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있다고 비난해 왔다. 사실상 2004년 8월, 전력과 상수도 프로젝트를 위해 할당되었던 34억달러가 안보 분야로 돌려졌다. 2005년 3월 초,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관리들은 암묵적으로 투자의 부족에 유감을 표하고,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새로운 자금이 전력사업에 더 집중되어 투입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