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년 2번째 소식지입니다. 아쉽게도 4월 소식지를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바쁜 일정이 겹치면서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 양해바랍니다. 원래 기획되어 있던 글들도 일부 빠졌지만, 완결성이 떨어지더라도 정기적으로 발송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에 일단 소식지를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식지에 빠진 부분은 다음 소식지에 반드시 실도록 하겠습니다. <정세동향>은 4월 비정규직 개악입법 투쟁에 대한 평가를 다룬 글입니다. 이 글에서는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이 아직 끝난것이 아니며, 국회일정과 교섭에 얽매이지 않고, 투쟁주체를 형성하고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형태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중행동 내부의 논의가 부족했던 관계로 다른 단체에서 제출된 입장을 일부 수정하여 올립니다. <현장의 눈>에서는 현재 산재보험제도 개악의 흐름과 그것의 문제점에 대한 글을 실었습니다. 한편, 추가로 5월 상반기 동안 진행되었던 '산재보험제도개악저지 천막농성투쟁'의 경과보고도 함께 실었습니다. 이 글들은 민중행동 회원이면서 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이신 정종혁 회원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여성의 눈으로..>은 현재 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계신 이경희 회원을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환경운동에 대한 이경희 회원의 생각과 여성활동가로서 느끼는 점들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생활의 발견>은 임한옥 회원이 부인이 하고 있다는 한지공예에 대한 본인의 감상글을 실었습니다. 그 외에도 <활동보고><회원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는 소식지입니다. 더 나은 소식지를 위해 회원들의 비판과 충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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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이
대중투쟁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 이글은 5월 15일 광주에서 배포된 사회진보연대 유인물에 실렸던 "교섭이 대중투쟁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라는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단지
유보되었을 뿐인 비정규직 관련 법 개악 그동안 ‘노사정 교섭’을 둘러싼 노-사-정의 이해관계 인권위안을 중심으로 한 교섭전략의 문제 투쟁의 대중적 확장과 주체형성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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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노동자를 두 번 울리지 말라! 광주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 정종혁 노동력을 팔아야 살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몸이 전재산과도 같다. 노동자들에게 몸이 아프다는 것은 생계수단을 잃는다는 것이고, 그 가족들에게는 곧 생존의 위기를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한 후 미래에 대한 위기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경험하고 있고, 최근에는 그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산재노동자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재보험이다. 그런데 최근 산재보험을 관할·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인정 요건을 강화하고 입원과
치료기간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산재노동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 의한 이런 피해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적으로 산재보험제도 개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제도는 인정기준이 지나치게 협소할 뿐만 아니라 보장성도 낮고,
특히 산재처리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서 일반 노동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광주전남에서도 민주노총 등 지역의 사회·노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산재보험 개악분쇄와 노동자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을 꾸리고 천막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들의 눈물을 진정 보지 못한단 말인가.
[참고] 산재보험제도개악저지 공동투쟁단 천막농성투쟁을 하고나서.. 광주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 정종혁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만든 ‘근골격계질환 인정기준’과 ‘요양업무 처리규정’은 2000년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부와 자본의 본격적인 대응책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노동강도을
완화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근골격계 투쟁은 산재인정 투쟁으로 축소되고 현장은 더 위축되고 수세적인 상황으로 계속 내몰리고
있다. 이번 투쟁은 나름의 성과와 한계를 남겼다. 성과라면 매년 형식적으로 진행된 4월 사업이 아니라 지역적·전국적 현안을 적극적으로 투쟁으로 배치하면서 4월 투쟁을 진행했다는 점과, 지역적 공동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대투쟁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전국적·지역적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모두가 공감했다는 점 등이다. 한편 현장 결합력이 부족했던 한계도 있었다. 실제 각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이익 사례들을 투쟁으로 결합시켜 가지 못했고, 현장과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에 대한 교육, 선전 활동이 미리 준비되지 못했던 점도 있었다. 더구나 이 문제가 지역적 투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국적인 투쟁 기획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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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할 때 마음을 잊지 말아야죠"
○ 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활동중이신데요, 현재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만들기 위한 운동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폐선부지는
광주역에서 남광주역까지 이어지는, 현재 사용이 중단된 철도예요. 이 페선부지를 푸른 길로 활용하자, 즉 도심 속의 숲으로 활용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일종의 공간 활용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있는 셈인데, 도심내 공간의 활용을 행정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하고 만들어가자 라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 폐선부지는 광주시에서 지하철 2호선의 경전철(지하가 아니라 지상에서
달리는 전철)로 활용하려고 했죠. 하지만 98년부터 지역주민들이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활용하라고 요구하면서 2000년도에 고재유
시장이 푸른 길로 활용할 것을 결정하지요. 그 과정에서 집회와 면담 등 꾸준한 투쟁들이 있었구요. 도심내 공간에 대한 활용을
시민들이 직접 결정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있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어요. 하지만 시청은 푸른 길에 대한 설계를 특정 기관에
맡겨버렸어요. 그래서 이후로도 그러한 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고, 지금도 주민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푸른 길의 설계가 일부 바뀌기도 했구요. 관련해서 지금은 헌수기금, 현재 1억 4천 정도가 모였는데, 이 기금으로
시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를 심는 사업을 하고 있죠. 문제는 경전철이냐 푸른길이냐의 갈등이 푸른길로 결정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 도심 공간의 활용을 민주적으로 결정하자는 운동인 것 같은데, 그럼 시민이나 주민들의 의사는 어떤 식으로 모아질 수 있었나요? 발로 뛰는 방식이었죠. 일단은 폐선부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해서 설문조사 등의 방법으로 의사를 직접 모았는데요, 당시 90% 이상의 주민들이 푸른길을 원했어요. ○ 민중행동 회원이시잖아요? 민중행동과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이전에 생태운동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이 있었잖아요. 근데 이 모임이
속해있던 단체(실천연대)가 해체되면서 민중행동을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욱이 선배가 가입을 권유했고, 욱이 선배 권유로 민중행동에
가입했죠. ○ 지금은 회원활동이 뜸한 상태이신데, 혹시 생태모임이나 다른 식의 소규모 공부모임이 있다면 자주 오실 수 있겠어요? 음.. 하고는 싶은데.. 현실과 좀 괴리가 있어서 걱정되는 측면이 있어요. 사실 저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항상 나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싶죠. 여성위(준) 모임에 가볼까 하는 마음도 있는데, 책임을 못질 것 같아서 좀.. 사실 지금도 다른 모임들을 좀 정리하려고 하는 단계라서... ○ 현재 한 아이의 어머니이신데, 아이를 키우는데서 겪는 어려움 같은 것은 없으신가요? 육아를 책임지는 엄마라는 점을 단체에서 배려해주는 것 같아요. 저녁시간이나
육아와 일이 충돌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 배려 받는 측면이 있죠. 오히려 남자들 같은 경우는 조직에서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남자도 일정하게 양육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구요. 민주노총은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민주노총 정말 못됐어요.^^ ○ 남편 분을 보면 많은 부분에서 가사를 책임지는 것 같이 보여요. 혹시 가사분담은 어떤 식으로 하고 계신가요? 육아는 주로 내가 담당하구요, 가사는 남편이 담당하고 있어요. 미리 사전에 그렇게 약속한 것은 아니었는데, 저절로 그렇게 됐어요. 의견을 교환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는데, 암묵적으로 그걸 인정하고 있는 거죠. 남편 같은 경우에는 저녁에 일찍 자고 - 애보다도 일찍 자요^^ -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그러는데, 그러다 보니까 저녁까지 애를 제가 보게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청소하고 밥하는 일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역할이 분담된 거죠. 남편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을 당연한 자신의 할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 ○ 결혼한 사람으로서 혹시 해주고 싶은 말 있어요? ^^ 아까 밥먹을 때는 나쁜 것이 70이고 좋은 것이 30이다, 결혼하지 말아라 했는데 꼭 결혼을 한다면 '꿈이 같고 지향하는 바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 ○ 9년이면 상당히 오랫동안 활동을 하신건데, 그 동안 느낀 점들이 있다면? 환경운동은 이론이나 논리 이런 것보다는 감성인 것 같아요. 지금도 새만금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것을 느껴요. 바다를 보면 영광에서 보았던 바다, 새만금에서 보았던 바다들이 떠올라요. 영광 핵발전소에 의한 피해사례들이나 새만금이 생각나서 감성의 자극을 받죠. 새만금 간척사업을 비판하는 논리들보다는 자연과 사람들 그 자체를 보면서 애처로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아직 있다는 것. 그런 것 때문에 지금까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요. ○ 환경운동을 하고 계시니까.. 앞으로 환경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음.. 환경운동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의 운동들도 모두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운동가들 스스로의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운동의 어려움은 운동을 시작했을 때 마음,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운동을 하던 조직들도 (외양적으로는) 성장하고 힘이 커지니까 권력단체로 비취지는 것도 있구요. 환경운동에서 보면, 원래 비판의 대상이었던 행정, 기업들이 환경운동에 참여하면서 행정에 밀착되어 버리는 문제들도 있어요. 그러면서 비판과 견제라는 시민운동의 기능들이 사라져가고 있구요. 특히 다른 운동보다는 시민운동이 더 그렇죠. (※ 인터뷰하면서 '초심'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미쳐 받아 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은 '대중과 호흡하려고 했던 것', 즉 대중운동의 마인드라고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 앞으로 환경운동에서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환경운동연합은 환경운동에서는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환경운동연합의 문제가 환경운동의 문제라고 동일시 되는 점들이 있긴 한데... 환경운동연합의 문제점이라고 하면 우선 조직운영의 비민주성을 들 수 있어요. 소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는데, 거대해진 현재의 환경운동연합은 발생하는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최근에는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구요. 제 생각에도 지역 중심의 활동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지역의 주민들 혹은 시민들과 호흡하면서 자심의 삶터를 중심으로 운동하는 게 맞겠죠. ○ 환경운동과 다른 운동들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전에 '아름다운 저항'에서 활동하는 한 학생이 이렇게 물어보더라구요.
"노동권과 환경권이 충돌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제가 간단하게 답해 주었는데요, 그것은 "원칙적으로
충돌할 일 없다" 였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긴 한데, 원칙을 지키고
운동한다면 부딪힐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현재의 운동들이 당면해 있는, 눈앞의 문제들만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까 대립이
발생하는 거겠죠. 따지고 보면 결국 환경문제의 피해자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인 거잖아요. 원칙을 지킨다면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이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원래 처음에 했어야 할 질문인데, 잠깐 잊고 있었네요. 환경운동연합 상근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 학생들 있잖아요.
가끔씩 농활가고, 가끔씩 비판하고. 학교 다닐 때도 내가 운동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 주변에는 운동하는
사람들 많았으니까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잘 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선배랑 약속이 있었는데, 그
선배가 수배 중이었거든요. 근데 그 선배가 내가 보는 앞에서 잡혀간 거예요. 그때부터 고민이 들기 시작했죠.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왜 이럴까 하는 고민들을 하게 된 거예요. 고민 끝에 결국 운동을 내 삶으로 선택했죠. ○ 마지막 질문이예요. 민중행동에 바라는 점 같은 게 있나요? 잘 해야 바라는 것도 생기죠. ^^ 잘하는 것도 없는데, 항상 미안해서. 사실 민중행동과 함께 하는 자리가 없다 보니까 잘 모르고.. 같이 어울려서 이야기를 하거나 대화할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는데, 미안할 따름이네요. ○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경희 회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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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조화로움이 삶의 조화로움으로. 회원 임한옥 처음부터 이런 저런 공예며 특별한 디자인 교육 등을 익힌 것은 아닙니다. 늘 그렇듯이 성장해오며 한 두 가지씩 접하는 뜨개질이며 전통 수예등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꼭, 제 이야기 하듯이 하는군요. 제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처의 이야기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바로 위 그림에서 보여지는 작품(?)인데 한지 공예작품 이랍니다. 지금껏 만들어온 작품이 꽤나 많은데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이리저리 배치하고 나서 몇 컷 올려보았습니다. <사진1> 명함함, 원두막스탠드, 팔각모둠함, 문방사우 작은 명함 함에서부터 위 사진 속의 원두막형 스탠드며 팔각 모둠 함(전통
수납 용도) 및 커다란 쌀 뒤주까지 가히 생활공예품의 전부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들 모두가
크건 작건 한지란 종이와 순수한 노동력의 대가로 탄생했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하겠습니다. <사진2>팔각찻상, 필통, 접시, 사각스탠드 그간 손으로 하는 공예를 여러 가지 하는 것을 지켜본 저로서는 이제서야 자신의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을 찾은 듯하여 제 나름대로, 열심히 후원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또한, 주말이면 외도(?)를 일삼는 남편을 위해 물심양면 온정성을 쏟아주는 제 처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하고 싶습니다. 무작정, 내 뱉는 말처럼 글이 쓰여진 듯하여 차마 부끄럽습니다. 제 처음의 글이 지리산 산행기 내지 달리기 일지 정도였었는데 다소 과장된 몸짓 인듯한 거만함으로 선뜻 글 한편을 내 손으로 올린다고 하고 보니 더욱 부끄럽습니다. 이 글의 시작이 다음의 제 글에서는 이보다 한걸음 진보된 글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 글에서는 다른 얘깃거리를 올려보도록 하겠사오니 지도편달 바랍니다. 하긴, 쓰여지기를 바라는 후원(?)이 더 먼저겠지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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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월 민중행동 활동 보고
민주노총 4시간 총파업
민중행동 총회 05년 민중행동 총회가 4월2일(토)에 있었습니다. 이날 민중행동은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을 구축하고 민중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활동하며 그에 맞는 다양한 사업들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이어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를 위한 4월 총파업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투쟁 일정에 최대한 참여할 것과 각 현장에서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들을 펼쳐낼 것, 투쟁을 조직해내기 위한 민중행동의 계획에 최대한 참여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장애인 차별 철폐/ 조례 제정 서명 운동
현대차앞 1인 시위/ 현장연대 약식 집회, 그리고 현장연대 총회 지난 3월과 마찬가지로 광주전남 현장연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계속했고, 4월11일에는 현대자동차 불법파견규탄,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를 광천동 현대자동차서비스 앞에서 가졌습니다. 한편 현장연대는 5월 28일 1차 정기총회를 통해 현장연대 및 현장조직들의 처한 조건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공서비스노조 서구청 앞 집회 산재보험제도개악 분쇄와 노동자건강권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 전남대병원원내하청지부 투쟁 5.1 노동절-비정규직철폐 광주전남 노동자 대회 페트리어트 기지 반대 투쟁
장흥교통 파업투쟁
울산플랜트노조 전국노동자 대회
반전평화 선전전 민중행동 모임들 교육모임 : 언제부터 '강좌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했는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만 지난 5월26일 책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학교교육을 통해 알 수 없었던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들여다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우리의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새로이 공부할 내용은 지금 고민중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알차게 챙겨가도록 하지요. 반전팀 : 6차의 반전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한미동맹의 역사와 한미동맹 현대화 비판, 그리고 독도 영유권 분쟁을 비롯한 동북아 영토분쟁의 본질과 일본 우경화에 대한
올바른 입장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6월에는 반전평화행동 발바닥과 함께 전범민중재판, 평택미군기지이전반대투쟁, 패트리어트반대투쟁의
내용으로 반전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책기획회의 : 총 4차의 정책기획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책기획회의에서는 노동운동혁신의 과제와 입장을 만들기 위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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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7일(음력 4월10일) 김현미 회원 모두모두 축하해 줍시다~ ^^
회원들 이모저모.. 박정미 회원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송한수 회원, 5월 1일 전대병원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장덕일 회원이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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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정 공 지] 회원들의 재정 결의가 필요합니다!! 올해 상근활동가가 확충됨으로써 재정적자가 예상됩니다. 이에 4월 2일 민중행동 2차 정기총회를 통해 [민중행동 재정에 관한 특별결의]를 통과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 개별적인 회비 인상, 둘째, 2005년 6월까지 특별결의금(10만원) 납부입니다. 민중행동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회원들의 결의를 부탁드립니다. ※ 민중행동 통장 : 회비 및 특별회비 납부는 031-121-677246(광주은행, 김희정)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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