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년 2번째 소식지입니다. 아쉽게도 4월 소식지를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바쁜 일정이 겹치면서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 양해바랍니다. 원래 기획되어 있던 글들도 일부 빠졌지만, 완결성이 떨어지더라도 정기적으로 발송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에 일단 소식지를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식지에 빠진 부분은 다음 소식지에 반드시 실도록 하겠습니다.

<정세동향>은 4월 비정규직 개악입법 투쟁에 대한 평가를 다룬 글입니다. 이 글에서는 노동법개악저지투쟁이 아직 끝난것이 아니며, 국회일정과 교섭에 얽매이지 않고, 투쟁주체를 형성하고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형태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중행동 내부의 논의가 부족했던 관계로 다른 단체에서 제출된 입장을 일부 수정하여 올립니다. <현장의 눈>에서는 현재 산재보험제도 개악의 흐름과 그것의 문제점에 대한 글을 실었습니다. 한편, 추가로 5월 상반기 동안 진행되었던 '산재보험제도개악저지 천막농성투쟁'의 경과보고도 함께 실었습니다. 이 글들은 민중행동 회원이면서 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이신 정종혁 회원이 작성해 주셨습니다. <여성의 눈으로..>은 현재 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활동을 하고 계신 이경희 회원을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환경운동에 대한 이경희 회원의 생각과 여성활동가로서 느끼는 점들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생활의 발견>은 임한옥 회원이 부인이 하고 있다는 한지공예에 대한 본인의 감상글을 실었습니다. 그 외에도 <활동보고><회원소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는 소식지입니다. 더 나은 소식지를 위해 회원들의 비판과 충고 부탁드립니다.

 

교섭이 대중투쟁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 4월 노동법개악 저지투쟁 평가와 이후 투쟁의 과제 -

※ 이글은 5월 15일 광주에서 배포된 사회진보연대 유인물에 실렸던 "교섭이 대중투쟁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라는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단지 유보되었을 뿐인 비정규직 관련 법 개악
정부가 작년부터 집요하게 추진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법 개악안 처리가 또 다시 연기되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었던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안이 지난 5월 3일 노사정 교섭의 결렬과 함께 전면 유보된 것이다. 노사정은 법안 수정을 위해 11차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으나, 결국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법안의 처리를 또 다시 뒤로 미루었다.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 노동자운동 진영은 '노동법개악 저지투쟁'이라는 명칭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명분과 한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여전히 정부와 자본에게 기간제/파견제 사용의 자유화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완성하는데 관건일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노동법 개악이라는 법제화 수단은 필연적이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정리해고를 보다 자유화하고, 파업권을 최소화하며, 노동운동을 제도화하는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노사관계선진화방안(노사관계 로드맵)의 법제화 역시 추진중이다. 이러한 일련의 노동법 개악 시도는 1998년부터 정리해고의 법제화를 시작으로, 파견법 제정, 경제자유구역법 제정, 근로기준법 개악, 비정규직 관련법 개악으로 이어지는 신자유주의 재편전략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이며, 한두 달 연기될 수는 있을지언정 절대 철회될 수 없는 정부와 자본의 사활적 요구인 것이다. 4월 노동법개악저지 투쟁을 평가하고자 함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동안 ‘노사정 교섭’을 둘러싼 노-사-정의 이해관계
대의원대회가 연거푸 3차례 무산된 이후, 민주노총은 3월 17일 중집 회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기 위한 노사정 교섭 재개’를 통과시켰다. 물론 이러한 중집의 결정이 그간 논란이 되었던 ’사회적 교섭‘ 방침을 강행처리 한 것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려우나 노동법 개악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노사정 교섭‘은 사실상 이수호 집행부가 밀어 붙여온 ’사회적 교섭‘ 전략의 첫 실험대라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즉 이번 ’노사정 교섭‘의 결과가 민주노총에게는 이후 ’사회적 교섭‘ 전략 채택에 있어 갈림길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애써 조율하며 교섭에 사활을 걸었던 것은 비정규사안이 워낙 폭발력 있는 사안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교섭전략에 대한 위기적 상황인식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정부와 자본에게도 이번 ‘노사정 교섭’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이번 노사정 교섭의 재개는 정부의 비정규 개악안이라는 강수가 파생시킨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자본 모두에게 노동계가 참여하는 교섭테이블이라는 기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자본이 강위력하게 추진해 온 것은 ‘정리해고의 자유화와 비정규직의 확대’를 골자로 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였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은 외환위기라는 극단적 위기상황을 등에 엎고 사회 전체에 무차별적으로 확대/적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연이어 노동법이 개악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현재 비정규직의 수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웃도는 813만명을 넘어서고 있고, 그들의 불만과 저항들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으며, 국민의 70% 이상이 이번 정부의 개악안에 불만을 표출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와 자본이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한국사회에 정착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통제/관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부와 자본의 위기의식은 명분과 대사회 이데올로기를 획득하는데 효과적인 ‘노사정 교섭’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인권위안을 중심으로 한 교섭전략의 문제
민주노총은 4월 1일 이수호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이 노사정 대화를 통해 수정된다면 6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노동법 개악에 관련해 강한 교섭의지를 보여주었고, 4월 21일에는 11차 중집을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 현실화를 목표로 전향적인 안을 이끌어내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교섭에 있어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애초의 “비정규개악안 폐기”라는 주장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민주노총은 “비정규개악안 폐기”라는 슬로건이 교섭에 있어 부담스러운 혹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결국 ‘노동계의 정부안 수정’이라는 교섭 지형을 만들어졌다.
애초에 사회적 교섭을 통해 비정규개악안을 막아내겠다고 공언해 온 이수호 집행부였지만, 협상 테이블만으로 무언가 전향적인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애초부터 회의적이었을 것이다. 교섭을 뒷받침할 대중 투쟁동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지 못하고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쟁점화도 아직 부족한 당시 상황에 대한 평가가 이러한 수세적 결정에 일면 도움이 됐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민주노총에게 인권위 권고안이라는 것은 그간 불안정했던 사회적 교섭의 모양새를 그럴듯하게 갖추면서, 정부와 자본으로부터 성실한 교섭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갑자기 찾아온 호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권위안을 가이드라인으로 하는 정부안 수정’이라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교섭전략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기간제 문제뿐 아니라 파견법 철폐,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및 노동 3권 보장, 간접고용시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도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울산건설플랜트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명료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시켜 달라는 것이다." "법안에서 우리의 요구가 모두 반영될 것으로 믿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도 없다."라는 전국비정규직노조 대표자연대회의 구권서 의장의 언급은 현재 교섭지형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개악안 폐기" "파견법 폐지" "특수고용 노동3권 인정" "직접고용 정규직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존 요구가 교섭지형에서 왜곡되고 제한되는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투쟁의 대중적 확장과 주체형성의 한계
또한 노사정 교섭을 중심으로 한 투쟁(일정 및 동력)의 배치가 기층에서는 대중운동의 혼란과 투쟁동력의 유실을 낳았다는 점 역시 문제다. 활동가들이나 대중들은 노사정 교섭이 시작된 이후, 교섭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국회만 바라보고 있었다. 집회 및 실천활동이 잡히더라도 그것이 교섭 압박용임이 뻔해서 대중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운동의 활력을 약화시켰다. 비정규직 문제가 이미 사회적으로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고, 불안정노동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과 저항이 두드러지게 확대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 불만과 저항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교섭을 중심에 놓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지 못하다.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은 확실시되는 패배, 혹은 여러 가지 패배와 부분적 승리의 혼합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 싸움의 진정한 성과는 즉각적인 결과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해 가는 노동자들의 결합에 놓여 있다.”는 마르크스의 언급에서 합리적 진실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동운동진영에게는 이러한 대중투쟁의 성과들을 쌓아가려는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확장과 주체형성'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주요하게 평가해야 한다. 교섭과 국회일정에 얽매여 버린 상황에서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치열하게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던 여러 비정규직 투쟁사업장들의 사안이 노동법 개악정세 속에서 전면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급박한 국회일정들에 밀려 부차화되고 축소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비정규직 투쟁의 주체확장과 새로운 주체형성으로
사실 지난 교섭과정에서 인권위안'이 실효성을 거두고 노동계가 기적적인 선방을 했더라도, 그 내용은 '현행 유지'를 뛰어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권과 자본이 먼저 '개악안'을 내며 도발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먼저 대중운동의 힘으로 도발하지 않는 이상,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현재운동의 재구성이 절실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을 법-제도 개선투쟁에 그쳐서도, 단순히 비정규직을 축소하는 투쟁에 국한해서도 안될 것이다. 비정규직은 이미 한국사회 다수의 고용형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고용형태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전면적으로 전복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줄곧 확대될 전망이다.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운동과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자 여성과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새롭게 세워내는 방향 속에 놓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스스로 조직하고 확대시켜 나갈 수 있도록 기획하고 조직하고 연대해야 한다.
'제한적인'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나서 허용해 준 '파견법', 그것이 만들어진 이후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파견노동자와 횡행하는 불법파견, 눈뜨고 볼 수 없는 파견노동자들의 피폐상들이었다. 이 뼈아픈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현재의 실천전략이 만들어져야 한다. 교섭의 가능성이 대중투쟁의 투쟁수위와 내용을 결정하는 폐해가 이제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산재노동자를 두 번 울리지 말라!

광주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 정종혁

노동력을 팔아야 살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몸이 전재산과도 같다. 노동자들에게 몸이 아프다는 것은 생계수단을 잃는다는 것이고, 그 가족들에게는 곧 생존의 위기를 의미한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한 후 미래에 대한 위기감과 심리적 압박감을 경험하고 있고, 최근에는 그로 인해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산재노동자들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재보험이다.

그런데 최근 산재보험을 관할·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재인정 요건을 강화하고 입원과 치료기간 등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산재노동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작년 말 버스노동자 최모씨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뇌출혈로 쓰러졌다. 20년 넘게 시내버스를 운전하면서 매일 장시간 노동과 과로, 스트레스에 시달려오다 결국 뇌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최씨가 뇌출혈로 쓰러질 당시 생긴 상처만 보고 외상에 의한 뇌출혈이라며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 최씨는 수술을 받고 퇴원했으나 돈이 없어 더 이상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올해 3월 수진환경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던 신모씨는 작업도중 지게차에 허리를 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수진환경은 광주 서구청으로부터 재활용·폐기물 처리업무를 민간위탁받아 운영하는 사업체이다. 입원 당시 담당의사는 한 달간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15일만 입원치료를 하고 나머지 15일은 통원치료로 돌려버렸다. 본인이나 담당의사에게는 한 마디 사전 통보나 상의도 없이. 신씨는 아직도 아픈 몸을 이끌로 매일 병원치료를 받으러 다닌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에 의한 이런 피해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적으로 산재보험제도 개악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사업장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인력이 줄고, 노동강도는 세지고, 노동조건은 악화되었다. 그 결과 2000년 이후로 꾸준히 산재, 직업병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디스크처럼 뼈, 근육, 관절 등에 생기는 질환), 뇌심혈관계 질환(과로사, 뇌출혈, 심근경색 등)과 같은 전반적인 노동조건 악화로 인한 직업병들이 급증하고, 이에 대한 예방대책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커져왔다.
그러나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은 근본적인 대책은 고사하고 오히려 산재인정기준을 엄격히 하고 ‘나이롱 환자들(?)’을 걸러내서 산재를 줄이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산재인정기준을 까다롭게 해서 통계상 산재수치를 낮추고, 산재보험재정 고갈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정책방향은 작년에 ‘근골격계질환 인정기준 처리지침’, ‘산재요양업무 처리규정’이라는 두 가지 내부규정으로 표현되었다. 이들 내부규정은 산재인정을 매우 까다롭게 하는 한편 산재노동자나 담당의사의 의견은 무시한 채 입원과 치료, 재활, 복귀 등 요양 전과정을 공단의 획일적인 기준에 맞추겠다는 것이다. 법적 강제력도 없는 내부규정을 무소불위의 칼처럼 휘둘러대는 근로복지공단의 횡포로 산재노동자들은 제대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제도는 인정기준이 지나치게 협소할 뿐만 아니라 보장성도 낮고, 특히 산재처리 절차가 매우 까다로워서 일반 노동자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산재보험은 너무나 먼 나라 얘기다. 산재보험 개혁은 진정으로 산재노동자들을 위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인정기준은 보다 확대하고, 복잡한 절차는 대폭 축소하며, 입원과 치료, 재활 등 보장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정부와 근보복지공단의 산재보험 개혁 방향은 노동자들에겐 개악일 뿐이다.

현재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광주전남에서도 민주노총 등 지역의 사회·노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산재보험 개악분쇄와 노동자건강권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을 꾸리고 천막농성을 진행한 바 있다.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노동자들의 눈물을 진정 보지 못한단 말인가.

 

[참고] 산재보험제도개악저지 공동투쟁단 천막농성투쟁을 하고나서..

광주노동보건연대 사무차장 정종혁

지난해 근로복지공단이 만든 ‘근골격계질환 인정기준’과 ‘요양업무 처리규정’은 2000년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정부와 자본의 본격적인 대응책의 일환이었다. 실제로 노동강도을 완화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고자 했던 근골격계 투쟁은 산재인정 투쟁으로 축소되고 현장은 더 위축되고 수세적인 상황으로 계속 내몰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3월에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산재노동자 구속사건과 산재노동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관한 언론기사들, 정부에서 흘러나오는 산재보험개혁 방안들. 그들이 무언가 더 큰 판을 짜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데 우리는 아직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2005년 4월은 이런 위기감 속에 찾아왔다.
수세적이긴 하지만 정부와 자본의 공격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나이롱 환자’ 운운하면서 산재보험 개악에 나서고 있는 그들에 맞서 산재노동자들의 불만을 조직하고 피해 사례를 모아서 일단 투쟁에 들어가기로 했다. 4월말까지 민주노총 지역본부와 각 단사별로 불이익 사례를 수집하여 이것을 중심으로 4월말 투쟁을 가져가기로 했다.
한편 이 사안이 몇몇 사업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지역적인 연대투쟁이 필요했다. 특히 피해사례들이 비정규직, 영세사업장에서 주로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올해 3월에 광주전남지역에서 KT 인권탄압 증언대회를 함께 준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10여개 노동·사회단체·노동조합들이 다시 모여서 ‘산재보험 개악분쇄와 노동자건강권 쟁취를 위한 광주전남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을 꾸렸다.
광주노동보건연대가 상담 받은 불이익 사례와 민주노총 지역본부 등에 올라 온 불이익 사례들을 중심으로 일단 투쟁에 들어갔다. 뇌심혈관계 질환 불승인, 강제통원치료 등 모아진 불이익 사례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먼저 접수했다. 그 와중에 예기치 않은 근로복지공단 점거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의신청서를 반려했던 공단이 다음날은 본인이나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자문의협의회를 열어서 일방적으로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광주노동보건연대와 민중행동 회원들이 급히 공단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자문의협의회는 끝나고 공단직원들도 퇴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공단의 기만적인 행태에 항의하며 그 자리에 앉아서 바로 농성에 들어갔고 그 날 예정되어 있었던 공투단 회의를 점거농성장 안에서 진행했다. 몇 시간 후 담당 보상부장이 달려와서 다시 심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농성을 풀었지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를 그들이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하고 있는지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거농성은 풀었지만 투쟁일정은 오히려 앞당겼다. 바로 다음 월요일날 근로복지공단 광주본부 앞에서 공투단 약식집회를 갖고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공투단 참가단위가 돌아가면서 천막농성을 했다. 천막은 투쟁의 거점이었고, 중간 중간 단사별 선전전을 진행했다. 임단협 투쟁을 하고 있던 캐리어 동지들과 함께 출근 선전전을 했고, 금호타이어 광주, 곡성 공장 앞에서도 선전전을 했다. 노동탄압에 맞서 출투를 진행하고 있던 기아자동차 앞에서도 아침에 함께 선전전을 진행했다.
5월 10일에는 근로복지공단 본부장을 직접 만나서 항의 면담을 했다. 예상했던 대로 자신들의 권한 밖이라는 책임회피와 노력하겠다는 공언(空言)만을 늘어놓았다. 물론 사과를 받아내고 몇 가지 시정조치를 약속받는 가시적인 성과도 있었다. 5월 14일 5월 광주를 기억하며 모여든 전국의 동지들과 함께 집회를 갖고 천막농성은 마무리 했지만, 이후 공투단을 지역의 안정적인 연대체로 전화해서 계속 투쟁을 이어가기로 결의했다.

이번 투쟁은 나름의 성과와 한계를 남겼다. 성과라면 매년 형식적으로 진행된 4월 사업이 아니라 지역적·전국적 현안을 적극적으로 투쟁으로 배치하면서 4월 투쟁을 진행했다는 점과, 지역적 공동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대투쟁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전국적·지역적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모두가 공감했다는 점 등이다. 한편 현장 결합력이 부족했던 한계도 있었다. 실제 각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이익 사례들을 투쟁으로 결합시켜 가지 못했고, 현장과 노동안전보건활동가들에 대한 교육, 선전 활동이 미리 준비되지 못했던 점도 있었다. 더구나 이 문제가 지역적 투쟁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국적인 투쟁 기획이 필요한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을 잊지 말아야죠"
-환경운동연합 이경희 회원을 만났습니다-

※ 이번 달에는 환경운동연합에서 9년째 상근활동을 하고 있는 이경희 회원을 만났습니다. 회원방문을 기획하고 나서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이경희 회원을 선정한 건데요, 한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고(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될 예정입니다), 노동운동가의 아내, 그리고 그 스스로도 여성활동가라는 점이 선정의 이유라면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실 근처에서 이경희 회원이 사준 보리밥을 먹고 난 우리는 근처 찻집으로 이동해서 환경운동에 대한 생각과 여성활동가로서 느끼는 점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환경운동연합에서 이경희 회원은 폐선부지(광주역에서 남광주역까지 사용이 중단된 철도) 푸른길 만들기 사업을 맡아 바쁘게 활동중이라고 합니다.

○ 환경운동연합에서 상근활동중이신데요, 현재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만들기 위한 운동을 맡아서 하고 있어요. 폐선부지는 광주역에서 남광주역까지 이어지는, 현재 사용이 중단된 철도예요. 이 페선부지를 푸른 길로 활용하자, 즉 도심 속의 숲으로 활용하자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일종의 공간 활용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있는 셈인데, 도심내 공간의 활용을 행정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하고 만들어가자 라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원래 폐선부지는 광주시에서 지하철 2호선의 경전철(지하가 아니라 지상에서 달리는 전철)로 활용하려고 했죠. 하지만 98년부터 지역주민들이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활용하라고 요구하면서 2000년도에 고재유 시장이 푸른 길로 활용할 것을 결정하지요. 그 과정에서 집회와 면담 등 꾸준한 투쟁들이 있었구요. 도심내 공간에 대한 활용을 시민들이 직접 결정한 것은 국내에서 처음있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어요. 하지만 시청은 푸른 길에 대한 설계를 특정 기관에 맡겨버렸어요. 그래서 이후로도 그러한 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고, 지금도 주민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푸른 길의 설계가 일부 바뀌기도 했구요. 관련해서 지금은 헌수기금, 현재 1억 4천 정도가 모였는데, 이 기금으로 시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를 심는 사업을 하고 있죠. 문제는 경전철이냐 푸른길이냐의 갈등이 푸른길로 결정나면서 시민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참고로,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과거의 일과는 방식이 많이 달라요. 과거에는 행정과 대립하거나 비판, 견제하는 입장에서 사업을 끌어갔다고 하면, 지금은 행정과 파트너쉽을 형성하면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갈등의 소지가 줄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내부에서 말못할 갈등들은 더 많은 것 같아요.

○ 도심 공간의 활용을 민주적으로 결정하자는 운동인 것 같은데, 그럼 시민이나 주민들의 의사는 어떤 식으로 모아질 수 있었나요?

발로 뛰는 방식이었죠. 일단은 폐선부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해서 설문조사 등의 방법으로 의사를 직접 모았는데요, 당시 90% 이상의 주민들이 푸른길을 원했어요.

○ 민중행동 회원이시잖아요? 민중행동과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이전에 생태운동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이 있었잖아요. 근데 이 모임이 속해있던 단체(실천연대)가 해체되면서 민중행동을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욱이 선배가 가입을 권유했고, 욱이 선배 권유로 민중행동에 가입했죠.
과거에는 작은 그룹을 이뤄 공부하는 모임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운동이 합법화하면서 예전과 같은 공부하는 작은 모임이 많이 없어졌는데, 민중행동이 그러한 활동들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죠.

○ 지금은 회원활동이 뜸한 상태이신데, 혹시 생태모임이나 다른 식의 소규모 공부모임이 있다면 자주 오실 수 있겠어요?

음.. 하고는 싶은데.. 현실과 좀 괴리가 있어서 걱정되는 측면이 있어요. 사실 저는 '나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항상 나에 대한 투자를 많이 하고싶죠. 여성위(준) 모임에 가볼까 하는 마음도 있는데, 책임을 못질 것 같아서 좀.. 사실 지금도 다른 모임들을 좀 정리하려고 하는 단계라서...

○ 현재 한 아이의 어머니이신데, 아이를 키우는데서 겪는 어려움 같은 것은 없으신가요?

육아를 책임지는 엄마라는 점을 단체에서 배려해주는 것 같아요. 저녁시간이나 육아와 일이 충돌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 배려 받는 측면이 있죠. 오히려 남자들 같은 경우는 조직에서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 남자도 일정하게 양육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구요. 민주노총은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해요. 민주노총 정말 못됐어요.^^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한 단체에서 9년째 상근하고 있는 저는 새로운 운동방식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영역을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근데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남편이 일 시작한지 한 5, 6년 정도 됐나? 그런 거 있잖아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하게 되는 시기 같은 거.. 남편은 지금이 그런 거 같아요.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한참 재밌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이 사람은 지금이 그런 시긴갑다 하는 생각이 들죠.
어쨌든 여성에게 모든 육아의 책임을 떠넘기는 그런 구조가 있는 것 같아요. 시댁이나 가족관계는 가부장적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적인) 관계가 충돌하는 문제처럼, 현실하고 우리가 원하는 거하고는 괴리가 있어서 피곤한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도 많이 바뀌긴 했어요. 예전에는 남편이 설거지하고 있으면 시댁에서 뭐라고 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냥 무시하고 계속 하니까 지금은 시어머니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드라구요.

○ 남편 분을 보면 많은 부분에서 가사를 책임지는 것 같이 보여요. 혹시 가사분담은 어떤 식으로 하고 계신가요?

육아는 주로 내가 담당하구요, 가사는 남편이 담당하고 있어요. 미리 사전에 그렇게 약속한 것은 아니었는데, 저절로 그렇게 됐어요. 의견을 교환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는데, 암묵적으로 그걸 인정하고 있는 거죠. 남편 같은 경우에는 저녁에 일찍 자고 - 애보다도 일찍 자요^^ -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그러는데, 그러다 보니까 저녁까지 애를 제가 보게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남편이 청소하고 밥하는 일을 하고. 뭐 그런 식으로 역할이 분담된 거죠. 남편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을 당연한 자신의 할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

○ 결혼한 사람으로서 혹시 해주고 싶은 말 있어요? ^^

아까 밥먹을 때는 나쁜 것이 70이고 좋은 것이 30이다, 결혼하지 말아라 했는데 꼭 결혼을 한다면 '꿈이 같고 지향하는 바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

○ 9년이면 상당히 오랫동안 활동을 하신건데, 그 동안 느낀 점들이 있다면?

환경운동은 이론이나 논리 이런 것보다는 감성인 것 같아요. 지금도 새만금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것을 느껴요. 바다를 보면 영광에서 보았던 바다, 새만금에서 보았던 바다들이 떠올라요. 영광 핵발전소에 의한 피해사례들이나 새만금이 생각나서 감성의 자극을 받죠. 새만금 간척사업을 비판하는 논리들보다는 자연과 사람들 그 자체를 보면서 애처로움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아직 있다는 것. 그런 것 때문에 지금까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요.

○ 환경운동을 하고 계시니까.. 앞으로 환경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음.. 환경운동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의 운동들도 모두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운동가들 스스로의 마음일 거라고 생각해요. 현재 운동의 어려움은 운동을 시작했을 때 마음, '초심'을 잃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운동을 하던 조직들도 (외양적으로는) 성장하고 힘이 커지니까 권력단체로 비취지는 것도 있구요. 환경운동에서 보면, 원래 비판의 대상이었던 행정, 기업들이 환경운동에 참여하면서 행정에 밀착되어 버리는 문제들도 있어요. 그러면서 비판과 견제라는 시민운동의 기능들이 사라져가고 있구요. 특히 다른 운동보다는 시민운동이 더 그렇죠. (※ 인터뷰하면서 '초심'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미쳐 받아 적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렴풋이 느낌으로 남아있는 것은 '대중과 호흡하려고 했던 것', 즉 대중운동의 마인드라고 이해했던 것 같습니다)

○ 앞으로 환경운동에서 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환경운동연합은 환경운동에서는 가장 큰 단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환경운동연합의 문제가 환경운동의 문제라고 동일시 되는 점들이 있긴 한데... 환경운동연합의 문제점이라고 하면 우선 조직운영의 비민주성을 들 수 있어요. 소위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는데, 거대해진 현재의 환경운동연합은 발생하는 문제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최근에는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구요. 제 생각에도 지역 중심의 활동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 같아요. 지역의 주민들 혹은 시민들과 호흡하면서 자심의 삶터를 중심으로 운동하는 게 맞겠죠.

○ 환경운동과 다른 운동들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전에 '아름다운 저항'에서 활동하는 한 학생이 이렇게 물어보더라구요. "노동권과 환경권이 충돌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때 제가 간단하게 답해 주었는데요, 그것은 "원칙적으로 충돌할 일 없다" 였어요.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부분들이 있긴 한데, 원칙을 지키고 운동한다면 부딪힐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현재의 운동들이 당면해 있는, 눈앞의 문제들만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까 대립이 발생하는 거겠죠. 따지고 보면 결국 환경문제의 피해자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인 거잖아요. 원칙을 지킨다면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이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새만금 투쟁했을 때가 생각나는데, 처음엔 전북의 군민들이 모두 반대했어요. 주민들은 빨리 보상받고 지역을 떠나려고 하는데, 이 투쟁이 진행되면서 지지부진해지니까 불만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주민들 스스로 조직하면서, 자연과 함께 살았던 인간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어요. 환경문제 또는 생존권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바뀌어 버리게 될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거죠. 동강의 환경문제에서도 드러났던 건데, 항상 주민들 스스로를 투쟁의 주체로 조직하는 방식이 아니라 급하게 눈앞의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동강 싸움에서는 환경단체와 정부의 싸움에 주민들이 들러리서는 것으로 비치기도 했죠.

○ 원래 처음에 했어야 할 질문인데, 잠깐 잊고 있었네요. 환경운동연합 상근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학교 다닐 때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 학생들 있잖아요. 가끔씩 농활가고, 가끔씩 비판하고. 학교 다닐 때도 내가 운동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당시 주변에는 운동하는 사람들 많았으니까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잘 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나서 어느 날 선배랑 약속이 있었는데, 그 선배가 수배 중이었거든요. 근데 그 선배가 내가 보는 앞에서 잡혀간 거예요. 그때부터 고민이 들기 시작했죠. 운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왜 이럴까 하는 고민들을 하게 된 거예요. 고민 끝에 결국 운동을 내 삶으로 선택했죠.
당시에는 주변에 농민운동 하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학교 다닐 때 영광에 농활 가서 했던 반핵운동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환경운동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농민운동 아니면 환경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선배에게 물었는데, 그 선배가 전북 익산에서 농민운동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당시 내 상황이 다른 지역으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건 안되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지역 환경운동 단체에서 상근활동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그래서 환경단체에 들어가게 된 거고, 결국 그 시간이 9년이 되어 가네요.

○ 마지막 질문이예요. 민중행동에 바라는 점 같은 게 있나요?

잘 해야 바라는 것도 생기죠. ^^ 잘하는 것도 없는데, 항상 미안해서. 사실 민중행동과 함께 하는 자리가 없다 보니까 잘 모르고.. 같이 어울려서 이야기를 하거나 대화할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는데, 미안할 따름이네요.

○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경희 회원께 감사드립니다.


색의 조화로움이 삶의 조화로움으로.

회원 임한옥

처음부터 이런 저런 공예며 특별한 디자인 교육 등을 익힌 것은 아닙니다. 늘 그렇듯이 성장해오며 한 두 가지씩 접하는 뜨개질이며 전통 수예등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꼭, 제 이야기 하듯이 하는군요. 제이야기가 아닙니다. 제 처의 이야기입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바로 위 그림에서 보여지는 작품(?)인데 한지 공예작품 이랍니다. 지금껏 만들어온 작품이 꽤나 많은데 그 중에서 몇 가지를 이리저리 배치하고 나서 몇 컷 올려보았습니다.

<사진1> 명함함, 원두막스탠드, 팔각모둠함, 문방사우

작은 명함 함에서부터 위 사진 속의 원두막형 스탠드며 팔각 모둠 함(전통 수납 용도) 및 커다란 쌀 뒤주까지 가히 생활공예품의 전부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봐야겠습니다. 이들 모두가 크건 작건 한지란 종이와 순수한 노동력의 대가로 탄생했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한지는 그 색이며 활용도면에서 종이자체로는 서적을 여러 겹 덧댄 종이로는 생활용품 이라 할 수 있는 이와 같은 각양각색의 용도에 맞는 가구내지 일상용품으로 만들어졌다 하니 이는 요즈음의 각종 플라스틱 그릇이나 유리그릇에 가히 버금가는 일상 생활 속의 풍요로움이라 할 것 입니다.
간혹,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사극 등을 보노라면 안방침실의 보료와 함께 장식장 한 켠을 화사하게 장식 하고 있는 반짇고리며 지(紙) 통 이며 선비가 책을 읽던 책장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그것들이 나무로도 만들었지만 한지로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레 알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지금까지의 소품위주에서 벗어나 40여kg의 쌀이 가득 들어가는 뒤주를 만들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자면, 다른 한지공예와 마찬가지로 먼저 선택했던 작품의 외형모양으로 재단 되어진 합지(여러 겹의 종이가 함께 붙여진)나 혹은 나름대로의 재단을 한 재단지를 공예용 풀로 견고하게 붙인 뒤 이 위에 다시금 각양각색의 선택되어진 고운 빛깔의 색지를 배치하고 잘 마르도록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전체적인 공예품의 날개라 할 수 있는 문양을 오리는데 가히 이 과정에 들어서면 손끝하나 칼끝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합니다. . 일례로 문양 중에서 어떤 사물의 형태를(십장생도 등) 오려내는 과정은 실로 한지공예의 화룡점정 이라 할만큼 세밀하고 정교하기가 기계의 그것만큼이나 정밀하답니다. 이러한 문양을 때에 따라서 몇 겹 이 모자라다 싶게 다양한 색깔로 붙이고 말리고 마감하고 다시금 칠하는 일련의 과정이 계속 되다 보면 어느것 하나 도드라지거나 빠지는 것 없이 조화롭다 할 것입니다. 변변한 작업공간 하나 없이 비좁은 방 한 쪽에서 주부로서의 가사생활에 쏟아지는 일상 속에 온갖 소품을 가지고 만들어지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볼 때면 색의 조화로움이 삶의 조화로움으로 거듭나는 듯 합니다.

<사진2>팔각찻상, 필통, 접시, 사각스탠드

그간 손으로 하는 공예를 여러 가지 하는 것을 지켜본 저로서는 이제서야 자신의 의미를 부여할만한 일을 찾은 듯하여 제 나름대로, 열심히 후원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또한, 주말이면 외도(?)를 일삼는 남편을 위해 물심양면 온정성을 쏟아주는 제 처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하고 싶습니다.

무작정, 내 뱉는 말처럼 글이 쓰여진 듯하여 차마 부끄럽습니다. 제 처음의 글이 지리산 산행기 내지 달리기 일지 정도였었는데 다소 과장된 몸짓 인듯한 거만함으로 선뜻 글 한편을 내 손으로 올린다고 하고 보니 더욱 부끄럽습니다. 이 글의 시작이 다음의 제 글에서는 이보다 한걸음 진보된 글이 되기를 바라며 다음 글에서는 다른 얘깃거리를 올려보도록 하겠사오니 지도편달 바랍니다. 하긴, 쓰여지기를 바라는 후원(?)이 더 먼저겠지만요! 감사합니다.

 

4·5월 민중행동 활동 보고

민들레와 함께 피었던 이름 모를 수많은 꽃들이 어느새 하나 둘 사라지고, 세상은 푸름으로 여름을 맞습니다. 2005년 시작과 더불어 민중행동에도 이러저러한 일들이 많습니다. 6월은 초록의 싱싱함으로 민중행동을 꽉 채울 수 있도록 하며, 지난 활동을 되돌아봅니다. (옆 사진은 지난 5월 초, 공공서비스노동조합 서구청 집회 때 찍은 것. 우연히 하늘을 보는데, 서구청 길위로 우거진 나무들이 너무 싱싱해 보여 한장 찍어보았습니다.)

민주노총 4시간 총파업

4월1일(금)오후2시, 노동청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 원내하청 투쟁승리,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있었고, 이어서 전대병원 원내하청문제 해결을 위한 연장집회를 전대병원 앞에서 가졌습니다. 집회의 중심 내용은 당연히 비정규직문제였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보호법안이 철폐해야할 비정규직을 오히려 양산하고 정규직마저 고용불안과 빈곤으로 내몰고 있는 판이니 당연하겠지요.

민중행동 총회

05년 민중행동 총회가 4월2일(토)에 있었습니다. 이날 민중행동은 반신자유주의 민중연대전선을 구축하고 민중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활동하며 그에 맞는 다양한 사업들을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이어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를 위한 4월 총파업 총력투쟁을 결의하고, 투쟁 일정에 최대한 참여할 것과 각 현장에서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들을 펼쳐낼 것, 투쟁을 조직해내기 위한 민중행동의 계획에 최대한 참여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장애인 차별 철폐/ 조례 제정 서명 운동

4·20 장애인 차별철폐 투쟁 결의대회가 있었던 지난 16일 오후, 광주전남 장애인인권연대는 '장애인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금남로 일대 도로를 2시간 남짓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습니다.“장애인들은 아직도 이동할 권리도, 교육받을 권리도, 노동할 권리도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동을 위한 저상버스 도입과 장애인콜택시 도입, 장애아동들이 비장애아동과 똑같이 교육받을 권리와 장애인노동권 보장 등을 요구했습니다. 또 4월 30일에는 중증장애인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중증장애인 지원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함께 하였습니다.

현대차앞 1인 시위/ 현장연대 약식 집회, 그리고 현장연대 총회

지난 3월과 마찬가지로 광주전남 현장연대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계속했고, 4월11일에는 현대자동차 불법파견규탄, 비정규직 철폐 결의대회를 광천동 현대자동차서비스 앞에서 가졌습니다. 한편 현장연대는 5월 28일 1차 정기총회를 통해 현장연대 및 현장조직들의 처한 조건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공서비스노조 서구청 앞 집회

공공서비스노조 수진환경 지회는 지금도 매주 목요일 오후4시30분이면 서구청 앞에서 재활용폐기물처리업무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공노동자 결의대회를 하고 있습니다. 공공서비스노동조합은 공공업무를 민간위탁한 서구청과 불성실교섭, 노동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는 수진환경 사측을 규탄하며 서구청의 책임성과 수진환경 사측의 성실한 교섭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민중행동은 재활용품 처리업무의 공공성 강화와 민간위탁 철회를 위한 서구청 앞 결의대회에 함께 하고있고, 이후 투쟁에도 적극 연대할 것입니다.

산재보험제도개악 분쇄와 노동자건강권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단

광주전남지역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은 공동투쟁단을 조직하고 5월 2일부터 근로복지공단 앞 천막농성투쟁에 돌입하여, 5월 14일까지 총 13일 동안 천막농성투쟁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간, 근로복지공단 1인 시위, 각 단사 출근 선전전, 아침 선전전 등 일상적인 선전활동을 전개하였고, 5월2일, 5월10일, 5월14일 산재보험제도개악 분쇄 및 노동자 건강권 쟁취 결의대회를 3차례 진행하였습니다.

전남대병원원내하청지부 투쟁

전남대병원원내하청지부는 파업 45일만에 타결을 보았습니다. 비록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집단해고 속에서도 6개월에 걸친 끈질긴 투쟁과 45일간의 파업투쟁을 통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근로조건 개선, 하청업체의 부당한 횡포와 탄압을 사회적으로 폭로하고 함께 투쟁하는 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옆사진은 5.1일 노동절 노동자대회 때 투쟁이 승리했음을 기뻐하는 전대병원원내하청조합원들의 모습)

5.1 노동절-비정규직철폐 광주전남 노동자 대회

신자유주의가 주는 노동의 불안정화를 온몸으로 안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 수는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전체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요구이고, 이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재편전략의 허구성과 한계를 폭로하는 투쟁이 되었습니다. 많은 민중행동 회원들이 5.1비정규직철폐 노동자대회에 함께 했습니다.

페트리어트 기지 반대 투쟁

5월 15일 송정리 페트리어트 기지 앞에서는 5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한-미 동맹의 현대화' 속에서 추진된 페트리어트 미사일의 배치와 군사전략을 통해 끊임없이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는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해 군부대를 둘러친 철조망을 뜯어내며 주한미군 철수를 외쳤습니다.

 

장흥교통 파업투쟁

5/19 오전10시 장흥교통의 파업투쟁이 장흥군청 옆에서 있었습니다. 숙소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장흥교통 노동자들의 분열을 조장하며 노동탄압을 자행한 사업주에 분개한 노동자들의 장흥읍내 선전전도 함께 하였습니다. 버스공영제실시도 요구하였는데 투쟁을 통해 꼭 쟁취했으면 합니다.

 

울산플랜트노조 전국노동자 대회

5/27 비정규 권리보장 및 건설플랜트 노동기본권쟁취를 위한 전국노동자대회가 울산에서 있었습니다. 파업 기간 동안 울산지역 건설플랜트노동조합의 요구조건은 '화장실을 지어 달라', '식당을 지어 달라',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었습니다. 70일이 넘는 투쟁 끝에 바로 이날 울산플랜트노조는 협상을 마무리지었습니다.

 

반전평화 선전전

전쟁이 끝났다고 한 지 2년이 훨씬 지났지만 이라크에는 평화와 안정은 없고 폭력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자살폭탄, 총격전, 50%가 넘는 실업률...모든 게 날마다 나빠지고 있고, 이라크는 이라크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며, 날마다 사람들은 곧 이 나라를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전쟁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무현정부는 자이툰부대를 파병해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전범이고, 무장한 세계화의 모습으로 세계를 누비는 신자유주의는 언제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지 모르는 일입니다.(사진은 4.20 차없는거리에서 했던 반전평화선전)

민중행동 모임들

교육모임 : 언제부터 '강좌 한국근현대사'를 공부했는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만 지난 5월26일 책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학교교육을 통해 알 수 없었던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들여다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우리의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새로이 공부할 내용은 지금 고민중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내용을 알차게 챙겨가도록 하지요.

여성위(준) : 4-5월에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에 실린 뤼스 이리가레의 글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여성해방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6월부터는 <페미니즘 역사의 재구성: 가족과 성욕을 둘러싼 쟁점들>을 공부하며 여성운동의 역사와 쟁점들, 그리고 한계들을 살피고 한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반전팀 : 6차의 반전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한미동맹의 역사와 한미동맹 현대화 비판, 그리고 독도 영유권 분쟁을 비롯한 동북아 영토분쟁의 본질과 일본 우경화에 대한 올바른 입장은 무엇인지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6월에는 반전평화행동 발바닥과 함께 전범민중재판, 평택미군기지이전반대투쟁, 패트리어트반대투쟁의 내용으로 반전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책기획회의 : 총 4차의 정책기획회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책기획회의에서는 노동운동혁신의 과제와 입장을 만들기 위한 토론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6월)

5월17일(음력 4월10일) 김현미 회원
6월1일(음력 4월25일) 임한옥 회원
6월30일(음력 5월24일) 이경희 회원
7월2일(음력 5월26일) 장덕일 회원

모두모두 축하해 줍시다~ ^^

 

회원들 이모저모..

박정미 회원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송한수 회원, 5월 1일 전대병원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장덕일 회원이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입니다.
일하던 중 오토바이로 앞차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다행히 부상은 심하지 않지만 약 2주간의 입원치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현재 '미래로21' 병원 813호실에 입원중입니다.

 

[재 정 공 지]

회원들의 재정 결의가 필요합니다!!

올해 상근활동가가 확충됨으로써 재정적자가 예상됩니다. 이에 4월 2일 민중행동 2차 정기총회를 통해 [민중행동 재정에 관한 특별결의]를 통과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첫째, 개별적인 회비 인상, 둘째, 2005년 6월까지 특별결의금(10만원) 납부입니다. 민중행동이 안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회원들의 결의를 부탁드립니다.

민중행동 통장 : 회비 및 특별회비 납부는 031-121-677246(광주은행, 김희정)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평등과연대를위한민중행동

홈폐이지: http://pa.jinbo.net /전화: 062)524-1175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13-5번지 청야빌딩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