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펼쳐든 신문에서
이 기사를 봤다
밥을 오래오래 곱씹어 넘기며,
나와 나이가 같은 이 기사속의 젊은 엄마와 죽은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저 가슴이 아파올 뿐..
분노마저 일지 않았다
'그래, 원래 세상이 그렇잖아..'
내겐 그저 멀기만 한 남의 일이 아니다





엄마가 공장에서 밤샘작업을 하는 동안 단둘이 남겨졌던 어린 형제가 불에 타 숨지는 일이 벌어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11일 오후 10시10분쯤 서울 서초구 원지동 개나리마을 내 홍모(54)씨가 세들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에 불이 나 김모(35·여)씨의 여섯 살과 네 살짜리 아들이 불에 타 숨졌다.

4년 전 이혼한 뒤 제빵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온 김씨는 수시로 야간작업을 해 평소 친분이 있었던 홍씨에게 두 아이를 맡기곤 했다. 김씨는 이날도 평소처럼 형제를 홍씨에게 맡기고 인근 공장으로 야간근무를 나갔으며, 홍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로 두 아이를 데리고 와 돌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있었던 홍씨가 아이들만 남겨둔 채 2~3시간 집을 비운 사이 비닐하우스에서 불이 나 이들 형제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평소 아이들이 라이터로 불장난을 해 주의를 받았다는 주변의 진술에 따라 실화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방화 가능성 등 명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엄마가 생계를 위해 일하러 간 사이 두 아이가 이런 변을 당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foneo@joongang.co.kr / 인터넷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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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 우리들의 죽음







우리들의 죽음 / 정태춘





1990년 발표된 정태춘님의 5집 음반 "아 대한민국"에 실린 곡.






낭송/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은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노래/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 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낭송/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