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현장연대 내부토론회에서 다루어진 글입니다.
올바른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단, "직선제" 제안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직선제 주장이 정파간의 갈등으로 비춰지지 않으면서 대중들을 조직하는 대안으로서 의미가 있을 듯 하지만, 이를 통해서 뭘 하고자 함인지 명확하지가 않군요.
더구나 노무현 탄핵 때, "국민투표, 국민소환제"를 주장했던 것이 탄핵반대로 표출되는 대중들의 '불만'을 다른 방식으로 우회하면서 대중들을 급진화 시킬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고자 하는 시도였다면, 안타깝게도 지금의 상황은 대중들의 불만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시기적으로도 뭔가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네요. 이미 이수호는 사퇴한다고 발표해버렸고, 의례 그렇듯이 언론에서는 내부 혁신의 목소리보다 내부 '갈등'에 초점을 맞추어 방송을 내보내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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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두정과 관료제를 혁파하라!
"비리의 민주노총, 대안은 아래로부터의 혁신뿐”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구속 사건은 타락한 노동운동가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사용자로부터 지속적으로 자금을 지원받아 조직하고 더 나아가 이를 개인적으로 유용하기도 했다. 중앙조직의 수석부위원장이 연루된 최악의 비리 사건으로 민주노총은 연일 들끓고 있다. '상층'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이수호 집행부 사퇴’를 둘러싼 공방은 민주노총을 두 동강이 낼 기세다.

그러나 연일 계속된 여론의 집중 보도와 노동운동 내 '상층'의 들끓는 여론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담담하기만 하다. 분노보다는 차라리 무관심과 냉소에 가깝다. 왜 그럴까. 어쩌면 대중들의 눈에는 이미 이러한 비리가 강승규 개인의 문제 혹은 이수호 집행부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부터 중앙조직에 이르기까지 민주노조운동 내에 만연된 비리와 부패구조의 일부라고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승규 사건은 단순한 개인비리가 아닌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문제

대중들은 노동조합의 권력과 부패비리구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중들은 이미 자신이 몸담고 있는 단위 현장에서 이같은 노조간부들의 행태를 학습한 지 오래다.

회사와 노조간부들 간의 거나한 술판 얘기, 대의원이 술마시고 전화하면 회사 관계자가 나와서 결제한다는 얘기, 취직하려면 노조간부에 줄대야 한다는 얘기, 심지어 자신의 작업대에 비정규직을 근무시키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2년간이나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간 어느 고위 활동가의 얘기 등등. 늘어놓자고 들면 끝이 없는 이런 경험을 통해 이미 대중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노조관료들의 권력화와 부패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듯 명백하게 보이는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문제로서의 부패 및 비리구조가 운동 내 상층 지도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쟁점은 ‘이수호 집행부의 사퇴 여부’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분노가 올라와 대중의 힘으로 노동운동이 혁신될 수 있겠는가. 물론 이수호 집행부의 사퇴는 상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조차 없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다면 즉각 사퇴해야 옳다. 이는 노선이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에 해당하는 문제다. 하반기 투쟁 운운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변명에 불과하고, 따라서 사퇴를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제기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은 일이다.

그러나 ‘이수호 집행부의 사퇴’가 이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는 진정어린 성찰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사퇴를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운동 내부의 공방은 우리 스스로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만연된 노조관료들의 권력화와 부패구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오히려 방해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이미 사퇴 여부는 노조권력투쟁의 양상으로 왜곡되고 있다. 물론 일차적 책임이 사퇴를 거부하는 이수호 집행부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진정어린 성찰의 분위기를 잡고 있지 못하기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 아닌가. 따라서 이번 강승규 비리사건에 대한 접근은 철저하게 성찰적 접근이어야 한다. 민주노조운동이 이 지경이 된 원인에 대한 진정어린 성찰과 진지한 토론 그리고 그에 기초한 대안 마련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사퇴'를 넘어 근본적 자기성찰과 자아비판이 필요

민주노총이 만들어진 과정은 주지하다시피 국가의 억압에 맞선 치열한 전투의 과정이었지만, 엄밀히 말해 승리의 결과물은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사회주의의 붕괴로 급격히 확산된 변혁적 전망의 상실과 김영삼 문민정부의 출범을 통한 위로부터의 민주화 국면 속에서 만들어졌다. 전투성과 급진성은 크게 약화되었고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시민권 획득 운동이 지배적 성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노선의 온건화는 필연적으로 민주노총 지배구조에 있어서는 ‘운동성’이 아닌 ‘쪽수’가 중요성을 띠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대기업 출신의 노동관료의 운동지배로 귀결됐다. 대기업 내부적으로는 실리주의를 통해 노동관료의 입지를 확보하고 이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주저 없이 회사와의 암묵적인 협조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한발 더 나아가서는 회사에 협조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활동을 지원받는 활동가들도 공공연히 노동운동 내에 명함을 내밀기 시작했다.

대기업 중심으로 민주노조운동이 일정하게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운동의 긴장감은 조금씩 상실되었고 노동운동은 점점 더 권력게임 양상을 띠게 되었다. 어느 대기업 현장 할 것 없이 노조간부들끼리 패거리를 지어 권력에 도전하고 차기를 준비하는 게 운동의 전부처럼 되었다. 이 과정에서 노골적으로 협조주의세력과 손을 잡는 세력이 나타나기도 했으며, 보통 때는 서로 으르렁거리던 현장조직들이 선거 때만 되면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게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이러한 분파의 난립은 급기야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극단적인 종파주의로 흘렀고 이 과정에서 운동적 원칙을 갖고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종파적 이해를 중심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일이 만연했다. 자신의 계파에 속한 활동가의 비리는 정권의 기획수사라고 주장하고 타 정파의 비리에 대해서는 원래 부패한 집단이라고 몰아 붙이는 따위는 이제 신물날 지경이 된 노동운동의 일상이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해도 대중운동으로서의 노조운동에서 비리란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전노협 시절처럼 비상한 긴장감이 존재하는 시대도 아닌 지금에 이런 일은 계속 터져나올 수 있다.

문제는 노동운동이 이를 스스로 정화해가는 시스템이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전노협 시절에는 그것이 활동가들의 운동적 긴장감과 대중적 힘에 의해 유지되었다. 허튼 짓하는 노조간부는 바로 총회를 통해 불신임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이 두 가지 모두가 없지 않은가.

대중적인 힘은 현 노동운동의 국면에서 단기간에 살아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활동가 내부의 긴장이 먼저 요구된다. 그러나 종파주의는 이를 철저히 막는다. 잘못된 것은 모두 '남 탓' 하는 분위기에서, 모든 책임을 타자화 하는 구도에서, 진지한 운동적 성찰이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지금 운동의 비리구조는 단순히 강승규 개인의 비리도 이수호 집행부의 비리도 아닌 노동운동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는 '실리주의-협조주의-관료주의'로 이어지는 노동관료의 권력화와 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종파주의적 노동운동 그리고 그러한 종파주의에 의해 진지한 성찰이 가로막힌 노동운동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리인 것이다.

'대대 사태' 무엇을 해결했나

이번 사태는 ‘노사정 합의주의’를 둘러싼 대의원대회 무산 사태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노사정 합의주의’를 둘러싼 대의원대회 무산은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태도를 놓고 운동을 두 동강이 낼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그 격렬했던 충돌이 민주노조의 운동성 회복에 얼마만큼의 도움이 됐는지에 대한 평가는 없다. 노동운동 내에 설득력 있는 위기 돌파의 대안을 마련하려는 진지한 노력 없이 대의원대회 소집을 밀어붙인 집행부나 이를 저지하기 위해 쇠파이프를 동원했던 전노투나 진정성을 의심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좌파에 의한 집행부 흔들기’로 사태를 이해했던 이수호 집행부나, ‘노사정위에 들어가면 노동운동 다 망한다’며 쇠파이프를 들지 않은 모든 운동가들을 기회주의자 몰아갔던 세력이나, 위기에 대한 대안을 진지하게 제시하지는 못했다.

‘노동의 위기를 얘기하며 노사정위에 들어가겠다’는 주장이나 ‘노사정위에 들어가면 위기가 심화된다’는 주장이나 정작 진지한 성찰을 가로막기는 마찬가지였고 그 결과로서 대의원대회 강행과 저지의 물리적 대립은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지 않았던가.

노사정위 복귀가 아니라 비정규직 보호입법 총파업을 주장했던 어느 정파조직의 회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업장에서 정작 비정규직투쟁에 찬 물을 붓는 일들이 벌어져도, 정작 그 조직은 해당 회원에게 아무런 비판도 제기하지 않았다. 이렇듯 진정성이 결여된 운동판에서 무슨 혁신이 이루어지겠는가.

이제 메뉴만 바뀌었을 뿐 또다시 운동의 고질적 정파 대결이 재현되려 하고 있다. 재료가 ‘노사정 합의주의’에서 ‘강승규’로 바뀌었고, 도구가 ‘대의원대회 강행과 쇠파이프 저지’에서 ‘사퇴 거부와 사퇴 요구’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나는 양비론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노사정위 복귀가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듯, 지금은 사퇴가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퇴를 중심으로 모든 판이 짜여지는 이 현실 속에서는 답이 있을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근본적 성찰이 동반되지 않는 단순 정파구도의 해악성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리 문제를 혁신의 의제로 확장시켜야 한다. 더이상 사퇴가 중심적 의제가 아니라 이러한 고질적 비리구조 그 자체를 의제로 삼는 과정에서 사퇴 요구가 제기돼야 한다. 이 사태를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 구조의 문제점에 대한 성찰과 혁신의 계기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정파성을 떠나 민주노총 내 산별 관료 중심의 과두제적 지배구조 혁신의 계기로 보아야 한다. 더 나아가 대중의 무관심과 냉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혁신운동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벌써부터 선거 얘기가 심심찮게 오가는 게 노동운동의 현실이다. 내년 1월이든 아니면 즉각이든 사퇴가 이루어지고 나면 운동은 또다시 성찰보다는 '남 탓' 하는 선거구도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이번 비리 사태에 따른 사퇴 공방은 또다시 좌우 각각의 결집의 계기로 작동될 것이며, 이는 고스란히 좌든 우든 노동관료들의 지배체제 강화로 귀결될 것이다.

선거를 통해 집행부는 바뀔지라도 비리의 구조적 원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는 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과두정' 타파를 위해…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를

현재의 비리 문제의 근원은 노동관료들의 과두지배체제와 이와 결탁된 종파주의이다. 종파들은 운동이 양극을 중심으로 범좌와 범우로 선명하게 대립되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와 일치하기 때문에 이러한 구도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제는 대립전선을 바꿔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진정어린 혁신세력과 상층의 과두지배체제의 대립으로 변화시켜내야 한다.

물론 혁신의 대안은 매우 다양한 것이고 풍부한 것이어야 한다. 산별에 대한 고민, 지역본부 위상에 대한 고민 등등은 이러한 내용과 모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의 비리 사태라는 엄중한 조건에서조차 당장 변화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혁신은 요원할 것임도 명백하다.

지금 시기 활동가들이 성찰한다고 해서 내부의 사상적 긴장감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면, 대중들에게 민주노총 상층에 대한 통제권을 좀더 광범위하게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임원에 대한 조합원 소환제, 조합원 발의제, 민주노총위원장 직선제 등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특히 위원장 직선제는 단순히 60만 조합원의 대표자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대표자로서의 민주노총 위원장의 위상을 확보할 수 있도록 미조직비정규, 중세영세사업장 노동자들에 대한 광범위한 투표권 부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면 이는 민주노총의 계급대표성을 강화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동지들의 직선제에 대한 우려는 충분히 근거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혁신이라는 방향 하에서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한다면 직선제의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현재의 정파구조 하에서 사업장별 투표가 노동계급의 의견을 충분히 균형있게 반영할 수 없다면 다소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사업장 밖에서 투표하는 방식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투표권 부여 방안을 마련한다면 진정한 노동계급의 민주노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과반수 규정 등은 매우 부차적 문제이다. 어차피 부위원장 등을 선출하려면 대의원대회를 열게 마련이고 그렇다면 몇명이 출마했든 가장 표를 많이 받은 후보를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방식이 된다면 민주노총의 내부의 고질적 분파주의를 넘어서는 지도력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비리 사태를 혁신의 계기로!

이번 비리 사태는 혁신의 계기이지 정파 교체의 계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부터 진지한 혁신에 대한 성찰의 결과를 축적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상층'의 정파연합 방식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활동가들의 자유로운 모임들을 조직해서 혁신 방안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조직하자. 정치공세형의 일회적 전국토론이 아닌 현장별로, 지역별로 스스로의 성찰에 기초한 혁신방안들을 토론해보자.

그리고 이러한 토론의 결과들을 모아 노동관료들의 과두적 지배체제로서의 민주노총을 조합원이 통제하는 민주노총으로 바꾸기 위한 직선제운동이라는 흐름을 만들자. 사퇴를 요구하되 사퇴를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하는 게 아니라 성찰을 중심으로 노동관료 과두체제에 정면으로 문제제기하는 아래로부터의 혁신운동을 불러일으키자.

지금 위기의 대안은 아래로부터의 진정어린 대안운동에 있음을 우리 모두 깊이 자각하고 노동관료들의 권력투쟁에 동원되는 현장이 아닌 대안을 만들어가는 현장으로 우리부터 거듭나자.

출처: 매일노동뉴스, 이해관(KT노조 부위원장(94~96), KT 해고(95~현), 대안연대회의 정책위원(현),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기획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