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공백 틈탄 이란-급진 이슬람주의 득세 막아라”
‘이스라엘, 레바논 침공’ 에 깔린 패권전략
미국발 ‘중동 재편’ 십자포화
한겨레 박민희 기자
» 이스라엘군 장갑차가 22일 농업공동체인 아비빔 인근 국경을 넘어 레바논으로 진격하고 있다. 아비빔/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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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레바논, 팔레스타인 침공은 ‘중동 재편 전쟁’이며 미국도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반미·반이스라엘 기치를 들고 중동에서 확산되고 있는 급진 이슬람주의와 이란이 주도하는 시아파 영향력 확대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나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정밀유도폭탄 발빠른 지원 침공 개입 확인
사우디등 아랍동맹 ‘시아파 부상’에 위협
반미 역풍에 미국 안에서도 “지도력 위기”

<뉴욕타임스>는 23일 완전히 달라진 중동정세에서 미국은 중요 유전지대를 지키고, 이슬람주의 영향력을 차단하며, 이스라엘을 지켜내는 목표에 집착했고, 이스라엘은 숙적 이란을 겨냥해 직접 공격에 나섰다고 전했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도 이슬람권 전체를 향해 이번 사태에 이슬람 저항운동의 운명이 달렸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21일 텔레비전 연설에서 “레바논이 패배한다면 중동의 저항운동은 종말을 맞을 것이며, 아랍 세계가 영원히 굴욕당하게 되고 시온주의자(이스라엘)의 절대권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에이피(AP)>통신이 전했다.

뉴욕타임스 “이스라엘, 숙적 이란겨냥한 직접공격 나서”




기득권을 강화하려는 미국-이스라엘-일부 아랍국가들과 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등장한 헤즈볼라와 이란이라는, 중동의 지각판 밑에 흐르던 거대한 용암이 레바논에서 분출했고, 레바논은 다시 한번 대리전 전장이 되었다.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 이후 중동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숙적이던 사담 후세인이 사라진 ‘권력공백’을 타고 이란은 급속하게 영향력을 확대했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에 대한 분노로 중동 민심은 급격하게 급진 이슬람주의로 기울었다. 이런 새 바람 속에서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선거를 통해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고 시리아, 이란과 연대를 강화했다.

미국의 주요 동맹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이집트 정권은 점점 더 “미국의 꼭두각시”로 몰렸고, 초조해진 이들 아랍 정부는 이란-이라크-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초승달지대 등장”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직후 열린 아랍 긴급 정상회의에서 이들 국가들은 이례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닌, 헤즈볼라를 비판해 초조감을 드러냈다.


미국의 ‘레바논 침공’ 깊숙한 개입 ‘증거’ 속속 드러나
미, 이스라엘 요청 즉시 ‘정밀유도폭탄’ 신속공급

“즉각 정전” 호소를 무시하며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침공 뒤 미국 정부에 지난해 체결한 무기공급계약에 따라 정밀유도폭탄을 신속하게 공급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미 정부는 즉각 이 무기들을 이스라엘에 보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요청을 받고 며칠 만에 정밀무기를 내준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이란이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해온 미국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중동 지역의 분노를 일으킬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타임>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레바논 사태를 “중동 변혁”의 계기로 활용하기로 했으며, 23일부터 중동 외교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온건 아랍국가들을 결집해 헤즈볼라와 시리아, 이란에 반대하는 “아랍 동맹 우산”을 만들고자 한다고 보도했다.

중동 곳곳에선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략과는 거리가 먼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주 누리 알말라키 이라크 총리는 후원국인 미국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을 맹비난했다. 이슬람권 전역에선 헤즈볼라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시위가 연일 열리고 있다. <비비시>는 이스라엘이 단기적으로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군사적 능력을 약화시킬 수는 있지만, 강력한 풀뿌리 지지를 받고 있는 이들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며,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이슬람권과 서구의 긴장을 높이고, 극단 이슬람주의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브레진스키 전 국무 “이스라엘, 레바논 민간인 300여명 인질잡고 살해”

미국 안에서도 이번 사태가 미국의 패권 자체를 위협할 수 있으며, 미국이 이란, 시리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미국 국무장관은 21일 신아메리카재단 연설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무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며, 중동사태는 미국의 ‘전지구적 지도력’ 행사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실패한다면 미국은 우리가 실패한다면 이 리더십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브레진스키는 “이스라엘은 레바논 민간인 300여명을 인질로 잡고 살해하고 있다. 이는 완고하고 가혹하며 역효과를 내는 데다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대응”이라고 비난했다.

<한겨레>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