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정의파다 (We Are Not Defeated)

한국 l 2006 l 105분 l DV 6mm l 다큐멘터리 감독 | 이혜란

작품소개

16살 사춘기… 하루 14~15시간의 노동을 타이밍과 왕소금으로 버티던 대가는 남자들의 임금의 반도 안 되는 일당 70원.

게다가 남성관리자들의 인격적인 모독과 폭력, 성희롱 등을 견뎌야 했다.

우리들은 부당한 현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남성중심의 어용노조를 뒤엎고 우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최초의 여성 지부장과 여성 집행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정부, 기업, 어용노조 삼자가 공모해 우리들의 여성민주노조를 깨기 위해 조직적인 폭력과 협박으로 탄압했다.

똥물을 뿌리는 등 노조에 대한 탄압은 극에 달해갔고, 우리는 온몸으로, 때론 벌거벗은 몸으로 목숨을 걸고 저항했지만, 결국 우리들은 해고됐다.

30년이 흘러 50살 중년이 된 지금도 끝이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감독소개 이혜란 Lee Hye-ran 1996년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해 <죽음의 공장> <칼바람 치는 공장 뜰에 희망의 꽃을>(1998) 등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00년 3년간에 걸쳐 제작한 현대자동차 식당여성노동자 이야기 <평행선>(2000)을 제작하면서 여성노동자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2001년 사내부부우선해고 문제를 다룬 <83명의 인질>(2001), 여성의 노동과 양육에 대한 <선택은 없다-일과 양육>(2003), 70년대 여성노동자 이야기 <우리들은 정의파다>(2006)등을 연출했다.

현재 여성영상집단 움에서 활동하며 여성노동자가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어떻게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큐멘터리로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 영상집단 `움` 홈페이지 : http://blog.naver.com/womact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복직 투쟁을 하신 분들이 있다.

1978년, 20살 안팎의 어린 여성들은 단지 노동조합을 조직하려 한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고, 남성 동료와 어용상급노조(한노총)와 구사대가 뿌린 똥물과 주먹세례를 받았고, 정부가 뿌린 블랙리스트로 재취업도 하지 못한채 30여년의 세월을 구속과, 비정규직의 생활을 살아오고 있다.

그녀들은 유신철폐가 뭔지도 몰랐고, 노동삼권이 뭔지도 몰랐다. 단지 똥물을 먹고 사는 것이 정상은 아니기에 싸웠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언니들이 다치고, 잡혀가고, 단식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고, 서럽고, 화가나서 함께 싸웠다. 하지만 경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수치를 감내하고 옷까지 벗어던진 그녀들은, "개 값만도 못한 목숨"이라는 모욕을 받았다.

세상은 그녀들을 공순이, 빨갱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 영화, 아니 다큐멘터리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런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그 사건들이 자신들에게 가져다 준 '상처'를 말하고, 그것이 또한 어떻게 '치유'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 옷을 벗어던지면서 경찰들에게 저항했던 자신들의 울음소리가 생각이 나서 눈물흘렸다는 한 여인의 증언은, 그 사건들이 그녀들에게 가져다 준 상처가 얼마나 지독하고 깊숙한 것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은 가족이라든가, 민주화 운동 인정이라는 것들이 아니다.

청춘을 바쳐 일했던 동일방직은 더더구나 아니다. 치료해주는 사람들은 '서로들'이었다.

산업선교회에서 흔히 하는 말로, 미운정 고운정 들어가면서 피와 살을 섞었던 그녀들. 속옷도 같이 입고, 칫솔도 같이 쓰고, 내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남이 배 고픈 것은 못 보고, 교도소의 '훈련'과정에서 지쳐 쓰러졀 갈 듯한 동료 대신에 교도관들의 발길질을 받아내고...28년이 지난 지금까지 길 거리에서 노숙을 함께 하며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는 그들은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정을 쌓을 수 있었겠느냐?"라는 말을 한다.

상처가 깊었던 만큼, 그 상처를 만져주는 손길의 따뜻함도 깊었던 것이다. 카메라와 감독이 그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고, 당사자들의 얼굴만을 비추어주고, 그들의 인터뷰만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도, 이 다큐는 그 어떤 짜여진 영화, 이를테면 헐리우드 최고의 미녀로 통하는 샤를리즈 테론을 앞세운 <노쓰 컨츄리>같은 영화보다, 노동 탄압의 시대를 살아갔던 여성들의 모습을 더 가슴깊이 와닿게 한다.

<노쓰 컨츄리>처럼, 동정과 연민, 혹은 가족애조차도 받지 못했던 그 참혹함 속에서 끈질기게 삶을 일궈나가며, 또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연대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그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수 년전에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었을 때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하나는 '키치 민주주의'에 관한 부분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설의 제일 처음에 언급되는 '영원 회귀'에 관한 것이었다. '만약에 역사가 반복된다면? 로베스피에르의 목이 잘려나가는 것이 역사에서 계속 반복된다면?'

그 때 당시에는 이것이 도대체 뭔 말인지 잘 감이 오질 않았다. "역사란 지나가 버린 것이지 어떻게 .똑.같.은. 형상으로 반복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 대추리 항쟁과,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영원 회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어젯 밤 경찰들에게 연행되어 가던 KTX 여승무원들의 울부짖음과, 28년 전 경찰력에 온 몸으로 저항한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은 과연 다를까?

그녀들을 둘러 싼 맥락은 또 무엇이 다를까? 뉴스에서 본 KTX여승무원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결국 울먹이고 말았다.

덧붙이자면, 영화가 끝나고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언니들이 나와 관객들과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고 대강의 맥락만 기억해 보자면..."복직이 된다면 FTA나 평택과 관련해서 무슨 일을 하실 건가요?"...라는 '우문'에, 언니들이 '현답'을 해주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문제이지, 미래로 미뤄두는 일이 아니다. 복직이 된다면 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또 "무엇을 위해 복직 투쟁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언니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과거의 고통 속에 스스로를 묶어 놓기만 해서는 안 된다. KTX여성들의 모습처럼 그것은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 복직투쟁은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매듭지어야 하는 오늘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