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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운영 논설위원 1주기 유고집 펴내 경제학을 위한 마지막 '변명'

[중앙일보 2006-09-18 21:21]

[중앙일보 이경희.안성식] '선생은 '노동 가치 이론 연구'의 후속작을 구상하여 2년 전쯤 원고를 거의 완성하셨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결국 출판이 미뤄지고 말았는데, 아마 마지막까지도 못내 아쉬워하셨을 것이다.'1년 전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윤소영(52) 교수가 쓴 글이다. 글 중의 '선생'은 지난해 9월 24일 세상을 등진 고 정운영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경기대 교수)을 가리킨다. '불의의 사고'란 피땀 흘려 쓴 원고 파일을 잃어버린 일이었다.

잃어버린 줄만 알던 원고 파일이 기적처럼 되살아났다. 그리고 작고 1주기를 맞아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저명한 진보성향의 경제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던 고인의 추모식을 겸한 유고집 출판기념회가 18일 오후 4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평생 동안 긴 허리 굽히려 아니한 그대…"


김초혜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했다. 소리꾼 장사익씨는 추모곡을 불렀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상영됐다. 출판 기념회에는 본지 권영빈 사장 겸 발행인, 강철규 전 금감위원장, 김정남 전 청와대 수석비서관, 소설가 조정래씨, 가수 조영남씨, 유승삼 전 대한매일 대표, 최철주 전 중앙일보 상무, 정춘수 전 중앙일보 기획위원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한겨레 신문 대표를 지낸 권근술 한양대 석좌교수가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지식인의 미완의 삶이 가슴 아프다"며 회고사를 낭독하자 눈물을 떨구는 이도 있었다.

이날 고인이 남긴 두 권의 유고집 '자본주의 경제산책'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이상 웅진지식하우스)가 한꺼번에 출간됐다. '심장은…'은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본지에 연재한 칼럼 등을 엮은 고인의 아홉 번째 칼럼집이다.

"스스로 정결함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 이를테면 자유라든가 정의라는 단어가 그러하다"로 시작하는 칼럼 '선비'는 미완성인 채로 고인의 컴퓨터에 담겨 있었다. 신부전증으로 병석에 누운 채 부인 박양선씨의 도움을 받아 구술로 완성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본지 2006년 9월 8일자)'도 책에 담겼다. 책 제목은 평소 "인간의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한 고인의 말에서 땄다.

고인을 기억하는 이들은 1주기 유고집을 낼 요량으로 칼럼을 묶는 작업을 진즉 시작했다. 그런데 고인의 차녀 유신씨가 7월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백업)된 아버지의 역작을 발견했다. 한 권의 책 분량으로 깔끔하게 완성된 원고였다. 유족은 이 원고를 윤소영 교수에게 전달했다. 7월 18일, 고인이 갖고 있던 경제학 장서 1만5400여 권을 서울대에 기증하고 감사패를 받던 날이었다.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를 경제발전과 세계화의 맥락에서 조망한 이 글은 윤 교수의 손을 거쳐 '자본주의 경제산책'으로 태어났다. 윤 교수는 "칼럼집이 일반 대중을 위한 유작라면 자본주의 경제산책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강의"라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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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교수 1주기 맞춰 유고집2권 출간

[경향신문 2006-09-18 18:27]


‘정운영 교수가 살아 있다면….’


정교수의 서거 1주기(24일)를 앞두고 문득 바보 같은 생각을 해봤다. 그가 지금도 살아 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 논란’에 대한 TV 토론을 진행한다면 어떨까.

정교수의 1주기에 맞춰 발간되는 그의 유고 ‘자본주의 경제산책’에서 실마리를 찾아봤다. 이 책은 정교수가 지난해 발간하려던 중 갑자기 지병으로 숨지며 내놓지 못한 글들을 한신대 윤소영 교수 등이 펴낸 것이다.

“세계화가 그 신봉자들의 주장대로 무역장벽을 철폐해 교역 증대의 건지와 국물을 같이 나누려는 노력이라면 별로 반대하고 싶지 않다. … 그러나 세계화는 강대국 이기주의를 은폐하고 변호하며 그것을 강요하는 조류라는 점에서 분명히 ‘편파적으로’ 작동한다.”

정교수가 ‘세기말 자본주의 단상’이라는 장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드러낸 생각의 일부다. 정교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세계정신’(Weltgeist)까지는 아닐지라도 현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현실이 됐다”고 본다.

그는 한 강연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지만 그 기준에 못미치는 것들은 다 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세계화는 배타적”이라며 “미국의 개방 압력에 벼를 몰아낸 한국의 논을 모두 물류창고나 운전연습장으로 바꾸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미국이 싼 값으로 쌀을 팔지는 의문”이라고도 했다.

비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의 걱정은 오히려 세계화의 정체를 진지하게 파헤치려는 노력조차 없이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몽유병 환자처럼 외치는 오늘의 세태에 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뜨끔해 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에는 ‘인간의 얼굴’이라는 말에 대한 재미있는 분석이 나온다. 원래 ‘인간의 얼굴을 한’이라는 말은 ‘사회주의’ 앞에 붙는 수식어였다. 자본주의 신봉자들에게 사회주의는 곧 사탄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바뀌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고 말하는가 하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라는 말을 쓰고부터다. 사탄이 죽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와 세계화로 옮아 붙은 셈이다.

책을 엮은 윤소영 교수는 “‘노동가치이론 연구’가 ‘자본’ 전체의 이론적 구조를 설명한 것이라면 그 후속작인 이 책은 세계 및 한국에서의 현실자본주의의 역사와 미래를 분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교수는 책 곳곳에서 근대 경제학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넘나들며 특유의 재치있는 문체로 자본주의 비판을 시도한다. 글들은 정교수가 1998~2003년 사이 쓴 것들이다.

이 책과 더불어 생전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재직시 썼던 글들을 모은 칼럼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도 함께 출간된다. ‘심장은…’은 고인의 아홉번째 칼럼집으로 병상에서 아내의 도움을 얻어 구술로 완성한 마지막 칼럼 ‘영웅본색’을 비롯한 86편의 칼럼이 담겨 있다.

1주기 추모식을 겸해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됐고 김초혜 시인의 추모시, 장사익씨의 추모곡 등이 이어졌다.

〈손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