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군사세계화와 동아시아'라는 주제로 열린 현장 연대 기획강좌에서
백승욱 교수가 북핵문제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올립니다. 강좌에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 참고하세요.


북한 핵실험의 정세에 관해 3가지 입장을 구분해야 한다.

1) 국가간 체계의 세력 균형의 논지 : 이른바 생존전략
-> 북미 국가간의 관계로만 놓고본다면 북한의 입장에서 북한의 행동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실패하고 미군이 이라크에 발목잡힌 상황에서 군사적 개입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란 핵개발에 대한 개입도 발언의 수위에 비해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미국이 북한에 대해 독자적으로 압력을 넣을 마땅한 수단도 없다. 미국은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에 압력을 넣을 뿐이다. 그러나 북한의 붕괴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어서 중국의 북한 봉쇄가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강하게 나올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핵을 개발해버렸고, 미국이 북한의 핵을 인정한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북한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을 것으로 본다. 북한은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카드가 있다. 2차핵실험, 서해NLL에 대한 문제제기, UN탈퇴, 대포동미사일 추가발사시험 등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로 북미관계를 돌이킬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2) 동아시아 평화정착 : NPT의 붕괴, 미국헤게모니 해체가 자동적으로 평화구도가 아니다. 극단적 폭력에 대한 제어로서 국가/국가블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NPT는 미국주도의 핵질서다. 핵을 이미 가진 5개국의 핵은 인정하고 나머지국가는 핵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NPT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깨질수 밖에 없는 조약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던 것은 미국의 힘이 너무 강해서 대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NPT를 북한이 깨고 나왔다. 이로 인해 시리아, 이집트, 브라질 등 과거 핵개발을 했었던 국가들이 다시 핵개발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 대만 등도 단기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핵개발을 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3) 사회주의 역사와 핵개발 문제의 반성 : 운동을 버리고 국가를 선택한 역사
->1945년 이미 전세는 기울어서 미국은 일본본토에 대한 폭격을 가하고 있었고, 소련은 관동군을 무장해제시키는 상황이었는데 미국은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한다. 이로 인해 25만명이 죽었는데 이중 10%는 조선인이다. 군인,민간인 구분없이 죽었고, 글려온 징용자도 죽었다. 대량학살이 자행된 것이다. 그래서 핵에 의한 대량학살은 전쟁범죄로 단죄되어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고 핵폭탄에 의한 전쟁의 조기중단만 부각되었는데 이러한 논리가 형성된 것은 소련이 핵개발을 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핵개발을 했기 때문에 사회주의 세력이 사회주의국가의 방어라는 논리에 휩싸여 반핵운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60년대말, 70년대초 미국이 핵탄두를 유럽에 배치하였고 이로 인해 유럽에는 반핵운동이 일어났는데 프랑스공산당은 이에 대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왜냐면 동유럽에 소련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는 이후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도 파급되었다.

중국은 소련과는 다소 다른 측면이 있다. 무장력은 대칭적일 수 없으므로, 인민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논리로 토지개혁을 단행했고 민중으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이때문에 미국이 국민당에 지원한 무기는 홍군에게 넘어갔고 결국 홍군이 국민당을 몰아냈다. 강한 무기로 전쟁에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전략은 베트남에도 계승되었다. 반면 소련은 체르노빌 사태를 맞았다. 그리고 61년 후루시초프 시기 미국과의 무기개발경쟁에 몰두하면서 수소폭탄을 개발하고 수폭실험까지 했다. 길이 8미터 직경 2미터 짜리 폭탄을 비행기에 매달아 떨으뜨리려고 했으나 폭발하는 순간 비행기가 빠져나갈 수 없어서 낙하산을 달아야 했다. 수소폭탄은 히로시마 원폭의 1000배 규모였고, 극동지역에서 실험을 위해 50Mton(1/20규모)짜리 수소폭탄으로 축소하여 실험을 했는데, 10Km이르는 분화구, 40km에 이르는 버섯구름, 64km내에 모든 것이 녹아버리고 100km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이 3도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얼마나 무모한 짓인가? 소련은 이런 강력한 무기로 미국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그러했는가? 1994년 나프타 발효와 함께 무장투쟁을 개시한 멕시코 원주민 봉기를 주도하여 전세계에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대한 영감을 준 사파티스타는 강력한 무기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었다. 조직의 힘이나 사람의 힘이 중요했던 것이다.